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시가현(滋賀県) 오오츠시(大津市)에 있는 신라선신당(新羅善神堂, 신라젠진도, 일본에서 신라는 ‘시라기’로 발음하지만 신라선신당의 경우는 그대로 ‘신라’로 발음한다)을 찾아 간 날은 지난 12일(금) 낮 1시 무렵이었다. 지난해에 견주어 시가현을 비롯한 일본 남부 지방의 날씨가 쌀쌀하여 예전 같으면 벚꽃이 지고 있을 때지만 이날은 꽃이 한창이었다. 신라선신당이 왜 그곳에?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오오츠에 있는 신라선신당은 1,300여년의 역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곳이다. 필자는 교토나 오사카 쪽에 볼일이 있어 가는 길에는 잠시 짬을 내어 신라선신당을 들르는 버릇이 있다. 신당(神堂)이란 신사(神社, 진자) 또는 신궁(神宮, 진구)과 같은 뜻으로 우리로 말하자면 사당(祠堂)인 셈이다. 우리네 사당이 조상신을 모시고 있는 것과 같이 일본의 신사(神社)도 조상신을 모신다. 신라선신당은 말 그대로 신라의 신(神)을 모시는 곳이다. 그럼 왜, 일본땅 시가현 오오츠(大津)에 신라선신당이 있는 것일까? 궁금해질 것이다. 천년고도 교토에서 특급열차로 10여분이면 도착하는 오오츠는 고대에는 오우미(近江)로 불리던 곳으로 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산 호수공원에는 나무들이 한창 물이 오르고 있다. 이 시기에 가지치기를 해야하는지 호수공원 제1주차장에는 가지치기를 알리는 펼침막이 걸려있다. 그런데 우리말 '가지치기 공사'라고하면 좋을 것을 '전정공사'라고 써 놓았다. 여기서 '전정(剪定)'이란 일본말 센테이(剪定, せんてい)에서 나온 것으로 구태여 쉬운 우리말 '가지치기'를 놔두고 이런 어려운 말을 쓰는 까닭은 무엇일까? 우리나라 신문에서 '전정(剪定)이란 말이 등장하는 것은 1917년 2월 14일치 <부산일보>에 '과수의 동절기 전정' 이란 말을 시작으로 1920년대를 거쳐 60년대 까지 줄기차게 '전정(剪定)' 이 쓰이고 있다. 나이든 사람들은 '전정'을 이해할 수 있을 지 모르나 호수공원 펼침막에 써놓은 이 말 뜻을 이해할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펼침막을 써 붙일 때는 그것을 보는 시민들이 무슨 뜻인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을 골라 썼으면 한다. 자기 나라의 쉽고 고운 말을놔두고 일본말 ''전정(剪定)'이라니,낱말 하나에서도 겨레의 자존심을 찾자는 말은 지나친 참견일까?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전정 : 식물의 겉모양을 고르게 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지난 12일(금) 아침, 교토 시조 거리를 걷다가 만난 커다란 건물 벽에 설치된 꽃꽂이 앞에 발이 멈췄다. 보랏빛 서양란 몇 송이와 안개꽃 그리고 소나무로 꽃꽂이를 해둔 건물 외벽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발걸음을 멈추고 감상하기 바쁘다. 가히 꽃꽂이(이케바나)의 나라답다. 꽃꽂이 작품이 있는 곳에는 무라카미 겐지의 시 ‘생명은 빛난다’도 걸려 있었다. 초목이 자라나는 모습 / 거기에 비추는 / 다양한 생명의 소중함 /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에 마음을 기대어 / 인생의 만남을 즐긴다. 일본의 꽃꽂이를 이케바나(生け花) 또는 카도우(花道, 華道)라고 부르는데 카도우라고 부르는 것은 단순한 꽃꽂이라기보다는 수행의 의미를 내포한다고도 한다. 차도(茶道)처럼 도 ‘道’자가 붙으면 아무래도 그런 느낌이 짙다. 일본의 꽃꽂이는 불교의 전래로부터 그 시작을 보는데 부처에세 꽃 공양을 한데서 유래한다는 게 정설이다. 일본인들의 꽃사랑은 헤이안시대(794-1185)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의 수필집인 마쿠라노 소우시(枕草子) 등의 문학작품에도 등장할 정도로 일본의 꽃꽂이 역사는 1천년 이상으로 길다. 카도우(花道, 華道)는 무로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백년편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2019년)을 맞아 쓰는 편지글 형식의 글입니다. 2010년 4월 13일 부터 시작해서 2019년 4월 13일까지 지속되는 편지쓰기 글입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문의 : 02 -733-5027】 오늘은 아직 찬 기운이 가시지 않았지만 봄 향기가 상큼한 3월 17일 밤, 지금으로부터 86년 전인 1933년 그날을 기억하는 후손들이 충북 제천에, 경기도 평택에 모여 기념 행사를 가졌습니다. 