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열자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리 많이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을 한 좋은 사람입니다. 그 책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양주 : 나는 천하를 다스리는 것을 손바닥 뒤집듯 쉽게 할 수 있소 양양 : 당신은 처첩도 제대로 거느리지 못하고 작은 밭조차 제대로 경작하지 못하면서 무 슨 말이요? 양주 : 아무리 어린 목동이라도 하더라도 양 치는 일은 임금보다 잘 할 수 있는 것이요. 호미와 쟁기의 쓰임이 다르듯이 사람도 됨됨이에 따라 쓰임새가 다른 법이라오 쟁기만 옳고 호미는 그르다는 주장은 옳지 않소. 참으로 큰 인물은 노는 물과 하는 역할이 남달라야 하는 법이라오.” 《장자》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오지요. 탄주지어 육처즉 불승루의 呑舟之魚 陸處則 不勝螻螘 "수레바퀴를 삼켜버릴 큰 짐승도 산에서 내려오면 그물에 걸리는 재앙을 피할 수 없고 배를 삼킬만한 큰 물고기도 휩쓸려 물을 잃으면 개미에게도 괴롭힘을 당할 수 있다." 이는 익숙한 거처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거대한 권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물러나면 사람들이 쉽게 보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또한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2,500여 년 전 손무와 손빈은 《손자병법》이란 책을 완성합니다. 그 글에는 ‘무소불비 무소불과(無所不備 無所不寡)’라는 말씀이 나오지요. "부족한 곳이 없도록 하려 한다면 부족하지 않은 곳이 없다."라는 말씀입니다. 쉽게 표현하면 모든 곳을 대비하면 모든 곳이 소홀해진다는 뜻입니다. 곧 한정된 군사를 모든 곳에 배치하면 각처마다 수가 적어져서 각개격파의 대상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운용상의 효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군사의 숫자는 예나 지금이나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리나 군사가 많다고 반드시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집중이 중요합니다. 적이 올 가능성이 가장 큰 곳에 군사력을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소수의 군사로 대군을 이기려면 ‘무소불비 무소불과’를 해야 합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문제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도 없지요. 어쩌면 한 사람이 가지는 일생의 행복과 불행의 총량은 모두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느 책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갖는 삶은 누구에게도 오지 않는다." 세상엔 부유하고 잘 나가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이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옛 어른들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자리에 있지 않고서는 그 일에 대해서 의논하지 않는다" 사람은 남의 입을 통해서 사실을 인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면 나의 주관이 아니라 남의 주관대로 세상을 살아가게 됩니다. 진실을 잘 알지 못하면서 떠벌리는 경우도 많지요. 임금을 섬길 때는 임금의 존경을 받아야지 임금의 총애를 받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임금의 신뢰를 받는 게 중요하지, 임금을 기쁘게 해주는 사람이 되는 것은 중요하지 않지요. 조석으로 가까이에서 임금을 모신다고 해서 존경받는 사람이 아니며, 시나 글을 잘하고 재주를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임금이 존경한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글씨를 잘 쓰는 사람도, 얼굴빛을 살펴 비위를 잘 맞추는 사람도 벼슬 버리기를 어려워하는 사람도, 차림새가 엄하지 못한 사람도, 권력자에게 이리저리 붙는 사람도 임금은 존경하지 않습니다. 경연에서 온화하게 말을 주고받고, 일을 처리할 때 비밀히 부탁하고, 임금이 마음속으로 믿고 의지하여 서신이 자주 오가고, 하사품이 자주 내려질지라도 그런 것을 총애나 영광으로 믿어서는 안 됩니다. 그럴 때 뭇사람들이 노여워하고 시기하게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요즘 산을 오르다 보면 가장 많이 보이는 짐승이 까마귀와 고양이입니다. 옛날에 토끼와 꿩이 많았던 것하고는 대조적이지요. 까마귀는 생김새와 울음소리, 식성 때문에 길조보다는 흉조로 알려진 새입니다. 그건 아마도 전쟁이 쓸고 간 계곡에 시신이 널브러져 있을 때 가장 먼저 달려드는 새가 까마귀이기 때문으로 추측합니다. 