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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화 시인의 수필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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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즐겁지 아니한가

지식의 반감기, 독서의 반감기를 극복하자 [석화 시인의 수필산책 18]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반감기(half life, 半減期)”라는 말이 있다. 원래는 핵물리학에서 어떤 특정 방사성 핵종(核種)의 원자수가 방사성 붕괴에 의해서 원래의 수의 반으로 줄어드는데 걸리는 시간을 가리키는 용어로 요즘은 기타 자연과학과 사회학분야에서도 널리 쓰인다. 정보과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물리학에서 “반감기”는 10년 정도였다. 더 하위 분야로 내려가면 플라스마물리학은 5.4년, 원자핵물리학은 5.1년이 반감기였다. 생물학에서도 가령 지난 세기 5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인간의 체세포에 들어 있는 염색체의 수가 48개라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수가 46개라고 배운다. 오늘 발표된 새로운 론문도 그 정도 시간이 지나면 더는 인용되지 않아 낡은 론문으로 폐기된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은 지식에도 적용된다. 모든 지식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또 붕괴하기 때문이다. 쓸모 있는 지식으로서 효력을 상실하게 되면 더는 지식이라는 이름에 값할 수 없게 된다는 말이다.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려면 배우고 배우고 또 배워야 한다. 따라서 “살아서 늙을 때까지 배워라(活到老, 學到老)”라는 말이 정답이다. 중국의 사자성구로 “괄목상대(刮目相對

정답, 하나뿐이 아닐 수도 있다

각자 자신만의 장단을 두드려라 [석화 시인의 수필산책 17]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우리는 대체로 학교교육을 받으며 정답은 하나뿐이라는 시험제도 아래에 성장했다. 사회인이 되고서도 무슨 자격시험이나 진급시험 같은 것을 치르면서 대체로 모두가 시험관 손아귀에 쥐여 있는 정답지와 일치하는 답안을 적어내지 못해 안달하게 되었다. 그 정답을 바로 맞혀내야만 그런대로 앞길이 트이게 될 판이니 그중에는 간이 크게 “커닝(훔쳐보기)”도 서슴지 않는 일부 “인사”들도 더러 생겨났다. 또한, 텔레비전의 “알아맞추기”같은 프로에서도 참가자들이 사회자의 구미에 맞는 대답을 하면 “딩동댕― 정답! 맞췄습니다. 축하합니다.”하고 박수를 받게 되지만 일단 한마디라도 어긋난 말을 하게 되면 단마디 명창 “땡!”하고 탈락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세상의 문제들은 정말 정답이 하나뿐일까. 모두가 “하나!” 하는데 누군가 “둘!” 하면 정말 맞아 죽는 것일까. 우리는 정말 모두가 러시아생물학자 파블로프의 “조건반사학설”에 잘 길들어진 강아지들처럼 일단 “호르륵―” 호각소리가 울리면 일제히 먹이구유를 향하여 죽기 살기로 뛰어가야만 하는 것일까. 문학예술이나 신화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들은 희랍신화에 나오는 뮤즈가 시의 여신인 것을 잘

말, 사람의 말

어찌 함부로 말을 뱉을 것인가 [석화 시인의 수필산책 16]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사람은 말하는 동물이다. 물론 새나 벌이나 이외 다른 동물들도 저들끼리 서로 의사를 교환하는 언어가 따로 있다고는 하지만 어찌 그들의 것을 사람의 말에 견줄 수 있겠는가. 따라서 “사람은 말하는 동물이다.”라는 이 말을 거꾸로 “말하는 동물은 사람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냐 사람이 아니냐 하는 것이 말할 줄 아느냐 모르느냐로 가늠될 수 있다는 말이 되겠다. 말은 ‘말(斗)’이며, 말은 ‘말(馬)’이다. 담아서 가늠하는 ‘말(斗)’이며, 싣고서 달려가는 ‘말(馬)’이다. 담아서 싣고 가는 것 곧 다른 말로 “언어는 생각을 싣는 수레다.”라는 것이다. 말은 먼저 정확해야 한다. ‘님’에 점하나 보태면 ‘남’이 되고 ‘남’에서 점하나 덜어내면 ‘님’이 된다는 항간의 노랫말도 있지만 “님→ 남→ 놈”에서처럼 말에 조금이라도 보태거나 빼거나 바꿔치기를 한다면 상대를 지시하는 그 뜻이 전혀 다르게 변하게 된다. ‘돛’과 ‘닻’ 두 낱말도 다 같이 배에 쓰이는 물건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같은 자음 ‘ㄷ’와 ‘ㅊ’ 사이의 모음 ‘ㅗ’와 ‘ㅏ’가 각기 만들어 내는 어휘의 차이는 너무나도 크다. 돛은 배가 바람을 안고 달려가

