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과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관장 정진영)은 만주망명 110돌을 맞이하여 모두 12회에 걸친 기획 보도를 진행하고 있다. 제7편에서는 만주지역과 서ㆍ북간도에서 독립군단을 조직하여 항일무장투쟁에 나섰던 당시의 상황을 소개한다. 3.1만세운동 이후 만주지역, 곧 서ㆍ북간도에서는 다수의 독립군단이 조직되었다. 서간도지역에는 서로군정서를 비롯하여 대한독립단, 대한독립군비단, 대한광복군사령부 등이 결성되었고, 북간도지역에는 북로군정서, 대한독립군, 대한군무도독부, 대한국민회국민군 등이 조직되었다. 이 단체들은 국내진공작전, 독립군 및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펼치며 항일무장투쟁을 이끌었다. 서로군정서는 독판 이상룡, 법무사장 김응섭(풍산김씨 오미마을 출신), 학무사장 김형식(백하 김대락의 차남), 참모부장 김동삼 등 경북 출신이 중심이 되어 운영되었다. 특히 서로군정서는 북로군정서 사령관 김좌진의 교관 파견 요청에 긴밀히 협조하는 등 독립군 단체 간의 연대에도 힘을 쏟았는데, 당시 김좌진이 서로군정서 측에 교관 파견을 요청했고, 이에 대해 석주 이상룡이 파견을 허락하는 내용의 답신이 《석주유고》에 실려 있다. 당시
[우리문화신문=이나미 기자] 6월 26일, 오늘은 백범 김구 선생 서거 72주기를 맞이하는 날이다. 김구 선생은 1919년 3·1만세운동 직후 중국 상해로 망명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에 선임됐고, 이후 내무총장, 국무령, 주석 등을 지냈다. 또한 한인애국단을 조직해 이봉창·윤봉길 의사의 거사를 지휘하고, 한국광복군을 창설하는 등 항일독립운동에 평생을 헌신했다. 그러나 민족의 위대한 스승 김구 선생은 고국땅 집무실인 경교장(京橋莊)에서 육군 현역 장교 안두희가 쏜 총탄을 맞고 72년전 애석하게도 서거했다. 백범 기일은 바로 전날인 6월 25일, 6.25 한국전쟁 기념에 묻혀 언제 부터인가 서거일 조차 기억에서 잊혀져 가는 느낌이다. 특히 지난해와 올해는 코로나19로 행사 자체도 축소되거나 생략되어 더욱 그런 느낌이 든다. 국가보훈처는 백범 김구 선생 72주기를 맞아 오늘(26일) 오전 11시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서 묘소 참배 행사를 한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외부 인사 초청 없이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주관으로 추모식을 대신해 묘소 참배만 진행되며, 유족과 기념사업협회 임직원 등 20여 명이 참석한다고 밝혔다. 금지옥엽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경기도 중서부 서해안에 닿아있는 송산 사강지역은 알이 성글고 단맛이 풍부한 송산포도로 유명하며, 서해안 갯벌에서 채취한 굴과 맛조개 등 여러 풍부한 해산물을 즐길 수 있는 횟집들의 사강시장이 있다. 요즘은 시화호로 막혀 좀 더 멀리 나가서 해산물을 잡아 온다고 하는데 철도나 육로가 발달하기 전엔 한양으로 가는 물류가 인근 마산포에서 배에 실려 올라가 한강을 거슬러 한양의 여러 포구에 내려놓고 다른 물자를 바꾸어 돌아왔던 중심지였다. 인근에는 서해를 건너 중국과의 교류도 활발했던 당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바로 이 지역에 1919년 3.1만세 운동 때 엄청난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몇 년여에 걸쳐 기획하고 준비하여 작년 말에 조성된 송산지역 독립운동가 마을을 탐방했다. 송산농협 사강지점에 차를 대고, 독립운동가 후손 두 분의 안내를 받으며 걸었다. 3.1만세운동 당시 적극적으로 참여ㆍ주도하신 홍면옥, 왕광연 두 분의 손자이신 홍사용, 왕의항 선생님과 함께했다. 《송산지역 독립운동가 마을 백서》를 손에 들고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공간에 세워진 조형물과 안내판을 참고하며 사강재래시장, 마을회관, 송산 초등학교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과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관장 정진영)은 만주망명 110돌을 맞이하여 모두 12회에 걸친 기획 보도를 진행하고 있다. 제5편은 일제의 감시를 피해 압록강을 건넌 독립운동가들이 척박한 만주땅에 정착해가는 과정을 다뤘다. 음력 1월 27일, 석주 이상룡 선생의 일행은 압록강을 건너 단동에 도착한 뒤 마차 두 대를 마련하여 서너 사람씩 나눠 타고 만주지역 안쪽으로 이동해갔다. 《서정록》을 보면 당시 간혹 추위가 풀리면 흙바닥이 진흙탕이 되어 수레바퀴가 빠져 곤욕을 치렀고, 또 객점을 지나며 허기를 달래기 위해 사 먹은 음식도 입에 맞지 않거나 아이들은 아예 삼키지 못해 병이 생기거나 했다고 한다. 