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부터는 UCLA 김동석(1944~ ) 교수의 국악사랑 이야기를 하고 있다. 미국 이민 50여 년 동안 한국의 전통음악과 춤을 미국 땅에 심어 왔다는 이야기, 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UCLA)의 교수로 한국음악을 강의해 왔고, 미국의 소수민족 음악모존하기 위한 더피재단(Durfee Foundation)의 수상자로 뽑히기도 하였으며, <재미국악원>의 원장으로 미국 내에서 국악 활동을 주도해 왔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함경도 산골마을에서 태어났으나, 경기도 양평에서 자랐고, 서울 전농동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국악사양성소>에 입학하여 국악공부를 시작하였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가야금을 지도해준 분은 이왕직아악부 출신의 김영윤 명인이었다. 그리고 산조는 황병기에게 배웠다. 그는 가야금 말고도 특별히 고전무용에 관심이 많았던 학생이었다. 학교에서는 다른 학생들과 함께 궁중무용의 대가 김보남 명인에게 배우고, 수업이 끝난 후에는 묵정동에 있던 김백봉 무용연구소에 나가서 특별 지도를 받았을 정도였다. 허경자, 김매자, 정승희 등, 현재 무용계 원로들이 당시에는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마츠리(축제)의 나라 일본, 그 가운데서도 교토의 3대 마츠리는 백미다. 5월 15일의 아오이마츠리(葵祭), 7월 17일의 기온마츠리(祇園祭), 10월 22일의 시대마츠리(時代祭)를 가리켜 교토의 3대 마츠리라고 한다. 코로나19가 없었더라면 지금 천년 고도 교토는 10월 22일 여는하는 시대마츠리 준비로 부산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도 코로나19로 올해 3대 마츠리는 모두 중지되고 말았다. 1년 내내 마츠리 준비를 하고, 마츠리로 전 세계 사람을 불러모으는 교토도 코로나19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 지금 일본의 수도는 도쿄(東京)이지만 고대 일본의 수도는 나라(奈良)였다. 그러다가 서기 794년 환무왕(桓武天皇)은 수도를 교토(京都)로 옮겼다. 올해로 교토 천도 1226년째다. 명치정부는 1895년 수도를 교토에서 도쿄로 옮겼는데 그 기념으로 해마다 시대마츠리(時代祭)를 열었다. 시대마츠리의 특징은 화려한 고대 의상을 입은 사람들의 행진이다. 시대로는 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부터 메이지시대(明治時代, 1868)까지의 복장을 갖춰 입은 출연자들이 교토 시내를 두어 시간 행진하는 데 이 광경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많은 사람이 몰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까지는 일제 침략기, 전통가곡의 맥을 이어 온 하규일 명인과 경서도 민요를 전승시켜 온 벽파 이창배 명인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하규일은 아악부와 정악전습소에서 후학들을 지도해 오는 한편, 권번에서도 많은 기녀에게 가곡을 가르쳤다는 이야기, 그 가운데 김진향(金珍香)은 《선가 하규일선생 약전》을 썼다는 이야기, 벽파는 경ㆍ서도 소리와 이론에 밝았던 민요계의 큰 사범이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부터는 한국의 전통음악과 춤을 미국 땅에 심어 온 김동석(1944~ ) 교수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대학에서는 Donald Kim으로 알려져 있고, Don Kim으로 줄여 부르기도 한다. 김 교수는 미국의 명문대학교, 곧 UCLA (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에서 한국음악을 강의해 왔고, 미국 서부지역에서는 한국의 전통음악과 춤의 대부로 알려진 예술인이다. 