“평강공주 프로젝트”를 위하여

엄마의 그 “다리 아래서 주어온” 자 [석화 시인의 수필산책 15]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태초 카오스의 혼돈을 거쳐 코스모스가 이루어지면서 가벼운 것은 떠올라 하늘이 되고 무거운 것은 가라앉아 땅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늘에는 다시 해와 달이 뜨고 땅에는 산이 솟고 강물이 흘러 세상이 열렸습니다. 그 사이에 나무, 새, 토끼 등 온갖 만물이 생겨나 가득 찼는데 우두머리를 사람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늘과 땅이 나뉘는 것처럼 또 하늘에서 해와 달이 생겨난 것처럼 사람은 남자와 여자 둘로 나뉘어 만들어졌습니다. 혹자는 남자가 먼저 생겨나고 그 옆구리 갈비뼈를 뽑아 여자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사실 한낱 시골농사꾼으로부터 제왕장상에 이르기까지 어느 누군들 엄마의 그 “다리 아래서 주어온” 자 아니겠습니까. 여자는 엄마가 되어 비로소 여성이 됩니다. 여성의 “생산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잉태와 출산의 생리적 과정과 함께 사랑과 헌신의 양육과정, 성숙과정이 여자를 진정 여성으로 만들어 준다는 말입니다. 역사책을 펼치면 인류의 빛이 되어온 수많은 남자들과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성공한 남자들의 뒤에는 항상 어머니일 수도 있고 아내나 애인일 수도 있고 누이일 수도 있지만 반드시 훌륭한 여성이 서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

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일까

남자는 늘 술로 자기의 탈을 벗는다 [석화 시인의 수필산책 14]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연변 화백 석희만 선생의 작품으로 ”탈춤”이라는 그림이 있다. 툭 튀어나온 이마, 우묵한 두 눈, 덩실한 주먹코, 죽 찧어진 입, 그 희한하고 기괴한 모양의 탈을 쓰고 두 팔을 휘둘러 장삼자락을 날리며 발을 구르는 모습, 이 작품을 마주 서면 굵고 힘찬 화백의 필치를 따라 그 신나는 탈춤이 그대로 한 폭의 그림 우에서 너울너울 펼쳐지는 듯하다. 나에게도 저와 같은 한 장의 탈이 있다면 얼른 집어쓰고 저이처럼 팔다리를 마음대로 휘저으며 한바탕 신나게 놀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충동에 저절로 가슴이 툭툭 뛰게 하는 그림이다. 함경도 북청의 사자탈춤, 황해도의 봉산탈춤, 경기도의 산대놀이탈춤, 강원도의 별신굿탈춤… 우리에게는 그렇게도 많은 탈과 그 탈을 쓰고 추는 춤이 있다. 탈, 이 울퉁불퉁하고 해괴망측하여 마주 바라보면 무섭기도 하고 또한 저절로 입 귀가 열리며 웃음이 벙그러지게* 하는 이 한 장의 나뭇조각은 과연 무엇일까. 탈에 대하여 간단히 한마디로 정의를 내리기에는 쉽지 않다고 한다. 그 자체의 실체와 기능이 너무나도 다양하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탈은 원시시대부터 역사와 함께 하면서 신앙성을 띠고 벽사, 의술, 수렵, 연희 등

“고맙습니다”

