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김 삿갓이 아름다운 금강산을 보고 지은 시가 사람들의 칭송을 받는다;
一步二步三步立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가다 멈추고 보니
山靑石白間間花 푸른 산, 하얀 돌 사이에 곳곳에 꽃이 천지구나
若使畵工模此景 만약 화공을 불러 이 경치를 그리게 한다면
其於林下鳥聲何 나무 사이에 들리는 새소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김홍도의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 선비가 버드나무 위 노란 꾀꼬리를 올려다 보다. ⓒ 간송미술관 소장](http://www.koya-culture.com/data/photos/20240418/art_17144619907814_0a7184.jpg)
조선 후기 최고의 화가인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가 이 물음에 답을 그림으로 내었다. '말 위에서 꾀꼬리 소리를 듣다'라는 그림이다. 금방 꾀꼬리 소리를 듣고는 고삐를 당기고 꾀꼬리 소리를 확인하러 고개를 돌려 쳐다본다. 아 그 나뭇가지에 자그만 꾀꼬리가 있구나. 이렇게 꾀꼬리 소리가 그림 속에 영구히 잡혀 있다.
![안중식의 <성재수간>, 종이에 수묵 담채, 개인소장](http://www.koya-culture.com/data/photos/20240418/art_17144619914407_45da65.jpg)
가야금의 명인이신 황병기(1936~2018) 님은 젊을 때 인사동 고미술 전시회에서 한 선비가 집 뒤 수풀 속에서 들리는 새소리를 듣고는 확인하려 고개를 돌리고 있는 그림을 보고 빠져들었다. 심전 안중식(1861~1919)의 <성재수간(聲在樹間)>이란 그림이었다. 황병기님은 그 그림의 느낌을 가야금 곡으로 작곡해 내고는 '밤의 소리'라는 이름으로 발표해 가야금 음악의 전설이 되고 있다. 그것으로 새소리가 이번엔 음악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소수서원>, 이동춘](http://www.koya-culture.com/data/photos/20240418/art_17144619918777_698b1a.jpg)
근세 이후 외세의 침략과 국권상실, 서양 문명의 홍수 속에서 다행인 것은 우리의 전통건축이 그나마 조금은 살아남아 있다는 것이다. 근래 궁궐이나 절, 서원, 혹은 전통 한옥마을에 가보면 우리가 살던 공간으로서의 전통건축의 멋을 느끼고 그 속에 빠져들게 된다. 이 한옥의 멋은 무엇일까? 무엇이 우리를 빠져들게 하는가?
나무와 흙으로 된 자연친화적인 재료에 의한 편안한 느낌, 구들과 온돌에 의한 정감있는 따뜻함, 집안의 한가운데에 뚤려 있는 대청공간을 휘감고 돌아 흐르는 바람과 공기의 절묘한 시원함. 집을 떠받치는 기둥들의 자연스러운 기운과 곡선에 의한 친밀감... 뭐 이런 것들을 사람들이 말하지만, 나는 이 한옥의 매력은 거기에 시간이 담겨있다는 점이라 생각한다. 곧 한옥에는 우리 조상들이 살아온 시간, 삶에 대한 철학, 나무와 흙이 우리와 함께해 온 시간, 이런 재료들이 만드는 공간의 비균제성, 비정제성의 안도감과 해방감... 이런 시간이 만들어주는 특징들이 우리 한옥의 매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후조당>, 이동춘](http://www.koya-culture.com/data/photos/20240418/art_17144619920973_ceb464.jpg)
![<포항 분옥정> 이동춘](http://www.koya-culture.com/data/photos/20240418/art_1714461992317_98a8c1.jpg)
![<병산서원 향사>, 이동춘](http://www.koya-culture.com/data/photos/20240418/art_17144619925317_e762d0.jpg)
그동안 한옥들을 다니고 들어가 앉아보고 하면서만 느껴지는 이 비밀은, 다만 그 장소를 떠나면 곧 멀어진다. 또 전국에 흩어져 있으니 일부터 가보지 않고서는 느껴볼 수가 없다. 그래서 사진이 필요한 것인데 한옥의 비밀을 담은 멋진 사진들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갈증이 늘 있었다. 마치 시인들이 아름다운 새소리를 시(詩)에 어떻게 담고, 새 소리를 그림과 음악에 어떻게 담아내는가를 고민하는 것처럼 그 해답을 낱낱의 한옥 사진 속에서 찾아내지 못해서 아쉬웠던 것이다.