그리하여 전염병이 돌 때 까마귀가 울면 병이 널리 퍼진다고 하였고 길 떠날 때 까마귀가 울면 재수가 없다고 했지요. 또한, 귀에 매우 거슬리는 말을 할 때 ‘염병에 까마귀 소리를 듣지’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까마귀는 검습니다. 검은 것은 지저분하고 더럽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지요. 어머니는 어쩌다가 씻지 않은 날이면 '까마귀가 아저씨 하겠다.'라고 말씀하셨으니까요. 세종 때 이직이라는 사람은 '까마귀 검다 하고'란 시조를 씁니다. “까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쏘냐 겉 희고 속 검은 이는 너뿐인가 하노라.” 이는 체면문화로 겉치레하는 양반들을 꼬집은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까마귀의 깃털은 그냥 까만 게 아니라 보라색과 녹색이 섞인 검은색을 띠고 있고 까마귀는 까치, 앵무새와 함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올해를 검은 토끼라고 함은 60갑자에 그 기원이 있습니다. 계묘(癸卯)년의 계(癸)는 검은색을 묘는 토끼를 의미하기 때문이지요. 서양에서는 검은색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인종차별로 이어지기도 하지요. 블랙먼데이, 블랙리스트, 블랙박스, 블랙코미디... 블랙이 들어간 것 중 좋은 것이 없고, 화이트칼라, 화이트 라이, 화이트 하우스, 화이트 크리스마스…. 화이트가 들어간 것 가운데는 나쁜 것이 없습니다. 일종의 백색 우월주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하지만 동양은 조금 다릅니다. ‘현묘지도(玄妙之道)’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곧 그윽하고 현묘한 진리를 의미하는 성어입니다. 색은 각각의 명도를 갖고 있지만 명도를 낮게 하면 검은색으로 수렴한다는 것이지요. 곧 빨간색이라고 하더라도 아주 진한 빨간색은 묘한 검은 빛을 띠고 있습니다. 도라고 하는 것이 이처럼 그윽하고 깊어서 속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검은색은 인간의 지혜를 관장한다고 하지요. 예로부터 토끼는 약한 동물로 나오지만, 달에 사는 달토끼부터 지혜의 상징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다산과 성장, 풍요와 행운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귀가 길어 상대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노벨 문학상 수상자였던 장 폴 사르트르는 그의 저서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는 책에서 "인생은 B와 D사이에 있는 C이다."라는 말을 남깁니다. 곧 인생이란 Birth(탄생)와 Death(죽음) 사이의 Choice(선택)이라는 것이지요. 우린 태어나는 것에 대한 선택권을 갖지 못했습니다. 죽음에 대해서도 일부 안락사를 인정하는 국가가 있어도 대부분 선택권을 행사하지 못합니다. 물론 자살이라는 범죄 행위를 통하여 삶을 마감하는 사람이 있지만 결코 올바른 행동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삶 속에서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생은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값어치 있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니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 하는 순간순간의 판단이 참으로 중요하지요. 여행하다 보면 고즈넉한 공간에 마음에 드는 마을이 있습니다. 주변 경관과 어우러진 장소가 주는 행복이 작지 않지요. 마을 앞 느티나무 아래 설치된 오래된 벤치에 앉아 그동안 미뤄왔던 책장을 넘기는 것도 카페를 이곳저곳 다니면서 실내장식이 주는 안온함과 음악이 주는 정취에 빠져보는 것도 다 시간을 투자한 선택과 의지가 가져다준 행복입니다.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조선 시대 아마도 가장 무능했던 임금 가운데 선조가 뽑힐 것입니다. 그는 무려 41년이라는 긴 세월을 통치했던 임금이지요. 임진왜란을 겪으며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되고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 허덕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전쟁이 끝나고 발표한 공신 목록을 보면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선무공신은 18명인데 자신이 도망치기에 급급한 상황에서 그를 수행한 호성공신은 무려 86명이나 되었기 때문이지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운 의병장인 정인홍, 김면, 곽재우, 김천일, 고경명. 조헌 등은 공신 목록에서 빠졌고 의주로 피난 가는데 일조한 마부나 의관과 같은 미천하고 별 공로도 없는 사람들은 공신 책봉을 받습니다. 난리 통이라지만 백성을 버리고 야반도주한 것도 창피한 일인데 그 도주를 도운 사람들 86명에게 공신을 내려주다니…. 