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흔히 역사란 역사전문가들만이 다루는 영역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역사란 어느 일정한 그룹만이 독점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아직 역사의 실체에 대해 완전한 교육이 이뤄지지 않은 학생일지라도 자연스럽게 역사적 사실을 경험하도록 함으로서 역사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작업은 학교현장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재인식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학교가 있어 어제(17일) 다녀왔다. 서울 동대문구에 자리한 휘봉고등학교(교장 이재억)가 그곳이다. 휘봉고에서는 ‘2018학년 3학년 한국사 공공역사프로젝트 수업’으로 <3·1운동 100주년의 의미 다지기>(지도 교사 조현서)를 선정해서 모두들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기자가 어제 찾은 휘봉고 교문에는 ‘100년 전 하나 된 그 마음 이어가길 -2019년 3월 1일 3·1운동 100주년-’ 이라는 커다란 펼침막이 내걸려 있었고 학교 곳곳에는 학생들이 준비한 홍보물들이 걸려있었다. 이번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3·1운동에 관한 영화 제작 및 상영(3학년 1반), 민족대표 33인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에서 흑자 찻잔을 텐모쿠(天目)라고 부르는데 국보로 지정된 료헨텐모쿠(曜変天目) 3점이 전해지고 있다. 텐모쿠(天目)라고 부르는 것은 중국 절강서 천목산(天目山)에서 수행한 가마쿠라 시절의 승려들이 일본에 가지고 간데서 텐모쿠(天目)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일본은 당ㆍ송시대 유학생으로 건너간 승려들이 차를 들여와 절을 중심으로 송나라의 점차법(點茶法, 한국의 가루차 마시는 법과 비슷하다.)과 투차(鬪茶, 차를 마셔 그 종류를 맞추는 겨루기) 풍습이 유행했으며 이때는 건요(建窯), 길주요(吉州窯)에서 생산된 흑자 찻잔이 유행했다. 그러나 원나라 시절, 백자 찻잔이 유행하게 되자 일본은 13세기말부터는 세토(瀬戸) 지역 가마에서 흑자 찻잔을 만들기 시작한다. 일본에서 중국의 흑자 찻잔이 출토되는 지역은 하카타(후쿠오카), 가마쿠라, 오키나와 수리성 일대로 하카타와 가마쿠라 유적에서는 흑자 찻잔이 100여점 이상 발굴되었다. 한편 오키나와 수리성에서는 500여점의 차양요(茶洋窯) 흑자조각이 발견되기도 했다. <쿤타이칸소우쵸우키(君臺觀左右帳記)>에는 ‘건요에서 만든 잔 가운데 최상품인 흑차 찻잔은 세간에는 없는 물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생존 여성독립운동가인 오희옥(92살) 지사께서는 지난 3월 17일, 급성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의식을 회복한 이래 4달째 서울중앙보훈병원 (강동구 진황도로 61길 53) 재활병동에서 치료 요양 중이다. 기자는 오희옥 지사께서 입원 1달째 되던 4월 중순에 찾아뵙고 어제(14일) 다시 서울중앙보훈병원 재활병동을 찾았다. 낮 2시 무렵 찾은 병상에서 오희옥 지사는 곤히 주무시고 계셨다. “간밤에 어머니는 잠을 못 주무신 듯합니다. 아직 코에 꽂은 호스로 미음을 드시고 계셔서 기력회복을 못하고 계십니다.” 면서 잠시 뒤 어머니가 깨어나면 휠체어에 모시고 환자 대기실로 가겠다고 하여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길 10여분, 흰모자를 쓴 오희옥 지사께서 아드님이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셨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오희옥 지사는 병문안하러 간 기자를 알아보고 오른손을 약간 흔들어서 반가움을 표시했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왼쪽 손, 발을 쓰지 못하는 상태지만 오른손은 쓸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러나 노환에다가 장시간 입원에 따르는 기력 부족으로 대화를 나눌 정도는 아니었다.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오희옥 지사를 모시고 우리는 유리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고모님(차보석 지사)의 훈장증을 받아드니 마치 고모님을 만난 듯 감동스럽습니다. 고모님이 2016년 8월 15일, 국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사실도 저는 까마득히 몰랐습니다. 