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게 붙을까?? 하면서 붙여보는 돌들!! ▲ 정성을 다하여 붙여보면.... 붙겠지...!!! ▲ 왜 이리 안붙나 !!! ▲ 드디어 붙었다.!!!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새해를 맞이하여 올해의 운수를 미리 점쳐보는 마음으로 깎아지른 암반 위에 정성으로 붙여보는 돌맹이들..!!! 그냥 붙을 수 없을 것같은 90도 가까운 암벽 옆에 한해의 소원을 빌면서 붙여보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남들이 붙여놓은 돌 옆 빈공간에 자신의 돌을 붙이면서 정성을 들요보지만, 붙여놓고 돌아서면 또 떨어지니간단한 듯 하면서도 쉽지가 않다. 그래서사람들은 이리 저리 위치를 바꾸어가면서 돌을 붙여본다. 그러면서 나름대로 어딘가 암반의 턱이 있는 듯한 곳을 찾아 걸어보고 걸린듯 하면 슬며시 손을 떼지만 쉽게 붙이지 못하고 한참을 시름하다 천신만고 끝에 넓적한 돌하나를 붙여놓고 큰 염원이라도 이룬듯 의기양양하게 웃으면서 산을 내려온다. 작은 돌맹이 하나이지만, 깎아지른 암반위에 붙이는 것은 쉽지가 않고, 어렵게 붙인 돌맹이 하나에도 정성이 깃들여야 붙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깨달음으로 붙이고 돌아서는 마음이 자못 흡족한 모습이다. 작은 성공이지만, 그 작
▲ 의상대를 배경으로 떠오르는 해돋이 ▲ 의상대사가 관세음보살을 만났다는 홍련암, 모두가 관세음보살을 만나서 소원성취하시길...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또 희망을 품고 새해를 맞이한다. 지난 해는 세계적으로도 많은 전란과 테러로 얼룩도 졌지만, 한국의 육해공으로도많고도 많은 재난이 있었기에 이제는 그런 어려움을 떨치고 국운이 융성하는 새로운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해본다. 역사적으로 보면 을미년은 그리 수월한 해가 아니었다. 근세 구한말에는 일제의 침략야욕에 스스로 중국의 제후국에서벗어나고자 선언했던 대한제국을 건국했으나,호시탐탐 남의 나라를 침약하여 제 속국으로 만들려는 제국주의에 시대를 맞이하여, 힘이 없는 대한제국은 국난의 연속 속에 살아야 했다. 일본의 앞잡이들은 갖가지 위협과 회유를 하면서 살고자 발버둥치는대한제국 황실을 제집 드나들듯 국정을 농락하였고, 미리 충분히 훈련한 사무라이들을 동원하여 대한제국의궁궐 수비대를처치하고 구중궁궐 경복궁 건청궁의 황후 침소까지 들어가 황후까지 시해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 바로 120년 전 을미년의 일이었다. 나라가 망해 가는 절망의 시대에 일제에 빌붙어 호의호식하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러나 그 시대를
▲ 흥국사 약사전 앞 연등 ▲ 북한산이 연꽃처럼 보이는 흥국사에서 ▲ 흥국사 약사전 앞 연등 ▲ 흥국사 경내 탑과 연등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서울의 서북쪽에 자리한 고양시 흥국사는 13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사찰이다. 경내는 그리 크지 않으나, 고양시에서는 그나마 정연한 격식을 갖춘 사찰로 흥국사에는 약사전을 비롯한 극락전 지장전 나한전 삼성각등의 전각과 종루 요사채를 갖춘사찰로 고양시가 신도시로 커지면서 고양시와 서울 서북부에 사는 불자들과 시민들이 많이 찾는 고찰이다. 그런데 추운 겨울 사찰의 경내에 뜻밖에 연등이 걸려 있었다. 사찰의 연등은 주로 석가탄신일인 4월 초파일에만 걸리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때로는 음력 12월 8일을 기념해서도 연등이 걸린다고 한다. 12월이 다가는 이 추운 겨울에 걸린 연등은 다름아닌 부처님의 성도일을 기념하기 위함이다. '성도일'이란 부처님이 6년의 고행을 거친 후 보리수 아래에서 부처가 된 날을 뜻하는데, 이로써 부처님은 자신이 생사를 걸고 수행하며 찾던 그리도 갈구하던 도를 이루었고, 그 이룩한 도를 중생들에게 펼쳐보이겠다고 나섰기에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성도일을 큰 명절로 여기는 것이다. 성도일을 맞이하여 연
