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꿈도 앞으로 간다 (1) 시간은 앞으로 간다 오늘이 가면 어제가 되고 내일이 와서 오늘이 된다 기억은 뒤에서 온다 시간이 지나가며 새겨 놓은 것들을 끌고 이 순간까지는 오지만 오늘을 앞설 수 없다 (2) 아내가 유난히 뒤척인 밤 새벽 이었다 “엄마. 성은이 안 들어 왔지? 사고 나서 죽었대. 친구들이랑 놀러 가다가 차가 물에 빠져 다 죽었대.“ 아내는 바다를 사랑했다 자주 까막바위를 찾아 지그시 파도가루를 맞곤 했다 그날 이후로 아내의 그런 모습을 본 이는 아무도 없다 (3) 꿈 하나가 또 졌다 꽃망울 한 송이가 13층 옥상으로 올라가 스스로 나뭇가지를 잘랐다 딸아이를 따라 가겠다던 그 아이였다 소름 끼치는 숙명처럼 아내와 나는 하필 그 순간 그곳을 지나게 되었을까 육체의 소멸과 왜 또 마주하게 되었을까 (4) 이제 둘 남았다 밤낮으로 모여 재잘대던 꽃망울 다섯 가운데 벌써 세 송이가 졌다 시립묘지에 비석 하나가 또 는 것이다 이번 아이는 정말 딸아이와 한 몸 같은 아이였다 딸아이에게 받은 선물들을 곱게 싸놓고 두 번째 아이에게 배운 방법으로 친구들을 따라갔다 아내는 바람을 사랑했다 때때로 하평언덕에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경인철도회사에서 어제 개업예식을 거행하는데, 인천에서 화륜거가 떠나 삼개 건너 영등포로 와서 경성의 내외국인 빈객들을 수레에 영접하여 앉히고 오전 9시에 떠나 인천으로 향하는데 화륜거 구르는 소리는 우레와 같아 천지가 진동하고 기관거의 굴뚝 연기는 반공에 솟아오르더라.” 1899년 9월 19일 독립신문에 실린 경인철도 개통관련 기사이다. 을사늑약이 체결되기 6년 전 일이고, 경술국치를 당하기 11년 전 일이다. 다른 나라 같으면 철도 개통은 세상이 떠들썩하게 자축해야할 크나큰 경사겠으나, 우리는 이 새로운 시대로의 진입을 마냥 웃으며 받아들일 처지가 아니었다. 19세기 후반, 구미 열강들과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극동의 작고 힘 없고 늙은, 조선이라는 한 나라를 서로 삼키겠다며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 가운데 조선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청나라와 러시아, 좁은 바다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일본이 가장 적극적이어서 이들은 조선지배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전쟁까지 치르게 된다. 청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본은 조선지배와 대동아(大東亞)침략의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데, 경인철도 개통이 그 시발점이었다. 경인철도의 부설권을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생명체 가운데 우리 인류는 출현의 역사가 가장 짧다. 현생인류의 직계조상으로 불리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등장한 것이 대략 250만 년 전 일이고, 조금 느슨한 기준으로 라마피테쿠스를 인류의 조상으로 친다 하더라도 500만 년 정도이니 지구의 역사에서는 바로 조금 전 사건이나 마찬가지이다. 특히 산업혁명 이후의 과학발전은 선악을 떠나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다. 그 가운데 인류의 생활에 가장 큰 변화를 불러온 게 바로 교통수단과 통신수단의 발전일 것이다. 이 둘의 관계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란히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특히, 수레의 발명과 말의 이용은 교통과 통신에 비약적 발전을 가져오게 되는데, 제정로마는 제국전역에 숙박 및 편의시설을 갖춘 역참을 설치하고 공영우편제도 실시하여 교통과 통신의 혁신을 가져왔다. 