행사 후 돌아와 가만히 그날 밤을 생각해 봅니다. 일본 침략자들을 오랫동안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흑색공포단의 백정기 의사와 원심창·이강훈 세 분이 중국 상하이 홍커우구 무창로의 중국요리집 송강춘에 태연히 앉아 있던 그날 밤 그곳을. 백정기, 당시 의사님과 두 동지의 몸에는 1년 전 윤봉길 의사가 홍커우공원에서 적장들을 폭살한 폭탄 1발과 수류탄 1발, 권총 2자루와 실탄 15발이 감추어져 있었지요. 일본인 동지인 야타베 무우지는 거사 장소인 한 블록 앞 일식요리점 육삼정 정문 앞에서 주중 일본공사 아리요시가 나타나면 신호를 보내기로 했지요. 참으로 숨 막히는 일촉즉발의 순간입니다. 사실 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재일 한국인들 마음의 고향인 일본 나가노 유명산 금강사(주지:열린선원 법현스님)에서는 4월 8일 불기 2563년 부처님오신날 봉축행사를 원만히 봉행했다. 이번 봉축법회에는 주지 법현 스님, 본문사 주지 오노데라(小野寺) 스님, 한국문화뉴스 시게마쓰(茂松) 스님, 세계불교스카우트연맹 유광석 의장, 유영애 명창,가수 지강훈, 유우카 자매, 원주 대진 스님, 대중 대자 스님, 대비 스님, 동림사 원행전 법사, 김보성 대불청제주지구장, 정정순 신도회장, 문해룡 대표역원 등 120여명의 불자가 참석하였다. 봉축행사는 봉축전야 연등축제와 봉축 욕불법회로 나뉘어 봉행했다. 욕불법회는 4월 8일 아침 9시30분부터 시작했다. 이날 법회는 부처님께 차를 공양하는 헌다의례를 시작으로 삼귀의, 찬불가, 경전독송, 팔상예불, 정근과 욕불, 축원, 발원문, 청법가, 설법, 봉축사, 축가, 축사, 사홍서원, 사진촬영, 공양의 순서로 진행했다 주지 법현스님은 설법에서 탄생게를 대승불교와 초기불교의 시각을 중도적으로 설명하고 불기의 기산법, 부처님 오심의 현대적 의미를 중심으로 설법했다. 이어 정정순 신도회장은 불자들과 함께 바른 신행으로 금강사중흥불사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에서 1977년에 나온 책으로 《역사독본(歷史讀本)》이란 책이 있다. 1977년 봄호(春號)로 펴낸 이 책은 일본의 신인물왕래사(新人物往來社)에서 나온 것으로 표지에는 《역사독본》 창간2호라고 쓰여 있다. 이 책을 만난 것은 20여 년 전 우연찮게 도쿄 진보초의 고서점가에서다. 특별히 이 책에 관심이 갔던 것은 ‘역대천황124대’라는 부제가 눈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표지에는 122대 메이지왕(明治天皇)의 사진으로 꾸며져 있었는데 어딘지 모르게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 차 보인다. 일본고대문화사를 전공하는 필자는 일본왕(天皇)의 역사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 이 책을 곁에 두고 수시로 읽고 있다. 약 300쪽에 달하는 이 책은 역대 일왕가의 행적을 일목요연하게 기록한 책으로 일왕의 뿌리부터 일본근대화의 아버지라는 명치왕(1868~1912) 때까지 일본인들도 모르는 흥미진진한 내용이 많이 들어 있다. 특별히 권두 특별기고문은 ‘일본역사와 천황(日本歷史と天皇)’라는 제목으로 도쿄대학 사카모토 타로우(坂本太郞권) 명예교수가 썼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의 집필자들은 와세다대학의 미즈노 유(水野祐), 도쿄대학의 야마나카 유타카(山中裕),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4월 3일 수요일, 서울에서 이른 새벽부터 나서서 목포정명여자중고등학교(중학교 박형종 교장, 고등학교 정종집 교장)를 찾은 시각은 10시 40분으로 이곳은 김귀남 지사가 다니던 학교이다. 이날 이곳에 함께 한 이는 김귀남 지사의 외손녀인 문지연 씨와 작은 아버지 문홍식 선생이었다. KTX목포역에서 택시로 기본요금 거리에 있는 학교 정문에 도착하니 교문에는 4.8만세운동 100주년 ‘제19회 4.8독립만세운동 재현행사’라는 글귀가 적힌 펼침막이 높이 걸려있었다. 이날은 미세먼지가 없어 유독 하늘이 높고 푸르렀다. 교문 옆에는 국가보훈처에서 현충시설로 세운 ‘정명여학교 3.1운동 만세 시위지·학생운동지’라는 커다란 선 간판이 놓여 있어 당시 목포지역 만세운동의 열기를 느끼게 했다. 