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1. 천민이었던 기생들 독립운동에 가담하다 “아름다운 김향화 가로되 / 아무리 곤고할지라도 / 조선사람 불효자식한테는 술 따라도 / 왜놈에게는 술 주지 말고 / 권주가 부르지 말아라 / 언니 언니 걱정 말아요 / 우리도 춘삼월 독립군이요” 위 시는 고은 시인이 쓴 ≪만인보 2≫ 가운데 이란 시 일부입니다. 1919년 3월 29일 수원기생조합 소속 기생 모두가 경찰서 앞에서 만세를 불렀고, 주모자 김향화는 일본 경찰에 붙잡혀 6달 동안 옥고를 치렀습니다. 이 시는 그 사건을 묘사한 것이죠. 중앙대 신현규 교수는 그의 책≪기생, 조선을 사로잡다≫(어문학사)에서 “이 시기 기생들은 누구 못지않은 열렬한 독립운동가였다.”라고 말합니다. 일제강점기엔 항일 기생들이 많았는데 기생 산홍은 친일파 이지용이 1만 원이란 큰돈으로 소실을 삼으려 하자 거절했고, 기생 춘외춘은 경무총감에 불려가 배일파에 대한 정보를 달라며 돈 한 뭉치를 주는 것을 뿌리쳤습니다. 1919년 4월 1일에는 황해도 해주 기생들이 손가락을 깨물어 흐르는 피로 태극기를 그려 만세운동을 했으며, 기생 현계옥은 중국으로 건너가 의열단원으로 뛰어난 활약을 했지요. 3.1만세운동이 벌어졌던 기미년(1919
1790. 구들난방의 열 저장창고 ‘구들장’ 온돌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난방방법이라고 합니다. 그 까닭은 온돌에 여러 가지 과학이 숨어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가운데 구들장의 역할도 중요한 몫입니다. 구들방이 오랫동안 따뜻한 것은 고래 위를 덮고 있는 구들장이 열 저장창고 역할을 하기 때문이지요.
1789. 예나 지금이나 노름(도박)은 사람의 삶을 망치게 해 가끔 우리는 연예인들이 노름(도박)에 미쳐 패가망신하는 얘기를 듣습니다. 또 1905년 체결된 을사늑약에 한국 쪽에서 조약에 찬성한 다섯 대신 곧 을사오적은 일제가 들여온 화투를 무척이나 좋아했고 그 일부는 패가망신하기도 했습니다. 문헌으로 드러나는 것을 보면 18세기 후반 한양의 풍속을 자세히 묘사한 106수의 한시 에 다음처럼 골패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길게 자른 종이에 날아갈 듯 꽃 모양 그려 / 둘러친 장막 속에 밤도 낮도 모를레라. / 판맛을 거듭 보자 어느새 고수되어 / 한마디 말도 없이 천금을 던지누나. / 네 사람 마주앉아 도박판을 열고서 / 골패 여덟 짝 나누어 쥐었네 / 그 중 한 놈 좌중 향해 제 끗발 자랑하며 / 1전으로 10전을 한꺼번에 따오네.” 또 김득신의 풍속화 는 노름판의 긴박한 상황과 심리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입니다. 안경 속에 비치는 눈길, 두 손으로 골패를 감추는 자세, 허리춤에 찬 두툼한 주머니에서 당시 노름판 모습을 잘 볼 수 있습니다. 노름의 성행과 함께 당시 노름판에서는 오늘날 전문 도박꾼들의 내기 노름판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행태가 벌여졌습니
1788. 얼레빗 잘못 독자가 바로잡았다 지난 2008년 9월 25일 자 1408번 얼레빗(아래 옛 얼레빗)을 보면 “삐딱한 사립문 시냇가 언덕에 가까이 있어(紫門不整臨溪岸) 아침마다 산에 비가 내려 물이 불어남을 볼 수 있다네 (山雨朝朝看水生)”란 한시를 소개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한시의 작가를 조선 후기의 문신 심산재(沈山齋) 김이안(金履安)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이 시는 작가가 김이안이 아니라 김수온이라는 지적을 독자로부터 받았습니다. 먼저 안동에 사시는 백촌거사님은 세 번에 걸쳐 자세한 내용을 써주셨습니다. 그 마지막 글을 옮깁니다.“우선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제 가문의 김이안(金履安)
