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일본의 아스카(飛鳥)지방은 서기 538년 백제에서 처음으로 불교가 전래된 곳으로 오사카, 나라, 교토와 함께 고대 한반도와 깊은 관련의 땅이다. 그럼에도 이곳은 오사카, 나라, 교토보다는 찾는 이들이 적다. 이 아스카를 대표하는 절을 꼽으라면 단연 강사(岡寺, 오카데라)를 꼽을 수 있다.
강사(岡寺, 오카데라)는 나라현 다카이치군 아스카무라 奈良県高市郡明日香村岡 806)에 있는 진언종파 절로 예전에는 용개사(龍蓋寺, 류가이지)로 불렸다. 본존불은 여의륜관음(如意輪観音)이며 서국 33사 중 제7번 기도도량(西国三十三箇所第7番札所)으로 이름난 절이다.
절 이름이 오카데라(岡寺)로 불리듯 ‘오카’라는 말은 언덕을 뜻하는데 실제로 용개사를 찾아 가는 길은 상당한 경사의 비탈길을 올라야만 한다. 버스정류장에 내려서 용개사로 오르는 비탈길을 비지땀을 흘리며 한참을 걸어야 용개사 일주문이 나온다. 시간상으로는 10여분 거리지만 구불구불한 비탈길이라 그런지 반시간은 올라간 느낌의 거리에 용개사 일주문이 우뚝 서 있다. 문득 천 여년전의 백제 의연스님을 금방 만날 수 있기라도 한 듯 마음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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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 출신 의연스님 |
용개사(지금의 강사 '岡寺')에 대한 창건 설화는 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1192) 말기에 완성된 일본 최대 설화집인 《곤쟈쿠이야기》 11권 38화 ‘의연승정의 용개사 조성 이야기’에 소개되고 있는데 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천지천황 때에 의연승정이 있었다. 속성은 아도 씨다. 부모는 야마토에 오랫동안 살아 온 사람으로 애가 없어 줄곧 관음 기도를 해왔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집 밖에서 어린아이 울음소리가 들려와 나가보니 흰 강보에 쌓인 갓난아이가 있어 데려다 길렀다. 아이부모는 자신들이 오랫동안 관음기도를 드린 공으로 얻은 자식이라고 여겨 금지옥엽으로 길렀다. 이때 천황이 이 이야기를 듣고 데려다 황자로 삼았다. 그런데 아이가 총명하고 불법(佛法)에 해박하여 출가 시켜 흥복사 중이 된 이래 승정자리에 올랐다. 그 뒤 원래 살던 곳에 절을 지어 여의륜관음을 안치 했는데 이것이 지금의 용개사이다. 이 절은 영험이 있어 많은 사람이 참배하는데 소원을 빌면 반드시 이뤄진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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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사(옛이름은 용개사)로 올라가는 입구로 이 길을 따라 비탈길을 올라가야 강사가 나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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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사(옛이름 용개사) 일주문 , 왼쪽이 표 파는 곳 |
용개사는 《곤쟈쿠이야기》에 따르면 원래 의연스님이 살던 집 자리에 지은 절로 소개되고 있다. 의연스님이 창건한 절은 용개사 외에 《제사건립차제, 諸寺建立次第》에 ‘용문사, 용궁사, 용왕사, 용선사를 지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현존하는 절은 아스카의 용개사 뿐이다. 용개사 외에는 현재 모두 폐사지만 다행히 용문사는 설화집 《곤쟈쿠이야기》에 그 내용 일부가 전해지고 있다.
“(용문사에 아즈미와 구메가 살았는데) 아즈미는 수행을 먼저 이뤄 선인이 되어 하늘로 날아갔다. 그 뒤 구메도 완전한 선인이 되어 하늘로 오르는 순간 요시노강 언덕에서 젊은 여자가 서서 빨래를 하고 있었는데 새하얀 장딴지를 내놓고 있는 모습을 보자 그만 색정에 못 이겨 그 여자 앞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그 뒤 여자를 부인으로 맞아 함께 살게 되었는데 구메선인의 수행 모습이 용문사 문에 그림으로 그려진 것을 스가와라노미치자네가 보고 글을 지었다. 그것은 지금도 남아 있다.”
기록 속에는 천황자리에서 물러나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준 청화상황(清和上皇, 850-881)과 우다상황(宇多上皇, 867-931) 그리고 학문의 신으로 추앙받는 스가와라(菅原道真, 845-903)가 용문사를 다녀갔다는 기록이 있는데 11세기에 편찬된 종합적인 불교문화사 책인《부상략기》기록에도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이때까지는 용문사가 존재했었음을 알 수 있다.
의연스님은 백제계 출신
의연(義淵, 643~728)스님은 고대씨족계보집성(古代氏族系譜集成)에 따르면 “아버지는 시왕복응(市往福応)이고 어머니는 아도취매(阿刀炊売)다. 시왕(市往, 일본이름 이치카와) 씨는 백제계 도래인 씨족으로 귀실복신(鬼室福信)의 아우 복응(福応)을 조상으로 하며 일본으로 건너 온 뒤 대왜국고시군시왕(大倭国高市郡市往)에 살았다” 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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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높은 언덕 위에 있는 강사 전체 모습 |
일본에 건너가서 정착한 도왜인(渡倭人, 흔히 일본에서는 도래인 ‘渡來人’이라는 말을 쓰는데 이는 일본쪽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므로 도왜인이라고 해야 옳다)들 가운데는 의연스님처럼 역사서에 기록 된 분들이 많지만 그 가운데서도 특히 의연스님을 고승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 까닭은 그의 쟁쟁한 제자들 때문이다.
일본의 사서들이 앞 다투어 일본의 고승으로 꼽는 분들 가운데 의연스님의 제자에는 과연 어떤 분들이 있을까? <2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