로마제국이 몰락한 이후에는 교통과 통신 분야도 암흑기를 맞아 새로운 도약을 하기 까지 천년이 넘는 세월이 필요했다. 19세기 초 조지 스티븐슨이 개발한 증기기관차가 상용화에 성공하고, 반세기 뒤 그레이엄 벨이 전화라는 가공할 발명품을 들고 나와 우리 인류는 대변혁을 겪게 된다. 우리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딸의 49제 부정하지 않았다 꿈이라 여기지도 않았고 사실을 사실대로 인정했다 잊으려 하면 할수록 칸나의 선연함으로 오는 게 아픔인지라 천국에서 만날 거라는 자위도 하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뒷모습이 닮은 아이 어디선가 들리는 듯한 목소리 체할 때 마다 따 달라던 작은 손 못 본체 하지 않았고 못 들은 체 하지 않았고 지우려 하지도 않았다 우린 늘 함께 한다 아침에 방문을 열면 그 자리에 추모공원엘 가도 그 자리에 만질 수는 없어도 멀리 갔다고 생각지 않고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저 헬로키티 인형 밤색 피아노 앙증맞은 운동화 빼빼로 과자 제 손으로 접은 카네이션 사랑한다는 손 편지 진흙에 물이 스미어 늪이 되듯 늪에 물이 차서 호수가 되듯 쓰림의 앙금이 물 밖에서 보이지 않듯 그렇게 기억이라는 구더기가 살 속에서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문화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한 나라의 문화수준은 특수한 몇몇 경우를 빼고 나면 대체적으로 국력과 궤를 같이하는데, 특수한 경우란 어느 한 민족의 고유문화가 선진문화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와 선진문물이 들어와 그 나라의 실정에 맞게 변화하고 발전하여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로 자리 잡는 것으로, 다방은 그 후자의 좋은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오늘은 이른 바 “70,80 세대”라 불리는 사람들이 청춘을 보냈던 음악다방을 회고하면서 다방이 흘러온 길을 따라가 본다. 차를 마시는 장소에 대한 기록은 ‘다연원(茶淵院)’이라 하여 통일신라 문헌에 이미 등장하고 있으니 천년이 넘었음을 알 수 있다. ‘다방(茶房)’이라는 용어는 고려 때의 기록에 나타나긴 하나 차를 마시는 곳은 아니고 차와 술, 과일 등을 관장하는 국가기관이었다 한다. 이 땅에서 차(茶)가 가장 많이 음용되던 시기는 요즘을 빼고 나면 고려 때이다. 이는 불교의 융성과 맞물려서 절을 중심으로 널리 퍼졌다. 그러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숭유억불(崇儒抑佛)’정책으로 말미암아 차 문화는 된서리를 맞게 된다. 조선사회에서 맥이 끊기다시피 한 차가 역사에 다시 등장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그를 기다리며 김상아 내가 기다리는 그는 벙거지 모자가 잘 어울리는 사람일 것이다. 모직코트에 겨자 색 조끼를 받쳐 입었으며 낡은 청바지에 갈색 부츠를 신었을 것이다 산골 출신답게 되바라지지 않았으며 책을 사랑하여 그윽한 눈빛을 지녔을 것이다 잔잔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주면 바람도 잠시 멈추고 듣는 그런 사람일 것이다 때론 로드 맥퀸의 완성도 높은 음악을 심오한 표정으로 듣기도 하지만 김정호의 “님”을 들으면 눈시울을 적실만큼 아픈 사연도 있는 사람일 것이다 기다렸다오 우리 여기서는 처음이지만 깊은 인연이야 별 몇 개가 사라질 만큼 오랜 것이라오 어디서 왔느냐 어떻게 살았느냐 묻지 않겠지 개울가를 뒤 덮은 하얀 들찔레 모래톱의 벌거숭이 아이들 동그랗게 닳은 조약돌 뒤뜰의 감나무 단풍 눈 내린 달밤의 부엉이 소리 그리고 그리고 음악 그래, 이거면 됐지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딸의 바다 슬픈 사람에게는 피어나는 꽃도 슬픈 법 이제 저 바다를 어찌 보랴 얼마나 무서웠을까 아냐, 이미 정신을 잃었을 거야 크레인이 건져 올린 깡통을 따자 꽃망울 다섯 송이가 쏟아져 나왔다 얼마나 추웠을까 경찰 위에 검사 검사 위에 기자라더니 어느새 몰려와 사진을 찍고 촬영을 해대느라 단내가 난다 "강릉 해안도로 승용차 바다에 추락 탑승자 10대 다섯 명 전원 사망" 곱기도 했다 아가야 엄마 왔다 엄마다 눈 좀 떠봐 흐느끼는 어미를 어린 딸은 고운 침묵으로 맞았다 눈은 또 돌고래 눈처럼 어찌나 맑던지 "자, 확인절차 끝났습니다. 