하마터면 국가보훈처 책상 서랍 속에서 마냥 잠자고 있을 고모님의 훈장증을 받아드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이는 지난 7월 3일(화), 경기남부보훈지청(지청장 구남신)에서 여성독립운동가인 차보석 지사의 조카인 차영조 선생이 고모님의 훈장증을 받아든 소감이다. 차보석 지사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장관)을 지낸 동암 차리석(1881~1945, 1962년 독립장 추서) 선생의 여동생으로 1892년 평안남도 맹산 함종(咸從)에서 태어나 이화학당을 거쳐 일본 고베(神戶)가사여자전문학교를 졸업한 수재였다. 귀국한 뒤 1912년 대구신명여학교에서 4년간 교편을 잡으면서 재직 동안 교가(校歌)를 만드는 등 초창기 교풍 확립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차보석 지사는 23살 되던 해에 대구신명여학교를 떠나 평양으로 가서 오라버니인 차리석 선생과 교육사업을 펼치다가 3·1만세운동 직후 오라버니와 상해로 망명했다. 상해에서 흥사단에 참가하는 한편 1921년에는 재상해유일학생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얼마 전 제7호 태풍 “쁘라삐룬”이 일본의 후쿠오카를 비롯한 서일본 지역을 강타하여 큰비를 몰고 오는 바람에 산사태가 나고 홍수가 나서 사망자만 100 명이 넘는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이런 어수선한 가운데 교토에서는 연중 최대의 여름 축제인 ‘기온마츠리(祇園祭)’ 준비로 한창이다. 이번 큰비로 인한 집중 타격은 받지 않았지만 가까운 지역이 물난리로 야단법석이다 보니 예년 같은 축제분위기는 덜할 것 같다. 기온마츠리는 일본의 여타 마츠리 가운데서도 으뜸으로 손꼽히는 여름 축제다. 보통 7월 한 달 내내 축제가 이어지는 판에 이 무렵이 되면 교토 일대는 호텔방 구하기가 쉽지 않다. 기온마츠리 유래는 전염병이 확산 되지 않도록 신에게 기도하는 의례에서 생겨났다. 지금부터 1,100여 년 전 교토에 전염병이 크게 번져 죽는 사람이 속출했는데 오늘날과 같은 전염병 대책이 없던 당시에는 전염병 발생을 신 곧 우두천왕(牛頭天王, 일명 스사노미코토)의 노여움으로 알았다. 그 노여움을 풀어주려고 기온사(祇園社, 현 야사카신사)에서 병마 퇴치를 위한 제사를 지냈는데 당시 66개의 행정구역을 상징하는 가마 66개를 만들어 역병(疫病)을 달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잔의 색은 검푸른 것을 귀하게 여기며 가는 터럭 무늬가 있는 것을 으뜸으로 여긴다. 그것이 차 색깔을 따뜻하게 잘 드러내기 때문이다. 바닥은 반드시 약간 깊고 조금 넓어야한다. 바닥이 깊으면 차가 잘 서서 유화가 쉽게 되고 넓으면 솔을 넣고 휘저어서 거품내기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모름지기 차가 많은지 적은지를 헤아려서 잔의 크고 작음을 맞춰야 한다. 잔이 높은데 차가 적으면 차 색깔을 가리거나 덮어 버리고 차가 많은데 잔이 작으면 끓인 물을 충분히 받을 수 없다. 잔이 따뜻하면 차가 잘 서고 오래간다.” - 송나라 휘종 <대관다론(大觀茶論)> - 잔의 색이 검푸른 도자기를 흑자(黑瓷)라고 하는데 그 흑자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전시회가 한성백제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흑자의 멋, 차와 만나다”라는 제목의 이번 전시회는 8월 19일까지 열리며 흑자의 등장, 흑자의 절정, 흑자와 차문화라는 구성으로 이상윤 선생이 기증한 유물을 ‘기증유물특별전’으로 기획된 것이다. 기증자 이상윤 선생은 중국의 청자, 백자뿐 아니라 서민들이 일상생활에서 즐겨 사용한 흑자도 많이 수집했는데 이러한 유물들은 중국의 자기문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서울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어제(6일, 금요일)오전 10시부터 시작된 <고구려 고분벽화, 남북의 소중한 세계문화유산> ‘2018 북한미술 국제 학술심포지엄’은 장장 7시간 동안 이어졌고 저녁 5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하긴 중원(中原: 한족(漢族)의 근거지를 가리키며, 때로는 중국을 뜻하기도 한다)을 호령하던 고구려 역사를 되짚는 시간으로 볼 때 7시간은 짧은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어제 열린 <고구려 고분벽화, 남북의 소중한 세계문화유산> 국제학술 심포지엄은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 최종덕)와 한성백제박물관(관장 이인숙)이 주최한 행사로 학술대회가 열린 한성백제박물관 강당은 고구려 고분벽화에 관심을 갖고 있는 전문가와 일반 시민들로 가득찼다. 