1787. 작은 북통 두 개를 꿰어 매단 노도를 아십니까? 며칠 전 국립국악원에서 하는 문묘제례 시연과 문묘제례악 연주회에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문묘제례악 연주에는 평소에 볼 수 없는 국악기가 많이 등장했지요. 특히 음악 연주의 시작을 알리는 축, 끝을 알리는 어와 훈, 소, 금, 슬 등이 바로 그런 것들입니다. 그리고 조선 세종 때부터 사용된 것으로 전해지는 “노도(路鼗)”라는 악기도 있었는데 이 악기는 선농(先農)·선잠(先蠶)·우사(雩祀)·문묘(文廟) 등의 제사에 쓰였으나, 지금은 공자(孔子)의 신위를 모신 문묘제례(文廟祭禮) 때만 헌가(軒架)라는 음악에 편성됩니다. 노도는 길이 33.6cm, 지름 15.4cm의 작은 북통 2개를 서로 엇갈리게 긴 장대에 꿰어 세웁니다. 장대의 꼭대기에는 활짝 핀 연꽃을 올려놓았고 연꽃 위는 날아갈 듯한 새 한 마리를 얹어 장식하고 있지요. 또 북마다 양쪽 허리에 가죽끈을 길게 매달아 자루를 돌릴 때마다 끈이 북에 부딪혀 소리를 내게 하는 것이 이 악기의 특징입니다. 소리도 신비롭고 모양도 아름다운 우리의 전통 악기들이 하나 둘 자취를 감추더니 이제는 특별한 공연 아니면 구경하기도 어려워졌습니다. 늦었지만 '
1786. 자식의 수명을 길게 하는 수양부모 삼기 수양부모(收養父母)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수양아버지와 수양어머니를 아울러 이르는 말. 자식을 낳지 않았으나 데려다 길러 준 부모를 이른다.”라고 풀이합니다. 예부터 자식이 없는 사람이 남의 자식을 친자식처럼 생각하여 수양부모를 자처하기도 했었고, 부모 중 둘 혹은 어느 한 부모가 없는 자식과 다른 사람이 수양부모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자식의 수명을 길게 하려고 수양부모를 삼기도 합니다. 이런 풍속 곧 “수양부모 삼기”는 옛 사람들에게는 관습이었지요. 특히 스님이나 무당에게 물어봐서 아이나 그 부모의 명이 짧다면 명을 길게 하려고 수양부모를 삼아 줍니다. 이때 수양부모는 아이와 운이 닿는 사람으로 정해야 하는데 특히 부모의 수명이 짧은 때는 수양부모의 나이가 많은 사람으로 고릅니다. 아이 부모보다 수양부모가 먼저 돌아가신다면, 아이의 부모는 이미 돌아가신 셈이 되므로, 진짜 부모는 오래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 아버지의 명이 짧다면 수양아버지를, 어머니의 명의 짧다면 수양어머니를 고릅니다. 적당한 사람을 고르면 아이의 부모는 그 수양부모에게 선물을 하며, 그 수양부모도 아이에게 선
1785. 오늘은 누룽지날 부모님 생각하며 누룽지를 옛날 서당에서 천자문을 외우던 아이들은 장난으로 “하늘 천 따 지 깜 밥 눌은 밥” 또는 “하늘 천 따지 가마솥에 누룽지”라고 하였다지요? 누룽지는 별 군것질거리가 없던 옛날 아이들에게는 귀중한 먹거리였으며, 동의보감에는 누룽지를 취건반이라고 하여 약으로도 썼습니다. 누룽지는 북한 문화어로는 “밥가마치”인데 전라도에서는 “깜밥”, 강원도 정선에서는 “누렝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누룽지”와 “눌은밥”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밥을 지을 때 물의 정도에 따라 떡밥, 고두밥, 된밥, 진밥, 누룽지가 나오지요. 여기서 누룽지는 솥 바닥에 눌어붙은 밥을 이르는 말인데, “눌은밥”은 누룽지에 물을 부어 불린 밥을 이릅니다. 물이 안 좋은 나라 중 중국은 차가, 독일은 맥주가 발달했지만 우리나라는 온 나라에 좋은 물이 나기에 그저 숭늉은 최고의 음료수로 즐겼습니다. 매월 14일이면 국적불명의 “~데이”에 몸살을 앓는 요즘 아들 딸들에게 누룽지를 긁어주시던 어머님의 따뜻한 손길을 떠올리며 매달 8일을 “누룽지데이”라는 효를 실천하자는 날로 지내자는 운동도 생겼지요. 우리도 매달 8일 하루만이라도 누룽지를 즐기
