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백제 출신 하지(土師) 스님이 주석했던 절 천초사(浅草寺, 센소지)는 관동에서 유서 깊은 절이다. 지난 3월 9일 천초사를 찾은 날에도 관동 최고의 절 답게 절을 찾은 인파로 북새통을 이룰 만큼 많은 사람들이 절을 찾았다.
“아사쿠사는 옛도시의 분위기를 간직한 유서깊은 절이 있는 도쿄에서 가장 전통적인 거리 입니다. 수세기의 역사를 간직한 아사쿠사간논절(浅草觀音)과 아사쿠사신사(浅草神社)는 물론 주변 지역에까지 아사쿠사의 매력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아사쿠사에서는 에도시대 서민 경제와 오락의 중심이었던 옛 도시의 매력을 느낄 수 있고 또한 현재 이 시대 서민들의 활기찬 생활 모습도 즐길 수 있습니다.”
▲ 관동 최고의 절 천초사 입구의 가미나리몽
다이토쿠(台東区) 관광과에서 만든 <아사쿠사 일대와 천초사>에 대한 한국어판 안내문은 일본어를 몰라도 아사쿠사 일대를 편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친절한 한글로 되어 있으며 아사쿠사 역 근처 여행안내소에서 관광객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도쿄의 인사동. 아사쿠사 천초사를 가리켜 이렇게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절 입구에 나란히 들어선 나카미세(仲見世, 상점가)는 언제나 관광객들로 바글거린다.
▲ 가미나리몽을 지나 대웅전으로 이르는 나카미세(상점가)
이곳이 관동 최고의 관세음신앙지 천초사다. 천초사는 가장 오래된 절을 뜻하는 최고(最古)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절로도 최고(最高)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닌다. 도쿄 시내를 순환하는 JR 야마노테선(山手線)을 타면 곧바로 갈 수 있는 곳이어서 접근성이 좋은데다가 관동 제일의 유명한 절이다 보니 절은 언제나 북새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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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초사의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문에 커다란 짚신이 달려있다 |
아사쿠사역에 내려서 절 입구 표시를 보고 걸어 나오면 바로 마주치는 커다란 가미나리몽(雷門)은 천초사의 대문인 셈인데 정식명칭은 후라이몽(風雷門)이지만 통상적으로 가미나리몽이라 불린다. 이 문은 후지산과 함께 일본을 상징하는 풍경의 하나로 각종 여행 안내 책에 단골로 등장하는 높이 3.9m, 지름 3.3m, 무게 700kg에 달하는 거대한 등으로 오른쪽에는 풍신상, 왼쪽에는 뇌신상이 자리한다. 천초사의 상징이 되어버린 가미나리몽 앞은 언제나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붐빈다. 금발의 서양인 모습도 눈에 띄고 흑인들도 있다. 중국어도 들리고 한국어도 예사로 들릴 만큼 관광객들에게 사랑 받는 곳이다.
천초사에는 유명한 관음상이 있는데 이를 “아사쿠사간논(浅草観音)이라고 부른다. 천초사가 자리한 땅이름 천초는 얕을 천(浅), 풀 초(草)를 쓰는데 이를 소리로 읽으면 “센소”로 발음하며 “아사쿠사”는 뜻으로 읽는 것이다. 이는 곧 한국의 “대전(大田)" 이 소리로 읽는 것이고, “한밭”은 그 뜻인 것과 같은 이치다. 지명에서 보듯 이곳은 그 옛날 풀밭이었다. 나무가 우거진 숲이 아니라 자잘한 풀들이 드넓게 펼쳐져 있던 초원지대로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은 한국계(韓國系)였다.
《속일본기》에 “고구려인 1,799명을 오늘의 관동지방인 무사시국에 이주 시키고 이곳에 고구려군(高句麗郡)을 설치했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일본서기》 천지 5년 겨울조에는 (天智5年冬条)“백제 남녀 2,000명이 동국(東國)에 살았다. 스님과 속인을 가리지 않고 3년 동안 정부로부터 녹읍을 내려받았다.”는 내용이 보이며 천무 13년 5월조(天武13年5月条)에는 “귀화한 백제 스님과 속인 23명을 무사시국에 옮겨 살게 했다.” 또한 지통 12월조(持統12月条)에 “고구려, 백제, 신라의 백성 62명을 받아들였다.”라는 기록이 있을 만큼 관동지방은 고대 한국인과 깊은 관련이 있다.
당시의 관동지방은 사가미국(相模國), 무사시국(武蔵國), 히다찌국(常陸國)을 포함하여 8국으로 나뉘어 있었으며 오늘날의 도쿄도(東京都)를 포함한 가나가와현(神奈川県), 사이타마현(埼玉県)등을 아우르는 지역이다. 야마토정부의 관동개발 프로젝트 제1진으로 도착한 고구려인들은 풍부한 물과 초원지대를 이용한 대규모 목장을 경영하면서 관동의 세력권을 키워나갔다.
헤이안 중기의 법전인 《연희식, 延喜式)》에 보면 무사시국에 3개의 목장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히노구마목장(檜前牧)이다. 또한 일본 《지명사전,地名辭書》에 따르면 무사시국 풍도군 점방향조 (武藏國 豊島郡 占方鄕条)에 “이곳은 지금의 천초구(淺草区)로 예전엔 히노구마목장(檜前牧)이 있었다.”라고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아사쿠사 절터는 예전에 목장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 천초사 대웅전
천초사를 이야기하면서 목장을 이야기 하는 것은 천초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백제계 어부 형제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씨가 히노구마(檜前)인 어부형제는 또한 백제 출신 하지(土師) 스님과도 깊은 관련이 있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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