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왔구나 왔소이다 황천 갔던 배뱅이가…”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은 이 대목에 누구나 익숙하다. 배뱅이와 이은관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인 것이다. 그 배뱅이굿의 주인공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예능보유자 이은관 명인이 12일 97살로 세상을 떴다.
고인은 다음 달 25일에도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에서 배뱅이굿을 공연할 계획일 만큼 그동안 정정한 모습으로 배뱅이 끈을 놓지 않았었다. 고인은 배뱅이굿을 시작한 뒤 80돌을 맞은 지난해에 무대에 올라 “얼굴도 모르는 배뱅이가 평생 나를 먹여 살렸으니 고맙기만 하다”는 말을 했었다.
▲ 배뱅이굿을 부르는 생전의 이은관 명인
배뱅이굿은 상사병을 앓다 숨진 배뱅이 이야기를 장구 반주에 맞춰 서도소리로 풀어내는 1인 창극이다. 고인은 1957년 영화 ‘배뱅이굿’에 출연한 뒤 일약 스타가 됐다. 당시 영화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은 6만 장이나 팔렸다. “왔구나 왔소이다 황천 갔던 배뱅이가…”라는 대목은 1960년대 인기 코미디언 남보원 씨가 흉내 내 더욱 유명해졌다..
고인은 장구를 자유자재로 돌리면서 기차소리, 바람소리를 낼만큼 장구와 소리의 명인이었다. 1950~60년대 청중을 휘어잡는 스타였지만 당시 무형문화재 심사위원들이 “소리에 재담이나 섞고 점잖지 못하다”면서 인정하지 않아 1984년에야 겨우 서도소리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1990년 보관문화훈장을, 2002년 방일영국악상을 받았으며, 한국국악협회 부이사장을 지냈다.
▲ 제자 박준영의 공연에서 특별출연하여 색소폰을 연주하는 고 이은관 명인
공연차 멀리 호주에 가있어 장례식에 참석할 운명도 안 되는 고인의 직계 제자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전수조교 박준영 명창은 “가슴이 미어진다. 이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또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인 서도소리 전수조교인 유지숙 명창은 “서도소리의 역사를 시작했던 분으로 서도소리가 일반에게 널리 알려지게 한 정말 소중한 어른이셨는데 이제 진짜 서도 고장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이 정말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단걸음에 빈소에 다녀온 경기도무형문화재 제31호 경기소리 보유자 임정란 명창은 “든든하게 뒤를 받쳐주시던 선생님이 가시니 가슴에 휑하니 구멍이 뚫리고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했다.
얼마 전 공연에서도 제자들을 향해 우렁찬 소리로 꾸짖었을 만큼 건강했던 고인은 보름정도 앓고 세상을 떴다는 소식이다. 유족은 아들 승주, 딸 옥분 옥금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성동구 왕십리로 한양대병원 장례식장이며. 발인 14일 오전 9시다. 02-2290-94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