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자유는 우리의 힘과 피로 쟁취하는 것이지 결코 남의 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의열단장 김원봉- 그렇다. 우리가 갈망했던 것은 자유였다. 그 자유는 힘과 피로 쟁취해서라도 얻어야 할 우리 겨레의 영원한 목표요, 드높은 이상이었다. ‘의열(義烈)의 고장 밀양’에서 어제(10일) ‘최수봉 의사 밀양경찰서 투탄 의거 100주년 기념, 밀양독립운동사 공훈선양 학술회의(이하 줄여서 ’학술회의)’가 열렸다. (사)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 주최, 국가보훈처, 초산김상윤선생기념사업회 등의 후원으로 밀양아리랑아트센터 소공연장에서 낮 2시부터 시작하여 6시가 넘어서 끝이 났다. 1부는 윤일선(사단법인 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의 대회사와 박일호 밀양시장의 축사가 간략하게 있었고 곧바로 학술회의가 시작되었다. 대부분 이런 행사의 경우 ‘1부 축사’가 장황하고 길어져 맥이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학술회의는 ‘2부 학술회의’ 위주로 진행되어 발표자들의 충분한 발표와 토론 그리고 참석자들의 질의응답으로 이어졌다.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1) 밀양지역 일제탄압기구와 투탄 의거(전성현, 동아대학교 교수), 2) 의열단 창단과정과 김상윤 의사의 반일투쟁(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일제의 식민지배에 맞서 대를 이어 자결로 항일정신을 일깨운 유도발ㆍ유신영 선생 부자를 2020년 11월의 독립운동가로 꼽았다. 유도발(1832.6.~1910.10. 음력)ㆍ유신영(1853.6.~1919.3.) 선생 부자는 풍산이 본관인 서애 유성룡의 10세, 11세 후손이다. 두 부자는 충효를 가업으로 삼아 경술국치와 광무황제 고종의 서거를 당해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아버지는 나라에 대해 의리를 실천했고 아들은 나라와 아버지에 대해 충효를 실천했다. 두 분의 자결은 일제의 식민지배에 맞선 항일투쟁의 하나로, 그 죽음은 개인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남은 이들의 항일정신을 일깨워 독립운동에 나서게 만드는 울림이 됐다. 먼저, 부친 유도발 선생은 1910년 8월 29일 일제에 의해 강제병합이 체결되자, 일제의 지배에 놓인 세상을 차마 살아갈 수 없다며 1910년 11월 11일 단식에 돌입했다. “종사가 망해 장차 남의 나라의 백성이 되겠으니 남은 해가 얼마 없는데 구차하게 살기를 도모하는 것은 욕된 일이 아닌가? 이후로는 다시 음식을 나에게 권하지 말라”는 유서와 함께 명정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는 ‘항일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 순국 제100돌 추모식’이 오는 30일(금) 아침 10시, 국립서울현충원(현충관)에서 열린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는 (사)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이사장 문영숙, 이하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리는 것으로, 당초 선생의 순국일인 4월 7일에서 코로나19로 추모식을 연기하여 진행하는 것이다. 기념식은 박삼득 국가보훈처장을 비롯해 최재형 선생의 4대손인 최 일리야씨 등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의례, 약전 봉독, 추모사, 장학증서 수여, 최재형 노래 등의 순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최재형 선생은 일제강점기 러시아 연해주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생계를 돕고 학교를 세웠으며, 러시아 정부가 지방정부 시장으로 추천할 만큼 한인사회의 대표적 지도자로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였다. 선생은 한인 동포들에게 한량없이 따뜻한 사랑을 베풀어 ‘페치카(러시아어로 ’난로‘)’로 불렸다. 이러한 까닭으로 러시아 우수리스크 최재형선생기념관 1층 입구에는 ‘페치카’가 놓여 있다. 이날 추모식에 이어 ‘최재형 상(賞)’ 시상식이 이어진다. 