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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 수라상과 백성의 밥상

[서울문화 이야기 21]

[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조선시대의 진귀한 음식들, 궁중 수라상 

1) 초조반
탕약이 없는 새벽에는 죽상을 차린다. 죽은 계절에 따라 여러 가지 부재료를 넣고 끓인다. 왼죽(粒粥 입죽:불린 쌀을 통으로 쑤는 죽흰죽·전복죽·원미죽(쌀을 갈아 싸라기로만 쑨 죽에 설탕약소주를 타고 얼음으로 차게 식힌 죽장국죽(쇠고기로 끓인 맑은 장국에 쌀을 넣고 끓인 죽버섯죽·잣죽·타락죽(우유죽깨죽 따위가 있다. 죽에 따르는 반찬은 젓국조치와 동치미·나박김치·마른찬·간장·소금·꿀 등으로 간단하게 차린다. 죽은 병자음식이 아니라 몸을 보하는 음식이다. 

2) 수라상
임금과 중전이 평소에 아침과 저녁으로 받는 밥상의 이름. 아침수라는 10시 무렵, 저녁수라는 저녁 67시에 올린다. 수라상에 밥은 흰쌀밥과 팥밥, 두 가지를 올리는데 팥밥은 붉은팥을 삶은 물을 밥물로 하여 지은 것으로 홍반이라 한다. 밥은 왕과 왕비용으로 곱돌솥에 안쳐서 화로에 참숯을 피워 짓는다. 수라상 원반에는 흰밥과 미역국을 짝으로 올리되, 팥밥과 곰탕은 책상반(冊床盤, 보조수라상)에 놓았다가 원하면 바꾸어 올린다. 

   
▲ 수라상에는 흰쌀밥과 더불어 꼭 잡곡밥을 올려놓았다.(뉴스툰)

찌개는 맑은조치[조치:바특하게 만든 찌개나 찜]와 토장조치의 두 가지를 작은 뚝배기에 끓여서 그대로 올린다. 맑은조치는 간을 소금·새우젓국·간장 등으로 맞추고, 토장조치는 된장이나 고추장으로 맞춘다. 전골도 주재료에 따라 여러 가지가 만들어진다. 김치는 동치미·배추김치·깍두기 등 세 가지를 차린다. 장류는 간장·초장·초고추장·새우젓국·겨자즙 등을 종지에 여러 개를 담아서 놓는다. 숭늉이나 오곡차도 준비한다. 

반찬은 조리법과 주재료가 겹치지 않게 12가지를 만든다. 12가지는 고기·생선·산적·누름적 등 더운구이, ·더덕·북어 등 찬구이, 전유어(얇게 저민 고기나 생선 따위에 밀가루를 바르고 달걀을 입혀 기름에 지진 음식), 쇠고기나 돼지고기의 편육, 나물, 생채, 조림, 젓갈, 장아찌 등의 마른찬과 수란··강회 등의 별찬에서 두 가지이다. 수라상은 임금과 왕비가 같은 온돌방에서 겸상을 하지 않고 각각 상을 받는다 

 

   
▲ 수라상에 올랐던 골동면(쿨켓의 힐링쿠킹 블로그 제공)

   
▲ 임금 생일에 빠짐없이 올랐다는 떡 “혼돈병(渾沌餠)”, 한국전통음식연구소 윤숙자 소장의 책 《규합총서》

대원반(크고 둥근 소반)에는 임금이 쓸 잎사시(은수저) 두 벌을 놓고, 왼쪽에는 뼈·가시 등을 버리는 토구(吐口) 또는 비아통이라 부르는 그릇을 놓는다. 소원반에는 잎수저 한 벌, 상아젓가락 한 벌 놓고, 공기와 공접시를 세 벌씩 놓아 기미상궁과 수라상궁이 시중들 때 쓴다. 책상반에도 잎사시와 상아젓가락을 각 한 벌씩 전골용으로 놓는다. 궁중에서는 오월 단오부터 팔월 한가위 전까지는 자기를 쓰고, 가을·겨울에는 은그릇이나 유기를 쓴다. 

소원반 앞에는 기미상궁이 앉아서 왕이 음식을 들기 전에 먼저 음식에 문제가 없는지 먼저 시식한다. 기미상궁은 임금이나 왕비를 어릴 적부터 모셔온 사람이 맡는다. 중전의 기미상궁은 보통 친정에서 함께 들어온 상궁이 맡는다.  