1784. 토종 연인의 날을 아시나요? 내일은 24절기 중 세 번째 경칩입니다. 봄이 되어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깨어난다고 하여 계칩(啓蟄)이라고도 하는데, 풀과 나무에 물이 오르고, 겨울잠을 자던 동물, 벌레들도 잠에서 깨어나 꿈틀거리기 시작한다는 뜻에서 이러한 이름이 붙었지요. 경칩에는 개구리 알을 먹으면 허리 아픈 데 좋고 몸에 좋다고 해서 이날 개구리 알 찾기가 혈안이 되는데 지방에 따라선 도룡뇽 알을 건져 먹기도 합니다. 단풍나무나 고로쇠나무에서 나오는 즙을 마시면 위병이나 성병에 효과가 있다고 해서 약으로 먹는 지방도 있지요. 흙일(토역:土役)을 하면 탈이 없다고 해서 이날 담벽을 바르거나 담장을 쌓습니다. 또 경칩 때 벽을 바르면 빈대가 없어진다고 해서 일부러 흙벽을 바르는 지방도 있고, 빈대가 심한 집에서는 물에 재를 타서 그릇에 담아 방 네 귀퉁이에 놓아두면 빈대가 없어진다는 믿음이 전합니다. 옛날에는 경칩날 젊은 남녀들이 서로 사랑을 확인하는 징표로써 은행씨앗을 선물로 주고받으며, 은밀히 은행을 나누어 먹는 풍습도 있었습니다. 이날 날이 어두워지면 동구 밖에 있는 수 나무 암 나무를 도는 사랑놀이로 정을 다지기도 했다고 전해지지요. 그래서
1783. 동지섣달에도 모시 속적삼을 입은 새색시 저고리는 한복 윗옷의 하나임을 누구나 압니다. 그런데 한복 윗옷으로 저고리와 같지만 고름이 없고, 단추를 달아 여미도록 한 적삼도 있습니다. 적삼은 여름용 적삼과 속적삼이 있지요. 조선시대 여성들은 아무리 무더운 여름철이라도 반드시 속적삼을 입었습니다. 특히 친정어머니는 딸이 혼인하면 동지섣달 추운 때에도 모시로 만든 속적삼을 받쳐 입게 해 시집살이를 시원스럽게 하라고 비손했지요. 중국 당나라 남명천선사(南明泉禪師)가 지은 를 성종 13년(1482) 한글로 풀이한 책인 ≪남명집언해≫에는 이라는 한자가 쓰이고 있는데 이는 빨간 옷을 뜻하는 게 아니라 한자를 빌려 우리말을 표기한 것입니다. 이 “적삼”이란 말이 들어 있는 낱말을 보면 여름철에 입는 홑옷인 “깨끼적삼”, 잠잘 때 입는 “자릿적삼”, 돌날 입는 아기옷으로 아기 허리에 한 번 감아서 매는 돌띠를 두른 저고리인 “돌띠적삼”이 있으며, 또 여자가 겉에 입는 셔츠 모양 웃옷 블라우스의 북한 문화어 “양복적삼”도 있습니다. 남자들이 여름에 입는 홑바지와 저고리인 “고의적삼”과 “중의적삼”에도 “적삼”이란 말이 같이 쓰입니다. 속담에 “적삼 벗고 은가락지 낀다
1782. 한국 전통술, 빚는 방법에 따라 다양한 종류 우리 전통술을 제조방법에 따라 나눠보면 속성주, 감주, 가향주, 약용약주, 혼성주, 혼양주, 이양주 등이 있습니다. 전통 사회에서는 제사용 술과 농사용 술을 늘 갖춰두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러나 집안의 큰일이 있어 갑자기 많은 손님을 대접해야 할 때 많은 양의 술을 한꺼번에 빨리 빚어 마련하기도 합니다. 이때 빚는 술을 속성주라 하지요. 감주(甘酒)는 술에 약한 사람들이 빚어 마시는 도수가 낮고 단맛이 나는 술입니다. 이 감주는 알코올이 없는 식혜와는 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가향주(佳香酒, 加香酒)는 꽃이나 과일, 열매 등 자연재료가 갖는 향기를 보탠 술이며, 약용약주는 인삼, 당귀, 구기자 등 여러 가지 약재를 넣어 빚는 술입니다. 또 혼성주(混成酒)는 여러 종류의 증류주나 알코올에 과일, 약초, 향초 등의 추출물이나 향료, 색소 등을 보태 빚은 술로 서양에서는 리큐르(Liqeur)라고 불리지요. 그밖에 혼양주와 이양주는 독특한 술입니다. 먼저 혼양주(混養酒)는 일반 곡주의 빚는 방법으로 소주를 만들어 두었다가 발효 중인 술에 첨가하여 발효, 숙성시킨 술로 발효주인 청주와 증류주인 소주가 섞인 상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