학교 방문에 앞서 목포정명여자중학교 박형종 교장 선생님께 시간 약속을 미리 해 놓은 터라 교장실에는 박형종 교장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 등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 한 잔을 마시며 외손녀 문지연 씨가 “유품을 잘 관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외할머니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비록 100년 전 일이기는 해도 이 학교 학생들이 선배들의 독립정신을 이어가는 일에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지난 2월 28일 목요일, 필자는 한 여성독립운동가 후손으로부터 장문의 메일 편지 한 통을 받았다. 10년 동안 꼬박 여성독립운동가의 삶을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지만 후손으로부터 이렇게 긴 편지를 받은 적은 없던 터라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자신을 김귀남(金貴南, 다른 이름 김영애(金瑛愛, 1904.11.17. ~ 1990.1.13. 실제는 1901년생이고 호적에는 1904년으로 되어 있음) 지사의 외손녀인 문지연이라고 소개한 편지글은 다음과 같이 시작되었다. “느닷없는 메일로 놀라셨겠지만, 전부터 꼭 한번은 인사드리고 싶었습니다. 용기가 나지 않아서 그 동안 좀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문지연 씨의 사연은 이러했다. 필자가 쓴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서간도에 들꽃 피다》(5권)에 실린 외할머니(김귀남 지사)를 위한 헌시와 독립운동 기록을 지난해서야 알게 되었고 이 책을 계기로 수년 만에 외할머니의 유품들을 다시 챙겨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그동안 유품은 후손이 간직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외할머니의 각종 유품들을 집에서 보관하고 있었지만, 말이 보관이지 사실상 자신을 포함한 가족들은 하루하루 현실을 살아가는 일상에만 집중해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그제(3일) 오전 10시 반, 서울 여의도 KBS홀 광장에서는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 사진전 개막식이 열렸다. 다소 쌀쌀한 날씨임에도 100여명의 참석자들이 모여 일제침략기에 민족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고군분투한 선열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되새겼다. 전시장 손병희 어록에는“우리가 만세를 부른다고 당장 독립이 되는 것은 아니오. 그러나 겨레의 가슴에 독립정신을 일깨워주기 위해 이번 기회에 꼭 만세를 불러야겠소.” - 1919년 2월 22일, 의암 손병희- 라는 글귀가 옷깃을 여미게 한다. 그런가 하면 남강 이승훈 선생 어록에는 “우리가 할 일은 민족의 역량을 기르는 일이지 남과 연결하여 남의 힘을 불러들이는 일이 아니다. 씨앗이 땅 속에 들어가 무거운 흙을 들치고 올라 올 때 제 힘으로 들치지 남의 힘으로 올라오는 것을 본 일이 없다.” 고 적혀있다. 이번 전시회의 특징은 황해도, 평안도, 충청도, 경상도, 경기도, 전라도, 강원도 등 나라 안과 하얼빈, 용정 등 중국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다 순국하거나 부상한 사람들, 투옥된 사람들과 집회수 등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각 지역별 현황판과 대표적인 독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3.1혁명 100돌 기념으로 천안역사문화연구회에서는 <아우내 4.1문화제>라는 주제로 뜻깊은 행사를 지난 3월 14일, 20일, 31일과 4월 1일에 걸쳐 모두 4회 실시했다. 그 가운데 특별히 의미 깊은 행사를 꼽는다면 3월 31일 아우내 읍내 천안동남구문화원 제2강의실에서 열린 기념강연회이다. 이날 강연회는 성공회 전해주 신부의 ‘김구응 열사와 성공회 진명학교’와 아우내 만세운동의 주모자인 김구응 의사의 손자인 김운식 씨의 ‘김구웅 선생의 아우내만세운동에서의 역할'이 중심이었다. 기자는 그동안 아우내 만세주동자이면서도 역사의 뒤안길에 비껴나 있던 김구응 의사와 그의 노모인 최정철 지사의 증손자인 김운식 선생을 여러번 만나 대담한 적이 있다. 31일 열린 기념강연회에 연사로 나섰던 김운식 선생과 어제(2일), 전화 대담으로 ‘김구응 선생의 아우내만세운동에서의 역할’과 함께 이날 함께 발표한 전해주 성공회 신부의 내용에 대해정리해보았다. “천안 만세운동의 주동자였던 김구응 의사(김운식 선생의 할아버지)의 기록은 역사학자 박은식 선생의 기록에 분명히 나옵니다. 임시정부 대통령을 지낸 백암 박은식 선생의 《한국독립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