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정석현 기자]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은 1934년 5월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금장리 석장사터 부근 언덕에서 발견되었고,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냇돌의 자연석 중 비교적 반질반질한 면을 이용하여 5행으로 74자를 새겼다. 돌의 길이는 약 34cm, 너비 12.5cm이며, 아래로 갈수록 폭이 좁아지는 모양이다. 모든 글자의 판독이 가능하며, 그 내용은 임신년 6월 6일에 두 사람이 함께 3년 동안 유교의 사상과 도덕을 공부하고, 그것을 몸소 실천하며, 나라가 어지러워지면 나라를 위하여 적극 나설 것을 맹세한 사실, 먼저 신미년 7월 22일에 3년만에 시경과 상서(尙書), 예기와 춘추 등을 차례로 습득하기를 맹세한 사실을 기술한 것이다.
비문을 지은 연대에 대하여 견해가 크게 엇갈리는데, 지금까지 552년(진흥왕(眞興王) 13)이나 612년(진평왕(眞平王) 34), 672년(문무왕 12), 732년(성덕왕 31)이라는 설이 제시되었다. 문장이 우리말식의 한문체여서 통일기 이전에 비문을 지었다고 보는 견해가 우세한 편이다. 이 비문은 신라에서 유교를 널리 수용하였음을 알려주는 구체적인 자료로 크게 주목을 받았다.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
연대; 552년(진흥왕13년) / 612년(진평왕34년) / 672년(문무왕12년) / 732년(성덕왕31년)
보물 - 1411호
크기; 돌 길이 약 34cm, 너비 윗부분 12.5cm,
소재지;국립경주박물관
출처; <한국금석문종합영상정보시스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