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한국의 신문은 연일 수 쪽에 걸쳐 북미수뇌회담 기사를 게재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상파 3개 방송국에서도 아침부터 ‘세기의 담판’을 주제로 특별 방송을 꾸리는 등 북미수뇌회담 일색입니다. 싱가폴로부터의 중계방송에서는 ‘점심식사는 무엇을 먹을까요?’, ‘설마 햄버거는 먹지 않겠지요?’ 같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북미수뇌회담 결과가 나올 때까지 프로그램을 편성했습니다. 한국 시민들의 관심은 높습니다. 서울에 사는 45살 주부는 ‘오늘 결과가 어떻게 나올까 기대하고 있다’ 고 했으며 47살의 여회사원은 ‘통일되면 비용이 많이 들어 한국이 부담이 되지만 미래 세대를 위해 언젠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본다’고 했습니다.” 이는 어제(12일) 싱가폴에서 열린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한국의 관심을 사쿠라이이즈미(桜井泉) 기자가 야후제팬에 기고한 글이다. 한국의 언론들이 싱가폴에서 열린 북미회담에 관심을 갖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일본 언론 역시 실시간으로 싱가폴 북미 회담과 한국의 분위기를 전하는 모습이 분주해 보인다. 특히 야후제팬에서는 북미수뇌회담에 대해 실시간으로 누리꾼의 의견을 묻고 있는데, 12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어제(8일) 금요일 저녁 7시부터 효자동 참여연대 카페통인에서는 조촐한 작가와의 만남 시간이 있었다. 박진수(81살) 화백과의 만남이 그 자리로 이에 앞서 박진수 화백은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지난 5월 12일(토)부터 5월 30일(수)까지 작품전 “시골 노인이 꽃을 꺾어드니 온 세계가 봄이로다”를연 바 있다. 어제 모임은 지난 달 작품 전시를 성황리에 마치고 박 화백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마련한 자리였다. 20여명 가까이 모인 까페통인에는 지난 번 전시회 때 선보이지 않았던 화사한 꽃 그림 몇 점이 벽에 걸려있었다. 따로 격식이 있는 자리가 아니라 평소 박진수 화백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사랑방 대화를 나누는 자리라서 나는 궁금했던 박수근 화백과의 만남에 대한 질문을 첫 번째로 던졌다. “제가 27살 때였을 겁니다. 박수근 화백께서 경주 남산의 돌부처 스케치를 하러 오셔서 한 달간 박수근 화백과 지낸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때 저의 그림을 보여드렸지요. 그랬더니 대학 나온 사람 그림보다 좋다고 하시면서 계속 그리라는 말씀을 하셨지요. 경주 남산의 숱한 돌부처를 스케치하고 탁본하는 과정에서 박수근 선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나는 깨달았다. 사람을 사귀는 것보다 자기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이게 진실이다. 이게 진실이다’ 하고 시끄럽게 구는 것이다.” “눈이 내려서 기쁠 때 나는 내가 네 살이든, 예순 세 살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이는 일본의 그림책과 동화책 작가이자 수필가로 알려진 사노 요코(佐野 洋子, 1938~2010) 씨 의 말이다. 사노 요코 씨는 1938년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나 9살 때 일본으로 돌아와 컸으며 일본 무사시노 미술대학교 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1967년 베를린 조형대학에서 6달 동안 석판화를 공부했다. 사노 요코 씨의 대표작인 《백만 번 산 고양이(100万回生きたねこ)》는 전 세계에서 300만부가 팔린 그림책으로 인생과 사랑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그린 작품으로 알려져 있으며 어린이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널리 사랑받고 있다. 