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廁鼠數驚社鼠疑(측서수경사서의) 측간 쥐는 자주 놀라고 사당 쥐는 의심이 많아 安身未若官倉嬉(안신미약관창희) 관아의 창고에서 편안하고 즐겁게 노는 게 으뜸이네 志須滿腹更無事(지수만복갱무사) 하지만, 배불리 먹고 또 무사하길 바라는데 地塌天傾身始危(지탑천경신시위) 땅 꺼지고 하늘 기울면 제 몸도 위태로워짐을 모르네 이는 백사 이항복(李恒福)의 한시 「삼물음(三物吟)」 곧 올빼미ㆍ쥐ㆍ매미를 노래한 것 가운데 쥐(鼠-서)에 관한 한시입니다. 백사는 뒷간에 사는 쥐는 사람 때문에 자주 놀라고, 깨끗한 사당에 사는 쥐는 의심이 많아서 역시 불안하지만, 이와 달리 관아 창고에 사는 쥐는 편하고 즐겁게 논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관아의 창고가 무너진다면 제 몸도 위태로워진다는 것을 모른다며, 백사는 따끔한 충고를 합니다. 뒷간 곧 시골에 묻혀 사는 사람이나, 사당 곧 임금 곁에서 아첨하면서 사는 사람보다는 그저 단순한 벼슬아치로 사는 것이 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벼슬아치 삶도 늘 조심하며 살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그곳이 무너져 함께 죽을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시에서는 백사 이항복의 철학이 물씬 묻어납니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강원도 전역 강추위..향로봉 아침 최저기온 영하 29.1도”, “북극발 한파에 전국 '꽁꽁'…내일도 강추위”, “이기기 힘든 강추위에..생업도 일상도 피해”, “전국 꽁꽁 얼어붙는다…강추위에 찬바람까지” 등 요즘 뉴스는 온통 강추위로 도배되고 있습니다. 특히 강추위 속에 수도가 동파되어 큰 고통을 겪는 사람이 많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한강은 2년 만에 꽁꽁 얼어붙었다고 호들갑을 떨기도 했지요. 그런데 1933년 1월 14일 동아일보에는 “중강진 혹한기록을 돌파, 금일 영하 44도”란 기사가 눈에 띕니다. “경성의 금13일 최저기온은 어제보다 좀 더 떨어져 영하 18도 2분을 보이고 있으며, 조선에 제일 추운 국경 중강진은 어제는 43도 여를 보이더니 금13일 아침에 이르러 44도로 뚝 떨어져 조선 최저기록인 중강진의 영하 41도 6부(1922년 1월 18일)를 돌파하기 2도 41분으로 기온 최저신기록을 지었다.” 이제 우리의 강추위는 1933년 중강진의 강추위에는 견줄 바가 아닙니다. 물론 어려운 이들에겐 코로나19의 고통 속에서 이런 강추위를 견뎌내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이지만 그런 강추위에 속에서도 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책가도(冊架圖)’란 책꽂이를 통째로 옮겨 그린 듯한 그림을 말하는데 책을 비롯하여 꽃병과 자명종 시계 등 당시의 여러 귀중품을 함께 그렸으며, 우리말로는 책거리라고도 합니다. 책가도는 당시로써는 서양화에서나 볼 수 있던 ‘투시도법’과 ‘명암법’을 응용해서 그려 조선 전통적 화법으로 그린 그림에 견줘 공간감과 입체감이 훨씬 살아 있습니다. 서민들의 풍속을 즐겨 그린 김홍도(金弘道)가 책가도를 잘 그렸다고 하며, 이윤민(李潤民)ㆍ이형록(李亨祿) 부자(父子) 같은 화원도 책가도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조선시대 때는 책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고 책에 관한 관심도 높았는데, 이 책가도는 당시의 선비들이 책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특히 책 읽기를 즐겼던 정조임금은 어좌 뒤에 꼭 있는 일월오봉도 대신 책가도를 배치하였다고 하며 “책을 즐겨 읽지만 일이 많아 책을 볼 시간이 없을 때는 책가도를 보며 마음을 푼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이형록의 <책가도>에는 재미난 것이 있지요. 