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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일제강점기 들어온 고무신, 한복의 기본 아니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2798]

[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한복은 우리 겨레의 옷이면서도 이제 대다수 사람들의 외면으로 길에서 한복 입은 사람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한복을 입은 사람을 보면 고무신을 신은 사람이 많지요. 마치 고무신이 우리의 전통신이나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 한복 학계 최고 학자라는 분은 자신의 책에 “요즘은 대개 고무신과 구두를 겸용하고 있지만, 한복에는 버선에다 고무신을 신는 것이 원칙이다.”라고 해놓았습니다. 맞는 말일까요?

   
▲ 60~70년대 인기를 끌었던 타이야표 통고무신(왼쪽), 강철보다 더 질기다는 일제강점기 고무신 광고

일제강점기 직전까지 조선 사람은 짚신과 미투리를 주로 신었고, 양반층은 가죽으로 만든 갖신 곧 태사혜나 당혜를 신었지요. 하지만,  짚신이나 미투리는 거칠 뿐만 아니라 불편했으며, 비가 올 때 신는 나막신도 두꺼운 버선을 신지 않으면 발이 아파 멀리 갈 수 없었습니다. 이런 조선 사람에게 들어온 1910년대 말 고무신이 들어왔습니다. 고무신은 “호모화(護謨靴)”라고 했는데 “호모”의 일본식 발음이 “고무”였던 것입니다.

고무신은 짚신 다섯 켤레 값을 치러야 겨우 한 켤레 살 수 있을 만큼 비쌌지만 착용감이 좋고 경제적인 고무신의 수요는 가히 폭발적이었습니다. 당시 한 신문에서는 “작년(1921년) 이래로 고무신이 어찌 잘 팔리는지 경성은 물론이요, 지방 벽촌에서 짚신을 신던 사람까지 필경은 물렁물렁한 고무신을 신게 되었다.”고 하였지요. 그러나 이러한 고무신은 질기기는 하지만, 땀이 나면 빠져나가지를 않으니 위생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고무신 중독으로 인해 어린 아이와 여학생들의 발에 종기나 부스럼이 나 문제를 일으킨다는 보도가 신문에 나기도 했지요.

   
▲ 주로 국악 공연 때 신는 태사혜에 뒷굽을 붙인 갖신

그런 고무신을 한복에 기본이라고 하는 것은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한복은 조선시대에 정착된 옷이지요. 따라서 한복을 입을 때는 조선시대 사람들이 신던 신을 신는 것이 원칙이라고 해야 맞는 것이지요. 다만 지금 짚신이나 미투리, 태사혜를 신기가 어려우니 그것을 고집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지금 태사혜에 뒷굽을 붙여 개량한 것이 나와 국악인들이 공연할 때 신는 갖신이 있어서 한복에는 잘 어울리기는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