사노 요코 씨는 이 밖에도 《두고보자, 커다란 나무》, 《좀 별난 친구》 등의 그림책을 비롯하여 《사는게 뭐라고》, 《죽는게 뭐라고》와 같은 수필집 등 2009년 6월 현재 공저를 포함한 173권의 책을 펴냈다. (일본 최대의 서점인 ‘기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이달의 독립운동가 이대위 [1878~1928] 선생은 평남 강서(江西) 사람으로 평남 평양에서 출생하여 기독교 학교인 숭실중학교(崇實中學校)를 졸업한 후, 유학을 목적으로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1903년 9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안창호(安昌浩)·장경(張景) 등과 함께 미주 한인단체의 효시인 친목회(親睦會)를 결성하고 동포간 연락과 친목을 위주로 활동하면서 한인사회의 생활개선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후 1905년 4월 동지(同地)에서 안창호등과 함께 미주 최초의 민족운동기관인 공립협회(共立協會)를 조직하여 항일운동과 동족상애(同族相愛)를 목적으로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1906년 4월에는 상항(桑港)한인감리교회를 창립하여 한인 동포들의 구호사업과 교육계몽운동, 직업 알선 등의 활동을 수행해 나갔다. 1908년 6월 오레곤주 포트랜드 아카데미를 졸업한 뒤, 동년 12월 상항한인감리교회에서 미국내 한국어 출판의 효시인 『대도보』라는 주보를 발행하여 매부 본국과 세계의 정세를 전달하는 한편, 기독교의 복음 전도 및 교포 교양에 공헌하였다. 또한 같은 해 10월부터 최정익(崔正益) 등과 함께 하와이와 미주 본토에 있는 한인단체를 통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한국의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따위가 연거푸 들어 있어 힘들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더욱이 스승의날 같은 경우에는 “교사를 선물이나 기대하는 사람 취급하는 날 같으니 아예 없애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는 스승의날이 없는 대신 어머니날과 아버지날이 따로 있어 부담스럽다는 사람들이 있다. 어머니날(하하노히, 母の日)은 5월 둘째 일요일이라 올해는 5월 13일이었다. 그런가 하면 아버지날(치치노히, 父の日)은 해마다 6월 셋째 주 일요일이라 올해는 6월17일이다 일본처럼 6월 셋째 주 일요일에 아버지날을 두고 있는 나라는 미국, 중국, 인도, 영국, 캐나다, 칠레, 콜롬비아, 프랑스, 터키, 싱가폴, 멕시코 등이다. 일본의 어머니날과 어버지날의 유래는 모두 미국에서 비롯된 풍습이며 어머니날엔 붉은 카네이션을, 아버지날에는 흰장미를 선물한다. 하지만 꽃보다도 인기 있는 것은 다양한 선물이다. 아버지날 선물 1위는 가죽벨트, 2위와 3위는 맥주 셋트, 4위는 색안경(선글라스), 5위는 발모제(머리 나게 하는 약) 순이다.(야후쇼핑 참고) 가격은 3천 엔~7천 엔(3만~7만) 선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어제 5월 22일은 불기 2562년 부처님 오신 날이었다. 한국의 각 절에서는 종파를 초월하여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날의 의미를 새기며 연등을 밝히고 법요식을 갖는 등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는 다르다. 일본의 부처님 오신 날은 양력으로 4월 8일인데다가 우리처럼 공휴일도 아니어서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이 날이 부처님 오신 날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일본은 명치시대때부터 음력 사용을 금지하고 나라의 모든 행사나 개인의 기념일을 양력만을 쓰게 했다. 설이나 한가위 같이 음력을 기준으로 하는 행사도 양력으로 하다 보니 ‘둥근 보름달’을 본다든가 하는 전통방식의 명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 속에서 치른다. 부처님 오신 날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경우 종파의 교리가 통합된 통불교라면 일본불교는 종단을 창시한 조사(祖師)의 가르침을 따르는 ‘조사불교’이기 때문에 조사의 탄생일에 더 많은 의미를 둔다. 따라서 우리처럼 연등회를 갖는다든지 부처님 오신 날 기념법회를 텔레비전에서 뉴스로 전한다든지 하는 일이 거의 없다. 무엇보다도 명치정부(1868)가 불교를 탄압하고 신도(神道)를 장려하는 이른바 폐불훼석(廃仏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산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 돈을 취하는 종교는 가짜, 하느님도 부처도 없다” 등등 숱한 명언(?)을 남기고 있는 비구니 세토우치쟈쿠쵸 (瀬戸内寂聴, 1922~) 스님이 5월 15일 96살 생일을 맞았다. 특히 자신이 불교 승려 이면서 “이제 하느님도 부처도 없다”고 한 말은 2015년 93살 때 담낭 수술을 마치고 통증이 가시지 않자 한 언론과의 대담에서 한 말이다. 