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잔잔히 흐르는 백마강의 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뚝 솟은 바위 절벽을 만나게 됩니다. 의자왕의 삼천궁녀가 꽃잎처럼 몸을 던졌다는 낙화암이지요. 의자왕은 백제 31대 임금입니다. 의자(義慈)의 뜻은 올바르고 자애롭다는 의미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고 형제들과 우애가 깊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의자왕은 무절제하고 방탕하며 무능한 왕으로 삼천궁녀를 거느렸다고 소문이 났을까요? 실제 백제는 궁녀 3,,000명을 거느릴만한 국력이 아니었습니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조선시대에도 궁녀는 500명을 넘지 못했으니까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처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정의이고 힘이니 처벌 할 수 없다는 표현이 옳겠지요. 만약에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정권을 잡지 못했다면 역사책에 단순히 '이성계의 난'이라고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역사에서 종묘사직과 더불어 목숨을 초개처럼 버린 임금이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신라의 경순왕은 나라를 통째로 왕건에게 바치고 그는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천수를 다하고 죽습니다. 고려의 마지막 왕은 공양왕이지요. 공양왕이라는 뜻도 공손하게 왕위를 양위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그루터기는 나무가 잘려나가고 땅에 박힌 뿌리만 남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루터기에는 나이테(연륜)가 드러나 있어 그 나무가 지나온 세월을 짐작할 수 있지요. 한때의 성장과 영화로움을 뒤로한 흔적의 역사일 수 있습니다. 쉘 실버스타인이 지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마지막은 이러합니다. 사랑하는 소년에게 열매와 나뭇가지 몸통까지 다 내어주고 그루터기가 된 사과나무는 이제 늙어 아무런 욕망도 남지 않은 소년이 찾아왔을 때 평평해진 몸통을 펴며 여기 앉아 편히 쉬라고... 그래서 나무는 행복했노라고... 그 사랑의 깊이가 너무 깊어서 눈시울이 붉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식물은 생명의 유연성을 자랑합니다. 동물에 비하여 이동의 자유가 없는 식물을 표현할 때 "식물인간", "식물국회" 등등으로 부정적인 표현을 동원하지만 실제로 유전자지도를 그리면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동물은 작은 상처에도 목숨을 잃기 쉬운 반면에 식물은 몸통이 통째로 잘려나가 그루터기만 남은 상태에서도 싹을 틔워 생을 이어가는 삶의 유연성이 있는 것도 장점이지요. 산을 오르다보면 톱으로 쓱쓱 베어간 흔적의 그루터기를 만납니다. 그루터기만 보고 살아있는 나무를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값비싼 작품이라고 해서 반드시 예술성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예술성이 뛰어나다고 해서 상품성이 높은 것도 아닙니다. 파리의 루브르박물관에서 가장 인파가 많이 몰리는 곳은 모나리자 앞입니다. 너무나 익숙하게 보아온 그림인데 진품을 접한다는 희열도 잠깐 그림의 크기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에 놀라고 사람에 떠밀려 제대로 된 감상은커녕 짧은 시간의 조우에 실망감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 그림의 우수성을 폄훼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경매장에서 판매되는 고가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그것이 정말 예술적으로 훌륭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화가의 명성이나 희소성 때문에 상품성만 높은 것은 아닌지 범인의 눈으로는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평생 저술 활동을 하고 그림을 그렸지만 살아생전 작가로서 명성을 얻지 못한 대가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예술성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이 진정한 대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니체는 훌륭한 작가였지만 작품 대부분을 백 권도 팔지 못한 경우가 허다했고 고흐는 살아서 예술 세계에서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사례는 너무나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렵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분들의 삶의 초점은 자본이 아니라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가끔 계곡을 따라 하산할 때가 있습니다. 