이제 장례식장으로 가시면 됩니다." 저 놈은 무슨 빽으로 저리도 무심할까 이게 꿈같은 생시인가 생시 같은 꿈 인가 이 꿈이 깨기를 바래야하나 깨지 말기를 바래야하나 꺼이꺼이 우는 녀석 앙앙 우는 계집아이 컥컥 쉰 소리 홀짝 홀짝 코울음 학생 손님만 칠백 명도 넘게 왔대 어린 것이 꽤 잘 살았네 칠백 명이면 뭐 하고 칠천 이면 뭐 하나 잘 살았으면 어떻고 못 살았으면 어떠랴 다 소용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지푸라기 삼아 울음들과 함께 넣어 관 뚜껑을 닫았다 슬픈 사람에게는 빗소리가 오히려 다정한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가로등과 초승달 텅 빈 목로에 생맥주 두 잔을 나란히 놓고 마주 앉는다. 오늘도 공쳤다.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나 낮에 막벌이노동이라도 해야 하나 다 때려 치고 시골집으로 들어가야 하나 식당설거지알바라도 나갈까요? 편의점은 너무 짜고, 파출부가 낫겠어요. 못나서 면목이 없네요. 그게 뭐 당신 탓인가요. 내일부터 생활정보지 뒤져봅시다. 그래요, 어떻게든 살아봅시다. 뒤따라 나서는 임차료와 공과금, 대출금 이자를 억지로 밀어 넣고 방화 문을 잠근다. 고생 많았어요. 당신도 애썼어요. 오른손엔 장갑 왼손엔 아내 손 연리지의 우리말이 뭘까요? “잇나무”라 하던데요. 우리의 그림자도 화석으로 남을까요? 그럴걸요, 우리의 이야기도. 왼손엔 장갑 오른손엔 남편 손 우리가 묻힐 이팝나무도 환생을 하고 새가 죽으면 노래가 되나요? 별이 내려와 샘물이 되고 어린 바위가 자라서 믿음이 되나요? 진실의 씨앗이 있나요, 싹 틔울 수 있을까요? 그리하여 세상을 진실의 숲으로 덮을 수 있을 까요?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가 아니라 정직하고 성실한 자에게만 복이 오게 할 수 있을까요? 등 뒤엔 가로등 하늘엔 초승달.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이렇게 된 얘기라 한다. 어느 광역시에 있는 방송사의 송출직원이라니까 업무상으로도 음악과 그다지 관련이 있는 직책은 아니다. 또한 음반 유통업계나 음반 수집가나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그의 존재는 전혀 알려진 게 없었다. 그런 그에게 이른바 "촉"이란 것이 있었는지 아니면 누가 귀 뜀을 해 주었는지, 그는 횡재와 명성을 한 손에 거머쥐는 선택을 하게 된다. 십 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가 근무하는 직장에는 "계륵"* 같은 골칫덩이가 하나 있었다. 사세의 확장으로 방송 기자재는 자꾸 늘어나는데 보관할 공간은 줄어만 갔다. 그러다보니 직원들 하나 둘 음반실을 째려보기 시작했다.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씨디(CD)도 구닥다리라고 안 트는 세상에 쓸데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4만 여장의 엘피(LP)가 거추장스럽기 그지없다는 눈초리였다. 마침내 위에 계신분이 매각 형태의 처분결정을 내린다. 그냥 내다 버려도 아까울 게 없겠지만 혹시나 문제라도 생길까하여 판다고 해본 것이다. 우리나라 방송사의 간부치고 음악에 조예가 있거나 최소한의 애정이라도 있는 간부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봐야한다. 그걸 그가 솜씨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