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어머니 아버지 어서오소 / 북간도 벌판이 좋답디다
밭 잃고 집 잃은 동무들아 / 어디로 가야만 좋을까나
괴나리봇짐을 짊어지고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산중에 귀물은 머루나 다래 인간의 귀물은 너와 나로구나
내일은 북간도로 떠나가네 세간을 다 팔아도 여비 아니라네
검둥이 팔아 길 떠나네 북간도는 좋은 곳 이밥 먹는 곳”
▲ <남은혜 아리랑> 음반 표지, 신나라
이런 아리랑을 들어봤는가? 우리가 익숙하게 들었던 진도아리랑, 정선아리랑, 밀양아리랑, 본조아리랑이 아니다. 경기민요 남은혜 명창이 대표곡으로 부르는 노래 <북간도아리랑>이다. 우리 겨레는 대한제국 말기부터 먹고 살기가 어려워 북간도로 이주했었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에는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또 다시 집과 재산을 처분하여 북간도로 향했다.
그러나 만주가 희망처럼 행복한 곳, 이밥(쌀밥)을 먹는 곳은 아니었다. 세간을 팔고 검둥이를 팔아도 여비도 미처 안 되는 비참한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눈물을 머금고 고향을 떠나야 했다. 그리고 북풍한설 몰아치는 북간도에서 맨주먹으로 땅을 개간하면서 아리랑을 불렀다. 또 북간도 이주자들 상당수는 독립군으로 맹렬하게 싸웠고 독립군의 뒷바라지를 위해 온몸을 던졌다.
▲ 사진 김영조
그래서 북간도 아리랑 구절구절에는 겨레의 한이 서려있는 것이다. 북간도 아리랑을 불러야했던 동포들 가슴은 늘 짓무른 상처처럼 아물지 않았다. 그런 북간도아리랑을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절절함으로 부르는 특별한 이가 바로 남은혜 명창이다. 그는 북간도 아리랑을 부를 때마다 목이 메어 눈물을 흘린다. 그런 그가 북간도아리랑을 대표곡으로 녹음한 <남은혜 아리랑>을 신나라를 통해서 이번에 음반으로 내놓았다.
맨 처음 녹음된 북간도아리랑은 구성진 통성에 메나리조 아리랑이 한을 삭인다. 한을 그저 눈물과 한숨으로만 돌리면 그건 한국인이 아니다. 슬프지만 담담하게 노래로 승화시킬 줄 아는 것이 배달겨레의 정서다. 남 명창은 누구보다도 그러한 배달겨레의 진면목을 일찍부터 알았고, 북간도아리랑 구절구절마다 남 명창만이 지닌 감성으로 담아내고 있다.
이어지는 이병욱 작곡의 치르치크아리랑. 치르치크(Chirchiq)는 먼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주(州) 북서부에 있는 도시다. 조국을 떠나 그곳에 정착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겨레고려인들은 그곳에서 온갖 고난을 극복하고 한을 삭여주는 노래 아리랑을 불렀다. 이 노래 역시 슬픔을 삭이는 남 명창의 솜씨가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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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신나라 |
이밖에 음반에는 남 명창이 새롭게 구성해 부르는 공주아리랑, 기미양 채록의 신공주아리랑, 김연제 작사 채치성 작곡의 ‘아리랑 산천에’ 같은 다양한 아리랑이 수록되어 있다. 이러한 노래는 다른 음반에서 듣기 어려운 아리랑들이다.
남은혜 명창은 지난 6월 12일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진행・해설・창을 혼자서 도맡아 <렉쳐 남은혜 아리랑> 공연을 훌륭히 소화해 낸바 있다. 남은혜 명창은 고 묵계월 명창으로부터 경기민요를 이수했다. 정범태 원로작가는 《명인명창》이란 그의 책에서 남은혜를 ‘묵계월선생의 계보에서 주목되는 성음을 갖춘 소리꾼’으로 평가했다.
이 음반은 그런 남은혜 명창의 색깔이 분명한 아리랑들로 빼곡히 차 있는 보물창고다. 아리랑이 그저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가 아님을 아는 이라면 이 음반에 들어있는 깊고 한 서린 “북간도아리랑”을 듣고 아리랑의 진면목을 가슴에 새겨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