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예전 재판에서 판사들이 많이 한 ‘주취감경’이 생각납니다. ‘주취감경(酒醉減輕)’이란 술에 너무 취하여 심신미약 상태에 이르렀다고 형을 감경하는 것을 말합니다. 요즘은 술 먹고 일어나는 범죄에 대해서는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많지만, 제가 형사재판장을 할 당시에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술 먹고 발생하는 범죄 가운데 많은 범죄가 폭행입니다. 그런데 당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은 위험한 물건을 이용하여 남을 폭행하는 경우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되어 있었고(3조 1항), 특히 야간에 이런 행위를 하였을 때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3조 2항). 그런데 술집에서 시비가 벌어지면 술병을 들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럼 위험한 물건을 이용한 것이 됩니다. 그리고 대개의 술집 시비라는 것이 야간에 일어나는 것이니까 5년 이상의 징역형에 해당이 됩니다. 그런데 술집에서 일어난 폭행이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야 할 만큼 죄질이 안 좋은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평소 교도소라고는 가 본 적이 없는 소시민이 술집에 갔다가 이런 경우에 휘말리는 경우가 생기거든요. 그리고 자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이제 공민왕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공민왕은 망해가는 고려에 마지막 희망을 던지며 개혁정치를 하였으나, 사랑하는 노국공주가 죽자 정치에 뜻을 잃고 방탕한 생활에 빠집니다. 심지어는 자제위를 설치하여 미남 청년들과 남색(男色)을 즐기기도 합니다. 《고려사》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공민왕이 심화병이 나서 홍륜, 한안 등으로 하여금 비를 강제로 능욕하게 했다. 비가 이를 거절하자 임금이 노하여 칼을 뽑아 치려고 하니 비가 겁을 먹고 복종했으며, 그 뒤에도 홍륜 등은 임금의 명령을 핑계 삼아 여러 번 왕래했는데, 비도 그것이 거짓말인 줄을 알면서도 거절하지 않아 드디어 임신했다.” 공민왕은 남색을 즐길 뿐만 아니라 관음증에도 빠졌습니다. 그리하여 자제위의 홍륜, 한안 등으로 하여금 자신의 아내인 익비를 간음하게 하고 그걸 보면서 즐겼습니다. 당연히 왕비가 반항을 하니 칼을 뽑아 협박하고요. 으~음~~ 다른 남자가 자기 아내 강간하는 것을 보면서 즐긴다? 제 정신으로 이런 일을 할 수가 있나요? 세상에! 개혁군주가 타락하니 이렇게 변하는군요. 그런데 여기서 잠깐! 저는 다른 한편으로 한 때 고려 부흥을 위해 개혁의 팔을 걷어 올렸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避寇難吾土(피구난오토) 도적을 피하기 어려워 내 살던 땅을 떠나 攜家走異鄕(휴가주이향) 식구들을 이끌고 낯선 고장으로 옮겨가누나 荊榛行目蔽(형진행목폐) 가시넝쿨 앞길을 가로막고 눈앞을 가리니 桑梓耿難望(상재경난망) 상재(고향)는 눈에 선해 잊기 어렵네. 世險憐兒少(세험련아소) 세상이 이리 험난하니 어린아이들 가엽고 家貧仗友良(가빈장우량) 집마저 가난하니 어진 벗을 의지할 수밖에. 乾坤空自闊(건곤공자활) 천지는 부질없이 넓기만 하니 獨立興蒼茫(독립흥창망) 나 홀로 창망하게 섰노라. 정도전의 ‘도적을 피하다(避寇)’는 시입니다. 정도전은 나주로 유배되었다가, 3년이 지나 유배가 완화되어 고향에서 머물러도 좋다는 허락을 받습니다. 그리하여 고향 영주로 와서 4년을 지내는데, 이 때 왜구가 쳐들어와 왜구에 쫓겨 고향을 떠나면서 쓴 시입니다. 아니? 내륙지방인 영주까지 왜구가 쳐들어오다니요! 당시 고려의 국방과 치안은 엉망이라 왜구가 영주까지 쳐들어와도 속수무책이었던 것입니다. 이 무렵 충청, 호남, 영남 지방 중 왜구의 말발굽에 짓밟히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지요. 당연히 해안 지방은 멀리 평안도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이방원이 정도전을 죽인 까닭 가운데 하나는 정도전의 요동 정벌 추진입니다. 요동 정벌을 한다면 명나라와의 충돌은 불가피할 텐데, 정도전은 왜 요동 정벌을 추진하였을까요? 원나라가 명나라에 밀려 북쪽으로 쫓겨 간 후, 요동은 무주공산이 되었습니다. 명나라도 새로 나라를 세워 안팎으로 나라 기틀을 잡는데 힘을 쏟느라고 아직 요동을 실효적으로 지배하기에는 힘이 딸린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요동은 원래 우리의 선조 고구려와 발해가 차지하고 있던 땅이라서, 명나라로서는 고려나 뒤를 이은 조선이 이를 차지하려 할까봐 꽤나 신경이 쓰였나봅니다. 