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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운동

동포의 비분강개를 토해내던 여장부 ‘최형록’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동포의 비분강개를 토해내던  여장부 ‘최형록’

                                 이윤옥

 

이백만 동포가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길은

동북아를 강점한 일제를 몰아내는 일

 

이백만 동포가 살아 갈 길은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고

국토를 회복하여 돌아가는 길

 

사자후를 토해 내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동포의 비분강개를 대신하던 여장부

 

중국신문 앞 다투어

당찬 홍일점 여장부의 애국정신

만고에 적어 전했네.

 

   
▲ 최형록 애국지사

 

최형록(崔亨祿 1895. 2.20 ~ 1968. 2.18)

“일본이 동북을 강점한 이래 상해에 거주하고 있는 각계 한국인들은 침통함을 금하지 못했다. 어제 오후 2시 무렵 한국 교포들은 또 민국로의 한 교회당에서 전체대회를 소집했다. 대회 참석자는 무려 300여 명이나 된다. 장내에는 일본 제국주의를 규탄하고 중국인과 함께하자는 플래카드로 넘쳐났다. 민단장 김구가 애국가를 부르는 것으로 개회를 선포하는 동시에, 대회 취지를 설명했다. 이를 뒤이어 이동녕을 주석으로 선출하여 대회를 진행했다. 조소앙이 일본이 동북을 강점한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였고, 뒤이어 차리석, 조완구, 박창세, 최형록과 중국 기자 진 씨 등이 전후하여 비분강개한 연설을 했다.”

1931년 9월 27일 중국에서 발행한 『신보,申報』는 중국 안에서 침략자 일본에 대한 규탄대회를 열었다고 보도 했다. 여기서 쟁쟁한 남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여성이 바로 최형록 애국지사다. 이 날의 상황을 좀 더 살펴보자.

“상해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한국교포들은 심각한 현 시국에 대하여 국내외 독립운동자와 일반 민중들을 격려하며, 한결같이 일어나 항일을 위해 궐기해야 한다. 동북을 강점하는 침략행위를 단행한 일본을 무조건 몰아내야만이 한·중 양국의 강토를 확보할 수 있으며 동아시아를 해방할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 이에 한·중 양국의 공동투쟁을 촉진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1)중국 동삼성을 점령한 일본에 대하여 국내외 동포들은 선언을 발표하는 동시에, 구체적으로 한·중 양 민족의 연합전선을 실현해야 한다. (2)한·중 양국에 대한 일본의 역사적인 침략행위를 세계에 선포해야 한다. (3)동삼성에 거주하고 있는 200만 동포들은 중국 민중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생사를 같이 해야 한다. (4)적들의 점령구에서 적들의 앞잡이로 나선 주구들을 처단해야 한다. (5)중국이 일본에 대하여 조속히 무력을 동원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6)한·중 양 민족이 하루빨리 국토를 회복하고 주권을 회복하기 위한 동맹군을 조직하여 공동으로 투쟁해야 한다.”

 
   
▲ 외무부 총무과 과원 최형록 임명장(임시정부, 1944년 12월 4일)

이날 남녀노소 300여명의 참석자들은 결의문을 통과시키고 오후 6시에 폐회했다. 회의 참석자들은 하나같이 한민족의 기개(氣槪)를 높여 일제국주의를 몰아내자고 한 목소리를 냈던 것이다. 이날 홍일점으로 연설을 맡은 최형록 애국지사는 평양이 고향으로 1914년 열아홉 살에 박은식, 신규식 선생이 세운 상해의 박달학원(博達學院)에서 수학하면서 민족의식을 키워 나갔다.

1918년 스물세 살 때 독립운동가 조소앙 선생과 결혼하면서 본격적으로 독립운동계에 두각을 나타내었다. 1940년 최형록 애국지사는 한국여성동맹회를 조직하여 감찰위원으로 활동하는 한편, 1943년에는 애국부인회 간부로 활동하였다. 한편 최형록 애국지사는 1940년 5월 중경에서 한국국민당·재건한국독립당·조선혁명당 등 3당이 통합하여 결성된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여성당원으로서 독립운동의 일선에서 활약하였다.

또한 1943년 12월 임시정부 외무부 총무과 과원으로 선임되어 남편과 함께 임시정부의 외교활동을 전개하였다. 최형록 애국지사는 조소앙 애국지사의 두 번째 부인(첫 번째 부인은 오영선 씨)으로 따님 조계림 (趙桂林 1925.10.10 ~ 1965. 7.14)선생도 독립운동가다.

정부는 최형록 애국지사에게 1989년에 애족장을 추서했으며,  따님인 조계림 애국지사에게도 1996년에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해서는 <서간도에 들꽃 피다> 1~4권에 더 많은 분들이 소개되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