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40여 년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살면서 언론인으로, 저술가로 미주 이민 역사의 산 증인으로 바쁘게 살아온 로스앤젤레스 한인역사박물관 민병용 관장(76살)을 어제(16일) 충무로의 한 커피숍에서 만나 대담을 했다. 평창 패럴림픽 개막식과 서울에서 열린 민주평통미주지역회의 참석차 잠시 방한 중인 민병용 관장은 바쁜 틈을 내어 기자의 대담에 흔쾌히 응해 주었다. “지난 9일 패럴림픽 개막식이 열리는 3시간 동안 추워서 혼났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인 고국의 동계 패럴림픽 개막식장에 함께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격스런 일이지요. 오래도록 추억에 남을 듯합니다.” 차 한 잔을 시켜 놓고 자리에 앉자마자 민병용 관장은 그렇게 말했다. 기자가 민병용 관장을 알게 된 것은 지난해 민 관장으로부터 우편으로 받은 《미주독립유공자 전집, 애국지사의 꿈》(2015, 민병용 지음)이라는 책이 인연이 되었다. 이 책은 광복 70주년이던 2015년에 미주 지역의 독립유공자 215분을 총망라해서 기록한 기념비적인 책이다. 뿐만 아니라 민병용 관장은 《미주이민 100년사》(1986), 《미국땅에서 역사를 만든 한인들》 (전 3권, 2011) 등 지금까지 미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 사이타마시 오오미야에는 분재(盆栽, 본사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분재마을이 있다. 오오미야에 있다고 해서 ‘오오미야분재마을(大宮盆栽村)’이라고 부르는데 이곳에는 1923년 관동대지진을 피해 이사 온 분재업자와 분재애호가들이 모여살기 시작하여 큰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마을이 생기고 5년 쯤 되어서부터 분재조합이 생기는데 이들은 분재마을 사람들이 지켜야할 4개 조항의 ‘마을 협약’을 만든다. 1. 이곳에 사는 사람은 분재를 10그루 이상 기를 것 2. 문호를 개방하여 언제나, 누구라도 볼 수 있도록 할 것 3. 이웃을 내려다보거나 그늘이 생기는 2층집을 짓지 않을 것 4. 벽돌 담장을 피하고 모든 울타리는 생울타리를 할 것 4개 조항의 내용은 보기만 해도 자연친화적인 느낌이 든다. 이렇게 분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다 보니 이 마을에는 30여 곳의 분재원이 생기게 되었고 그 명성이 자자했다. 그러나 분재마을의 명성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 까닭은 1940년 제2차대전이 일어나자 일본 정부가 ‘분재’를 사치생활로 간주하여 핍박을 가한데다가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강제 징집해가기 시작하는 바람에 마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백년편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2019년)을 맞아 쓰는 편지글 형식의 글입니다. 2019년 4월 13일까지 계속 접수를 받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문의 : 02 -733-5027】 저는2007년부터 2010년까지 주 베트남 대사로 근무하면서 베트남이 1986년 “도이머이(刷新)” 개방정책을 채택한 이래 신흥시장 국가로 급속히 발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자연히 베트남인들의 역사,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특히 근세에 들어 베트남이 80여 년 간 프랑스 식민지 통치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고 그 후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지도자로서 베트남 국민들을 이끌었던 호치민 주석에 대해 알면서 왜 베트남 국민들이 호치민을 “박 호(호치민 큰 아버지)”로 그토록 사랑하고 존경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호치민을 공산주의자이기 전에 애국자, 민족주의자라고 부릅니다. 그는 한때 “애국(愛國)”이란 이름도 썼으며, 거대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공산주의를 수단으로 수용했을 뿐이라고 합니다. 호치민은 1911년 21세 나이에 조국을 떠나 30년 간 4개 대륙 28개국에서 갖은 고생을 하면서 급변하는 시대의 특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어제(7일)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는 ‘정창원 소장 한반도 유물 – 정창원을 통해 밝혀지는 백제ㆍ통일신라의 비밀’ 이라는 주제로 국제학술심포지엄이 열렸다. ‘백제와 통일신라의 비밀’이라는 부제 탓인지 10시부터 시작된 심포지엄이 열리는 소강당은 시작 30분전부터 초만원 사태를 빚었다. 