▲ 목어를 배경으로 마루에 걸터앉은 사람들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한국의 절에 가면 이제웬만한 곳이면 대부분 목어(나무 물고기)가 걸려 있다. 목어는 통나무의 속을 파내고 앞부분은 마치 용의 형상으로 머리를 만들고 몸통과 꼬리는 물고기 비늘과 꼬리를 형상화하여 만든 물건이다. 보통 목어는 범종 북 운판과 함께 범종각에 만들어 거는 것이나, 파주 보광사에는 대웅전 앞 누각건물의 처마밑에 걸려있어 이채롭다. 목어는 뱃속을 파낸 곳에 목탁을 치는 막대기로 안에서 두들겨서 소리를 낸다. 이처럼 목어를 치는 것은 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스님들이나 신도들에게 말로 하지 않고도 하고자 하는 바를 알리는 신호로 사용한다. 함께 모여 일을 한다든지, 공양(식사하는 일)을 할 시간이니 오란다든지, 중요한 회의가 있으니 모이라는 등의 일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신호로 알리는 것이다. 목어는 목탁과 같은 용도로 사용할 수 있으나, 들고 다닐 수는 없고 높이 매달아놓고 필요시에는 안쪽에서 막대기로 앞뒤로 두들겨서 소리를 내는 악기의 역할을 하는 물건으로 불전 4물의 하나이다. 목어를 만들게된 연유는 다음과 같다. 옛날 한 승려가 스승의 가르침을 어기고 옳
▲ 추사고택 솟을 대문 ▲ 솟을 대문에서 본 추사고택 사랑채 ▲ 안채와 뒤에 있는 추사선생 영당 ▲ 추사선생 영당 ▲ 사랑 마당에서 본 사랑채와 솟을대문 ▲ 사랑채에서 본 안채 ▲ 안채의 중정 ▲ 안채에서 본 고택의 담장 ▲ 밖에서 본 추사고택 ▲ 추사선생의 무덤 ▲ 추사선생의 기념관 앞에 있는 동상 ▲ 추사의 마지막 글씨 봉은사 대장경 '판전' ▲ 눈 속에서 더 푸른 소나무 세한도를 보는 듯하다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눈쌓인 추사 고택(충남 예산군 신암면 추사고택로 261)을 다녀 왔다. 어언 추사 선생이 가신지 올해로 158년째다. 하지만 충남예산에 있는 그의 고택에 들어서면 언제나 선생의 인품을 느끼게 된다. 추사 김정희(1786-1856) 선생은 조선 후기에독특한 글자체를 남겼을뿐 아니라 사실에 근거를 두고 학문을 하는 실사구시학을 바탕으로 조선은 물론 청나라와 일본에까지 명성을 두루 날렸던 학자다. 당시 학자들은 학문을 사실에 바탕을 두고 연구하기 보다는 스승에게 물려받은 이론만을 금과 옥조로 여기는 풍토가 컸고 스승의 가르침과 다르면 거부하는 학통이 만연했다. 하지만 추사는 24세에 아버지 김노경
▲ 종각과 함께보는 해수관세음보살상 ▲ 설악산이 병풍처럼 두른 해수관세음보살상 ▲ 하늘을 향해 본 해수관세음보살상 ▲ 소나무와 함께 본 해수관세음보살상 ▲ 밤에 보는 해수관세음보살상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양양 낙산사에는 다양한 모습의 관세음보살상이 조성되어있다. 그만큼 관세음보살은 우리네 중생들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고, 중생들의 다양하고도 많은 소원을 들어주고, 또 말못할 사연들도 아무런 조건없이 그대로 들어준다는 것이다. 낮이면 낮에도 밤이면 밤에도 그 어디에서 보아도 나름대로 품격을 갖춘 모습의 해수관세음보살상. 중생들의 마음에 따라 보는 각도는 달라도 모두가 좋기만 하였다. 중생들의 소망 부디 잘 들어주시고, 그 소망의 끝에 모두 성불하길 빌어봅니다. 최우성(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북촌한옥마을 가옥 보수설계, 혜화동주민센타 개보수설계,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
▲ 소나무 오솔길을 오르는 스님들!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멀고 험한 길!! 초발심의 원력으로 성불하시길 빕니다.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산사로 가는 소나무 밭 오솔길을 오르는 두 스님들! 세상을 피해서 출가한 것이 아니라, 깨달음을 얻어서 세상의 중생들을 구하고자 출가의 길을 걷겠다는 초발심의 의지가 부디 꺾이지 말고 이루어지길 빌어봅니다. 최우성(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북촌한옥마을 가옥 보수설계, 혜화동주민센타 개보수설계,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봉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문화재청 문화유산사진작가, 불혹의 포토클럽 회원
