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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영조임금이 궁금해 한 '아차산봉수대(터)'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 15호

[한국문화신문= 최미현 기자]  봉수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급한 소식을 전하던 옛날의 통신수단을 말한다.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조선시대의 문헌에 아차산 주봉에서 북쪽으로 벗어난 능선의 서쪽 봉우리에 있다고 표시되어 있어, 이곳이 아차산 봉수대 터임이 밝혀졌다. 함경도 경흥에서 시작하여 강원도를 거쳐 온 연락을 남산에 최종적으로 보고하던 곳이다.

그런데 아차산 봉수대에 관한 이야기가 영조실록 (1725) 8월 28일에 나오는데, 왕이 아차산 봉수대 이전에 관한 사실을 말하라고 하나 이기진(李箕鎭)이 정황하게 보고하고 있으나 그 연유를 잘 모르겠다는 보고가 있어 그대로 옮겨본다.

   
 

“어제 능에 전알(展謁)하고 환궁하실 때 아차산(峨嵯山)의 봉수대(烽燧臺)를 옮겨 설치한 곡절을 물어 아뢰라고 하교하셨습니다. 병조에 있는 봉대도(烽臺圖)와 봉대안(烽臺案) 및 《경국대전(經國大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의 책을 가져다 상고해 보니, 다만 아차산의 봉수만 기재되어 있을 뿐 이설 여부는 애초에 거론된 것이 없습니다. 병조와 비변사 등에 물어보아도 근거할 만한 문적이 없습니다.
 
또 아차산 봉수대의 별장(別將) 및 오장(伍長), 감고(監考) 등을 불러서 상세하게 따져 물어보니, 별장들이 고한 내용 가운데 ‘아차산에는 과연 옛 봉수대의 흔적이 있는데 거의 마멸되어 겨우 알아볼 수 있습니다. 고로(故老)들이 대대로 전하기를 「예전에 나라의 능을 쓰기로 정하였을 때 지금의 봉수대로 옮겨 설치했다고 합니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능침을 쓰기로 정하였을 때의 일인지 모르겠으며, 또한 그동안 연대가 얼마나 되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하였습니다.
 
고한 내용을 가지고 다시 자세히 상고해 보았으나 이미 드러난 것도 없고 단지 상놈들이 구전으로 전하는 말이라 그대로 믿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국초의 오래된 일인 듯한데, 여러 번 병란을 겪은 나머지 조정의 기록도 증험할 만한 단서가 없으니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감히 여쭙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 나중에 하교하겠다.'” 라는 내용이다.

 영조실록을 보면  당시 봉수대는 멀쩡했던 모양이나  지금은 사라지고 터만 있는 것을  서울정도 600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1994년 모형을 설치하였다.  비록 모형이긴 하나 꽤 역사적인 봉수대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