쟈쿠쵸 스님은 과거 혼인하여 딸 하나를 둔 상태에서 남편의 불륜으로 이혼한 뒤, 오랫동안 자신의 이야기 등을 소재로 소설을 집필하며 살았다. 원래는 수녀가 되고 싶었으나 혼인했던 탓으로 수녀의 길이 막히자 이번에는 승려의 길을 걷으려 했다. 그러나 그 어떤 절에서도 승려의 길을 허락해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1973년, 51살 때 중존사(中尊寺)에서 받아줘 천태종 승려가 되었다. 이후 쟈쿠쵸 스님은 화장을 하고 술과 고기를 먹 등 자유로운 생활을 하는 스님으로 알려져 있다. 그 어느 것에도 구애됨이 없는 생활을 거침없이 하고 있는 것이다. 1974년부터 교토의 사가노(嵯峨野) 지방에 자기 이름을 딴 쟈쿠쵸암(寂聴庵)을 짓고 교화와 인생상담, 집필, 방송 출연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은 마츠리의 나라라고 일컬어질 만큼 전국적으로 마츠리(축제)가 쉴 새 없이 열린다. 그 가운데서도 교토의 3대 마츠리라고 하면 5월 15일 아오이마츠리, 7월17일 기온마츠리, 10월 22일 지다이마츠리가 대표적이다. 초록이 눈부신 5월 15일의 아오이마츠리(葵祭)는 고대 한국과 관련이 있는 하타씨 일족과 관계가 깊은 가모씨(賀茂氏)와 조정(朝廷)의 행사로 당시 이를 보러 오는 사람들의 주류는 귀족들이라 귀족 마츠리라고도 불렸으며 한편으로는 가모신사의 마츠리라해서 가모마츠리(賀茂祭)로도 불렀다. 《가모신사유래기》에 기록된 아오이마츠리 유래를 보면 6세기 무렵 긴메이왕 시절에 일본 전역에 풍수해가 심각하여 점쟁이에게 점을 쳐보니 가모대신(賀茂大神)이 노한 것으로 나왔다. 점괘가 나오면 해결 방법도 나오는 법으로 점쟁이인 우라베(卜部伊吉若日子)의 해결 방법은 튼실한 말을 골라 방울을 잔뜩 달고 기수는 얼굴에 동물 가면을 쓰고 가모신사 주변을 돌면서 성대한 제사(마츠리)의식을 행하면 풍수해를 잠재울 수 있다고 하는데서 마츠리가 시작되었다. 일본의 마츠리는 대부분이 고대에 기원을 둔 것으로 풍수재해 예방, 전염병 확산 금지, 국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신건식 선생은 1889년 충북 청원군에서 출생하여 덕남사숙에서 공부하다 상경하여 무관학교와 관립한성외국어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11년 형 신규식을 따라 상하이로 망명한 후 항저우에 있는 의약전문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였다. 1912년 신채호, 신규식 등이 국권회복을 위해 조직한 동제사(同濟社) 활동에 참여하고 1925년 저장성 육군형무소 군의관 및 중국중앙육군군관학교(황포군관학교) 외과주임으로 근무하며 난징에 거주하는 독립운동가와 학생 등의 숙식 경비를 지원하였다. 1937년부터 난징에서 광복진선선전부에 소속되어 선전활동에 주력하였고, 1939년 제31회 의정원회의에서 충청도의원으로 당선되며 임시정부에 본격적으로 참여하였다. 1942년 임시정부에서 조직한 한국광복군의 지휘권을 중국 국민당 정부에서 간섭하자 의정원 동료의원과 합심하여 이를 되찾아 왔다. 1943년 재무부 차장으로 선임되었고, 의정원 분과위원으로 재정, 예산, 결산을 담당하며, 재정분야 전문가로 활동하였다. 오건해 선생은 1926년 경 남편 신건식 선생이 있는 중국으로 이주하여 이동녕, 박찬익 등 독립운동가의 뒷바라지에 힘썼다. 1938년에는 '남목청사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5월 8일은 한국의 어버이날이지만 일본은 어버이날은 없고 그 대신 어머니날(하하노히, 母の日)이 있다. 해마다 5월 둘째 주 일요일이 어머니날이다 보니 해마다 날짜가 조금씩 다르다. 올해 어머니날은 5월 13일 일요일이다. 일본의 어머니날은 과거에 1931년 대일본연합부인회(大日本連合婦人會)가 결성되고 난 뒤 왕비(香淳皇后, 소화왕의 부인) 생일인 3월 3일을 어머니날로 삼았으나 1949년부터 미국을 따라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어머니 날로 굳혔다. 그렇다면 일본인 들은 어머니날 무엇을 선물하는 지 궁금하다. 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올 어머니날 선물 1위는 꽃선물(31%), 2위는 건강식품(22%), 3위는 화장품 셋트였다. 한편, 어머니의 이미지에 관한 앙케이트를 보면, ”어머니를 어머니답다고 생각하는 순간은 언제인가?” 라는 질문의 첫 번째 답은 ‘간병을 해주고 있을 때’가 1위(20%)이고, 식생활을 걱정해줄 때(17%), 식사를 준비할 때(16%), 어린이와 놀고 있을 때(10%) 등을 꼽았다. 대충 보더라도 한국의 어버이날 풍경과 다르지 않다. 일본도 어머니날은 한국처럼 카네이션을 선물하지만 6월의 아버지날(치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