산이 얼마나 많은 물을 품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하산 때 반드시 조금씩 수량이 늘어나는 시냇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돌돌돌 흐르는 물가에 서면 풋풋한 생명의 기운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어서 좋습니다. 중국 서부 지역엔 황량하고 거친 고비 사막이 있습니다. 그 고비 사막 한 가운데를 한줄기 강이 짙은 황토 빛으로 흐릅니다. 그리고 그 강 양쪽에 초록의 푸름이 두 줄기 선으로 길게 이어지지요. 강을 따라 나무가 자라고, 강을 따라 생명이 살아 숨 쉬고 강을 따라 도시와 마을이 형성됩니다. 우리나라는 여름과 겨울에 강우량이 현격한 차이를 보입니다. 여름엔 강물이 흐르다가 가을 이후 마르는 것을 건천이라고 합니다. 이 건천에는 물고기가 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주변엔 나무나 풀들이 우거질 수 없지요. 강은 홀로 흐르지 않습니다. 그 안에 온갖 생명을 보듬어 키우고 오염을 정화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나관중은 삼국지연의를 지으면서 첫 구절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오늘도 장강은 유유히 흐른다." 장강이란 양쯔강을 의미하는데요. 강처럼 역사도 유유히 흐른다는 말씀을 하고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청와대에 들어가면 잘 단장된 앞마당과 미동도 하지 않는 헌병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회의실 명칭이 위민일실(爲民一室), 위민2실.... 처럼 백성을 위한다는 뜻의 당호가 붙여있지요. 맹자는 ‘與民(여민)’이란 표현을 많이 하고 ‘爲民(위민)’이란 표현을 자제했습니다. 여민(與民)이란 백성과 더불어 한다는 뜻이고 위민(爲民)은 백성을 위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비슷하게 보이지만 깊이 들어가면 차이가 있습니다. 여민은 백성과 더불어 하는 것이니 임금과 백성 사이의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위민은 백성을 위하는 것이니 임금이 백성을 소유하는 것으로 자기 소유물에 대하여 시혜를 베푸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중국 고전을 보면 맹자처럼 백성을 위하는 통치철학을 내세운 철학자는 없습니다. 물론 공자가 간간히 백성을 논하긴 했지만 그것은 피 통치자로서의 백성일 뿐이지요. 법가 사상이나 한비자를 보면 백성은 통제의 대상일 뿐입니다. 하지만 맹자는 이야기합니다. 민위귀 사직차지 군위경(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이 그 다음이며 임금은 가장 가벼운 존재다.” 또한 임금이 잘못하는 경우에는 그 임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필라델피아의 ‘Sting Theory School’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Sting Theory School’은 과학(S)과 수학(M) 교육에 기술(T)과 공학(E)을 연계해 가르치는 융합교육방식을 잘 하는 학교입니다. 그 학교 화장실에 붙어있는 표지판이 저를 웃음 짓게 합니다. 70년대의 공중화장실을 기억하시는지요? 냄새나고 더럽고. 불편하고, 불결함의 상징이었던 공중화장실이 지금은 세계적으로 가장 깨끗한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화장실 문화를 배우러 오는 나라도 많으니까요. 일부 선진국을 돌아다녀 봐도 우리나라처럼 깨끗하고 정갈하며 위생적으로 우수한 시설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외국의 화장실에 붙어있는 표지판이 재미있습니다. 대부분은 ManㆍWoman, ladyㆍgentleman, ♂ㆍ♀을 사용하기도 하고 아래와 같은 그림을 쓰는 곳도 있습니다. 이런 그림들을 픽토그램(pictogram)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학교 화장실에 M과 W를 써 놓은 곳이 있었습니다. 물론 ManㆍWoman의 약자임을 직관적으로 알 수는 있었지만 글자의 생김새의 대비가 묘하게 대비되어 약간의 야한 생각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올 칠월엔 이사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지금 사는 집이 마음에 안 들어서가 아니라 둘만 살고 있는데 공간이 너무 넓다는 허허로움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평수를 줄여 이사를 하려고 하는데 살면서 20여 차례의 이사를 했지만 공간을 줄여가는 것은 처음이라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됩니다. 어쩌면 너무 많은 것을 갖고 있는 것을 좀 덜어낸다는 나름 무소유에 입각한 이사일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사는 18층 아파트, 같은 통로를 쓰는 36세대 가운데 유일하게 에어컨이 없는 집이 우리 집이었습니다. 예산 관계가 아니라 에어컨 바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장모님과 아내 덕분이지요. 