기조발표를 맡은 전호태 울산대학교 교수는 “고구려 고분벽화는 문화사, 예술사, 종교사상사, 사회사 면에서 복합적인 가치와 의미를 갖는 유적이다. 고분벽화에서 어떠한 역사성을 읽어내려면 역사학, 고고학, 미술사, 종교학 등 다방면에서 입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또한 지속적인 연구를 위해서는 유적과 유물 데이터베이스 센터 설립과 운영, 학술정보 수집과 공유, 연구를 전담할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1919년 3월 5일아침 9시, 수천 명의 학생들이 남대문역(지금의 서울역) 역전에 집결하였다. 이들 학생들이 남대문역전을 시위장소로 택한 이유는 3월 3일 고종의 인산(因山, 장례)을 보고 지방으로 내려가는 군중이 많은 것을 감안하였기 때문이며, 평양방면의 학생들이 200명 이상으로 학생결사대를 조직하여 서울로 향하여 남대문역에 도착한다는 소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 《신편한국사 ‘학생운동편’》(429쪽) - 지금으로부터 99년전, 서울역(당시는 남대문역) 광장은 일제의 잔악한 침략을 규탄하고 조선의 독립을 열망하는 학생들과 시민들의 함성으로 달구어져있었다. 그 뜨거운 함성의 자리인 서울역 ‘문화역서울 284(구서울역)’에서 어제 7월 3일(화) 낮 2시, 뜻깊은 출범식이 있었다. 대통령 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출범식이 그것이다. 이날 출범식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하여 이낙연 국무총리 등 정부 주요인사와 한완상 기념사업회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추진위원 등 150여명이 참석하여 내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김규리 씨의 사회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지난 6월 30일 저녁 7시 반 무렵,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느라 부엌에 있는 나를 거실에 있던 아들 녀석이 부리나케 부른다. “지금 텔레비전에서 일본 고려박물관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이었다. 나는 젖은 손을 행주에 닦으며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화면에는 고려박물관 내부가 잠시 소개되더니 이내 하라다 교코(原田京子, 77살) 이사장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었다. 집 식구들에게 하도 고려박물관 이야길 한 덕에 아들 녀석은 텔레비전에 나오고 있는 고려박물관 이야기를 내게 알려주었던 것이다. 하라다 교코 씨는 조선침략의 역사를 반성하고자 도쿄 한복판에 시민들이 설립한 고려박물관의 이사장이다. 하라다 이사장과 고려박물관 회원 14명은 지난 6월 18일부터 3박 4일 동안 한국을 방문했다. 방문 목적은 내년에 3.1만세운동 100돌을 앞두고 일본에서 3.1만세운동의 의미를 되새기는 뜻깊은 전시를 기획하고 찾아온 것이었다. 기자는 하라다 이사장과 고려박물관 회원들이 방한 중에 통역과 안내를 맡아 함께 했었다. 그때 하라다 이사장과 나란히 버스로 이동하였는데 자신이 YTN과 대담을 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기에 텔레비전 화면 가득히 나오는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여기 목련 나무 아래에 조선인을 학살해서 묻었어요. 조사단이 이 자리를 발굴하자 6구의 시체가 엉켜있었지요. 이 목련꽃나무는 해마다 어떤 꽃보다 먼저 꽃이 피는데 여기서 학살당한 조선인들의 영령이 아닌가 싶어요.” 목련꽃 나무 아래에서 당시 조선인학살 현장을 설명해준 사람은 오다케 할머니로 당시 79살(2010년,8월 12일)로 건강이 안 좋아보였지만 학살 당시를 설명할 때는 어디서 그런 힘이 솟구치는지 쩌렁쩌렁했다. 기자는 2010년 국치 100주년을 맞아 치바현을 비롯하여 관동 일대에서 벌어진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대학살 현장을 취재한 적이 있었다. 오다케 할머니가 증언한 학살현장은 치바현의 나기하라라는 곳으로 이곳은 과거 구(舊) 일본육군 나라시노 연습장에서 조선인 6명을 끌고 나와 처참하게 살해하여 묻었던 곳이다. 여기는 1970년대 후반까지 말해서는 안 되는 공공연한 <금기> 장소였지만 이 지역의 양심적인 중학교 교사가 학생들과 조선인 학살 사실의 증언을 통해 확인되었고 1998년에는 75년 만에 유골 발굴이 이뤄져 6구의 유해를 발굴하여 화장한 뒤 치바현 관음사에 모셨다고 했다. (치바현 내에는 관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