3) 낮경사, 어상, 입맷상 

낮것상
점심을 궁중에서는 낮것이라 한다. 평일에는 과일·과자··화채 등의 다과반 차림을 하거나 미음·응이(녹말죽)를 차린다. 종친이나 외척의 방문이 있을 때는 장국상을 차린다. 

어상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에 임금이 받는 상으로 망상(望床)이라고도 한다. 음식을 높이 괴어서[高排]화려한 장식을 한 다음 올린다. 고배는 잔치의 규모에 따라 그 높이가 달라진다. 의식이 끝나면 고배한 음식을 종친과 당상관의 집으로 고루 내린다. 민간에서 혼인잔치·회갑잔치에 고배하는 것도 궁중 잔치의 고배음식을 차리는 풍습을 따른 것이다. 

입맷상
잔치에 의례로 차리는 고배상은 그 자리에서 허물어 먹는 것이 아니라 직접 먹을 수 있는 상을 따로 차린다. 이것을 입맷상 또는 몸상이라고 한다 

   
▲ 예전에는 시댁에서 신부에게 큰상을 차려주었다.<신부연석, 김준근>(왼쪽), 회갑이나 혼례 때 차리는 저 큰상 뒤에는 실제 먹을 수 있는 입맷상이 있었다.

4) 조선 임금의 수라상은 ’12첩 반상이 아니었다 
조선시대 백성은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양반가 대부분 음식은 호화로웠다.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드라마 <대장금>을 보면 궁궐의 온갖 화려한 음식이 등장한다. 그만큼 조선시대는 특히 한양은 화려한 밥상과 초근목피로 크게 나뉜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는 조선시대 임금의 수라상이 반찬만 12가지인 ‘12첩 반상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이는 과장된 것이다.  

정조임금이 화성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환갑잔치를 벌였는데 이때의 모든 내용이 원행을묘정리의궤(1795)에 기록되어 있다. 이때 먹었던 잔치 음식이 “7첩반상인데 반찬이 7가지가 아니라 장을 뺀 밥, , 조치(찌개나 찜), 김치와 함께 양념 된 생선이나 고기를 대꼬챙이에 꿰어 불에 구운 음식인 적(), 젓갈, 자반 등의 3가지만 반찬으로 먹었다. 조선 임금의 식생활은 대부분 검소했으며, 평소 아침엔 죽을 먹었고, 가뭄이나 수해, 돌림병이 나면 임금이 물을 만 밥을 먹거나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갑오경장 이후 화려한 식생활로 바뀐 것을 조선 전체의 관습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 

   
▲ 정조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잔치 기록인 《원행을묘정리의궤》(1795년)에는 뜻밖에도 검소한 7첩반상이 나온다.

5) 궁중 잔치음식은 대령숙수가 만든다
궁중에서는 음식을 한 곳에서 만들지 않는다. 중전·대비전·세자빈의 전각 등 각 전각마다 주방상궁이 딸려서 각각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각 전각의 음식을 만드는 부서로는 생과방(生果房)과 소주방(燒廚房)이 있었다. 생과방은 평상시의 수라 이외에 제호탕·잣죽·깨죽·낙죽 등과 각종 전과·식혜·다식·떡 등 음료와 과자를 만드는 부서로 잔치 음식의 다과류도 이곳에서 만들었다. 

소주방은 내소주방과 외소주방으로 나누어진다. 내소주방은 평소 수라를 관장하는 곳이다. 외소주방은 잔치음식을 만드는 곳으로서, 궁궐의 다례나 대소 잔치는 물론 윗사람의 생일에도 잔칫상을 차렸다. 이밖에 잔치를 위하여 임시로 설치하는 숙설소(熟設所)가 있었고 이때음식을 조리하는 남자조리사를 대령숙수(待令熟手)”라고 한다. 대령(待令)이란 왕명을 기다린다는 뜻이고 숙수(熟手)는 조리사를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궁중음식을 맡은 이조(吏曹) 사옹원(司饔院)에 속해 있었으며 총책임자는 정3품의 제거였다. 대령숙수는 세습에 의해 대대로 이어졌고, 궁 밖에 살면서 궁중의 잔치인 진연(進宴)이나 진찬 때 입궐해 음식을 만들었다. 솜씨가 좋은 대령숙수는 임금의 사랑을 받기도 했다. 나라의 잔치인 진연 때는 진연도감(進宴都監)이 일시적으로 설치되고 숙설소(熟設所) 곧 궁중에서 큰 잔지를 준비하려고 임시로 세운 주방을 세운다. 숙설소에는 감관이 파견되고 40~50명에 이르는 숙수가 음식을 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