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최미현 기자] 위도띠뱃놀이는 마을의 평안과 풍어를 기원하는 굿으로, 부안군 위도면 대리 마을에서 매년 1월초에 열린다. 띠뱃놀이는 바닷가에서 용왕굿을 할 때 띠배를 띄워보내기 때문에 띠뱃놀이라 부르게 되었고, 소원을 빌기 위해 세운 집인 원당에서 굿을 하기 때문에 원당제라고도 한다. 띠배는 띠풀과 짚, 싸리나무 등을 함께 엮어 길이 3m, 폭 2m 정도의 크기로 만드는데 안에는 각종 제물과 함께 7개의 허수아비, 돗대, 닻을 만들어 달아 배형태를 갖춘다. 놀이는 수호신을 모신 원당에 올라가 제물을 차리고 굿을 한 후 마을로 내려와 마을의 산을 돌고 바닷가에서 용왕굿을 함으로써, 굿의 공간이 산과 마을, 바다로 이어진다. 굿은 집안 대대로 내려온 무당이 하며, 성주굿, 산신굿, 손님굿, 지신굿, 서낭굿 1(원당본당서낭), 서낭굿 2(애기씨서낭), 서낭굿 3(장군서낭), 깃굿, 문지기굿으로 진행된다. 뱃노래와 술, 춤이 함께 하는 마을의 향토축제로 고기를 많이 잡고 안전을 기원하는 어민들의 신앙심이 담겨져 있다. 자료:문화재청
[한국문화신문 = 최미현 기자] 허전(1797~1886)은 조선조 말의 문신으로,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이로(而老)이고 호는 성재(性齋)이다. 1828년(순조28) 상시(庠試)에 합격하고, 1835년(헌종1) 39세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숭릉별감(崇陵別監)이 되었다. 전적, 지평, 이조좌랑을 거쳐 1847년 함평현감(咸平縣監)으로 나갔는데, 형률로써 백성들을 다스리지 않겠다고 하면서 형벌 기구를 모두 없앴으며, 효도, 공경, 친목의 도리로 깨우쳤다고 한다. 그러나 안찰사와의 불화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1850년에는 교리를 거쳐 수찬이 되었을 때 대사간 조하망(趙夏望, 1682-1747)의 관작추삭에 반대하다가 맹산에 유배되었으나, 중도에 풀려났다. 철종의 명을 받아『사의(士儀)』라는 예기(禮記)를 편수하였다. 그가 저술한『사의』는 조선말 근기(近畿) 실학파의 참신한 학풍을 바탕으로 역대의 예론을 면밀히 검토하여 편찬한 저술인데, 주자의 가례를 보완하고 주석하는데 몰두했던 종래의 예학 풍조에서 벗어나 예제를 강구하는데 있어 합당성과 실용성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1864년(고종1)에는 우부령이 되고, 이어 김해부사가 되어 향약(鄕約)을 강론했다.
[한국문화신문 = 최미현 기자] 서울시는 지난 해 추진한 정책 중 주요 사업 100개를 엮어「2014 서울백서」를 제작해 발간했다고 29일(금) 밝혔다. 서울시는 지난 2007년부터 매년 정기적으로 한 해 동안 추진한 주요정책의 추진과정과 이를 통한 서울시의 변화상을 정리한 시정백서를 발간하고 있다. 「2014 서울백서」는 안전한 도시, 따뜻한 도시, 꿈꾸는 도시, 숨쉬는 도시, 열린 도시 5개 분야의 대표 정책 100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백서의 도입부에서는 서울시민의 삶을 바꾼 생활지표를 통해 서울시 정책이 서울시민의 삶을 어떻게 바꿨는지 인포그램을 통해 보여주고, 한 눈에 보는 서울시 정책지도에서는 향후 서울시 정책을 지도에 표시하여 한눈에 보여주고자 했다. 올해는 특히, 시민이 뽑은 2014년 서울시 10대 뉴스를 통해 2014년 서울시민이 가장 공감한 정책들을 소개했다. 기존 건물과 공공건물을 활용하고 시민과 기업의 협조를 얻어 추진한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사업, 차가 사라진 거리에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리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신촌 대중교통전용지구 조성사업, 복지사각지대에서 비극적인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찾아가는 더함복지 상담사 사