주최측이 준비한 127쪽 분량의 두툼한 책자는 500부가 동이날 정도로 이날 심포지엄에 방청객들의 관심은 매우 뜨거웠다. 기자도 일찌감치 앞자리에 앉아 아침 10시부터 저녁 5시 20분까지 장장 7시간 반 정도의 시간을 꼼짝하지 않고 ‘고대 일본의 보물창고인 정창원과 고대한국’에 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마침 이날 심포지엄과 관련된 분야는 기자의 전공 분야이기도해 남다른 생각으로 경청했다. 주최측이 설정한 제목은 ‘정창원 소장 한반도 유물’ 이었으나 안휘준 교수는 한반도라는 말은 일제식민지 냄새가 폴폴 나는 말이므로 학술회의 제목 하나에도 신경 써야 한다는 지적을했다. 심포지엄은 모두 6명의 주제발표와 종합토론 그리고 안휘준 교수의 총평으로 막을 내렸다. 이날 심포지엄은 국립문화재연구소와 국회 문화관광산업연구포럼이 주최한 것으로 학술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평창올림픽은 막이 내렸지만 추운 날씨에도 뜨거웠던 선수들의 함성만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그래서인지 일본에서는 인터넷을 통해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한 다양한 설문 조사가 실시되고 있다. “평창올림픽에서 일본은 13개의 메달을 땄다. 당신에게 있어 가장 인상적인 메달을 딴 일본 선수는 누구라고 보는가?”라는 설문이 있었다. 이 설문은 2월 26일부터 3월 8일까지 실시중인데 3월 6일 현재 1등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종목은 스피드스케이트와 피겨스케이트다. 특히 피겨스케이트 선수인 하뉴 유즈르(羽生 結弦)의 일본 내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대단하다. 그 여세를 몰아 야후옥션에서는 3월 5일, 하뉴 유즈르 선수가 직접 사인한 스케이트화가 경매에 나왔는데 첫날 무려 3500만 엔(한화 3억 5천만 원)까지 값이 올랐다. 이 경매는 앞으로 10일까지 이어지는 데 낙찰금은 모두 동일본대지진 때 피해를 입은 학교에 전액 지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평창올림픽에서 인기 종목인 스피드스케이트와 피겨스케이트 뒤를 잇는 것은 노르딕복합, 스노보드, 여자컬링, 스키점프, 프리스타일스키 순이다. 인터넷 투표에 참가한 교토시에 거주하는 아키야마(秋山大治郎)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자신의 꽃 / 이름 없는 풀도 / 열매를 맺는다 / 목숨 가득 / 자신의 꽃을 피워보자 -아이다 미츠오- 이는 일본 독서계의 영원한 베스트셀러 책으로 자리 잡고 있는 시인이자 서예가인 아이다 미츠오(相田光男, 1924~1991, 필명은 相田みつを) 선생의 시다. 그의 시는 군더더기 없는 짧고 쉬우면서도 마음의 무한한 울림을 주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내가 아이다 미츠오 선생의 시를 알게 된 것은 한 20여년 쯤 된다. 그 무렵 나는 대학에서 일본어 강독을 강의하고 있었는데 수업이 지루할 때마다 아이다 미츠오의 “짧고도 울림이 큰 시’ 한 편 씩을 소개했었다. 일본어 지식이 많지 않아도 그의 시는 쉽게 읽을 수 있기에 초급반 학생들이라도 어렵지 않았다. “한 때의 만남이 / 인생을 뿌리로부터 / 바꿔놓을 수 있다 / 좋은 만남을!” “좋은 일 은/ 덕분에 / 나쁜 일은 / 나로부터 나온 것!” “가장 잘 알 것 같지만 / 가장 알 수 없는 것이 / 내 자신!” “지금 / 여기 밖에 없는 나의 목숨 / 당신의 목숨!” 흰 종이에 까만 먹으로 써내려간 아이다 미츠오 만의 서체(書體)는 매우 독특하다. 일본인이라면 누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김원벽 [1894~1928] 선생은 황해도 은율군 이도면에서 장로교 목사 김태석의 외아들로 태어나 서울소재 경신학교를 졸업하고 한국기독교대학(연희전문학교)에 진학하였다. 선생은 1919년 1월 경성 시내 전문학교 학생대표 회동에 참석하며 국제 정세와 시국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2월 초 독립운동에 참가할 것을 결심하였다. 윌슨 미국대통령이 제안한 민족자결주의와 고종이 독살되었다는 소문이 백성들에게 퍼지자 민족대표를 중심으로 만세운동이 추진된다. 선생은 만세운동 추진을 위해 학생 조직의 필요성을 느끼고 각 중등학교 대표를 뽑아 학생들을 결속시켰으며, 독립선언서 운반과 배포 장소를 학교별로 정하였다. 아울러 학생대표를 중심으로 2차 만세시위를 3월 5일 남대문역(현재 서울역)에서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3월 1일 수천 명의 학생과 일반인이 탑골공원에 모였으나, 민족대표들은 유혈충돌을 우려하여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을 하였다. 