대부분 궁중회화와 민화에는 화가의 낙관이 없어 누가 그린 것인지 알 수 없는데 이 그림에는 도장함과 여러 개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나는 적성(赤誠, 참된 정성)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어 적국의 괴수(傀首, 우두머리)를 도륙하기로 맹세하나이다." 이는 이봉창 의사가 의거를 하러 떠나기 전 한 맹세입니다. 오늘은 이봉창 의사가 신년 관병식(觀兵式)을 마치고 돌아가던 일와 히로히토를 겨냥하여 황거 앞 사쿠라다문(櫻田門)에서 수류탄을 던진 날이지요. 이날 거사는 뜻을 이루지 못했으나 선생의 장거는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신격화해 놓은 일왕의 행차에, 그것도 일왕이 사는 황거 앞에서 폭탄을 던져 처단하려 했던 일은 한국 독립운동의 강인성과 한국민의 지속적인 저항성을 세계에 과시한 것입니다. 또 이 일로 인해 일본 핵심 내각은 사퇴하였으며, 경시청장부터 고위직은 다 옷을 벗었습니다. 또한, 일왕 테러에 대한 소식으로 중국 내 항일운동이 불붙기 시작했지요. 이봉창 의사는 1932년 9월 30일 아침 9시 350명의 경찰이 겹겹이 둘러싼 가운데 일본 도쿄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10월 10일 이치가야(市谷) 형무소에서 순국의 길을 걸었지요. 이렇게 조국의 독립을 위해 바친 이봉창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여기 아름다운 빛깔의 유리그릇이 있습니다. 바로 황남대총 등 신라 능묘에서 출토된 것들이지요. 이들은 세계 다른 지역의 유리그릇과 견줘봐도 보기 드물게 아름다우며 다채로운 빛깔과 모양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최근 조사에서는 이 유리그릇들이 이집트, 시리아-팔레스타인 지역, 코카서스 산맥 이남 지역, 중앙아시아 등 다양한 곳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제기되었습니다. 유라시아를 가로지르는 육로와 바닷길을 통해 신라로 전해진 유리그릇은 신라인의 국제적 감각, 높은 심미안, 특별한 취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는 평가입니다.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에서는 지난해 12월 8일부터 오는 3월 1일까지 「오색영롱, 한국 고대 유리와 신라」 특별전을 열고 있습니다. 이 특별전은 철기시대에서 남북국시대(통일신라)에 이르는 유리 제품 18,000여 점을 선보입니다. 전시품에는 경주 황남대총 남분 출토 봉황 모양 유리병(국보 제193호)을 비롯한 국보 3건과 보물 8건이 포함되어 있지요. 더불어 이번 전시는 고대 유리의 유형 가운데서 주류를 이루는 구슬의 무궁무진한 변주를 선보입니다. 각양각색의 단색 유리구슬 말고도 상감이나 금으로 장식하여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여기 바위를 뚫고 곧게 뻗은 굵직한 소나무와 오른쪽으로 급하게 휘어진 아무런 꾸밈없는 두 그루의 소나무가 하얗게 눈을 맞고 서 있습니다. 바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조선후기 문인서화가 이인상(1710~1760)의 “눈내린 소나무 그림” 곧 <설송도(雪松圖)>입니다. 이 그림의 소나무들은 사람의 감정이라곤 눈곱만큼도 끼어들 여지가 없는 그 자체로 온전한 모습입니다. 더구나 이 소나무들은 예리하게 각이 진 바위들만 있고 흙 한 줌 보이지 않는 비참하리만큼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강인한 의지로 뿌리를 땅에 굳게 박고 있지요. 조선소나무는 물론 이렇게 곧게 뻗은 금강송이 있는가 하면 구부정하지만, 운치가 있는 소나무도 있습니다. 어느 것이 더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곧은 것도 굽은 것도 함께 어우러진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이 그림을 그린 이인상은 원리원칙을 강조해서 꽉 막혀 보인 사람이었지만 그의 절친한 벗 황경원은 이인상의 무덤 비석에 쓴 글에서 “세상 이치를 말할 때 순리에 어긋나지 않았는데, 그림에는 깊고 그윽함이 있고 곧음을 예술로 승화했다.”라고 말했지요. 이인상은 증조부가 영의정을 지낸 당대 명문가 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스물셋째인 소한(小寒)입니다. 