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고려는 불교와 귀족의 나라였기에 상감기법을 이용한 많은 무늬와 화려한 색깔의 청자가 발달했다. 하지만 조선은 성리학이 중심이 된 나라로 현실적, 합리적, 실용적인 사고방식이 지배해 백자가 발달됐다고 학계는 말한다. 그 순백색의 백자에 대해 김상옥 시인은 "불 속에 구워내도 얼음 같이 하얀 살결!"이라고 노래한다. 조선을 대표하는 것으로 눈처럼 하얀 순백색의 그릇들로, 아무런 무늬가 없거나, 있어도 꾸밈이나 번잡스러움은 없는 백자항아리만의 전시회가 성보문화재단 호림박물관(관장 오윤선) 신사분관(호림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 호림아트센터 건물 외벽에 커다랗게 새겨놓은 “백자호(白磁壺), 너그러운 형태에 담긴 하얀 빛깔” 전시회 홍보
“백자호(白磁壺), 너그러운 형태에 담긴 하얀 빛깔”이란 이름의 백자전은 오는 6월 21일까지 개최하는 1차 전시에는 순백자항아리를 내놓으며, 6월 26일부터 9월 20일까지 여는 2차 전시는 전시품을 전면 교체해 청화(靑畵)·철화(鐵畵) 백자항아리를 전시하게 된다. 두 차례 전시에 출품하는 도자기는 각 90여 점. 기자는 4월 9일 오후 박물관을 찾았다. 유진현 학예연구팀장의 안내로 전시장을 둘러보는 동안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백자는 매혹적인 맵시를 뽐내고 있었다.
특히 이번 전시회는 그동안 조선 백자의 대표격으로 알려진 동근 모양의 달항아리 말고도 그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한 한껏 부풀어 오른 어깨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며 버티고 선 입호(立壺) 곧 선항아리의 다양한 모양새가 공개됐다. 선항아리는 높이가 61㎝(입지름 19.5㎝, 굽지름 18.5㎝)에 달하는 것도 있는데 이처럼 높이 50~60cm인 큰 항아리는 조선왕실의 잔치 때 쓰던 꽃항아리(화준, 花樽)이나 술항아리인 곧 주준(酒樽)으로 쓴 것들이다. 그뿐만 아니라 생김새가 떡메처럼 생겼다 해서 '떡메병'이라 일컫는 항아리, 태를 담아 묻어두는 태항아리, 돋을새김 무늬를 넣은 항아리 등 다양한 항아리들이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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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형의 아름다움, 달항아리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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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모양의 백자항아리들 |
이번 호림아트센터의 백자 전시는 그동안 다른 전시들과는 달리 정형화된 것이 아닌 일그러지고 삐뚤어진 비정형의 아름다움을 한껏 확인해볼 수 있도록 시원시원하고 여유롭게 전시했다는데 큰 특징이 있다. 항아리를 한 바퀴 죽 돌아보면서 앞뒤좌우에서 각각의 매력을 관찰하도록 한 뛰어난 기획이다. 보통 박물관에서 쌓아놓듯 한 전시물을 보았던 것에 견주면 관람객들을 크게 배려한 모습이다.
동시에 큰 백자 항아리는 물레로 한 번에 뽑아낼 수가 없기 때문에 위짝과 아래짝을 따로 만들어 이어 빚는데 띠를 두른 듯 골이 진 이음매가 있는 것을 여유로운 전시이기에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항아리의 안쪽을 들여다보면 이음매는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백자 항아리를 비정형으로 만든 까닭은 의도적일까 우연일까?
유진현 팀장은 말한다. “물론 큰 항아리야 물레를 돌려 한 번에 만들 수 없지만 작은 항아리도 따로 빚어 이은 것을 보면 비정형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작업한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정형화된 항아리야 기계로 얼마든지 뽑아낼 수 있겠지만 비정형의 작품이야 기계로 빚을 수 없고 오로지 작가의 예술 감각만이 빚어낼 수 있음이 아니던가? 유 팀장의 설명과 함께 꼼꼼히 살펴보는 순간 나는 백자의 또 다른 매력들을 발견하고 또 발견한다.
▲ 백자 항아리들은 저렇게 위짝과 아래짝을 따로 만들어 이어붙인다. 꼼꼼히 살피면 겉으로도 이어붙인 흔적이 보이지만 안에서는 이어붙인 자국이 역력하게 드러난다.
▲ 세자가 태어나면 태를 담아 묻어두었던 테항아리 내호(왼족)과 외호
호림박물관은 삼성리움미술관, 간송미술관과 더불어 국내 3대 사립 박물관으로 꼽힌다. 도자기 명품을 많이 소장한 곳으로 유명하고 그림과 고서류 소장품도 물론 훌륭하다. 호림(湖林) 윤장섭(尹章燮) 선생이 출연한 유물과 기금을 토대로 민족문화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 1982년 개관한 박물관으로 관악구 신림동에 본관이 있다. 호림박물관은 토기 3천여 점, 도자기 4천여 점, 그림과고서류 2천여 점, 금속공예품 600여 점 등을 소장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는 국보 8점, 보물 46점도 보유했다.
호림박물관은 간송이나 리움에 견주면 덜 알려졌지만, 관람객들이 편하게 볼 수 있도록 배려하는 전시는 다른 박물관보다 뛰어난 점이다. 다른 사립박물관이 폐쇄적이거나 부실한 전시관이 문제가 된다는 지적을 받기도 하지만, 호림은 그런 지적이 상대적으로 덜한 훌륭한 박물관이다.
호림박물관에 처음 와본다는 서울 광장동에서 온 정성희(주부) 씨는 “백자항아리가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 삐뚤어졌다고만 생각할 수 있는 이 항아리들을 앞뒤로 돌아가며 감상하니 그 매력이 기가 막히다. 더구나 관람객이 북적이지도 않은 것은 물론 널찍한 전시관 덕분에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다.”라고 말한다.
▲ 청화백자매죽무늬항아리 국보 제222호
저렇게 아름다운 백자를 우리는 빚을 수가 없다. 하지만 호림박물관의 배려로 우리는 그 아름다움을 한껏 감상하고 가슴에 담아올 수 있다. 이 봄에는 진달래, 개나리의 아름다움만이 아닌 꾸밈이나 번잡스러움이 없는 순백색 비정형의 아름다움이 넘치는 호림아트센터로 가볼까?
▲ 백자돋을새김송죽무늬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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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자항아리는 저렇게 삐뚤어진 모습도 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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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자 뒷쪽으로 거울을 설치해 앞에서 뒷모습 등 여러 위치에서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게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