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이한영 기자] 문화체육관광부(장관 김종덕) 해외문화홍보원(원장 원용기)은 해외 거주 유학생 또는 일반인, 국내외 외국인 대학생 등을 대상으로 9월 29일부터 10월 17일까지 우리나라와 관련된 오류 발굴에 참여할 제2기 오류 시정 모니터단을 모집한다. 한국 역사, 문화 등에 대한 기본 소양과 책임감을 가지고 영어 또는 현지 외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국외 거주 유학생이나 교포' 또는 '한국어가 가능한 국내외 외국인 학생'이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으며 한국 관련 전공자나 동아리 블로그 운영자는 우대 대상이 된다. 제2기 오류 시정 모니터단으로 선발되면 해외 주요 웹 사이트는 물론 도서관이나 미술관 등 국외 현지에서 발견되는 한국 관련 역사나 문화, 영토, 국가 이미지 등에서 발견되는 잘못된 설명이나 오류에 대해 직접 시정 활동을 하게 된다. 또한 선택 사항으로 '내가 찾은 한국의 매력'이란 주제로 에세이나 영상 등을 제출하면 추가 활동 점수를 받아 우수 활동자로 선정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모니터단 전원에게는 임명장과 기념품이 제공되며 우수 활동자에게는 해외문화홍보원장 표창과 소정의 상금이 수여된다. 해외문화홍보원 관계자는 지난
[그린경제/얼레빗=이한영 기자] 21세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개천절은 과연 단군 할아버지에 얽힌 화석화된 옛날이야기 또는 하루를 쉴 수 있는 공휴일을 넘어서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KTV(원장 김관상)에서는 오는 10월 3일 개천절을 맞아, 석학들을 초빙해 단군신화와 홍익인간 정신의 개념과 그 현재적 의미를 통해 개천절의 살아있는 의의를 되새겨보는 특집 프로그램들을 방송한다. 인문학열전 단군신화와 홍익인간 10월 2일(목) 낮 4시 방송 ▲ 인문학열전_정영훈 교수 2일 방송되는 인문학열전(연출 김진웅, 진행 홍사종) 단군신화와 홍익인간 편에선 한국학중앙연구원 사회과학부 정영훈 교수를 초대해 단군 건국신화와 홍익인간의 의미를 들어본다. 한국사 속에서 면면히 전개돼온 단군민족주의에 대해 알아보고, 개천절이 국경일로 제정된 과정과 함께 단군 건국신화와 홍익인간 정신이 2014년 대한민국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짚어본다. 단군민족주의 연구가이자 단군과 고조선을 주제로 북한 학계와의 학술교류를 주도해온 정영훈 교수는 주요 논저로 《단군과 근대 한국민족운동》, 《북한의 민족문화유산 정책》, 《해방 후의 중도파와 통일운동》 등이 있다. 대한
[그린경제/얼레빗=이한영 기자] 오는 10월 1일(수) 낮 12시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 일본 기독교 목사단이 제1146차 수요시위를 찾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직접 사죄의 마음을 표현할 예정이다. 이들은 일본군의 성노예로 희생당한 피해자들을 향한 위로와 사죄의 뜻을 직접 전하고 싶어 한국방문과 수요시위 참가를 결의하고 행동에 나섰다. 일본 내 원로 목사들로 구성된 이들은 직접 준비한 사과문을 수요시위에서 낭독하며, 이와 별도로 구 일본군 출신 목사인 무토 키요시(87세)씨의 사과문도 전달할 예정이다. 현재 후쿠시네마현에서 살고 있는 무토 목사는 17세 때, 자원입대해 혈서를 쓰고 자폭 특공대원으로 복무하면서 적의 배에 부딪쳐 자폭하는 훈련을 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 774차 수요시위 모 그러나 이후 일본의 과거사와 자신의 이 같은 행동에 늘 죄스러움을 안고 살았던 그는 죽기 전에 반드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을 찾아 직접 사죄하고 싶다는 뜻을 이루고자 이번 수요시위 참가를 준비해다. 하지만, 최근 수술 후 거동이 불가능해진 탓에 안타깝게도 수요시위를 찾지 못하고 다른 목사들에게 직접 쓴 사과문을 전달했다. 이와 함께 간호부 출신의 한
[그린경제/얼레빗=중국 연길 이윤옥 기자] 금은방의 반지 만드는 곳 구두 닦는 집 숙식이란 뜻은 고기종류의 내장류를 요리해서 파는 것을 말함 액세서리를 파는 집으로 장식의 세계라는 뜻이다 옷궤란 옷장을 말한다 토집이란 시골을 의미하며 시골집에서 만든 떡을 말함 중국에서는 빵, 죽, 만두를 잘 먹는다 목이버섯을 귀버섯이라 한다 연길 시내를 돌아다니며 참 재미난 간판을 찍어 보았다. 같은 한글을 쓰면서도 이렇게 재미나게 표현할까 싶어 찍은 것이지만 카메라에 담지 못한 것도 많다. 목이(木耳) 버섯을 귀버섯이라 부르는 것도 재미있는데 이 사진은 연길시내에서 용정의 윤동주 생가까지 택시를 전세내어 가는 도중에 눈에 띄어 차를 잠시 세우고 찍은 것이다. 중국이지만 자신의 말글을 중국어 보다 우선하고 있는동포들의 모습이 보기 좋다.
