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최미현 기자] 봉수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급한 소식을 전하던 옛날의 통신수단을 말한다.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조선시대의 문헌에 아차산 주봉에서 북쪽으로 벗어난 능선의 서쪽 봉우리에 있다고 표시되어 있어, 이곳이 아차산 봉수대 터임이 밝혀졌다. 함경도 경흥에서 시작하여 강원도를 거쳐 온 연락을 남산에 최종적으로 보고하던 곳이다.
그런데 아차산 봉수대에 관한 이야기가 영조실록 (1725) 8월 28일에 나오는데, 왕이 아차산 봉수대 이전에 관한 사실을 말하라고 하나 이기진(李箕鎭)이 정황하게 보고하고 있으나 그 연유를 잘 모르겠다는 보고가 있어 그대로 옮겨본다.
영조실록을 보면 당시 봉수대는 멀쩡했던 모양이나 지금은 사라지고 터만 있는 것을 서울정도 600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1994년 모형을 설치하였다. 비록 모형이긴 하나 꽤 역사적인 봉수대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