[한국문화신문 = 최미현 기자] 원각사의 창건 내력을 적은 비로, 조선 성종 2년(1471)에 건립되었다. 원각사는 탑골공원 자리에 있던 절로 조선시대 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조계종의 본절로 세웠다. 조계종이 없어지자 관아로 사용되다가 세조가 간경도감에서『원각경 (圓覺經)』을 번역하고, 회암사 사리탑에서 사리를 나누어온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곳에 다시 원각사를 짓고 10층 사리탑을 세웠다. 비는 머릿돌을 따로 얹지 않고 비몸돌 위를 두 마리의 용이 감싸듯 표현되어 있어 복고적인 형식을 따르고 있다. 비를 지고 있는 돌거북은 둔중한 몸체로 머리는 목을 표현하지 않고 앞으로 나와 있다. 등무늬는 육각형이 아닌 사다리꼴 평행세선을 새겼으며, 등 중앙에는 연잎조각을, 꼬리와 다리에는 물고기 비늘을 조각해 놓아 조선시대 조각미의 독특한 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비몸돌 위로는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를 드는 두 마리의 용이 조각되었으며, 조각 아래의 가운데에는 대원각사지비 (大圓覺寺之碑)라는 비의 이름이 강희맹의 글씨로 새겨져 있다. 비문은 당대 명신들이 짓고 썼는데, 앞면의 비문은 김수온, 성임, 뒷면의 추기는 서거정, 정난종이 각각 짓
[한국문화신문 = 최미현 기자] 전통자기도공은 전통적인 기법으로 자기를 만드는 사람 또는 기술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신석기부터 흙으로 토기를 만들어 사용했으며, 10세기 초에는 중국 당나라의 도자기 기술을 받아들여 상감청자를 만들게 되었다. 그 후 몽고의 침입으로 청자 제작기법은 쇠퇴하고, 조선 전기에 분청사기와 조선백자의 제작이 활발해졌다. 그러나 임진왜란(1592)을 거치면서 가마가 파괴되고 많은 도공들이 일본에 끌려가면서 도자기술이 쇠퇴하기에 이르렀는데, 다행히도 광주관요(官窯)가 유일하게 남게되어 조선백자를 중심으로 하는 큰 줄기를 이루게 되었다. 전통자기의 제작과정은 제토(製土)성형(成形)조각(彫刻)시유(施釉)소성(燒成) 등의 과정을 거친다. 제토과정은 돌을 깨뜨려 가루로 만든 뒤 흙을 풀어서 섞은 후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수비과정을 거친 다음 바탕흙(태토)을 짓이긴다. 짓이긴 흙을 물레에 올려 물건의 형태를 만들고, 성형이 끝나면 말려서 칼로 문양을 새긴다. 이어 초벌구이를 하고 유약을 바른 뒤 재벌구이를 마치면 작품완성이다. 제작용구는 물레방망이지래박수레물가죽쇠홀태목홀태전칼 등이 쓰인다. 전통자기도공은 한국의 미를 표현하는 전통공예기술로서
[한국문화신문 = 최미현 기자] 선구마을에서 해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날에 아랫마을을 남편으로 윗마을을 북편으로 나누어 시작되는 줄끗기는 세시풍속이며 이 지방의 민속놀이이다. 정월 대보름이 되기 며칠 전부터 각 집에서 고를 만들 짚을 모으고 어린이들은 다른 데서 훔쳐오기도 한다. 대보름날이 되면 아랫 당산에서 먼저 당산제를 지낸다. 이것은 반농 반어촌인 선구마을에 한 해 동안 풍농과 풍어를 빌며 해난사고의 방지, 마을의 번영을 기원하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선구줄끗기 역시 완전히 없어졌다. 하지만 선구줄끗기를 복원하려는 움직임은 해방 직후부터 시작됐다. 이 마을에 사는 향토문화연구가 김찬중씨의 노력으로 중단된 민속놀이가 재현되었고 현재에는 선구줄끗기보존회에서 계승하면서 벚꽃축제 때는 관광객들에게 선보이기도 한다. 선구 줄끗기는 당산제-어불림-필승고축-고싸움-줄끗기-달집태우기 순서로 진행된다. 선구줄끗기에 사용하는 줄은 1개의 고에 문어발처럼 된 네 가닥의 작을 줄을 매달아 만든다. 줄끗기 전에 고싸움을 하여 그 결과에 따라 이기는 편이 숫고가 된다. 숫고가 되면 줄끗기 승부에서 이길 확률이 많기 때문에 숫고가 되기 위하여 힘을 다하여 싸운다. 암고,
[한국문화신문 = 최미현 기자] 문화체육관광부(장관 김종덕)는 광복 70년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높이고 광복의 의미에 대해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광복 70년 기념 공감포토(photo.korea.kr)사진 공모전 100년 공감 대한민국을 5월 22일(금)부터 7월 10일(금)까지 연다. 이번 공모전은 광복 70년을 계기로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의 여정을 옛 사진을 통해 기억하고, 그 연속선상의 현재를 다시 사진으로 기록해봄으로써 희망적인 미래를 이야기하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공모 분야는 크게 ▲대한민국의 미래를 일구는 사람들, 희망의 현장을 담다와 ▲역사의 흔적, 우리의 삶이 담긴 옛날 사진을 찾습니다 등, 두 가지로 나뉜다. 