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권오설ㆍ이선호ㆍ박래원ㆍ이동환 선생을 ‘2021년 6월의 독립운동가’로 뽑았다고 밝혔다. 4명의 선생은 1926년 6월 10일 순종의 장례일(인산일)을 기해 만세 시위로 일어난 학생 중심의 민족 독립운동인 ‘6·10만세운동’을 기획하고 참여한 주요 인물들이다. 권오설 선생은 3·1만세운동 참가 이후 고향인 안동에서 학습강습소를 조직하여 교육운동에 힘을 쏟았으며, 농민운동도 펼쳤다. 가곡농민조합을 시작으로 선생의 농민운동은 1923년 풍산소작인회 결성으로 본격화되었으며, 식민지 사회 모순을 깊게 자각했다. 선생은 6·10만세운동의 모든 계획과 추진을 주도했으며, 만세시위 때 쓰기 위한 ‘격고문’과 그 밖의 전단 등을 직접 작성했다. 또 선생은 6·10만세운동 관련 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출옥을 며칠 앞둔 1930년 4월 17일 서대문형무소에서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하였다. 이선호 선생은 1925년 9월 조선학생사회과학연구회를 창립할 때 사업부 책임자, 1925년 11월 임시집행부 등에 선임되었다. 6·10만세운동에서 선생의 선창으로 중앙고보생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광복회(회장 김원웅)는 26일 ‘여수ㆍ순천 10·19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정안’(이하,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안')의 당론채택을 요청하는 공문을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정의당, 국민의당, 열린민주당 등 5당 원내대표에게 보냈다. 광복회는 공문을 통해 “해방 이후, 친일 반민족세력이 미군정에 다시 빌붙어 권력을 잡고 동족을 괴롭히는 폭력과 탄압을 자행했다. 이에 맞선 민초들의 항쟁인 ‘제주 4·3항쟁’에 대한 친일권력의 부당한 토벌출동명령에 ‘동포 학살을 거부한다’라며 여수주둔 군인들이 궐기하였고, 이로 인한 혼란과 무력 충돌 및 진압과정에서 다수의 무고한 민간인들이 희생과 피해를 입은 사건이 바로 ‘여순사건’이다.”라고 정의했다. 이어서 “‘여순사건’은 친일청산과 분단극복을 위한 민초들의 투쟁으로 독립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는 위대하고 처절한 항쟁이었다. ‘여순사건’의 진실규명, 희생자의 명예회복과 보상은 지난 시대의 아픔을 치유하고, 민족정통성의 궤도를 이탈한 대한민국을 올바른 궤도에 진입시키기 위한 역사바로세우기”라고 주장했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광복회는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안’이 이념논쟁과 갈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대한독립의 길을 걷다’라는 제목의 수원시 인문기행 두 번째 코스는 일제 강점기의 수원과 수원사람들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나라를 빼앗겼던 암울한 시대를 기억하는 근대 건축물과 일제에 저항해 독립의 의지를 드높였던 사람들의 흔적을 더듬어 볼 수 있다. 수원화성을 중심으로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이번 코스는 여행길을 더욱 다채롭게 한다. 모두 6㎞를 둘러보는데 3 시간 가량 걸린다. ◇연무대~방화수류정 인문기행의 시작은 ‘연무대’다. 220년 전 정조대왕의 친위대인 장용영 군사들이 무예를 연마하던 훈련장으로,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보는 사람의 마음을 탁 트이게 해준다. 지금은 연날리기, 활쏘기는 물론 하늘 높이 올라 수원화성을 내려다보는 헬륨 기구 ‘플라잉수원’ 등의 체험이 이뤄지는 평화로운 곳이다. 그러나 102년 전 연무대에서는 나라의 독립을 염원하는 민초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수원 장날이었던 1919년 3월 16일, 서장대와 연무대에 수백 명의 수원사람이 모여 ‘만세’를 외치며 팔달문과 종로 방향으로 만세 시위를 이어갔다. 일본의 침탈로 내몰린 상인들이 중심이었다고 한다. 연무대에서 10분가량 걸어 내려오면 용두암이라는 바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김원웅 광복회장은 21일 오전 9시 45분 국회 소통관에서 TV조선의 탐사보도(5월 20일 방송)에 대한 반박 기자회견을 가졌다. 김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8,300여 명의 광복회원 가운데 20~30명이 분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 중에서 사기, 폭력, 비리 등으로 징계, 면직을 당한 사람도 있다”라고 밝혔다. 