이미 공민왕 때인 1370년 이성계가 군대를 이끌고 요동을 정벌하고 돌아온 일도 있으니까요. 우왕 14년(1388)에도 명나라는 공민왕이 회복한 철령위의 반환을 요구하여, 이에 반발한 고려가 요동정벌에 나섰다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무산되기도 하였지요. 이제 친명정책을 추구하는 조선이 건국되었으니 국경 분쟁은 없을 줄 알았는데, 명나라는 아직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자꾸 시비를 겁니다.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하자마자 명나라에 조선 건국의 승인을 요청하는 사신을 보냈는데, 명 황제 주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발로 철학하기》 - 수석회 수필집 53권의 제목입니다. 수석회는 문학을 하는 의사들의 모임입니다. 저랑 같이 서울고등법원 조정위원을 하는 유석희 박사가 얼마 전에 이 수필집을 보내주셨네요. 그 전부터 유 박사님이 글을 잘 쓰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제 봤더니 수석회 회장이셨군요. 수필집 이름을 참 멋지게 지었다고 생각하면서 책을 펼쳐 목차를 보니, 이성낙 선생의 수필 제목을 수필집 전체의 제목으로 정한 것이네요. 수석회 회장인 유 박사님은 ‘나와 하숙 생활’과 ‘후지산의 일출을 보며’ 두 글을 올리셨습니다. ‘나의 하숙생활’에서는 1966년 서울의대 예과 1학년 때부터 시작하여 그 후 13번이나 이어진 하숙생활을 추억하며 쓴 글이고, ‘후지산의 일출을 보며’는 5년 전에 후지산 등산하면서 특히 후지산 일출을 본 장엄한 느낌을 쓴 산행기입니다. 수필집에는 모두 18분의 의사 선생님들이 글을 실었습니다. 그 중에 정지태 선생은 모임에서 경품으로 드론을 타서, 드론을 띄우고 능숙하게 조정하기까지의 고생담을 ‘나도 드론 띄우는 사람입니다’라는 글로 맛깔스럽게 표현하셨습니다. 음악 애호가인 오재원 선생은 이번에는 음반을 감싸고 있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올 1월에도 어김없이 고교친구들은 광화문에 모였습니다. 고교 1학년에서 또 3학년에서 권오길 선생님을 담임으로 모셨던 친구들이 매년 1월이면 선생님을 모시고 세배를 드립니다. 이번에도 선생님은 제자들에게 주기 위하여 새로 낸 책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한 권, 한 권 정성스레 제자들 이름을 쓰시고, 그 무거운 책을 춘천에서부터 들고 오셨네요. 이번에 내신 책 이름은 《생명의 이름》입니다. 부제는 ‘달팽이 박사의 생명 찬가’, 선생님은 달팽이로 박사학위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책을 두르는 테두리 종이에는 ‘호기심은 동심이요, 동심은 시심(詩心)이며, 시심은 과학심이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선생님은 지금도 나이보다 젊어보이시는데, 선생님의 호기심이 선생님을 동심으로 이끌기에 젊게 보이시는 것 같습니다. 저도 피부만 보면 환갑 넘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다고 하는 말을 종종 듣는데, 저 또한 선생님을 닮아 호기심이 많아서 그렇지 않을까요? 책을 받으면서 선생님께 “벌써 내신 책이 40권 넘지요?” 했더니, 50권이 넘는다고 하시네요!!! 그야말로 생물 수필의 달인이십니다. 30년 넘게 생물 수필을 써오신 선생님! 선생님은 머리말에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점심 먹고 사무실에 들어오니 책상 위에 소포가 놓여 있습니다. 형태를 보아하니 책이 들어있는 듯합니다. 보내는 사람은 윤재윤 변호사. 재윤이 형이 또 책을 내셨나? 뜯어보니 역시 예상대로 책이 들어있습니다. 《소소소(小素笑)》, 형이 2010년 수필집 《우는 사람과 함께 울라》을 낸 이후 두 번째 수필집을 내셨네요. 윤재윤 선배는 춘천지방법원장을 마지막으로 공직을 퇴임하고 지금은 법무법인 세종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고교 5년 선배인 재윤이 형을 보면 신부님이 연상됩니다. 항상 겸손하시면서도 남의 말을 경청하고, 진지하게 삶을 성찰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가끔 “재윤이 형이 신부님이 되셨어도 멋진 성직자가 되었겠다.”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책을 손에 들자, 형의 저번 수필집을 보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기억이 납니다. 