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역시 유창 명창이었다. 올 들어 가장 추운날일 어제 송서율창이 울려 퍼진 국립극장 공연장 안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다. 유창(서울특별시무형문화재 제41호 송서율창 예능보유자) 명창은 5일(금) 저녁 7시30분, 국립극장 KB청소년하늘극장에서 “글의 울림, 소리의 울림, 삶의 울림”이란 주제로 송서율창의 뜨거운 한판 소리마당을 열었다. 송서율창(誦書, 律唱)이란 “선비들이 일정한 음률로 한문이나 소설 등을 읽는 행위에 음악적 가락을 붙이고 멋을 넣어 구성진 음악으로 표현한 전통예술”이다.
중년의 한국인이라면 이은주, 묵계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한 시대를 풍미한 한국의 대표적인 소리꾼에게 사사 받은 유창 명창의 이날 공연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명예보유자인 이은주 선생이 노구를 이끌고 특별출연하여 청중들의 큰 손뼉 세례를 받았다. 스승과 함께한 유창 명창의 정선아리랑과 한오백년, 강원도 아리랑은 청중들로부터 연신 재청을 받았다.
▲ 스승 이은주 명창과 제자 유창 명창의 다정한 민요 한마당
▲ 영풍, 적벽부를 부르는 유창 명창
공연 중간에 특별 출연한 스승 이은주 명창과 유창 명창의 무대는 입추의 여지없이 몰려든 청중들의 열기로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유창 명창을 아끼던 묵계월 선생은 지난 5월 2일 안타깝게도 타계하여 제자의 공연을 보지 못해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날 해설을 맡은 유영대 교수는 “우렁찬 아이 울음소리, 단아한 여인의 다듬이질 소리, 선비의 낭랑한 글 읽는 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라면서 유창 명창의 “송서율창”은 그동안 우리가 잊고 살아온 정겨운 소리를 다시 듣게 되는 소중한 전통예술이라고 운을 떼었다. 유창 명창 자신도 “하마터면 사장 될 뻔한 송서율창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되어 기쁘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송서율창이 인류 문화유산으로 성장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고 했다.
이날 무대는 송서율창과 민요를 중간 중간에 넣어 다채롭게 펼쳐졌는데 먼저 유창 명창의 <영풍>과 <적벽부>에 이어 이소연 외 15명의 제자들의 <금사정>, 중국 당나라 때 천재시인 왕발의 일화를 다룬 <등왕각서> 순으로 이어졌다. <등왕각서>는 중국 당나라 때 천재시인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남창 7백리 뱃길을 바람의 덕분으로 하룻밤 만에 달려 등왕각 낙성식 잔치에 참여했다는 내용을 담은 내용으로 이기옥, 이경희, 김인숙이 열창했다.
▲ 유창 명창의 제자 이소연 외 15명의 금사정
▲ 김진성 외 14명의 풍년가, 매화타령, 잦은방아타령
▲ 짝타령을 부르는 유창 명창
이어 새벽에 일어나 단아한 아침을 맞이하는 다산 정약용의 새벽에 대한 느낌이 잘 들어가 있는 <효좌(曉座>를 비롯하여 <명심보감>, <죽서루>, <사친>, <짝타령>, <천자문>, <만경대>, <계자제서>, <등왕각시>, <삼설기> 등의 송서율창이 무대에 올랐다.
한편 민요로는 김진성 외 14명의 제자들이 부른 <풍년가>, <매화타령>, <잦은방아타령> 을 시작으로 <산타령>, <노랫가락>, <청춘가>, <태평가>, <정선아리랑>, <한오백년>, <강원도아리랑>, <오돌독>, <제주십경가>, <강원도아리랑>, <해주아리랑>, <밀양아리랑>, <신고산타령>, <궁초댕기> 등 이었다. 송서율창의 낭랑한 소리와 다채로운 민요를 중간 중간에 섞어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송서율창의 무대는 단 한순간도 긴장을 놓지 않게 했다는 평이다.