그는 얼마 전, 미국의 소수민족들이 지닌 예술성 높고, 학술적 값어치가 있는 음악을 보존하기 위해 소수민족 음악인들에게 거액의 기부금을 제공해 주고, 연구 사업을 후원해 주는 ‘Durfee Foundation’의 수상자로 결정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조선사회에서는 “처가와 변소는 멀어야 좋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사돈 사이 왕래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때는 여성 특히 며느리의 나들이는 생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특히 예전 전통사회에서는 집안일은 물론 농사까지 함께 해야 했기에 며느리들이 며칠씩 집을 비우며 친정집에 갈 수는 없는 일이었지요. 그래서 한가위가 지난 뒤 시집간 딸과 친정어머니가 중간 지점을 정하고, 음식을 장만하여 만나서 한나절 동안 회포를 풀었던 풍습이 있었는데 이를 ‘반보기'라고 했습니다. 반보기는 다른 말로 ’중로상봉(中路相逢)‘ 또는 ’중로보기(中路-)‘라고도 했는데 중도에서 만났으므로 회포를 다 풀지 못하고 반만 풀었다는 데서 이렇게 말한 것이지요. 요즘은 민족대이동이라 하여 명절에 국민 대다수가 고향을 찾아 일가친척을 만나고, 성묘도 하는데 이는 ‘반보기’가 아닌 ‘온보기’일 것입니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19’라는 돌림병 탓에 한가위에 온보기는커녕 영상통화로 대신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루빨리 돌림병을 청산하여 보고 싶은 사람이 맘대로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쓰러진 병사에게 다다르자 라이플총을 땅에 내려놓고 한쪽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엎어져 있는 병사의 몸을 돌려 위로 향하게 한 그때 나는 공포로 얼어붙었습니다. 내가 본 것은 얼굴이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총탄에 얼굴이 날아가 버린 것입니다. 나는 사람을 쏘았습니다. 너무도 쉽고 간단하여 아주 놀랐습니다. 이쪽에서 손가락을 조금 움직인 것뿐인데 저쪽에 있는 사람이 쓰러진 것입니다. 엄청난 피가 남자 몸에서 흘러나와 반짝반짝 빛나는 적갈색 핏물 구덩이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나는 시체 옆에서 토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사람을 죽이면 누구나 다 그래. 신경 쓸 필요 없어. 곧 익숙해질 테니 걱정하지마” 상관은 처음 사람을 죽이고 겁먹은 나를 향해 말했다. 이 이야기는 베트남 전쟁에 참여했던 미국 병사 알렌 넬슨(Allen Nelson, 1947~2009)이 한 말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알렌은 그의 나이 18살에 미해병대에 입대하여 월남전에 파병, 13개월 동안 베트남에서 베트콩을 죽이는 일에 뛰어들었다. 이후 미국으로 귀환하여 무려 18년 동안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약 없이는 견딜 수 없는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 아주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이제까지 일제 침략기, 한국 전통가곡의 맥을 잇기 위해 아악부와 권번에서 제자들을 지도해 온 하규일 명인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였다. 하규일의 가곡을 이은 대표적인 제자들은 이병성, 이주환, 김기수, 홍원기 등인데, 이들은 체계적으로 악보집을 제작, 후진과 애호가들을 지도해 오는 한편, 발표회를 통해 가곡의 맥을 이어왔다는 점을 얘기했다. 또 하규일의 가르침을 받은 권번의 기녀들 가운데 김진향(金珍香)은 《선가 하규일 선생 약전》을 펴냈다는 점, 특히 젊어 한때, 진향은 시인 백석(白石)과 인연을 맺었고, 홀로 되어서는 그녀가 평생 모은 1,000억이 넘는 재산을 불교에 헌납하였다는 점, 그 많은 재산 아깝지 않은가라는 물음에, 백석의 시(詩) 한 줄값도 안 된다고 했다는 대답이 인상에 남는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이번 주에는 벽파(碧波) 이창배의 제자들이 해마다 정례적으로 펼쳐오고 있는 경기지방의 산타령과 서도지방의 산타령 공연 이야기가 되겠다. 