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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운동

부끄럽습니다.(증조부님께 드리는 편지)

100년 편지 -노재성-

[한국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늦은 밤 평범한 대학생이 지친 어깨를 이끌고 이곳저곳 골목길을 헤매입니다. 각박해져만 가는 세상에서 마음 한켠이 무거워 진채 어떻게 이 마음을 짊어지고 미래를 설계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앞길은 막막하고 세상은 많은 것들을 원하고 가고자 하는 길은 불투명 합니다. 꿈도 없이 그저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다가 세상의 기류에 휩쓸려 남들이 갔던 길 그렇게 보이는 길만을 좇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문득 증조부님이 걸어가신 길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증조부님께서 어떤 분이셨을지 또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길이 없는 줄로 알았건만 부족한 제 능력으로 찾아보니 생각보다 많은 곳에 증조부님의 흔적이 남아있었습니다. 비밀결사인 대동단에 가입하여 군자금 모집을 위해 친인척, 동지들과 군자금 모집활동을 펼치시다가 옥고를 치르셨지요. 구체적인 상황은 옛 동아일보와 독립운동관련 판결문을 토대로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시절 대부분의 민중들이 서슬퍼런 일제 치하에서 숨죽이면서 하루하루를 겨우겨우 연명하면서 견디어 내고 있을 시기에, 증조부님이 가신 길은 너무나도 좁고 무겁고 죽음을 각오해야만 하는 길이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독립이라는 일념 하에 독립운동가로 살아가셨습니다. 참으로 고매하고 우직하신 분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 노석중
증조부님! 사실 저는 증조부님이 독립운동가라는 사실만 막연하게 알고 있었을 뿐 역사에 그다지 관심없는 그리고 증조부님께는 더더욱 관심없는 채 현재 우리나라에 살아가고 있는 우매한 대학생이었고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김자동 회장님을 뵙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제 마음에 들어왔던 생각이 자꾸만 저를 괴롭힙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저 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20대 청년들이 국사를 모른 채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국사를 공부하는 청년들도 대부분 알고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공무원이 되기위해 즉 필요에 의해 공부합니다. 또한 아직도 뿌리뽑히지 않은 일제 식민잔재로 인하여 심지어는 국사 교과서까지 논란이 일어납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계십니다. 독립투사들이 온갖 고생과 수모를 겪으며 이루고자 했던 그 숭고한 몸부림은 지금까지 생생하게 내려옵니다. 그분들의 희생에 힘입어 되찾은 나라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일제 식민잔재가 남아있습니다. 우매한 제가 보기에도 아직 갈 길은 멀어보이고 자꾸만 꼬여갑니다. 한번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얼마나 많은 희생이 필요한지 돌아보게 됩니다. 

증조부님께서 지금 나를 어떻게 보고 계실까... 우리나라를 어떻게 보고 계실까... 생각하니 몸둘 바를 모르게 부끄럽습니다. 증조부님께서 그렇게 독립을 위해 몸부림 치셨던 것처럼 저 또한 있는 힘껏 몸부림쳐 보겠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증손자 노재성 올림
 

성명 노석중
생존기간 1875. 2.26 ~ 1954. 1.17
출생지 광주
운동계열 군자금모집
훈격(연도) 애국장 (90)

공적내용 광주(光州) 사람이다. 그는 1919년 전 협(全協)으로부터 대동단(大同團)의 결성 취지를 듣고 이에 찬동하여 동단에 가입하였다. 대동단은 3·1독립운동 직후 한민족의 민족역량을 결집하여 민족적 대동단결과 실력양성을 표방하고 민족운동의 구심적 역할을 담당할 것을 목적으로 전 협·최익환(崔益煥)등이 주도하여 결성된 비밀결사였다. 동단은 김가진(金嘉鎭)을 총재로 추대하여 황족·유림·종교·상공·노동·청년·군인·부인 등 사회 각 계층의 인사들을 규합하려던 조직으로서, 주로 각종 인쇄물의 인쇄·배포 등을 통한 독립사상의 고취와 동단의 선전활동 및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의친왕(義親王)을 상해로 망명시켜 망명정부를 세우고 제2의 독립만세시위를 추진하고자 하였다. 이때 그는 전남 도내에서 동지들을 규합하여 신덕영(申德永) 등과 함께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였으나, 이러한 사실이 일경에 탐지·피체되어 1921531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1921. 5. 31 광주지방법원)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37·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562·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91055

 

   
 

 노 재 성

 성균관대학교 화학공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