이번 시상은 올해 첫 번째로 진행하는 것으로, 지난해 3·1문화재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 이하 ‘보훈처’)는 일제하 부산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여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널리 알린 ‘박재혁 의사 부산경찰서 폭탄 투척 의거 제100돌 기념식’이 오는 28일(수) 아침 10시, 부산상공회의소(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는 (사)박재혁의사기념사업회(이사장 이경재) 주관으로 열리며, 코로나19로 참석인원이 축소된 가운데 박삼득 보훈처장을 비롯해 변성완 부산시장 권한대행, 김원웅 광복회장 그리고 출신학교 재학생과 기념사업회 회원 등 5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올해 기념식은 당초 의거일(9.14)에서 코로나19로 행사를 연기해 진행하는 것으로, 올해 6월에 설립된 (사)박재혁의사기념사업회가 의거 100돌을 맞아 부산시민과 학생이 참여하는 ‘기념음악회’, ‘특별기획전’도 열어 의사의 뜻을 함께 기억할 것이다. 박재혁 의사 주요 공적(공훈록 자료) □ 부산(釜山) 사람으로 부산진보통학교(釜山鎭普通學校)와 부산공립상업학교(釜山公立商業學校)를 졸업하고 부산와사전기회사 전차차장으로 있었고 왜관(倭館)에서 무역상회의 고용인으로 일하던 중 1917년 6월 주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白日靑天霹靂聲 푸른하늘 대낮에 벽력소리 진동하니 大州諸子魂膽驚 6대주(大州)의 많은 사람들 가슴이 뛰놀았다 英雄一怒奸雄斃 영웅 한번 성내니 간웅(奸雄)이 거꾸러졌네 獨立三呼祖國生 독립만세 세 번 부르니 우리조국 살았다. 위는 대한민국임시정부 법무총장과 외무총장 등을 지낸 신규식 선생이 안중근 의사의 거사를 보고 지은 시입니다. 오늘은 111년 전인 1909년 중국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가 동양평화를 깬 일본제국주의의 원흉 이등박문을 처단한 날이지요. 아침 9시 이등박문이 탄 열차가 하얼빈역에 도착했고, 잠시 뒤 그가 열차에서 내려 걸어갈 때 안 의사는 권총을 빼들고 이등박문을 향하여 4발의 총을 쏘았고, 4발 모두 명중했습니다. 안 의사는 일본 헌병이 그를 체포하려고 대들자 하늘을 향하여 "대한독립만세"를 크게 세 번 외쳤습니다. 거사 직후 안 의사는 하얼빈 내 일본영사관으로 잡혀갔다가 여순(旅順)에 있는 일본 감옥으로 이송되어 심문과 재판을 받았지요. 당당했던 안중근 의사는 공판정에서 의병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독립전쟁을 하여 적 이등박문을 죽였으니 이런 법정에서 신문을 받을 이유가 없다 하여 재판을 거부하기도 하였지요. 이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는 「안중근 의사 의거 제111주년 기념식」이 오는 26일(월) 아침 10시, 안중근의사기념관(강당)에서 열린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는 (사)안중근의사숭모회(이사장 김황식) 주관으로 진행되며,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여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 의지를 만천하에 알린 안 의사의 의거를 기억하기 위해 연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로 외부인사 초청 없이 숭모회 임원과 안 의사 유족 등이 참석하는 자체 행사로 진행되며, 의거의 역사적 의미를 알리기 위해 온라인 중계로 숭모회 누리집(www.patriot.or.kr)을 통해 비대면으로 누구나 기념식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아울러, 기념식은 약전 봉독, ‘의거의 이유’ 낭독, 기념사, 장학금 전달식, 기념공연, 만세삼창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안중근 의사 주요 공적 □ 안중근 의사(1879.9.2.∼1910.3.26.)는 황해도 신천 사람으로, 1905년 을사늑약 뒤 중국 상해로 건너가 국권 회복의 길을 강구하였으며, 부친상을 당하고 돌아와서는 사재(私財)를 털어 삼흥학교(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國破君亡社稷傾(국파군망사직경) 나라는 망하고 임금도 죽어 사직은 기울었는데 包羞忍死至今生(포수인사지금생) 부끄럼 가득 안고 죽지 못해 지금껏 살아있었네 老身尙有沖霄志(노신상유충소지) 몸은 늙었지만 아직 하늘을 찌를 뜻이 남아있으니 一擧雄飛萬里行(일거웅비만리행) 한 번 날아올라 만리 길을 떠나노라 한일합방이 되면서 일제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았던 동농 김가진(1846~1922) 선생이 1919년 10월 무렵 상해로 떠나면서 쓴 시 ‘上海發行日口號(상해로 떠나는 날에)’입니다. 일제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았다고 하면 얼른 친일파가 떠오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농은 조선의 마지막 대신이었기에 일제의 조선귀족령에 따라 일방적으로 작위를 받았던 것이지요. 그 대신 동농은 연금 받는 것은 단호히 거부하였습니다. 위 시에서 보듯이 동농은 망해버린 나라의 대신으로서 일제 치하를 살아가는 것을 치욕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던 그에게 3.1만세운동 뒤 대동단이 찾아옵니다. 