하여 책을 받은 날 퇴근하는 전철 안에서부터 곧바로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형은 이번 책에 저번 수필집에 마저 못 담은 판사 시절 재판 이야기를 실었고, 또 소소한 일상에서도 깊은 성찰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인생의 의미를 길어 올립니다. 그나저나 책 이름이 왜 《소소소(小素笑)》일까요? 소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인터넷이 발달하고 사회관계망(SNS)이 발달하면서 지구촌 어느 구석에서 일어난 사건 소식이라도 인터넷망을 타고 순식간에 지구를 한 바퀴 돕니다. 그야말로 지구촌 가족이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그러다보니 누가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 낸 가짜뉴스도 그 진위 여부를 가릴 새 없이 퍼져나갑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이념 갈등이 심한 나라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얼마 전에는 전진구 해병대 사령관이 군사합의서 불복선언을 하였다는 가짜뉴스가 급속히 퍼져나갔지요? 이럴 때일수록 언론이 중심을 잡고 가짜뉴스를 걸러내고 국민들에게 알려주어야 할 텐데, 오히려 언론이 가짜뉴스에 휘둘리기도 합니다. 지난해 11월 26일에는 한 신문이 가짜뉴스 제공자에게 속아 1면 머릿기사로 ‘한미동맹 균열 심각... 靑의 실토’라는 기사를 실었다가 망신살 톡톡히 당했지요. 아니, 그냥 휘둘리는 것에서 나아가 어느 정파적 입장에 서서 교묘하게 스스로 가짜뉴스를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지난 10월 조선일보의 문화부 차장이 쓴 한 칼럼에서 문재인 정부 출범이후 고용 참사가 이어지고, 취업자 증가폭이 급격히 추락하며 개인의 삶이 피폐해져서 우울증이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얼마 전 초등동창 송년모임에서 친구 보구로부터 책을 한 권 선물 받았습니다. 《캐나다 떠나보니 어때》 - 보구의 딸 김나연(요니 킴)이 그림을 그리고 글도 쓴 책으로, 요니 킴이 무작정 떠나 캐나다 토론토에서 1년간 살아보고 돌아와 쓴 책이지요. 190쪽밖에 안 되는 책은 그나마 글보다는 그림과 약간의 사진이 더 많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글 보다는 사진과 그림 위주의 요즘 젊은이들 책에 색안경을 끼고 있던 저로서는 솔직히 ‘친구 딸이 낸 책이라니 읽어는 봐야지.’ 하는 가벼운 생각으로 책을 펼쳐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요니 킴은 금방 그러한 저의 편견에 어퍼컷을 올립니다. 우선 디자인을 전공한 저자가 그린 일러스트 그림이 재치와 해학이 있으면서도 따뜻한 감성으로 저를 끌어당깁니다. 그리고 글에도 역시 재치와 따뜻한 감성이 담긴 것이 조금만 다듬으면 그대로 시 한 편이 될 것 같은 글들이 많습니다. 이를테면, 처음 캐나다에 도착하여 느낀 외로움을 쓴 다음과 같은 글에서 시의 느낌을 받겠더군요.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한다고 말해왔던 과거의 나는 거짓이었던가 어쩌면 혼자여도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래서 그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제가 전에 박정숙 박사가 쓴 책 《조선의 한글편지》를 읽고 독후감을 쓴 적이 있지요? https://blog.naver.com/yangaram1/221272726322 그 박정숙 박사도 이번 <다섯 손가락>의 필진 가운데 한 분입니다. 《조선의 한글편지》는 박 박사가 조선의 편지를 하나하나 찾아내어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정리하여 책으로 펴낸 것인데, 박 박사는 이번에 그 가운데 9개의 편지에 이야기를 덧입혀 정답고 따뜻한 글로 피어냈습니다. 아내의 죽음에 통곡하는 추사 김정희, 남편 첩질에 타는 속내를 드러내는 신천 강씨, 숙모에게 문안을 올리는 원손(元孫) 시절의 정조의 편지 등을 읽으면서 조선 시대의 선조들에게서 사람 사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네요. 그 중에 양사언(楊士彦, 1517~1584)의 경우에는 편지가 아니라 그 유명한 ‘태산이 높다 하되...’의 시조와 허강이 한글로 지은 서호별곡을 양사언이 붓을 놀려 쓴 글이 나옵니다. 양사언의 경우에는 아들의 출세를 위하여 목숨을 끊은 어머니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박 박사님이 한 꼭지로 올린 모양입니다. 양사언의 위 시조는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