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 얼레빗 = 정석현 기자] 청룡사(靑龍寺)의 옛 터에 남아 있는 비로, 고려 공민왕(恭愍王)과 공양왕(恭讓王) 및 조선 태조(太祖)의 국사(國師)로 있던 보각국사(普覺國師)의 비이다.
문인선사(門人禪師) 희달(希達)이 태조 3년(1394년)에 태조(太祖)의 명을 받아 세운 것으로, 비문(碑文)은 권근(權近)이 지었는데 그 내용은 고려 우왕 9년(1383년)에 국사가 되어 73세에 입적한 사실과 보각국사의 덕과 지혜를 추앙하고 기리기 위하여 왕명으로 세운다는 것이다. 풍우로 인하여 손상이 많이 되었다.
보각국사(1320∼1392)는 고려 후기의 승려로, 12세에 어머니의 권유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이후 불교의 경전을 두루 연구하여 높은 명성을 떨치었다. 도를 지킴에 조심하고, 특히 계율을 따를 것을 강조하였으며, 문장과 글씨에도 능하였다.
12세에 출가하여 22세 때에는 승과에 급제하였으며, 29세 때에는 금강산으로 들어갔다가 이후 청룡사로 옮겨가 머물렀다. 여러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며 수도하다가 조선 태조 1년(1392) 청룡사로 돌아와 73세에 입적하니, 태조는 시호를 내려 ‘보각국사(普覺國師)’라 하고, 탑 이름을 ‘정혜원융(定慧圓融)’이라 하였으며, 청룡사에 대사찰을 조성하도록 하였다.
비는 1장의 돌로 된 네모난 대석(臺石) 위에 비신(碑身)이 서 있는데, 비 윗부분의 장식물인 개석(蓋石)은 없는 대신에 비신 양 끝부분의 모서리를 깎은 귀접이 양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 청룡사보각국사정혜원융탑비(忠州靑龍寺普覺國師幻庵定慧圓融塔碑)
연대: 1394년(태조3년)
보물 제658호
크기: 전체높이 265.4cm, 비신높이 232.2cm, 너비 115.5cm, 두께 19.6cm
소재, 출토지: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출처: 한국금석문종합영상정보시스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