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로스앤젤레스 이윤옥 기자] 바람 한줄기, 구름 한 점 없는 8월의 태양은 강렬했다. 로스앤젤레스 외곽에 자리한 로즈데일무덤에 도착했을 때 땅에서부터 올라오는 후끈한 열기는 마치 사막 한가운데 놓인 느낌이었다. 8일(LA 현지시각) 낮 11시, 기자는 한국에서 함께 온양인선 기자와 머나먼 이국땅 야자나무 아래서 잠들어 있는 18명의 독립운동가를 위해 18송이의 흰 국화꽃을 샀다. 이날 독립운동가들이 묻혀있는 로즈데일무덤을 안내한 사람은 민병용 한인박물관장이었다. 한국에서 로스앤젤레스로 떠나기 전 민병용 관장은 “로즈데일무덤에 잠들어 있는 미주 독립유공자 14명” 의 이름과 사진이 들어있는 전단 등 많은 자료를 손수 챙겨 보내오는 열의를 보였다. 로즈데일무덤을 참배하기에 앞서 기자 일행은 로스앤젤레스 시내에 있는 민병용 관장의 사무실에 잠시 들렀다. 이번 미국 방문 목적은 여성독립운동가의 발자취를 찾아 나선 길로 민병용 관장은 미주지역에서 국가보훈처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26명의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자료는 물론 LA지역에 눈이 어두운 기자를 위해 이날 손수 차를 운전하여 로즈데일무덤을 안내해 주었다. “로즈데일무덤에 한인들이 묻
[우리문화신문= 로스앤젤레스 이윤옥 기자] “대한인국민회는 미주지역 독립운동의 1번지이자 독립운동의 산실입니다. 그러한 중요한 자리에 있는 대한인국민회지만 그간 널리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년 전 광복절을 앞두고 고국의 모 방송프로그램인 ‘무한도전’ 이 다녀간 뒤 방문자들도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이는 어제(8일, 이하 현지시간) 방문한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대한인국민회기념관에서 만난 배국희 이사장이 한 이야기다. 배국희 대한인국민회기념재단 이사장은 무더위에 찾아간 고국의 기자 일행을 반갑게 맞이하면서 그렇게 운을 떼었다. 그리고 말을 이어갔다. “지난번에는 유모차를 끌고 온 아기엄마가 전시관을 찬찬히 둘러보고는 선열들의 독립정신에 자부심을 느끼며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게 되었다고 해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우리 재미동포들의 배경에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선열들이 계셔서 든든합니다.” 기자는 미주지역에서 활약한 여성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찾아 8일부터 17일까지 우리문화신문 양인선 기자와 함께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하여 첫 번째로 제퍼슨거리에 있는 대한인국민회를 찾았다. 아침저녁에는 약간 선선하지만 한낮에는 고국의 무더위와 버금가는 날씨 속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그림이 갖는 사회적 의미는 무엇일까? 이런 질문에 선뜻 답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에 명쾌한 답을 해주고 있는 화백이 있다. 후지시마 하쿠분(藤島博文, 77) 화백이 바로 그 사람이다. 열 살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후지시마 화백은 고등학생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어 도쿠시마현전(徳島県展)에서 내리 3년을 입선하는 실력을 과시했다. 이후 일본 최고의 미술대학인 무사시노미술대학(武蔵野美術大学)에 합격했지만 입학을 포기하고 일본예술원회원이었던 스승 가나시마 케이카(金島桂華)의 제자로 들어가 독자적인 그림 세계로 몰입한다. “미의식에 의한 사람 만들기, 도시 만들기, 나라 만들기(美意識による人づくり・町づくり・国づくり)”. 이 말은 후지시마 화백이 꿈꾸는 궁극적인 미술세계를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그는 머릿속에 지식만 잔뜩 들어있는 창백한 인간을 거부한다. 돈만 밝히는 인간, 권력만 지향하는 인간, 알량한 지식으로 잘난 체하는 인간을 거부하고 궁극적으로 그가 추구하는 인간상은 어디까지나 미의식(美意識)을 바탕으로 한 인간이어야 함을 강조한다. 도시도 그러하고 더 나아가 나라 또한 미의식은 중요하다. 