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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잡가(雜歌)란 여러 종류의 노래를 한 권 책속에 묶었다는 의미

[국악속풀이 176]

 

[그린경제/얼레빗=서한범 명예교수]  2014년 봄, 이은관 명창에 이이 경기민요의 예능보유자 묵계월 명창도 떠났다. 그는 이 시대 가장 널리 알려진 여류 경기명창 중의 한 사람이었으며 서울에서 출생하였고 94살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서울의 12좌창(坐唱)으로 예능보유자가 되었는데, 그가 즐겨 부른 좌창을 <잡가(雜歌)>, 또는 <긴잡가>라 부르고 있으며 이러한 노래들을 좌창(坐唱)이라고 하는 것은 글자 그대로 연창하는 형태가 단정하게 앉아 조용하게 부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란 점을 이야기했다.  

양반들이 부르던 노래를 <정가(正歌)>라고 통칭하는데 반해, 일반 대중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는 <민속가(民俗歌)>, 또는 <속가(俗歌)>라고 불렀고 이러한 민속가를 통칭 잡가(雜歌)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는데, 잡(雜)이란 의미는 원래 순수한 것이 아닌, 뭔가 뒤섞여 있는 것, 장황하고 번거롭다는 뜻인데 노래분위기와 맞지 않는다 점, 특히 1910년대 이후 쏟아져 나온 각종 노래 사설집의 이름을 <잡가집>이라 한 것은 각 지방의 민요나 특징있는 노래들을 망라해서 싣고 있다는 의미, 그래서 잡가의 잡은 여러 장르의 노래들이 섞여있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1910~20년대에는 잡가의 시대라 할 만큼 잡가집들이 쏟아져 나왔다. 《증보신구잡가(增補新舊雜歌)》를 비롯하여 《고금잡가편-古今雜歌編》, 《무쌍신구잡가-無雙新舊雜歌》, 《신구유행잡가-新舊流行雜歌》, 《증보신구시행잡가-增補新舊時行雜歌》 등 많은 종류의 노래 사설 모음집들이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이 당시의 노래책을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오늘날 정가로 분류되고 있는 가곡이나 가사, 시조와 같은 노래들도 실려있을 뿐 아니라, 오늘날 민속음악으로 분류되고 있는 각 지방의 소리들이 함께 실려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각 지방의 소리들이란 초한가(楚漢歌)를 비롯한 서도소리도 실려 있고, 육자배기를 비롯한 남도소리도 들어 있으며 현재 잡가로 불려지고 있는 서울, 경기지방의 유산가(遊山歌)를 비롯한 긴 좌창도 들어있다. 또한 앞산타령이나 뒷산타령과 같은 선소리도 들어있으며 그 외의 일반 민요들의 이름도 상당수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단가(短歌)나 회심곡, 병창 등, 그야말로 성악의 전 장르를 망라한 노래들이 하나의 노래책 속에 들어 있어 이름 그대로 잡거(雜居)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어느 특정 장르의 노래만이 아닌, 여러 장르의 노래들을 종합적으로 싣고 있는 탓에 책의 이름도‘여러 노래의 모음집’이란 뜻에서 잡가(雜歌)로 이름한 것이다. 절대적으로 노래 자체가 잡스럽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데 점차 현대로 내려오며 다른 노래들은 각기 그들의 고유한 명칭을 찾아 분류되고, 명명되어 오고 있는데 유독 서울 경기의 좌창은 <서울의 긴소리>, 혹은 <경기좌창>과 같은 이름보다는 <잡가>라는 이름으로 불려오고 있는 것이다.


   
 

 무슨 이유일까?

그 중 하나를 들어본다면 경기소리를 부르며 살아온 창자들이 지나치게 겸손한 태도로 자신들이 부르고 있는 노래, 자신들의 경기소리를 스스로 낮추어 부른 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1950년대 <청구고전 성악학원>을 세우고 경기소리를 중심으로 하는 공연이나 방송, 교육을 통하여 부흥을 외치던 벽파(碧波), 이창배 명창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가요집성(歌謠集成)》, 《증보 가요집성》, 《국악대전집(國樂大全集)》, 《한국가창대계(韓國歌唱大系)》 등 여러 편의 경서도 소리 관련 저술물에서 서울의 속가 안에 <12잡가>, <휘몰이잡가>라는 장르를 설정하여 소개하고 있다. 아울러 장대장타령이나 풍등가, 국문뒤풀이, 개성팔경가, 금강유람가 등을 별도로 포함하고 있으며 서울 경기의 입창(立唱)즉 선소리 산타령이나 송서(誦書), 각 지방의 민요 등은 별도의 항목으로 설정해 놓고 있는 것이다. 스승들이 부르던 대로 당신이 전공해 온 분야를 겸손하게 세상에 소개하기 위해서일까?  

지극히 상식적인 말이지만, 우리가 흔히 자신이 쓴 책을 낮추어 졸저(拙著)나 졸작(拙作)이라고 소개하고, 자신이 쓴 글이나 논문 등을 세상에 내놓을 때는 잡문(雜文)이나 졸문(拙文), 졸고(拙稿)라고 한다. 이는 실제는 그렇지 않아도 저자로써 자신의 작품을 겸손하게 표하는 것이다. 경기 지방의 긴소리를 잡가라 부르는 것도 이와 같은 이치가 아닐까?  

상대가 비록 자신의 책이나 글을 졸작, 졸저, 잡문, 졸문으로 소개한다고 해도 우리는 ‘당신의 졸작’, ‘선생의 잡문’이라는 표현은 있을 수 없다. 결코 상대의 책이나 글을 그렇게 부를 수는 없는 일이다. 성악뿐이 아니라 기악의 산조음악도 그렇다.  

전라도 지방이나 충청지방에서 만들어진 산조(散調)음악을 지칭할 경우에도 옛 명인들은 <산조는 마음 내키는 대로 타는 헛튼가락>, <허드렛 가락>, 또는 <흐트러진 가락>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헛튼가락>이란 헛튼 짓이나 <헛튼 수작>이라는 말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이미 그 말속에 진실성이 결여된 상태를 의미하고 있다. 또한 허드레는 <허드렛 일>이라는 말에서 중요치 않은 일이나 잡스런 뜻이다. 그러므로 산조 음악을 한자어로 표현하고 그 의미를 풀어본다면 <하찮은 음악>이라는 의미가 짙은 것이다. 예술음악의 극치라고 알려진 산조의 명칭을 어찌 <하찮은 음악>이라고 표현해 왔을까? 하는 점은 좀체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