김 회장은 또한 “그 가운데는 호남출신을 ‘홍어’라고 표현하고, ‘호남 친일파가 영남보다 10배 이상 많고, 호남에는 빨갱이도 가장 많다’라고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놈현’, ‘문죄앙’, ‘좌좀’ 등 일베들이 쓰는 표현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자도 있다.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을 공산주의자와 결탁하여 박근혜 대통령을 끌어내린 역적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광복회 단체 카톡방을 일베류의 주장으로 도배하자, 격렬한 말싸움이 있었고, 회원 대부분이 새로 단톡방을 만들기도 했다. TV조선은 이런 자들을 인터뷰하면서 이들의 태극기부대 성향을 숨긴 채,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는 점만 부각시켰다”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백범의 손자가 김원웅 회장의 친일청산 주장이 국민을 분열시킨다고 비난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반민특위를 폭력으로 해체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광복회(회장 김원웅)는 14일, 수익사업 헤리티지 815카페 수익금으로 조성한 제1회 헤리티지 장학금 전달식을 가졌다. 광복회의 ‘헤리티지 815 장학금’은 국회사무처의 사용허가와 국가보훈처의 사업승인을 받고 국회 내에서 운영 중인 헤리티지 815 카페의 수익금 전액으로 조성된 장학금으로써 지난 3월 광복회보와 광복회 누리집을 통해 장학생 모집을 공고하였으며, 세 차례의 심의를 거쳐 모두 31명을 뽑고 장학금으로 중고생 100만 원씩 11명, 대학생 200만 원씩 20명, 모두 5,100만 원을 지급했다. 이 가운데 중학생 대표로 신곡중 송혜선, 고등학생 대표로 와부고 양승빈, 대학생 대표로 성균관대 이지윤과 고려대 정민규 등 4명을 뽑아 이날 직접 전달했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이날 “이번에 제1회 헤리티지 815 장학생으로 뽑힌 학생들은 독립유공자 후손으로서 투철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미래시대를 열어갈 우수한 학생이라 생각한다”라면서 “헤리티지 815 장학금은 광복회가 국회사무처의 배려로 운영하는 헤리티지 815 카페의 수익금 전액으로 조성한 첫 번째 장학금인 만큼, 자부심을 품고 성장하여 주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대포소리 울리는 곳에도 봄이 오니 / 청구 옛 땅에 빛은 새로워라 / 달빛 아래 산영에서 칼을 가는 나그네 / 철채 바람 맞으며 말을 먹이고 있네 / 중천에 펄럭이는 깃발은 천리에 닿은 듯 / 진동하는 군악소리 멀리도 퍼지는구나 / 섶에 누워 쓸개를 핥으며 십년을 벼른 마음 / 현해탄 건너가서 원수들을 무찌르세. " 이는 《애국지사들의 이야기(5)》에 나오는 홍성자 수필가의 ‘청산리 전투의 영웅 백야 김좌진 장군’ 편(p255~273)에 인용된 시다. 이 시는 김좌진 장군이 지은 ‘산영월하 마도객 칠색풍전 말마인’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애국지사들의 이야기(5)》는 캐나다애국지사기념사업회(회장 김대억, 이하 기념사업회)에서 해마다 1권씩 펴내는 책으로 올해로 5권을 냈다. ‘코로나19’ 상태에서도 기념사업회에서는 원고를 부지런히 모아 300쪽 분량의 책을 펴낸 것이다. 기념사업회 김대억 회장은 “캐나다에서 애국지사기념사업회가 발족한지 11년이 되었다. 처음 몇 년간은 애국지사기념사업회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동포들이 의외로 많아 어려움이 컸다. 그러나 우리는 묵묵히 애국투사들의 고귀한 조국애와 민족애를 캐나다 동포들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생존 여성애국지사 두 분(민영주, 오희옥 지사) 가운데 한 분인 민영주 (1923.08.15.~2021.04.30.) 지사께서 지난 4월 30일(금) 향년 97살로 우리 곁을 떠나셨다. 이제 남은 유일한 생존 여성독립운동가는 오희옥 지사(95살)다. 어제(5일) 오희옥 지사께서 입원 중인 서울중앙보훈병원에 병문안을 다녀왔다. 여전히 코로나19로 지난해부터 병실 면회가 금지되어 병원 로비의 지정된 구역에서만 환자 면회를 할 수 있다. 요 며칠 날씨가 따뜻하더니만 어제 내린 봄비 영향으로 오늘은 제법 쌀쌀하여 휠체어를 타고 로비로 나오신 오희옥 지사는 환자복 위로 두꺼운 스카프를 두어 겹 두르고 나오셨는데 로비에 와서 기다리던 기자를 얼른 알아보고 손을 흔드신다. 마스크를 쓴 얼굴이지만 환한 표정이 느껴져 무척 반가웠다. 워낙 꽃을 좋아하시기도 하지만 낼모레가 어버이날이라서 붉은 카네이션 꽃바구니를 선물하니 더없이 좋아하신다. 병원에 입원하시기 전만 해도 집 뜰에 피어난 꽃을 보며 편안한 일상을 보내셨는데 벌써 3년째 병원 생활을 하시니 그 갑갑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오희옥 지사께서는 “용인 집 꽃은 피었니?