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저녁 7시 반. 광화문의 푸른역사아카데미 강의실에는 하나둘씩 모인 사람들이 어느새 가득 찼다. 스무 명이 모이면 딱히 좋을 듯한 공간은 그 배나 되는 숫자가 모였는데 모두 하나 같이 《체 게바라를 따라 무작정 쿠바 횡단》을 쓴 이규봉 작가처럼 체 게바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 저자 특강을 하는 이규봉 교수, 《체 게바라를 따라 무작정 쿠바 횡단(푸른역사)》책 표지
자전거 하나로 역사의 현장을 달리는 이규봉 작가의 직업은 대학교수다. 그것도 얼핏 보면 역사와는 관계가 없는 듯한 수학과 교수다. 그런 그가 역사학자보다 더 쉽고도 재미난 그러면서도 무언가 시사 하는 듯한 점을 콕콕 찍어 책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 해답은 저자 소개가 시작되고 ‘쿠바의 역사와 체 게바라의 일생’에서 간단히 찾을 수 있었다. 1시간 반 동안의 그의 강연을 듣는 동안 청중들은 숨 한번 크게 쉬지 않고 귀를 기울였다. 작가는 아주 편하게 이웃 아저씨 같이 쿠바 이야기를 펼쳐 나갔다. 거기에는 자신이 교수라든가 작가라는 의식이 깔려있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딱딱한 남의 나라 역사를 자신이 이해한 방식대로 청중에게 편하게 들려주었다.
어설픈 역사가들이 쓴 쿠바의 역사가 아니라 쿠바의 구석구석을 자신의 발로 뛰면서 충분히 자기 것으로 소화 해낸 자기만의 독특한 ‘쿠바 인식’이 청중의 눈과 귀를 하나로 모았다. 대단한 작가의 흡인력이다.
“체 게바라 산타클라라에 안장되다”로 시작된 강연은 1928년 5월 14일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에서 출생한 체 게바라의 어린 시절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의대 입학부터 시작된다. 체 게바라의 인생은 친구 알베르토와 함께 오토바이로 약 9달 동안 남미 여행을 하면서 180도 달라지는데 미국에 의해 과테말라 등 남미 여러 나라가 전복되는 것을 목격하면서 얌전한 의대생 체 게바라는 환자를 고치는 의사가 되기보다는 ‘사회를 고치는 의사’가 되리라는 꿈을 갖게 된다. 혁명가의 길이 여행에서 가닥을 잡게 되는 것이다.
▲ 저자 특강을 하는 이규봉 교수(왼쪽)과 청중들
▲ 강의실을 가득 메운 청중들이 특강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수학자인 작가 역시 안식년을 맞아 뉴질랜드에서 1년을 보내면서 한국사회의 왜곡된 역사에 눈을 뜨게 된다. 이번 책도 그가 인식한 왜곡된 우리 역사를 쿠바라는 나라를 통해 새롭게 바라다보는 ‘하나의 창’으로 썼기에 한국인인 우리가 생소하지 않은 지도 모른다.
직항로도 없는 멀고도 먼 쿠바의 역사와 쿠바 혁명가를 이처럼 명료하게 이처럼 바로 이웃나라처럼 인식 할 수 있게 한 것은 오로지 이규봉 작가의 역사인식이 그대로 체험으로 녹아들어 있기에 가능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쿠바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일직선상에 꿰뚫고 있는가하면 1905년 초 1,033명의 조선인이 멕시코 이민선을 타고 떠나 1921년 3월 245명이 쿠바에 정착하게 되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고 들려줌으로써 작가가 단순한 자전거 답사 여행가가 아닌 민족의 아픈 역사를 보듬을 줄 아는 ‘인간미 넘치는 여행가요, 저술가’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숨소리 하나 크게 내지 않던 청중들은 90분 강연 끝의 질문 시간에 오늘의 쿠바에 대한 질문으로 쿠바가 더 이상 먼 나라가 아님을 실감케 해주었다. 서초동에서 강연에 참석한 양승국(변호사) 씨는 “이규봉 교수의 여행기는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역사가 있고, 인문학이 행간에 녹아 있는 여행기다. 의사의 삶을 버리고 쿠바 혁명에 참여하였고, 성공한 혁명가로서 안락한 삶을 살 수 있음에도 다시 쿠바를 떠나 콩고, 볼리비아의 혁명 활동을 돕다가 숨진 체 게바라의 삶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어 마치 쿠바를 다녀온 느낌이다.” 라고 했다.
▲ 자신 책에 서명을 해주고 있는 이규봉 교수
또한 이규봉 작가와 함께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일을 해온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은 “이규봉 교수의 쿠바 답사기는 그냥 떠나고 싶어 훌쩍 떠나 사진 몇 장 넣고 감상문 형식으로 쓰인 책이 아니다. 그는 철저히 떠나기 전 답사 할 곳을 공부하고 준비해서 떠나는 지독한 역사연구가이다. 베트남 답사기가 그러하고 출간 준비 중인 중국의 장준하 답사기 등 그가 대상으로 하는 곳은 그 어느 역사학자 보다 철저한 연구가 앞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그가 따스한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윤옥 소장은 “쿠바의 체 게바라를 낸 푸른역사에서 나온 이규봉 작가의 《미안해요 베트남》 책의 저자 특강도 빠른 시일 내에 이뤄졌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덧 붙였다.
3월 25일 저녁 광화문의 봄바람이 볼을 스치는 저녁, 참석자들은 먼 나라 쿠바가 아닌 이웃나라 쿠바여행을 마친 듯 흡족한 모습으로 푸른역사아카데미 강의실을 빠져 나왔다. 기자의 머릿속에는 이규봉 작가가 인용한 이 한마디가 지워지지 않았다.
“당신은 씨를 뿌리고도 따먹을 줄 모르는 바보 같은 혁명가다. 이 말에 체 게바라는 말했다. 그 열매는 이미 내 것이 아니다. 나는 아직 씨를 더 뿌려야 할 곳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