단동에서부터 힘겹게 이동한 석주 선생 일행은 8일 뒤인 2월 7일에 횡도천이라 불리는 항도촌에 도착했다. 이들의 최종 목적지는 유하현 삼원포였지만, 혹독한 추위와 산모들 때문에 이곳에서 잠시 머물기로 했다. 그러면서 석주 선생은 이곳에 미리 와 있던 백하 김대락 등을 만났다. 항도촌에 머무는 동안 백하 선생은 손자를 얻는 경사도 있었지만, 늘 불안에 떠는 나날을 보내야 했다. 특히 청나라 관리가 망명 한인들에게 변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광복회(회장 김원웅)는 15일 광복회관 4층 광복회장실에서 항일 독립운동가를 찾아내 그 정신을 함양하기 위한 문화예술 창작 활동과 공연제작 및 교육을 위해 김원웅 광복회장과 김동규 K문화독립군 회장이 ‘광복회-K문화독립군’ 사이 업무협약을 맺었다. 맺은 협약 내용은 다음과 같다. ▲(콘텐츠공유) 민족정기와 독립운동정신을 선양하기 위한 자료, 도서, 정보, 역사기념사업 및 인적자원 시설 장비를 공유하며 상호교류 ▲(문화선양사업) 민족정기와 독립운동정신을 지속가능한 문화예술로 승화시키고 국제적으로 한류화 시키기 위하여 상호 협력 ▲(교육사업) 청소년, 시민단체, 군경, 공무원, 해외동포 대상의 문화예술접목 선양 교육프로그램 운영을 위하여 상호협력 등이다. 이날 광복회와 업무협약을 맺은 K문화독립군은 2013년 설립 이후 2018년 국가보훈처로부터 비영리사단법인으로 인정을 받았으며, 최재형 선생의 일대기를 다룬 <페치카 최재형> 창작뮤지컬 공연과 감상문 공모에 이어 그 후속으로 ‘2021 K문화독립군 다짐 공모전’을 기획, 오는 9월 2일(안중근의사 탄신일)부터 10월 26일(하얼빈 의거일)까지 ‘안중근 의사의 장부가’와 ‘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는 8일(화) 정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힘쓴 임우철 애국지사가 향년 100세로 세상을 떳다고 밝혔다. 임우철 지사는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공옥사고등학교에 재학 중 동급생들과 내선일체(內鮮一體) 비판 및 궁성요배(宮城遙拜)가 부당함을 주장했고, 민족자본 육성과 한국어 보급 등 민족의식 함양을 위해 노력하다 체포되어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지사의 공훈을 기려 200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임우철 지사는 지병으로 서울 강동구 중앙보훈병원에서 임종을 맞았으며, 중앙보훈병원 장례식장에 빈소가 마련됐다. 이어 10일(목) 아침 7시 발인 뒤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6묘역에 안장될 예정이다. 임우철 지사가 작고함에 따라 생존 애국지사는 19명(국내 16명, 국외 3명)만 남게 되었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앞으로도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유공자와 그 유족에게 합당한 예우를 통해 국민의 애국정신과 민족정기를 높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 임우철 애국지사 공적 사항 ㅇ 임우철(1920.09.24.~2021.06.08.) - 1920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 이하 보훈처)는 일제강점기 국권 회복을 위해 헌신하신 6․10만세운동 선열을 기리고 그분들의 독립정신을 기억하기 위한 ‘제95주년 6․10만세운동 기념식’이 오는 10일(목) 저녁 6시 10분, 훈련원공원(서울 중구)에서 열린다고 밝혔다. 6․10만세운동은 1919년 3․1운동,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과 함께 일제의 무단 통치에 맞선 3대 독립운동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지난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어 올해 처음 정부주관으로 기념식이 열리는 것이다. 특히,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1926년 6월 10일을 기억하고 선열들의 자주 독립정신을 이어받자는 의미에서 기념식 시간을 저녁 6시 10분으로 정했으며, 순종의 인산 행렬이 돈화문을 출발하여 금곡으로 가던 중 만세시위가 일어났던 8곳 가운데 한 장소로 역사적 의미를 간직한 훈련원공원*을 기념식 장소로 꼽았다. * 훈련원공원 : 조선시대 병사의 무술훈련을 강습하던 곳으로 1907년 8월에 군대가 해산됨에 따라 강제로 폐지된 이후 학교, 헌법재판소, 주차장 등으로 사용되다가 1997년에 준공된 곳으로 역사의 아픔과 고통을 고스란히 간직한 장소 이번 기념식은 코로나19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광복회(회장 김원웅)는 6일, 친일반민족행위자의 현충원 안장을 금지하는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국립묘지법) 개정에 대한 현황을 공유하고 법률 개정 운동을 위한 전략을 논의하는 관계자 정담회를 가졌다. 