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충북 증평군 증평읍 사곡리에는 나라의 변고를 세 번이나 알아맞힌 용한 우물이 있습니다. 오죽이나 유명하면 충청북도 기념물 제143호(2008.8.1 지정)로 지정되었을까요? 전쟁이나 침략 따위의 어지러운 나라의 변고를 알려주는 사곡리 우물은 증평시가지에서 충주 방면으로 가다 사곡교 근처 2㎞ 쯤 지점인 사곡2리 사청마을에 있습니다. 이 우물이 생긴 유래는 조선 제7대 왕인 세조(世祖, 1455∼1468)가 조카인 단종(端宗, 1452∼1455 )을 폐하고 왕위를 빼앗은 뒤 가뭄이 계속되던 병자년(1456) 어느 무더운 날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초목이 시들어가고 땅이 쩍쩍 갈라져 가던 어느 날 이 마을을 찾은 노스님이 한분 계셨습니다. 노스님은 마침 한 집에 들러 아낙에게 물 한 그릇을 청했지요. 그러나 집안에 마실 물조차 없던 아낙으로서는 난감했습니다. 하지만 노스님의 간청을 들어주기 위해 마을에서 이십 여리 떨어진 먼 곳으로 물을 뜨러 떠났다가 그만 해질녘에 돌아오게 됩니다. 이 사정을 들은 노스님은 아낙의 수고에 고마워하면서 지팡이로 땅을 몇 번 치고는 샘이 솟을 만한 우물자리를 알려주고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자리를 파 내려가 지금의 우물이 생겨난 것입니다.
▲ 나라의 변고를 알려준 충북 증평 사곡리 우물(증평문화원 제공)
노스님은 이 우물에 대해 말하길 “우물을 파기만 하면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고 장마가 닥쳐도 물이 더 이상 늘지 않을 것이지만 그러나 꼭 세 번 넘칠 날이 있으니 넘칠 때마다 나라에 큰 변이 일어날 것” 이라는 예언을 하고 떠납니다. 그 세 번의 변고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정초에 우물이 넘친 것을 시작으로 1910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던 경술국치 때 그리고 1950년 6·25 한국전쟁 때를 일컫습니다. 이 신통한 우물은 1947년 음력 2월 우물 하부의 석축이 일부 무너져 내려 보수공사를 했는데 1979년에는 마을 주민들이 우물을 시멘트로 바꿔 간이 상수도로 사용했으나 마을에 액운이 잦아 원래대로 해놓았다고 합니다. 1996년 5월부터 마을 사람들은 이 우물의 유래비를 세우고 지금까지 정성껏 관리를 하고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