이 두 가지 주제는 광복 70년의 주제어인 위대한 여정 새로운 도약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일구는 사람들, 희망의 현장을 담다는,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현장의 사진과, 미래를 여는 주인공들의 사진을 공모 대상으로 한다. 산업현장의 근로자, 나눔과 봉사의 현장, 사회를 위해 자기의 소임을 다하는 사람들의 모습 등 대한민국 미래의 희망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사진을
[한국문화신문= 최미현 기자] 과하주는 수백 년 내려온 김천의 유명한 술이다. 찹쌀과 누룩을 원료로 하며, 김천시 남산동에 있는 과하천(過夏泉)의 물을 사용한다. 이 샘물로 술을 빚으면 술맛이 좋고 여름이 지나도 술맛이 변하지 않는다고 하여 과하주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다른 지방사람이 이곳에 와서 과하주 빚는 방법을 배워가서 똑같은 방법으로 아무리 빚어봐도 과하주의 맛과 향기가 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물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라고『금릉승감』에 적혀있다. 찹쌀과 누룩가루를 같은 양으로 섞어 떡을 만들고 물을 넣지않고 독에 밀봉하여 저온으로 13개월 발효시켜서 만든다. 이렇게 해서 빚은 과하주는 알코올 1314도 정도로 독특한 향기가 있고 맛이 좋다. 과하주는 일제시대까지 큰도가(김천주조회사)에서 빚었는데 한때 중단되었다가 광복 후 재개되고 다시 한국전쟁으로 자취를 감추었다가 1984년 송재성씨가 시험양조 끝에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해 김천 명주(名酒)의 맥을 이었다. 1999년 송재성씨가 사망하여 현재는 기능보유자가 없다. 자료: 문화재청
[한국문화신문 = 최미현 기자]서울시 중부공원녹지사업소는 5월 16일(토)부터 마가스님과 남산공원 한남자락 남측소나무탐방로에서 행복 명상 걷기 행사를 한다고 밝혔다. 행사는 5월 16일(토)~30일(토) 매주 토요일 오전 8~10시 남산 한남자락 유아숲체험장 앞(하얏트호텔 맞은편)에서 집결한다. 한남자락 남측 소나무탐방로는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자연을 벗삼아 명상을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피톤치드 가득한 남측소나무탐방로를 지나 도롱뇽, 산개구리 올챙이가 뛰노는 소생물권서식지를 지나 남산 도서관쪽으로 향하는 코스로 진행된다. 명상 걷기 행사는 동국대학교 명상 걷기 멘토로 유명한 마가스님이 함께 한다. 몸과 마음을 모두 남산의 숲길에 가볍게 내려놓고, 자연에서 평화와 행복감을 얻을 수 있도록 인도한다. 행사 당일 유아숲체험장 앞에서 아리수와 남산 지도, 자연물로 만든 메타세쿼이아 팔찌를 무상으로 증정한다. 남산 행복 명상걷기 행사는 무료로 진행되며, 현장접수와 서울의 산과 공원 홈페이지에서 온라인 접수(http://parks.seoul.go.kr)하면 된다. 중부공원녹지사업소장(이용태 소장)은 행복 명상 걷기
[한국문화신문 = 최미현 기자] 징은 타악기의 하나로 금정(金鉦) 또는 단순히 금(金)이라고도 한다. 중국 고대로부터 널리 쓰여 온 악기로 우리나라에는 고려 공민왕(재위 13511374) 때 중국 명나라로부터 들여와 군대의 악기로 사용했고, 또 종묘악무악법악농악에도 널리 사용하였다. 징은 구리 160, 상납 43의 무게비율로 녹여 만드는데 대정, 가질대정, 앞매꾼, 전매꾼, 센매꾼, 풀무꾼이 한 조가 되어 제작을 한다. 제작과정은 놋쇠녹임, 늘품질, 도둠질, 냄질, 싸개질, 달금질, 울음잡기, 가질, 재울음의 순인데 재울음은 망치질 한번으로도 완전히 다른 소리가 나는 예민한 작업이다. 징의 생명은 소리에 있다. 지방에 따라 왕왕거리는 소리, 굽이치는 소리, 길게 울리는 소리, 끝이 올라가는 소리 등 다양하다. 제대로 된 징의 소리는 깊고 긴 여운이 있으며 가슴깊이 파고드는 호소력이 있는데 김천 징의 소리가 바로 이런 특징을 갖는다. 징장 기능보유자인 김일웅 씨는 4대째 함양에서 징을 만들어온 외조부 밑에서 기술을 익힌 후 김천 황금동 약물내기에 농악기 공장을 차려 지금까지 40여 년간 황소울음을 내는 듯한 김천 징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