너무나 추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김교헌 [1867~1923] 선생은 1867년 경기도 수원군 구포리에서 부친 김창희와 모친 풍양조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18세가 되던 해인 1885년 정시문과(庭試文科) 병과(丙科)에 급제했다. 1898년부터 독립협회에서 몸담기 시작했다. 독립협회 간부진들이 개혁내각 수립과 의회개설을 요구하다가 구속되자, 독립협회의 대표위원으로 만민공동회 운동을 전개하는 등 민중계몽에 앞장섰다. 1906년 동래부사에 임명되어 부산으로 내려갔다. 여기서 통감부의 비호 아래 일본인들이 한인들을 대상으로 경제적 침탈과 만행을 자행하는 것을 목격했다. 민족의식을 자각한 선생은 일본인들의 횡포를 제지하다가 통감부의 압력과 친일파 송병준의 모함을 받고 해직되었다. 1910년 한국이 일본에 강제병합 당하자 대종교에 입교했다. 1914년 신단실기(神壇實記)와 신단민사(神壇民史)를 저술하였다. 이 책은 단군을 중심으로 한 민족서사로서 망국이후 한국 국민들의 애국혼을 고취하였다. 1916년 9월 나철(羅喆)의 뒤를 이어 대종교 2대 교주로 취임했다. 조선총독부는 1915년 10월 포교규칙을 발표하고 대종교를 항일독립운동단체로 규정하여 탄압을 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본월 이십칠일 오후 세시에 남문 밧게 새로 짓는 제중원 기초의 <모통이돌>을 놋켓사오니 오셔서 참예하심을 바라옵니다. 이 돌을 대미국공사 안련씨가 놓겠사옴” 이는 1902년 세브란스병원 정초식 초청장 내용이다. 여기서 ‘정초식 초청장’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지금 (2018년 8월 현재) 연세세브란스병원 본관에 자리한 ‘알렌기념관’을 만든 사람들이 쓴한자말 정초식(定礎式 )일뿐, 1902년 당시에는<모퉁이돌을 놓겠다>라고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보면, 정초(定礎)의 뜻은 1. 사물의 기초를 잡아 정함 2. 기초 또는 주춧돌을 설치하는 일이라고 풀이해놓고 있으나 1902년에 쓰던 ‘모퉁이돌’은 소개하고 있지 않다. 또한 알렌기념관에는 세브란스병원 봉헌식 초청장도 전시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세부란씨병원, 다 되였삽기로 금월 양력 동지달 십륙일 오후 새로 네시에 낙셩연을 하겟사오니 오셔서 참례하시기를 바라니이다”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요즈음 '완공'이라고 쓰는 한자말 대신에 “다 되었다”고 쓰고 있는 것이 독특하다. 이것은 1904년의 초청장 글이다. 건물을 지을 때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그림일까? 글씨일까? 까만 먹으로 율동미를 한껏 살려 써내려 간 글자 ‘춤’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무용가라도 된양 몸이 움찔거린다. 우리글 ‘춤’자에 이런 매력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우리글 ‘춤’ 자를 캘리그라피로 그려낸 신승원 작가의 작품을 통해 ‘춤’ 글씨가 지닌 무한한 이미지를 느끼게 하는 전시회가 있어 다녀왔다. 인천관동갤러리(관장 도다이쿠코)에서 오는 8월 12일까지 열리고 있는 신승원 작가의 <몸짓, 붓으로 풀다> 전을 보고 있노라면 한글이 갖고 있는 ‘조형성’에 새삼 놀라게 된다. 문득 얼마 전 제주 도립미술관(10월3일까지 전시)에서 보았던 이응노 화백의 한글을 주제로 한 ‘문자추상’ 이 떠올랐다. 이응노 화백은 한글에서 “선의 움직임을 잡아 화폭에 담았다.” 고 했다. 기자는 그 말을 떠올리며 신승원 작가의 ‘춤’자 작품을 감상했다. 신승원 작가는 말한다. “그 동안 나라밖 전시를 여러 차례 했는데, 최근에 아르헨티나와 멕시코 전시 때 그 나라의 전통 춤을 접하게 되었다. 연속된 춤사위가 품고 있는 에너지, 그 에너지를 발동시키는 원천적인 인간의 욕망을 글씨로 표현해보고 싶어 ‘춤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는 구리아트홀과 공동으로 "반 고흐가 사랑한 우키요에"전을 구리아트홀 갤러리에서 연다. 이번 전시는 에도시대 (江戶時代, 1603~1867) 다색목판화 우키요에 (浮世絵) 거장들의 작품세계와 우키요에가 19세기 서양미술사(인상파, 후기인상파)에 미친 영향을 조명해 보는 전시로, 일본우키요에박물관 소장 우키요에 원작 복각본(원작 그대로 우키요에 장인이 제작) 76점, 19세기 서양미술사 주요 작가 9인(마네, 모네, 드가, 고갱, 로트렉, 휘슬러, 클림트, 캐사트, 앙리 리비에르)의 레플리카 26점, 총 102점이 전시된다. 