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과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관장 정진영)은 만주망명 110돌을 맞이하여 모두 12회에 걸친 기획 보도를 진행하고 있다. 제4편은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만주로 향한 이들이 망명 과정에서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되짚어보는 시간이다. 백하 김대락 선생과 석주 이상룡 선생 일행은 만주로 망명하기 전에 집안 청년들의 치밀한 사전조사와 가산 처분 등 만반의 준비를 한 뒤 추풍령에서 서울로 가는 경부선 열차와 서울에서 의주로 가는 경의선 열차를 타고 만주로 향했다. 이들이 만주로 가는 길은 전혀 순탄치 않았다. 일제의 감시를 피해 일부 구간은 도보로 이동해야했고, 중국 지역에 퍼져있는 조선인들에게 대한 흉흉한 소문에 항상 불안을 느껴야만 했다. 특히 신의주에서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는 일은 목숨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혹독한 상황이었고, 풍토가 다른 지역에서 적응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백하 선생이 저술한 《서정록》에는 의주 백마역에 내려 신의주까지 걸어가는 역경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신의주에서 압록강에 도착하여 근처 객점에서 손자사위 황병일(黃炳日) 일행을 만나는데, 방금령(防禁令)에 걸려 국경을 넘지 못했다고 기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생존 여성애국지사 두분(민영주, 오희옥 지사) 가운데 한분인 민영주 (1923.08.15.~2021.04.30.) 지사께서 30일(금) 오전 4시 30분, 향년 97살로 우리 곁을 떠나셨다. 민영주 애국지사는 서울 종로 출생으로, 1940년 한국광복군 창설 시 광복군에 입대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내무부 부원과 중국 충칭방송국을 통한 심리작전 요원으로 활동했다. 또한 1944년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임시정부 주석판공실 서기로 근무했고, 1945년 광복군 제2지대에 복무하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 민영주 애국지사는 요양병원에서 임종을 맞았으며,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장례식장(202호)에 빈소가 마련됐다. 이어 2일(일) 오전 7시에 발인 후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6묘역에 안장될 예정이다.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 수여) 민영주 애국지사는 독립운동가인 아버지 민필호(1963. 독립장), 역시 여성독립운동가로 활약한 어머니 신창희(2018. 건국포장, 독립운동가 신규식 선생의 따님) 지사의 장녀이자 부부독립운동가로 활약한 김준엽(전 고려대학교 총장, 1990년 애국장) 지사가 남편이다. 민영주 애국지사가 작고함에 따라 생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장매성(1911~1993)ㆍ박옥련(1914~2004)ㆍ박현숙(1914~1981)ㆍ장경례(1913~1997) 선생을 ‘2021년 5월의 독립운동가’로 꼽았다고 밝혔다. 네 명의 선생은 1928년에 여성 항일운동단체로 비밀결사인 ‘소녀회’를 결성하였고,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하여 활동한 주요 인물들이다. 1928년 11월에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에 다니던 장매성, 박옥련, 장경례 등이 중심이 되어 광주사범학교 뒷산에 올라 여성 항일운동단체인 소녀회를 조직했고, 이듬해인 1929년 5월에는 장매성의 집에서 박현숙 등이 소녀회에 가입했다. 소녀회는 “여성을 남성의 압박에서, 한국인을 일본의 압박에서, 무산대중을 자본계급의 압박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라고 주장하며 여성 해방, 민족 해방, 계급 해방을 지향했다. 또한, 독서회 회원들이 만든 연합 단체인 ‘학생소비조합’이 출범할 때 30원을 출자하는 등 남학생들이 주도하는 독서회와 연대 활동도 펼쳤다. 특히, 1929년 11월 3일 광주역 앞에서 한국인과 일본인 학생 사이에 충돌인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났을 때, 소녀회원들은 “붕대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