국립묘지법 개정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른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사람은 국립묘지 안장 대상에서 제외됨을 명확히 하고, 국립묘지 외의 장소로 이장하도록 명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여 국립묘지의 명예와 존엄을 유지하려는 취지다. 이날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김홍걸 의원은 “이 법 개정안은 관련 상임위인 정무위원들의 역사의식과 의지가 중요하다”라고 밝혔고, 김원웅 광복회장은 “여야 구분 없이 친일인사의 현충원 안장을 금지하거나 친일행적비를 세우는 데 공감을 얻고자 하는 국회의원들의 공론화와 함께 초당적인 당론채택이 시급하다”라며, “광복회는 향후 친일을 비호하는 정치인을 대상으로 ‘광복절 행사에 참석할 자격이 없는 정치인 명단’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는 김원웅 광복회장과 김홍걸 국회의원 이외에도 박해룡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장, 이순옥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방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6월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헌신한 호국영령을 기리기 위한 호국보훈의 달이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번영은 선인들의 피와 목숨 위에 세워진 것임을 되새기는 시간이다. 나이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진 고문에 굴하지 않고 독립과 구국의 투쟁에 앞장선 수원 출신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까닭이다. ◇항일의지를 들불처럼 일으킨 독립운동가들 수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은 김세환(1989~1945, 독립장)이다. 김세환은 남수동 242번지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유학해 신학문을 배우고 다시 수원으로 돌아와 교직생활을 하며 학생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특히 민족대표 48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수원과 이천, 충남지역의 독립운동 조직 활동을 주도하다 체포돼 재판을 받으면서도 기개를 잃지 않고 당당하게 독립의 당위성을 역설했다고 알려졌다. 이후 수원에서 신간회, 수원체육회 등 사회단체 활동을 주도하며 민족주의 활동과 교육에 힘썼다. 해방 한 달여만인 1945년 9월 26일 숨을 거뒀다. 수원시청 맞은편 올림픽공원에 동상이 세워진 임면수(1874~1930, 애국장)는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인물이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권오설ㆍ이선호ㆍ박래원ㆍ이동환 선생을 ‘2021년 6월의 독립운동가’로 뽑았다고 밝혔다. 4명의 선생은 1926년 6월 10일 순종의 장례일(인산일)을 기해 만세 시위로 일어난 학생 중심의 민족 독립운동인 ‘6·10만세운동’을 기획하고 참여한 주요 인물들이다. 권오설 선생은 3·1만세운동 참가 이후 고향인 안동에서 학습강습소를 조직하여 교육운동에 힘을 쏟았으며, 농민운동도 펼쳤다. 가곡농민조합을 시작으로 선생의 농민운동은 1923년 풍산소작인회 결성으로 본격화되었으며, 식민지 사회 모순을 깊게 자각했다. 선생은 6·10만세운동의 모든 계획과 추진을 주도했으며, 만세시위 때 쓰기 위한 ‘격고문’과 그 밖의 전단 등을 직접 작성했다. 또 선생은 6·10만세운동 관련 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출옥을 며칠 앞둔 1930년 4월 17일 서대문형무소에서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하였다. 이선호 선생은 1925년 9월 조선학생사회과학연구회를 창립할 때 사업부 책임자, 1925년 11월 임시집행부 등에 선임되었다. 6·10만세운동에서 선생의 선창으로 중앙고보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