[우리문화신문 = 중국 연길 이윤옥 기자] “젊은이들은 모두 돈 벌러 한국으로 나갔지요. 약자(弱子)와 노인 분들만 남았어요. 저도 나가지 못해 남았지만 지금은 살만해요. 돈 벌러 나간 조선족들 땅을 제가 다 맡아서 농사도 짓고 한족에게 빌려주기도 해서 이제는 걱정 없이 살지요” ▲연변 용정시 지신향 명동촌에 있는 윤동주 시인 생가, 왼쪽이 대문이고 돌비석은 담장으로 꾸며져 있다. ▲1993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해 놓은 생가 ▲생가에는 작은 방이 두어개 있는데 입구 방에초라한 모습으로 이렇게 꾸며져 있다. 올해로 69주기다. 어제 29일 용정시 지신향 명동촌의 ‘윤동주 생가’를 찾아갔을 때 “윤동주생가”는 대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용정시내에서 택시로 30분 거리인 윤동주생가는 왕복 60위안을 주고 전세 낸 택시로 갔는데 생가에 도착해보니 그만 나무 대문이 잠겨있는 것이었다. 대문 앞에서 서성이다 보니 대문 한켠에 관리인 전화번호가 적혀 있기에 전화를 거니 밭에서 일하다가 나왔다며 단숨에 아주머니가 한 분 달려 나왔다. 그만큼 찾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이야기다. ▲아래 보이는 집이 생가이며 집 앞에는 너른 들판이 있고 멀리 산이 있는 이곳에서 윤동주 시
[그린경제/ 얼레빗 = 전수희 기자]강기동 선생은 서울 명동에서 출생하여 경기도 부평군 수탄면 오류동으로 이사하였는데 자세한 사항은 알려져 있지 않다. 1909년 1월부터 1911년 2월까지 약 2년여에 걸쳐 반일 투쟁을 전개하다 일제에 의해 총살 순국한 선생은 의병에 투신하기 이전에 의병을 진압하는 일본 헌병의 보조원이었다. 헌병보조원은 1908년 6월 도입된 것으로 선생은 일본어에 능통한 것을 계기로 헌병보조원으로 발탁되어 경기도 양주군 고안헌병분견소에서 근무하게 되었다.1909년 고안헌병분견소에 의병들이 수감되고 의병의 실상을 접한 선생은 자신도 의병에 투신할 것을 결심하고 1909년 1월 15일 옥문을 부수고 길인식 등 2명의 의병을 탈주시킨 후 총과 탄환을 탈취하여 의병장 이은찬이 이끄는 창의원수부에 투신, 의병으로서 대일항장의 대열에 동참하였다. 창의원수부는 1909년 1월 한 달 동안 포천 양주지방의 산악을 배경으로 약 27회에 걸친 반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선생은 헌병보조원 시절의 정보를 바탕으로 효율적 군자금 확보책과 일본군대 헌병 경찰의 정보를 제공하여 창의원수부의 반일투쟁에 많은 공헌을 하였고 이러한 공로로 투신한 지 1개월만에 의병장
[한국문화신문 = 중국 연변 이윤옥 기자] 9월27일 아침 9시, 흑룡강성 목단강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발해 동경성(渤海 東京城)으로 가는 버스는 전날 수분하( 綏芬河, 쑤이펀)로 가던 20인승 승합차 보다는 조금 큰 차였지만 낡고 덜덜 거리기는 마찬가지였다. 버스터미널에 걸린 발해 동경성행 (渤海 東京城行)이란 팻말만 보아도 가슴이 울컥한다. 내가 한국인이라서 그럴 것이다. 함께 이번 여행을 하는 일본인 도다이쿠코 작가는 나와는 다른 감정일 것으로 기자는 애써 묻지 않았다. ▲ 발해궁성터 안의 발해박물관 내부 전시장 물론 그녀는 20대 처녀시절에 발해터를 둘러 볼 정도로 중국 속의 조선역사에 대해 깊은 애정과 역사의식을 지닌 사람이었다. 차창 밖은 온통 옥수수 밭이었다. 가도가도 끝없이 이어지는 벌판이었다. 더러는 고구마도 심어 들판에서는 한창 고구마 수확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또한 담배농사와 파밭도 간간이 이어졌다. ▲ 발해궁성터임을 알리는 중국정부의 돌표지석 목단강에서 발해 동경성 (渤海 東京城) 까지는 버스로 약 2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옥수수, 고구마, 담배, 파로 이어지는 벌판을 지나자 이제는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는 논이 나타났
