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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운동

만주에서 독립군 기지 건설에 앞장 선 '박찬익 선생'

[한국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박찬익 [1884~1949] 선생은 1884년 1월 2일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났다. 성년이 되기까지 서당에서 유학을 공부한 선생은 20세가 되던 1904년, 서울의 농상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일본인 교사와의 마찰로 학교를 그만두었다. 이후‘보안회’에 참여하여 일제의 황무지개척 요구안에 반대투쟁을 하며 민족문제를 자각하게 되었고 신민회에도 가입하여 서북지역에서 계몽교육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1911년 2월에 만주로 망명한 선생은 종교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대종교를 받아들이고 대종교 포교와 독립운동에 온 힘을 다하였다. 같은 해 4월에 유하현 삼원포에서 남만주 지역 최초의 독립운동 조직인 경학사와 신흥강습소 설립에 참가해 독립군기지 건설에 앞장섰고 간민교육회ㆍ중광단에 참여하였으며 그 밖에 화룡현에 청일학교(靑一學校), 봉림동과 백초구에 학교를 세워 인재를 양성함은 물론, 신흥무관학교에서 중국어와 한국역사를 가르치기도 했다.

   
 

이후 임시정부의 좌우합작에도 결정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렇듯 오랜 기간 독립운동에 앞장선 선생은 해방 후에는 주화대표단을 구성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동포들의 귀국을 돕는 등 민족의 안녕을 위해 헌신하였으나 1948년 초 건강이 악화되어 김구 선생이 남북협상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만류하고자 급히 귀국했다가 이듬해 3월 9일 세상을 떠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여 그의 공을 기렸으며 2009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다.

 <공적>
ㅇ1919년 '대한독립선언'에 39인의 한사람으로 서명
ㅇ임정 외무부 외사국장 겸 외무차장 대리로 중국외교활동
ㅇ'한국독립당' 중앙집행위원으로 활동

<자료: 국가보훈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