![<이동춘 사진전> 모습, 류가헌 2024.5.12까지](http://www.koya-culture.com/data/photos/20240418/art_17144619927377_467887.jpg)
![이동춘 작가](http://www.koya-culture.com/data/photos/20240418/art_17144619929576_8329e1.jpg)
그런데 그런 사람이 가까이 있었음을 뒤늦게 발견하게 되었다. 지난 주말 서울 청운동에 있는 류가헌이란 사진 전문 갤러리에서였다. 이동춘이란 사진작가는 한옥 사진만으로 전시를 열고 있었다. <덤벙주초 위에 세운 집>이란 제목의 사진전이다. 우리 한옥들이 덤벙덤벙 주초를 놓았기에 그 주초 위에 세운 집이라는 뜻인데, 다듬지 않은 비정형의 주춧돌 위에 편한 모양새로 만들어진 서원이나 향교, 또는 민가를 보여주는 사진들이다. 이분이 오랫동안 고택과 종가, 서원 등 우리 문화의 옛 원형을 기록해 온 한옥사진가고 그가 지금까지 20년 넘게 작업을 했다고 하는데 나만 모르다가 이제서야 알게된다.
그동안 한옥 사진을 하신 사진가들도 많았지만 내가 이분의 사진에 꽂히게 된 것은 앞에서 말한 대로 그의 사진 속에 시간이 살아서 숨쉬고 있음을 발견한 때문이다. 아주 조용히, 담담히, 다소곳이, 부끄러운 듯, 살포시... 등등 조상의 숨소리와 숨결처럼 부드러움을 표현하는 우리 말 형용사들이 이 사진 속에 담겨 있었다. 그야말로 우리와 우리의 조상들이 가꿔온 시간들이 작가의 렌즈에 의해 포로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쓰는 우주(宇宙)라는 말은 물론 한자어에서 온 것이지만 우(宇)나 주(宙)나 모두 훈, 곧 그 뜻을 집이라고 한다. 곧 우주는 우리가 사는 이 아득하고 끝없는 집을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宇는 공간을 의미하고 宙는 시간을 의미한다고 한다. 곧 우주는 아득한 공간과 시간을 뜻하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동춘 님의 사진에는 집이 있는 공간이 바탕이지만 그 속에 시간을 다 담아놓고 있기에 그야말로 집에 관한 한편 한편의 완전한 우주인 것이다. 그런 시간이 담겨있는 충만함이 이 사진들을 보는 기쁨이자 즐거움이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보다 이러한 시간의 의미가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떤 연유에서일까? 그 비밀은 한옥이 좋아서 한옥에 10년 넘게 살면서 거기서 보고 느끼고 다가오는 한옥 자신의 말을 직접 들었기 때문이리라. 퇴계와 학봉 서애 등 종가가 많은, 그래서 전통을 지키는 고집스러운 동네 안동에 내려가 살면서 종택이네 종손이네 전통이네 법도네 하는 이 분위기를 체험하면서 사람들의 삶과 죽음과 장례와 제사까지도 함께 했기에 단순히 집만이 아니라 집 속에 담겨 있는 사람들의 역사와 숨결과 정신을 충분히 느끼고 그것을 렌즈로 낱낱이 포착했던 것이다.
처음 안동 오래된 작은 한옥의 존재에 안도하고, 한옥의 과학성과 선조들의 지혜에 감탄하고, 더 많은 다양성을 기록하기 위해 전국을 오가는 사이 이십 년 세월이 흘렀다. 한옥을 촬영하러 다니던 초기에, 안동포로 곱게 지은 도포 안에 두루마기를 입고 한복 바지 위에 대님을 매고 행전을 차고 도포 띠를 하고 갓을 쓴 어르신들이 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15세기의 유교 사회가 그대로 재현된 모습에서, 집과 그 집의 문화를 지키는 주인의 마음을 엿 볼 수 있었다. 진정성 어린 기록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그때 했고, 여전히 그 다짐은 유효하다. ... ‘이동춘의 전시회 서문’
![<학암고택>, 이동춘](http://www.koya-culture.com/data/photos/20240418/art_1714461993567_1d58e8.jpg)
자연과 나의 경계를 물으며 그 속에서 학문의 의미를 탐구하는 병산서원의 만대루, 들창을 열어젖히고 자연의 숨결과 이치를 받아드리는 후조당, 기둥에서부터 서까래까지가 더 덤벙스러운 학암고택, 거기에 공간을 연결하는 문고리와 삶을 이어주는 도구들이 모두 별개가 아니라 한옥 그 자체다. 그러기에 여기에 사람들의 시간이 담겨 있는 것이리라.
![<후조당>, 이동춘](http://www.koya-culture.com/data/photos/20240418/art_17144625336684_dcd7b4.jpg)
![<병산서원 만대루>, 이동춘](http://www.koya-culture.com/data/photos/20240418/art_1714461994199_c9ac88.jpg)
![이동춘의 사진집](http://www.koya-culture.com/data/photos/20240418/art_17144619944135_d16caf.jpg)
어느덧 그의 작업들은 사진집을 통해, 사진전을 통해 나라 밖에서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책으로 만들어 곧 나라 밖에 소개된다고 한다. 한국인이 살아온 집을 통해 한국의 아름다움과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세계에 보여주는 전도사가 되고 싶다고 한다. 오는 12일까지 이어지는 이동춘님의 사진전을 몇 분이라도 보시며 혹 필자의 이런 제멋대로의 해설을 검증해 보면 어떨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동식
전 KBS 해설위원실장
현 우리문화신문 편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