대동단은 3.1만세운동 직후인 1919년 3월 말 무렵 3.1 운동에 자극을 받아 전협, 최익환 등이 주동이 되어 만든 독립단체로 이들은 동농에게 대동단 총재를 맡아달라고 요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는 한국독립군의 중국 동북지역 3대 대첩인 봉오동ㆍ청산리ㆍ대전자령 전투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한국독립군 3대 대첩 제100돌 기념식」이 오는 21일(수) 오전 11시, 전쟁기념관(뮤지엄웨딩홀)에서 열린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는 (사)한국광복군동지회(회장 김영관) 주관으로 진행되며,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후 간도 지방 등 동북 3성으로 이주한 민족지도자와 의병, 백성들로 구성된 한국독립군이 일본군에 맞서 크게 승리했던 3대 독립전쟁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기 위해 열린다. 기념식은 서울지방보훈청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와 독립운동 관련 단체장, 회원과 시민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약사보고, 기념사, 축사, 독립군가 합창, 만세삼창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한국독립군의 3대 대첩인 봉오동 전투ㆍ청산리 전투ㆍ대전자령 전투는 국권 상실 뒤에 간도 지방 등 동북 3성으로 이주한 민족 지도자와 의병, 백성들로 구성된 한국독립군이 일본군에 맞서 크게 승리한 독립전쟁이다. 3대 대첩은 무기와 장비는 물론 훈련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독립을 향한 불굴의 투혼으로 일본군에 대승을 거두었다. 이를 통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 아래 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박영희(1896.12~1930) 선생을 ’2020년 10월의 독립운동가‘로 꼽았다. 선생은 신흥무관학교 교관, 북로군정서 학도단장 등을 역임하면서 독립전쟁의 영웅들을 배출했으며, 김좌진 장군의 부관으로 청산리전투에 참여하여 전투를 승리로 이끈 숨은 주역으로 민족의 교관ㆍ군사 전략가다. 선생은 충청남도 부여군 출신으로 1913년 휘문의숙에서 신학문을 배우던 중 은사인 이세영을 따라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에 입교하여 군사 지식을 배웠으며, 졸업과 동시에 교관으로 임명되어 독립군 양성에 힘썼다. 1920년에는 북로군정서의 사관연성소 학도단장과 김좌진 장군의 부관으로 일하면서 독립전쟁의 영웅들을 배출하는 한편 청산리 전투에 참전하였다. 한편, 북로군정서는 사관연성소 출신으로 이루어진 만주 독립군 부대 가운데 가장 훈련이 잘된 정예부대로, 1920년 10월 21일부터 26일까지 만주 길림성 화룡현 청산리 지역에서 일제와 벌인 전투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뒀다. 또한, 청산리전투는 일본군의 간도 침입 작전을 완전히 차단해 만주지방에서 독립운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했으며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추석, 송편, 팥떡, 콩떡, 강남콩.... 생존 여성독립운동가 오희옥 지사님은 한가위를 앞두고 병실을 찾은 기자에게 이런 낱말들을 써주셨다. 뇌경색으로 쓰러지셔서 병원에 입원해 계신지도 어느새 2년 6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병문안 갈 때마다 얼마나 답답하실까 싶은 마음에 안쓰럽기만 하다. 더군다나 '코로나19'로 면회조차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더욱 그렇다. 더욱이 요즘은 주말 면회도 안되는 상황이라 평일인 어제 (29일) 화요일 오후 4시 무렵 병원을 찾았다. 마침 물리치료를 마치고 병원 복도로 나오신 오희옥 지사님을 뵈니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오희옥 지사님도 반가운 표시로 연신 손을 흔들어 주시는 모습에서 안도감을 느껴본다. 연세(95세)가 있으신 만큼 늘 건강에 신경이 쓰였는데 막상 뵈니 더 나빠지시지 않는 듯하여 기뻤다. 아드님과 함께 오희옥 지사님을 휠체어에 태워 병원 뜰로 잠시 나왔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가을, 병원 뜰의 나무들은 막 가을옷을 갈아입으려는 듯 초록물을 벗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가을 나무들을 가리키자 오희옥 지사님도 계절의 변화를 느끼시는지 물끄러미 나무들을 바라다보신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