이날 공연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보유자 이영희 선생이 “이제 송서율창은 미래를 노래해야 한다. 후학들이 더욱 아끼고 사랑해야 할 우리의 전통예술이며 그 맥을 이어가는 유창 명창은 국민이 사랑해야할 보배이며 전통예술을 지켜가는 둥”이라는 축사를 보내왔다.
▲ 이다운, 이병헌, 조수빈, 이소정의 천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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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뮨윤자 외 10명의 오돌독, 제주십경가, 이어도산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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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주 명창, 유창 명창과 출연자 가 함께 부른 삼설기 |
또한 김영종 종로구청장은 “유창 명창이 있어 서울의 중심도시이자 역사와 문화의 도시 종로가 든든하다. 유창 명창은 ‘국악로대축제’ 등 굵직한 국악관련 행사를 주관하여 많은 시민들에게 국악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우리전통의 소중한 가치를 끊임없이 계승, 전시키는 대한민국의 대표 명창” 이라고 했다. 아울러 정세균 국회의원은 “송서율창이라는 대한민국의 정통 성악 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유창 명창은 그 예술성과 인품을 두루 인정받고 있는 예능보유자”라고 했다.
그러나 아직도 송서율창이라는 말이 다소 생소한 사람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날 공연을 보기 위해 멀리 파주에서 왔다는 조미리( 54살, 주부) 씨는 “사실 저는 송서율창 공연에 처음 와봤습니다. 부끄럽지만 이러한 국악 장르가 있다는 것조차 처음 들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뜨거운 공연 열기를 보며 그동안 이렇게 좋은 우리 소리가 왜 알려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앞으로 많은 관심을 갖고 공연장에도 자주 달려올 생각입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정철희 (45살, 도봉동) 씨는 이날 공연이 두 번째라면서 “송서율창 매력에 빠져들어 가고 있다. 공연장에 와 보니 나 같은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느껴져 기뻤다. 그러나 이번 공연장 시설은 송서율창을 하기에는 다소 문제가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대 정면에서 관람한 사람들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ㄷ자 형태의 끝 부분에 앉은 나는 거의 소리가 들리지 않아 아쉬웠다. 공연 3분의 1일이 지난 뒤에야 음향을 키워주는 바람에 겨우 소리를 듣게 되는 등 무대 양 옆 뒷좌석에 앉은 사람들의 배려가 부족했다. 이번 공연장은 마당놀이 같은 공연에 적합한 곳이라고 본다. 이렇게 훌륭한 공연이 장소 때문에 아쉬운 점이 있어 유감스럽다”고 했다.
▲ 등왕각시를 부른 유창 명창
또한 일부 좌석표가 없는 사람들을 공연 시작종이 울릴 때까지 영하의 한파 속에 세워둔 것도 좋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지정좌석이 없더라도 실내로 들여보내 객석 계단이나 뒤에 서 있게 할 일이지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떨게 하는 것은 극장 쪽의 “관객 배려”가 없는 처사였다는 소리도 들렸다.
송서율창은 민요나 판소리와는 또 다른 공간에서 공연되어야 함을 절실히 느낀 공연이었다. 요원한 이야기지만 전용극장이 있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더 나아가 송서율창은 서울시 문화재를 뛰어 넘어 중요무형문화재로 승격해 온 국민이 함께 즐길 수 있어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그간 송서율창 공연을 지켜본 기자로서는 이번 공연처럼 객석이 차고 넘치는 무대는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단히 성공적인 무대였다. 그것은 어려운 여건아래서도 송서율창에 대한 애정 하나로 외길 인생을 걷고 있는 유창 명창의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송서열창의 갈 길은 멀고 험하다.
그러나 기자는 어제 공연에 입추의 여지없이 모인 수많은 관객의 모습에서 송서율창에 대한 한줄기 희망의 빛을 보았다. 그것은 2014년의 지는 해가 아니라 2015년의 뜨거운 태양이 솟아오르는 모습이며 이미 그 태양은 저 동해 바다 깊은 곳에서 서서히 떠오르고 있음을 보았던 것이다.
사진 : <줌 영상>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