[그린경제/얼레빗 =정석현 기자] 중국에서 인장(印章)제도는 진대(秦代)에 마련되었고, 한대(漢代)에 계승하여 정식화되었다. 한대의 인장은 관인(官印)과 사인(私印)으로 나뉜다.
관인은 인(印) 또는 장(章)(太守·御史·將軍)이라 칭해지며, 지위 고하와 신분에 따라 용어·인장의 재료·형태와 크기 등에 구분이 있었다. 사인은 사인(私印)·인신(印信)·신인(信印)으로 불리며, 그 형식은 일면인(一面印)·양면인(兩面印)·자모인(子母印) 등으로 다양하였다.
낙랑지역에서 출토된 인장은 주로 사인으로, 한대 인장의 형식으로 제작되어 대개 한대에 한정하여 제작·사용되었다. 이 지역의 인장은 한에서 제작되어 수입된 것과 낙랑지역에서 직접 제작한 것이 공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부조예군은인(夫租薉君銀印)
부조예군묘(夫租薉君墓)는 단장목곽분(單葬木槨墳)으로서, 세형동검(細形銅劍)과 동모(銅矛), 동탁(銅鐸), 철제장검·단검·대도, 철부(鐵斧) 및 다수의 마구류, 수레부속이 출토되었다. 본 인장의 인문(印文)은 반서(反書)이고, 타뉴(駝鈕)이다.
크기: 인면(印面) 2.2cm 방형(方形), 두께 0.5cm
출토지; 평양시 락랑구역(樂浪區域) 정백동(貞柏洞, 구 정백리) 부조예군묘(夫租薉君墓)
소재지;북한
<출처: 한국금석문종합영상정보시스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