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활대로 날카롭게 슬픔을 그어버리고
농현으로 절망의 굳어버린 마음을 달래며
그 누구보다 음악 안에서
자유로운 영혼임을 증명하리.
아! 한국 민속악의 영혼 백인영“
용인대학교 국악과 한진 교수는 백인영 명인을 그렇게 노래했다. 갑오년이 저물어가는 12월 한 겨울밤. 쌓인 그리고 흩날리는 눈 속에서 사람들은 국립국악원 우면당으로 우면당으로 모여들었다. 세상과 하직한 지 어언 두해를 맞은 예봉 백인영 명인의 부활을 보고 싶어서였다.
▲ 유대봉제 백인영류 입체산조
백인영 명인이 어떤 이였던가? 가야금의 명인이면서 아쟁을 자유자재로 다루었던 연주자였다. 뛰어난 음악성을 밑바탕으로 죽은 음악이 아닌 숨 쉬는 음악, 관객과 교감하는 음악을 끊임없이 추구했던 그야말로 명인 중의 명인이 아니었던가? 늘 스승에게서 받은 연주를 똑같이 기계적으로 연주하는 것을 거부하고 농익은 실력이 아니고는 표현할 수 없는 연주는 청중을 꼼짝 못하게 했던 명인이었다. 그가 간지 벌써 두해, 그러나 제자들과 명인의 팬들은 아직도 그를 놔 드릴 수 없다.
공연은 먼저 유대봉제 백인영류 입체산조로 시작한다. 산조는 원래 굳은 음악이 아닌 살아 있는 음악이라 했던가? 이중주가 되었다 어느새 3중주로 바뀌는 현란한 농현 속에 청중은 어느새 숨을 죽인다. 색다른 맛을 내보고자 백인영 명인이 편곡했다는 이 입체 산조는
명인의 재치와 음악성이 녹아들어 백인영 명인만의 음악을 듣는 순간이다.
이어서 듣는 소리는 김영길 명인의 백인영류 아쟁산조다. 지난해 첫 추모공연 이후 아쟁산조를 백인영 명인이 현신한 듯 연주해주 수 없겠느냐는 숙제를 받았다고 했다. 감히 흉내라고 낼 수 있겠느냐는 당황스러움은 명인을 자신의 가슴 속에서 불러내고 싶은 욕심으로 한 해 동안 명인만 생각해온 끝에 무대에 올랐다고 했다.
김영길 명인은 말한다. “가야금이 그리움의 악기라면 아쟁의 한의 악기다. 백인영 선생님의 아쟁을 내 속에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한을 드디어 오늘의 연주에 담아볼까 합니다.” 아쟁의 소리가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가늠하는 이라면 김영길 명인의 이날 아쟁산조에 푹 빠지지 않았을까? 아니 눈 감고 들었던 이들이라면 잠깐만이라도 저 무대에 백인영 명인이 앉아 연주하는 것으로 착각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쟁이 끝난 다음 박병준의 장구에 이민영, 차혜림, 최민서의 18현가야금의 선율이 청중의 가슴을 적신다. 단순한 현대적 선율이 아닌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는 새로운 맛을 보여주는데 민속악 가락에 개량가야금의 현란한 연주를 더하여 청중과의 진정한 소통을 시도한다.
▲ 백인영류 18현 갸야금산조
▲ 백인영류 25현 가야금산조
다음 18현에 이어서 25현까지 확대된다. 오래 전에 백인영 명인이 완성해 놓았다는 백인영류 25현 가야금 산조에 양승환이 편곡한 것이다. 백인영류 25현 가야금산조는 배효영, 이성희, 김혜리, 박기현, 유가희, 김주리의 손끝에서 현란하게 노닌다. 순간적으로 먼 추억이 떠오르는가 하면 어떤 상념 속에서 회한이 그리고 설렘까지 내 가슴 속에 온갖 것이 휘젓는다.
가야금 산조가 끝난 뒤 피리 최경만, 대금 이철주, 가야금 채옥선과 백기숙, 장구 김청만 명인들이 흥겨운 팔도민요연곡을 연주한다. 백인영 명인의 연주에 늘 따라붙는 수식어가 “즉흥”이었다고 했나? 각각의 악기들이 각각의 시나위 가락으로 넘나드는 선율은 기가 막히다. 역시 명인이란 괜히 붙는 이름이 아닌가 보다.
▲ 팔도민요연곡
▲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춘향가) 보유자 신영희 명창의 혼신을 다한 백인영 명인을 위한 씻김굿
마지막으로 팔에 기브스를 한 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춘향가) 보유자 신영희 명창은 혼신을 다해 백인영 명인을 위한 씻김굿을 해낸다. 무엇이 기브스를 한 명창을 저리 무대로 불러냈을꼬? 백 명인이 생전 신영희 명창을 누님처럼 따랐기에 신 명창은 죽을 몸이 아니라면 씻김굿이라도 해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울부짖는다. 청중들은 가슴 속엔 눈물이 고이고, 눈물이 고이고…….
공연 내내 무대 뒤 화면에는 벡인영 명인이 제자들을 바라보고 있다. 산조는 고인물이 아니라 건물 틈새를 뚫고 흐르는 물이라든가? 명인의 앞으로 뚝뚝 떨어지는 꽃망울 같은 물방울은 제자들을 바라보는 백명인의 눈물인가? 꽃망울인가?
사진 : 작가 박철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