특히 이번 전시는 우키요에 거장 호쿠사이, 히로시게, 샤라쿠 외 3인과 우키요에의 파격적 요소들에서 혁신의 실마리를 찾은 19세기 서양미술사의 주요 작가들, 그리고 반 고흐와 자포니즘에 심층적 접근이 가능한 보기 드문 전시가 될 것이다. <전시안내> * 장 소 : 구리아트홀 갤러리 * 일 시 : 2018. 07. 11. - 10. 07. * 주 최 : 구리아트홀,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 * 주 관 : 비토아트컨설팅 * 관람시간: 10:00 - 18:00 (월요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이끼 정원으로 이름난 사이호지(西芳寺)는 교토 서쪽에 자리하고 있는 절이다. 녹음이 우거진 가운데 정원 바닥에는 천년의 이끼가 그 푸르름을 더하는 이곳은 불교에서 말하는 서방정토를 보여주려고 만든 정원으로 알려져 있다. “사이호지(西芳寺)가 관광객들로부터 점령된 것은 얼마 전부터이다. 절은 관광수입으로 부자가 되자 절문을 걸어 잠그고 3개월 동안 정진과 붓글씨 쓰기에 들어갔다. 이때는 많은 돈을 기부한 사람에게만 정원을 보여준다. 이로써 3개월 동안의 휴식시간이 생겼다. 다행히 내가 교토에 살던 10년 동안에는 50센트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 갈 수 있었다.(1984년 당시)” 이는 존 카터 코벨 교수가 쓴 《일본에 남은 한국 미술》에서 한 말로 그가 교토에 묵었던 1984년 당시 상황이지만 사실 일본의 절들은 저마다 한 가지씩 볼거리를 만들어 관광객들을 불러 모았다. 교토의 경우만 해도 코벨 교수가 말하고 있는 이끼 정원 사이호지[西芳寺], 절의 전각을 금색으로 도금하여 그 이름을 날리고 있는 긴카쿠지[金閣寺), 크고 작은 돌(石庭)을 깔아 놓고 감상하는 정원으로 이름난 료안지[龍安寺), 일본 국보1호인 미륵보살반가상이 안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아! 정말 덥다. 덥다는 말보다 용광로 앞에 있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아니 몸의 일부가 타들어가는 느낌이다. 햇볕에 조금만 걸어도 그런 느낌이다. 우리나라도 30도가 넘는 폭염이 2주째 계속되고 있지만 이웃나라 일본 역시 된더위로 난리다. 어제 사이타마현에서는 일본 관측사상 최고로 더운 섭씨 41.1도를 기록하는 등 일본열도가 펄펄 끓고 있다. 일본 기상청에 따르면 23일(월) 낮 2시 16분, 사이타마현 구마가야시(埼玉県熊谷市)의 기온이 일본 관측기록사상 가장 높은 41.1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 기록은 2013년 8월 12일 고치현 시만토시(高知県四万十市)에서 기록한 41.0도를 웃도는 기록이다. 사이타마현 뿐 아니라 도쿄, 기후현 등 일본 전역이 폭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무더위에 일본인들은 안부편지인 “쇼츄미마이(暑中見舞い)”를 쓴다. 쇼츄미마이는 대개 엽서를 보내는데 엽서에는 파도치는 그림이라든가, 시원한 계곡 그림, 헤엄치는 금붕어 등이 그려져 있어 엽서를 받는 사람이 보기만 해도 시원한 느낌이 들게 배려한 것들이 많다. 그뿐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 안부를 묻고 싶은 사람 집에 찾아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제주도립미술관을 찾은 22일(일) 낮에는 된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한줄기 소나기가 지나가 다소 더위를 식혀주었다. 더운 날에는 냉방시설이 잘된 미술관 나들이가 시원하기도 하지만 김환기, 장욱진, 천경자, 이상범, 박수근, 이응노, 변관식 같은 쟁쟁한 화백들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어 전시장에는 제법 많은 이들이 그림을 감상하고 있었다. 제주도립미술관에서는 지난 7월 18일부터 10월 3일까지 ‘한국근현대미술걸작선- 100년의 여행 가나아트 컬렉션’전이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 출품한 작품들은 이호재 가나아트 회장이 평생을 모은 소장품 가운데 박수근, 김환기 등 유명 작가 52명의 작품을 선보이는 매우 뜻있는 전시회다. “나는 아직 우리 항아리의 결점을 보지 못했다. 둥글다해서 다 같지가 않다. 모두가 흰빛깔이다. 그 흰빛깔이 모두 다르다. 단순한 원형이, 단순한 순백이 그렇게 복잡하고 그렇게 미묘하고 그렇게 불가사의한 미를 발산할 수 없다. 고요하기만 한 우리 항아리엔 움직임이 있고 속력이 있다. 싸늘한 사기지만 그 살결에는 따사로운 온도가 있다” 이는 김환기 화백의 말로 그는 작품 ‘산월’ 속에 오롯이 그 마음을 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