▲ 의상대에서 본 홍련암 ▲ 홍련암의 관세음보살 ▲ 홍련암 벽화 관세음보살이 용을 타고 중생을 구제하는 모습 ▲ 홍련암에서 본 의상대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강원도 양양 낙산사는 어디를 가나 다른 절에서 보는 부처님은 없고 관세음보살만 있다. 원통보전에는 '건칠관세음보살', 보타전에는 '천수관음', 높은 언덕에 우뚝 솟은 바다가 훤히 보이는 언덕위에는'해수관음' 바닷가에는 홍련암에는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의 도상(그림으로 나타내는 형상)은 중생이 처한 위치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된다. 그 이유는 중생이 처한 상황은 각양 각색이기에 그에 따라서 다양한 처지에 다양한 모습으로나타나서 중생의 소원을 들어주고 구제해준다는 뜻이다. 관세음보살의 손이 무수하게 많은 이유도, 우리네 사람과 같이 단2개의 손만으로는 중생의 소원을 다 들어줄 수 없기에 부수한 손 무수한 눈으로 보고 소원을 들어준다는 의미에서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을 조성한다. 홍련암은 의상대사가 중국에서 돌아와기도중에 관세음보살을 만난 곳에 지은 암자로 알려져있어 수많은 불자들이 연중 많이 찾는 곳이고, 하루 24시간 쉬임없이개방되는 곳이다. 바닷가에 위치하여 끊임없이 출렁이는 파도소
▲ 원통보전의 모습 ▲ 응향각에서 본 원통보전 모습 ▲ 원통보전을 들어가는 문에서 본 낙산사 원통보전 ▲ 원통보전의 주불과 탱화. 보살의 뒤로는 아미타부처님과 많은 보살들이 주위를 호위하고 있다. ▲ 원통보전의 주불 관세음보살상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낙산사의 주불전인 원통보전과 그 안에 모셔진 건칠관세음보살상이다. 원통보전은 2005년 양양의 바닷가에 일어났던 큰 불로 낙산사 전체가 화영메 휩싸여 거의 전소가 되는 바람에 탓으나, 건칠관세음보살상은 스님들이 불이 붙은 원통보전으로 뛰어들어 모시고 나와서 화마로부터 살아남게 되었다. 낙산사 원통보전의 건칠관세음보살은 보물 1392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으며, 그 조각상이 수려하고 아름답다. 2005년 초봄에해안가를 휩쓰는 화재로부터 살아남은 관세음보살상, 부디 오래오래 그모습 그대로 남아중생들의 많고 많은 소원도 이루어주고, 깨달음을 구하는 스님네들에게도 득도의 소식 많이 내려주길 빌어본다. 신라시대 '조신'이란 스님이 세달사에기도하러 왔던 귀족의 딸을 흠모하다가 잠시 잠든사이에 꿈속에서 그녀와 함께 살았던 이야기가 삼국유사에'조신의 꿈'으로 전하며 이를 김동인은 '조신의 꿈으로'
▲ 원통전으로 들어서는 문과 7층석탑 ▲ 문을 들어서는 스님과 7층석탑 ▲ 낙산사 7층석탑의 측면모습 상륜이 청동으로 되어있으며, 보개 보륜 수연 용차 보주등 윗부분이 사라져 아쉽게 보인다. ▲ 원통전 앞에 서있는 7층석탑 ▲ 소원을 가슴에 품고 탑돌이 하는 불자들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보물 제499호인 낙산사7층 석탑은 낙산사의 주불전인 원통전의 바로 앞에 있다. 본래는 3층이었다고 하나1466년 중창되면서 7층으로 탑신을 늘렸다. 원통전은 낙산사가 관세음보살의 성지인 만큼 다른 절의 대웅전과 같은 위상이나, 이곳이 관세음보살의 영역이기에 그 이름을 원통전으로 하였다. 따라서 원통전의 내부에는 부처님상이 없고 오직 딱 한분 관세음보살만이 있다. 관세음보살은 중생의 희노애락을 가장 잘 들어준다고 하여 그 이름도 관세음보살이다. (관세음보살이란 명칭의 의미는 세상 모든 중생 고통의 소리를 보고 듣는 보살) 그래서 수많은 불자들이 마음에 부담없이 부르고 찾고 기대는 보살이 되어 전국의 어느 절이나 관세음보살이 없는 절이 없을 만큼 보편적인 보살이다. 관세음보살을 모신 원통전의 앞에있는 7층석탑은 그리 크지는 않지만 체감과 조형이 우수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