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정석현 기자] 김행 사후 28년에 후손들에 의해 파주 서구리(西九里) 장포(長浦)에 건립된 김행묘갈명이다. 김행(1532~1588년) 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주로 외직에 머물렀으며 광주목사(廣州牧使) 등의 관직을 역임했고, 성수침(成守琛)의 문하생이다.
전액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대사간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고, 전서와 해서를 잘 썼던 김광현(1584~1647년)이다. 비문의 전반부에는 공(公)의 가계도와 신도비를 세우게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 김행묘갈(金行墓碣)
중반부에는 우계(牛溪) 성혼(成琿)과 함께 성수침의 문하생으로 있을 당시의 일화와 공(公)의 성품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후반부에는 공(公)의 문장과 필법이 호방하였고, 무장현감(茂長縣監)으로 재직할 때 안평대군(安平大君)의 「증도가(證道歌)」 원본이 뭉개진 것을 보완하여 간각(刊刻)한 내용이 담겨 있다.
크기 : 높이 121cm, 너비 65cm, 두께 15cm
소재지;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내포리 24번지
<출처 ;한국금석문종합영상정보시스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