참으로 부끄러운 역사입니다. 그리고는 나라를 지킨 위대한 장군과 의병들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왜적을 평정한 것은 오로지 명나라 군대의 힘 덕분이었다. 조선의 장수들은 그저 중국 군대 뒤를 졸졸 따라다니거나, 혹은 요행히 잔적의 머리만 얻었을 뿐이다.” 이것이 목숨을 바쳐 싸운 전장의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평판이란 주위 사람들이 자신에 대하여 내리는 평가가 축적된 결과물입니다. 그러니 하루아침에 평판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주변에 몇몇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지요. 성실하고 배려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았을 때 오랜 세월에 걸쳐 드러나게 되는 것이 평판입니다. 그러니 사람에 대한 평판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 자신이 살아온 삶의 결과이니까요. 한비자는 사람을 다섯 가지 잣대로 잴 것을 권고합니다. 1. 누구와 만나고, 누구와 친한가? 2. 돈이 있을 때는 어디에 쓰는가? 3. 돈이 없을 때는 어떻게 행동하는가? 4. 위기에 처했을 때 어떠한 행동을 하는가? 5. 사람을 등용할 때 누구를 선택하는가? 친한 것을 따지는 것은 그 사람의 성향과 코드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대개 자신과 맞는 사람과 친하게 마련이지요.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씀도 있으니까요. 2, 3번은 돈의 문제입니다. 씀씀이로 그 사람이 어떤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지 가늠할 수 있어요. 곧 소비 성향에 그 사람의 가치체계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위기에서의 행동이 중요합니다. 사람은 위기가 닥치면 본성이 드러나기 마련입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작은 그릇 위에 큰 그릇을 포갤 수 없고 얕은 물에 큰 배를 띄울 수 없습니다. 무언가를 담아낸다고 하는 것은 이미 담기는 것보다 커다랗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탈무드에 못생긴 그릇 이야기가 나옵니다. 총명하지만 못생긴 랍비가 공주와 만납니다. 공주는 생김새를 비꼬아서 말하지요. "뛰어난 총명이 못생긴 그릇에 들어있군." 이 말을 들은 랍비가 묻습니다. "왕궁에 술이 있습니까? 그 술은 어떤 그릇에 들어있죠?" "그야 술 항아리에 들어 있지요." "왕궁에는 훌륭한 그릇이 많은데 보잘것없는 항아리를 쓰시다니…." 그 말에 공주는 술을 금 그릇으로 옮깁니다. 술은 곧 상해버리고 말았지요. 랍비는 말합니다. "대단히 귀중한 것이라도 싸구려 항아리에 넣어두는 것이 좋을 때가 있습니다." 담는 것과 담기는 것도 오묘합니다. 담기는 것은 담는 것의 모양에 따라 형태가 변화되지요. 또한 무엇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 그릇의 명칭이 바뀌기도 합니다. 물잔, 포도주잔, 커피잔, 찻잔…. 와인은 어디에 담아도 와인이고 커피는 어디에 담아도 커피일 텐데 우린 굳이 용도를 한정시켜 생각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담고 있는 생각과 마음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자연을 보면 새로 나온 새싹은 부드럽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다 자란 나무나 고사목은 딱딱하게 마련이지요. 새싹은 나날이 성장해가지만 고목은 나날이 인멸되어갑니다. 생명이 있으면 부드러운데 생명의 에너지가 빠져나가면 딱딱해집니다. 곧 부드러우면 살고 딱딱하면 죽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지요. 딱딱함은 자연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정관념, 고집, 집착, 오만, 편견 같은 것은 딱딱한 마음이고 이것에 굳어지면 나만 옳다고 여겨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게 됩니다. 소신은 생각하는 게 확실하다고 믿는 것이고 고집은 자기 의견이나 생각을 고치거나 바꾸지 않고 우기는 것입니다. 소신 있는 사람은 자기 믿음이나 생각의 근거가 빈약하거나 원칙에 어긋나면 고치려 노력하지만 고집 있는 사람은 한 번 마음 먹으면 옳든 그르든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어쩌면 소신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 가깝지만 고집은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악에 가깝습니다. 《대학(大學)》에 ‘수신제가(修身齊家)’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자신을 갈고닦은 이후에 집안을 잘 다스릴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수신은 고집과 아집을 버리고 성인의 자취를 따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