선생을 비롯한 학생대표는 민족대표가 탑골공원에 오지 않자 자체적으로 독립선언을 하고 남대문과 대한문 양쪽으로 행진하며 만세운동을 하였다. 급보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헌병의 탄압이 있었으나 오후 늦게까지 시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지난 2월 17일부터 20일까지 나는 도쿄에 있었다. 2월 18일, 릿쿄대학의 ‘2018 윤동주 추도회’에 참석 후 귀국을 앞둔 20일 오후, 숙소 로비에 손님을 위해 놓아 둔 요미우리(讀賣新聞) 신문을 집어 들고 도쿄역으로 달렸다. 나리타 공항으로 향하는 열차 안에 자리를 잡고 신문을 펴니 눈에 거슬리는 책 광고가 시선을 끌었다. ‘비상식국가 한국(非常識國家韓國)’이라는 제목을 맨 앞으로 뽑은 신조사(新潮社) 잡지 <신조45> 3월호 책광고였다. 열차가 이미 공항을 향하고 있어 잡지책을 사긴 글렀다고 생각했다. 아니, 도쿄 시내에서 잡지책을 샀다하더라도 별반 알맹이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대개 일본내의 혐한파(嫌韓派)들의 글이란 것이 읽을 가치조차도 없는 쓰레기 같은 것들이 많았던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그런데 나리타 공항 제3터미널에 도착하여 수속을 마치고 보니 바로 거기에 서점이 있었다. 들어가 물어보니 <신조45> 3월호가 있다고 해서 880엔을 주고 얼른 샀다. 비행기를 타자마자 나는 ‘비상식국가 한국(非常識國家韓國)’ 의 글이 실려 있는 21쪽(27쪽까지 있음)을 폈다. 작자는 평론가라는 무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아들과 딸이 태어나면 한국에서는 100일째 되는 날에 백일잔치를 하고, 1년이 되면 돌잔치를 한다. 요즈음엔 백일잔치를 잘 안하지만 과거에는 수수팥단지를 만들어 갓난아기의 무병장수를 비는 ‘백일잔치’도 빼먹지 않고 했었다. <동아일보> 1962년 4월 6일치에는 ‘KBS TV 백일잔치’ 라는 기사가 있을 정도로 텔레비전 방송국 같은 곳에서도 ‘백일잔치’를 했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렇다면 한국의 백일잔치나 돌잔치에 해당하는 일본의 풍습은 무엇이 있을까? 백일잔치에 해당하는 것을 들라하면 오미야마이리(お宮參り)’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오미야마이리는 생후 한 달 정도 되는 갓난아기를 강보에 싸서 신사참배하는 풍습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1살 때 하는 돌잔치는 없다. 그 대신 시치고상(七五三)이라고해서 남자아이는 3살과 5살 때, 여자아이는 3살과 7살이 되는 해에 일본 전통 옷을 곱게 입혀 신사참배를 하는 풍습이 있다. 이러한 풍습 말고도 3월 3일에는 특별히 여자아이를 위한 “히나마츠리(ひな祭り)” 행사가 있다. 히나마츠리는 여자아이가 있는 집안에서 장차 딸에게 닥칠 나쁜 액운을 막기 위해 시작한 ‘인형장식’ 풍습으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백년편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2019년)을 맞아 쓰는 편지글 형식의 글입니다. 2019년 4월 13일까지 계속 접수를 받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문의 : 02 -733-5027】 달뜬 수선스러움이 싫지 않은 설날, 올해는 당신으로 인해 아린 감회에 젖습니다. 73년 전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당신이 마지막 숨을 거둔 날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탄생 100주년을 함께 기뻐했던 2017년 12월 30일이 멀지 않은 때라 당혹감과 송구함은 더 합니다. 고향 부모님 친지를 찾아 정을 나눌 때, 북간도 고향 명동에 한 줌 유골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당신을 아프게 기억하겠습니다. 저는 이번 겨울,당신이 공부했던 교토에 다녀왔습니다. 당신을 기리는 세 번째 시비가 세워졌다는 소식이 교토 답사를 재촉하는 손짓 같았기 때문입니다. 일본어라고는 한국어로 순화해야 할 몇 단어밖에 모르고, 단 한 번도 일본에 가보지 못한 저를 믿고 동행한 17명도 선생의 말없는 초대에 응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교토 답사 중 가장 기대했던 것은 도시샤 대학 내 선생의 시비입니다. 몇 발자국 떨어져 세워진, 당신이 가장 존경했던 스승이자 선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