우리를 낳아준 곰어머니와 만남 [석화 시인의 수필산책 13]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고맙습니다.”세상을 살아가면서 제일 많이 하게 되는 말입니다. 이 말을 하면 가슴이 따뜻해지고 이 말을 들으면 얼굴이 밝아집니다. 그런데 “고맙습니다.” 이 말을 하고 나면 또 이 말을 듣게 되면 우리는 왜 기분이 좋아질까요. 무엇 때문일까요?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말을 하며 살아가지만 일반적으로 그 말의 뜻이 되는 개념에 대해서는 많이 따지나 그 말이 이루어지는 소리 자체에 대해서는 정작 별로 생각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편하게 그 말은 원래부터 그렇게 말하는 것이겠지 하고 생각하면 그만이겠지만 왜 그 말은 “‘아’ 아니면 꼭 ‘오’라고 해야 하는가”라는 원리 곧 말이 이루어지는 언어학적 원리를 알게 된다면 더 좋겠지요. 말의 과학인 언어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말의 뜻을 가리키는 부분인 기의(記意, 시니피에 signifie)와 표현을 이루는 부분인 기표(記標, 시니피앙 signifidant) 두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네거리 교통신호의 체계에서 붉은 등일 때면 “정지!” 곧 서시오가 되고 푸른 등이 켜지면 “출발!” 곧 가시오라는 말이 됩니다. 이때 붉은색, 푸른색의 색채는 명령기호의 표현이

겨울, 사나이의 계절아

진짜 사나이여, 인제는 됐다 가거라 [석화 시인의 수필산책 12]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1) 온다더니 정말 오는구나 겨울, 사나이의 계절아 사나운 광풍을 앞세우고 거세찬 눈보라 이끌며 달려오는 겨울아, 너는 참말로 약속을 지킬 줄 알고 줏대가 있는 친구이구나. 열매를 따낸 가지에서 마른 잎을 흔들어 떨구며 낟알을 거둔 이랑에서 지푸라기를 날려버리며 이 벌, 이 산, 이 하늘을 말끔히 청소하는 겨울아, 너는 신나게 휘파람을 불며 달려오는구나. 꽃잎에 아양을 떠는 나비를 멀리 쫓아버리고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앉아 재잘거리는 새새끼들을 혼내며 쌩- 쌩- 날파람을 일구며 달려오는 겨울아, 너는 이 땅 위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참으로 슬기를 비기고 힘을 겨루는 씨름판을 벌이었구나. (2) 온다더니 정말 오는구나 겨울, 사나이의 계절아 새뽀얀 눈보라를 들말인 양 휘몰아 윙-윙 기세 좋게 달려온 겨울아, 너는 참말로 진짜 사나이구나. 반 조각의 가식도 없이 통쾌하고 솔직한 곧은 성미 그대로 한때는 제로라 뽐내던 하늘의 태도 부옇게 얼구어 놓고 우쭐거리며 감 뛰던 강물도 꽁꽁 얼구어 놓아 짱-짱 아우성치게 하는 겨울아, 눈갈기를 날리며 무서운 혹한으로 박달나무도 튀게 하는 너를 두려워 구새먹은* 나무통에 기어들어가

밥그릇과 문학

뿌쉬낀이 결투장에 나간 진정한 까닭은 [석화 시인의 수필산책 11]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밥그릇은 밥을 담아 먹는 그릇이다. 거창하게 사전적 의미고 뭐고 할 것 없이 세살 난 코 빠는 꼬마 친구들도 다 잘 아는 이야기를 거룩하고 숭고한 문학과 연계를 지어 논의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고무신 신고 넥타이 매는 것처럼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만 않다는 것이 이 세상이 이루어지는 도리임을 또 어찌하랴. 밥그릇이 밥을 담아 먹는 그릇이라는 것은 일반인들의 1차원적인 생각일 뿐이며 전문인들은 하나의 같은 밥그릇을 놓고도 그 밖의 2차원, 3차원적 사유를 하게 된다. 이것은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가 아니고 사실 예술가들은 각기 자기의 전문성에 따라 앞에 놓인 밥그릇을 보며 여기에 어떤 밥을 얼마나 담아 어떻게 먹을까 하는 생각보다 밥그릇 자체의 디자인, 색상, 질료 등등에 더욱 관심이 가게 될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평범한 일용품에서도 예술적인 감각을 찾아내는 것이 예술가들의 직업이며 그들의 눈을 거쳐서 다시 탄생한 밥그릇은 이미 일상의 생활 가운데서 늘 사용하는 평범한 물건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품이며 가치 무한한 보물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는 또 현재형과 미래형이라는 개념이 작용하고 있는데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