[우리문화신문 = 중국 하얼빈 이윤옥 기자] “이 화면은 수용자를 묶어 놓고 팔목을 자르는 모습인데요. 그냥 자르는 것이 아니라 팔에 칼집을 넣은 뒤 자르는 모습입니다.” 중국인 안내원의 말은 격앙되어 있었고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화면 속 소녀의 팔은 두 동강이 났다. 칼집을 넣은 팔목에서는 피가 낭자하게 흘러 나왔다. 이어서 수용자인 앳된 소녀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좁은 전시관 안을 가득 메웠다. 731부대 전시관을 찾은 중국인 관람객들의 비명소리도 동시에 들리는 듯했다. ▲ 여성 수용자를 실험대에 올려놓고 생채 실험을 하는 장면, 산채로 껍질을 벗기거나, 강제 임신, 낙태를 시키는 실험을 하는 등 그 만행은 입에 담을 수 없다. ▲ 영하에서 산 사람을 얼려보는 실험 모습 재현 이것은 9월 26일 기자가 찾은 중국 하얼빈시 평방에 자리한 731부대 전시관 안의 모습이다. “수용자들 가운데는 독립운동을 하다 잡힌 조선인도 많았습니다. 이곳 731부대로 잡혀온 사람들은 살아나간 사람이 없습니다. ” 안내원은 끊임없이 당시 731부대 안에서 벌어진 잔인하고 끔찍한 생체실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고 전시관 벽면 가득 천인공로할 사진과 당시 상황을 재현한 모습이
[우리문화신문 = 중국 하얼빈 이윤옥 기자] “네 맞아요. 이곳이 외국인 묘지가 있던 터입니다.” 남자현 애국지사가 묻혔던 무덤을 찾아 찾아간 것은 어제 9월 25일 오후로 현재 이곳은 하얼빈 문화공원(文化公園)으로 바뀌어 높다란 관람차가 돌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왕봉의 (王鳳儀, 하얼빈공전대학 수학과 교수, 81살) 씨는 당시 무덤자리를 가리키며 친절한 안내를 해주었다. 왼손 무명지 두 마디를 잘라 조선이 독립을 원한다는 “조선독립원(朝鮮獨立願)”이란 혈서와 자른 손가락을 흰 천에 싸서 당시 하얼빈에 와 있던 국제연맹 조사단에게 보내어 조선의 독립 의지를 호소하던 남자현 애국지사 (1872∼1933) 가 이곳 하얼빈에서 독립운동을 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82년 전인 1932년의 일이다. ▲ 남자현 애국지사가 묻혔던 첫번째 무덤 (하얼빈 남강 외국인 무덤 앞에서 도다이쿠코 작가와 기자)이 있던 자리로 1930년 쯤 이장되었다. 1932년 9월 국제연맹조사단(단장 리틀경)이 침략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하얼빈에 파견된다는 소식을 접한 남자현 애국지사는 일제의 만행을 조사단에게 직접 호소하고 조선인의 독립의지를 알리기 위해 혈서를 쓰면서 까지 이러한 일을 감행한
[그린경제/얼레빗=한성훈 기자]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은 임진왜란 때 순국한 칠백의사의 호국정신을 기리는 칠백의사(七百義士) 순의제향(殉義祭享) 행사를 오는 23일 오후 3시 충청남도 금산군에 있는 칠백의총에서 한다. ▲ 칠백의총 전경 올해로 제422주기를 맞는 이번 제향 행사는 문화재청장을 비롯하여 지역 국회의원, 충남도지사, 금산군수와 칠백의사 후손 등 1,000여 명이 참석한다. 이번 행사는 초헌관(칠백의총관리소장)의 분향과 초헌례(初獻禮), 축관(祝官)의 축문 낭독, 아헌관 헌작의 아헌례(亞獻禮), 종헌관 헌작의 종헌례(終獻禮)와 헌관 재배, 문화재청장의 헌화(獻花, 대통령 명의)와 분향(焚香) 순으로 진행된다. 제향행제(祭享行祭) 뒤 의총참배가 이어지며, 다양한 부대행사를 통해 칠백의사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기리고 넋을 추모하게 된다. 부대행사로 전통예술공연(살풀이춤), 다과회, 전통차 시음회, 활쏘기 체험프로그램과 시연 따위가 진행된다. 아울러 육군 제32사단 군악대의 연주로 금산 지역 초등학생들로 구성된 소년소녀합창단이 칠백의총 노래 등을 합창한다. ▲ 2002년 칠백의사(七百義士) 순의제향(殉義祭享) 모습 칠백의총은 임진왜란 당시 중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