물론 이들이 찬바람을 싫어하는 이면에는 경제적 이유가 들어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에어컨 없는 여름나기는 저에게 큰 고통임에는 틀림이 없었습니다. 마음 다부지게 먹고 올해 신형 에어컨을 놓았습니다. 문제는 그 에어컨을 켜보지도 못하고 새집으로 이사를 할 형편에 놓여있다는 것이지요. 새집은 매립 형으로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으니 집안 경제력만 낭비한 셈이 되었습니다. “더위 먹은 소 달만 봐도 헐떡인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소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올해 일본의 연호가 바뀌었습니다. 영화(令和, 레이와)가 그것입니다. 곧 올해(2019년)은 일본에서는 영화1년인 것입니다. 옛날에는 황제가 바뀌면 연호가 바뀌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대정, 소화, 명치라는 연호가 그러하고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썼던 중국 연호가 그러합니다. 우리나라는 광개토대왕 때 영락(永樂)이라는 연호를 고려 왕건 때 천수(天授)라는 연호를 끝으로 중국연호를 써 왔고 조선 말 대한제국을 세운 뒤 고종(高宗)의 광무(光武), 순종(純宗)의 융희(隆熙)를 끝으로 자주적 연호 사용은 끝이 납니다. 조선은 친명배청 정책을 써 왔습니다.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는 의종입니다. 그의 연호는 숭정(崇禎)이었지요. 임금이 300년을 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데 조선에서는 숭정연호를 300년 넘게 사용했으니 지독한 명나라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 결과는 병자호란으로 남한산성에서 인조의 항복으로 막을 내리게 되지요. 우리나라는 서기라는 연호를 씁니다. 우리 것이 아니지요. 우리는 단기(단군기원, 서기+2,333)라는 자주적인 연호를 갖고 있는데도 살려 쓰지 않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같은 연호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위 내용은 엘리엇이 황무지라는 시에서 읊조린 내용입니다. “일화즉사(日花即死)”란 말이 있는데 이는 하루 피고는 바로 떨어지는 꽃을 의미합니다. 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양귀비라고 합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텃밭 쑥갓 밭에 양귀비를 몇 뿌리 심으셨습니다. 쑥갓과 양귀비의 생김새가 비슷하여 발각될 염려가 적었기 때문이지요. 물론 양귀비는 모르핀이라는 마약 성분의 주원료이지만 의료시설이 변변치 않았던 시절에는 가정상비약으로 양귀비만 한 것이 없었습니다. 특히 배앓이에는 특효였던 것으로 기억하니까요. 가끔 양귀비꽃을 보았는데.. 참으로 예뻤습니다. 문제는 하루만 지나면 꽃이 지는 일화즉사의 꽃이라는 것이지요. 그 짧은 생의 붉음이 꽃의 아름다움을 배가시켰는지 모를 일입니다. 지금 교정에 목련이 막 꽃망울을 터뜨리려 하고 있습니다. 봄의 순결 목련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벅차고 숨이 가빠옵니다. 참으로 멋진 봄날의 한 장면이 결코 가볍지 않은 이유이지요. 문제는 그 목련이 그리 오랜 감상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올해는 평년보다 열흘 정도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그릇은 인류 문화와 그 궤를 같이합니다. 아마도 인류가 처음으로 만들어 쓴 그릇은 나뭇잎 이었을 것이고 그것이 목기로 연결된 것이 아닐까합니다. 비교적 널리 분포하고 작업이 쉽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목기는 썩어 없어져 옛 모습을 추측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그릇이 썩지 않는 토기가 주류를 이루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때는 바가지를 그릇으로 쓰기도 했고 플라스틱이나 놋으로 주발을 만들어 쓰기도 했습니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면서도 아름다우며 현재에도 실용품으로 예술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청자와 백자와 같은 도기입니다. 대부분의 그릇이 음식을 담거나 보관하는 용도라면 또 다른 그릇 옹기는 숨을 쉬기 때문에 음식을 숙성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옹기는 거칠고 투박하지만 기품이 있고 실용적이면서도 예술성이 짙게 배어 있습니다. 그냥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진흙이 옹기장이가 손으로 주무르고, 내려치고, 빙빙 돌리고, 쓰다듬고, 어루만지는 과정을 통해 형태를 갖추어 갑니다. 그리고 1,200도가 넘는 가마에서 구워져 옹기로 탄생하는 것이지요. 옹기장이의 수고와 펄펄 끓는 가마에서의 연단이 없다면 옹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