원래 절기상으로 보면 대한(大寒)이 가장 추울 때지만 실제는 소한이 한해 가운데 가장 추운데 절기의 기준이 중국 화북지방에 맞춰졌기 때문에 다르지요. 그래서 이때 전해지는 속담을 보면 “대한이 소한 집에 가서 얼어 죽는다.”, “소한 추위는 꾸어다가도 한다.”, “소한에 얼어 죽은 사람은 있어도 대한에 얼어 죽은 사람은 없다.”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때쯤이면 추위가 절정에 달했지요. 아침에 세수하고 방에 들어가려고 문고리를 당기면 손에 문고리가 짝 달라붙어 손이 찢어지는 듯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저녁에 구들장이 설설 끓을 정도로 아궁이에 불을 때 두었지만 새벽이면 구들장이 싸늘하게 식었고, 문틈으로 들어오는 황소바람에 몸을 새우처럼 웅크리고 자게 됩니다. 이때 일어나 보면 자리끼로 떠다 놓은 물사발이 꽁꽁 얼어있고 윗목에 있던 걸레는 돌덩이처럼 굳어있었습니다. 이렇게 추운 겨울나기에 도움이 되는 것에는 한방차와 신맛이 나는 과일이 있지요. 한방에서 ‘총백’이라고 부르는 ‘파뿌리’를 물에 넣고 끓여 마시면 땀을 내주고 기침, 가래를 삭여주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2021년 올해는 신축년 소띠해입니다. 그것도 우리 겨레가 좋아하는 빛깔 흰소입니다. 소는 십이지의 두 번째 동물로, 축시(丑時) 곧 새벽 1시에서 3시를 가리킵니다. 소는 느린 걸음과 큰 몸짓을 하고, 힘든 일도 묵묵히 해내는 모습에서 우리는 우직함과 편안함, 근면, 자기희생을 떠올립니다. 또 목동이 소를 타고 가는 그림에서는 세속을 벗어난 여유로움이 느껴지고, 문학작품에서는 소가 고향의 향수를 떠올리게 합니다. 농경사회에서 소는 식구로 여길 만큼 소중하였지요. 필요한 노동력이자 운송 수단이었고, 목돈을 마련하는 비상 금고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특히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소를 팔아 대학 등록금을 낸다는 말이 있었는데 농촌진흥청이 밝힌 바에 따르면 1978년 한우 1마리 가격은 약 58만 원이었으며, 국립대학교 연간 등록금은 5만 ~ 11만 원 정도로 소 한 마리를 팔면 자녀 한 명의 4년간 대학 등록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요즈음은 한우 산지가격이 약 542만 원이라고 하니 소값으로 약 670만 원 하는 1년 대학 등록금도 감당하기는 어려워졌지요. 그리고 우리는 한우고기가 수입 쇠고기에 비교해 맛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양력으로 2020년 경자년(庚子年)의 마지막 날 섣달그믐 곧 ‘설밑’입니다. 전통적인 섣달그믐이야 음력으로 따져야 하겠지만, 일단 섣달그믐을 달리 이르는 말로 ‘눈썹세는날’이란 별명도 있습니다. 조선후기 권용정(權用正)이 쓴 《한양세시기(漢陽歲時記)》에 보면 “어린아이들에게 겁주기를 ‘섣달그믐날 밤에 잠을 자지 말아야 한다. 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라고 했는데, 아이들 가운데는 이 말을 그대로 믿어서 새벽이 될 때까지 잠을 자지 않는 일도 있다.”라고 했지요. 또 19세기 중엽 김형수(金逈洙)가 쓴 《소당풍속시(嘯堂風俗詩)》에도 “나이 더한 늙은이는 술로써 위안 삼고 눈썹 셀까? 어린아이 밤새도록 잠 못 자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섣달그믐날은 “눈썹세는날”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예전 우리 겨레는 음력 섣달그믐날 밤에는 방이나 마루, 부엌, 다락, 뒷간, 외양간에 불을 밝게 밝히고 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그 유래는 도교(道敎)의 경신수세(庚申守歲)에서 왔는데 도교에서는 60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경신일이 되면 사람 몸에 기생하던 삼시충(三尸蟲)이 사람이 잠든 사이에 몸을 빠져나와서 옥황상제에게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