원래 이 공연은 지난 6월에 소월아트홀에서 열리게 되어 있었으나,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인해 연기되었고, 그럼에도 관객은 입장이 허락되지 않는 조건, 곧 무관중 공연으로 막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초 한 자루 윤동주 내 방에 풍긴 향내를 맡는다. 광명의 제단(祭壇)이 무너지기 전 나는 깨끗한 제물(祭物)을 보았다. 염소의 갈비뼈 같은 그의 몸, 그의 생명인 심지(心志)까지 백옥 같은 눈물과 피를 흘려 불살려 버린다. 그러고도 책상머리에 아롱거리며 선녀처럼 촛불은 춤을 춘다. 매를 본 꿩이 도망하듯이 암흑이 창구멍으로 도망한 나의 방에 풍긴 제물(祭物)의 위대한 향내를 맛보노라. 1934년 12월 24일 한 자루의 촛불이 자신을 사르며 주변을 밝히는 모습을 시인 윤동주는 그렇게 노래했다. 윤동주의 대표적인 시 ‘서시’는 잘 알려졌지만 ‘초 한 자루’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윤동주의 시를 사랑하는 일본인들은 ‘시인 윤동주와 시를 읽는 모임(詩人尹東柱と詩を読む会)을 통해 이번 9월 26일(토) 도쿄에서 ’시낭송회‘를 연다. 물론 ’코로나19‘로 비대면 낭송회다. 이번 낭송회의 주제인 ‘초 한 자루’ 시는 마츠오카 미도리(松岡みどり)씨를 포함한 일본인 5명이 일본어로 1연(1連)씩 낭송할 예정이며, 한국인은 한창희 씨를 비롯한 5명이 한국어로 1연씩 낭송한다. 그리고 ‘초 한 자루’를 읽은 소감과 윤동주 시인에 대한 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고 서서히 음의 기운이 커진다는 24절기 열여섯째 추분(秋分)입니다. 《철종실록》 10년(1859) 9월 6일 기록에 보면 “추분 뒤 자정(子正) 3각(三刻)에 파루(罷漏, 통행금지를 해제하기 위하여 종각의 종을 서른세 번 치던 일)하게 되면, 이르지도 늦지도 않아서 딱 중간에 해당하여 중도(中道)에 맞게 될 것 같다.”라는 내용이 보입니다. 여기서 중도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바른길’을 말하고 있음입니다. 이처럼 우리 겨레는 추분날 종 치는 일조차 그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중용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또 추분 무렵이 되면 들판의 익어가는 수수와 조, 벼들은 뜨거운 햇볕, 천둥과 큰비의 나날을 견뎌 저마다 겸손의 고개를 숙입니다. 내공을 쌓은 사람이 머리가 무거워져 고개를 숙이는 것과 벼가 수많은 비바람의 세월을 견뎌 머리가 수그러드는 것은 같은 이치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벼에서는 향[香]이 우러나고 사람에게서도 내공의 향기가 피어오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추분을 맞은 국립백두대간 수목원에는 벌써 알록달록 가을빛이 내려앉았다는 소식입니다. 이에 수목원은 오는 11월 1일까지 가을꽃 비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가곡도 스승에 따라, 또는 부르는 이의 개성에 따라, 그 음악적 분위가 다르다는 점을 이야기하였다. 1993년, 《선가 하규일 선생 약전》이라는 악보 책을 펴낸 김진향은 어린 시절 권번에 들어가 하규일로부터 여창가곡을 배웠기에 저술이 가능했다는 이야기, 전통가곡은 창법이나 표현법 등이 비교적 점잖고 느리게 부른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60여 년 전, 스승에게 배운 노래를 기억하며 악보책을 펴낸 진향은 국악계에 거의 알려져 있지않은 인물이었다. 그를 잠시 소개해 보기로 한다. 진향의 본명은 김영한(金英韓)이다. 1916년, 서울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가 타계하면서 집안이 망했고, 그러한 상황에서 권번으로 들어가 기녀의 수업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살아있다면 올해 105세의 할머니가 된다. 오래전, 모 방송국 FM 라디오에 희귀음원을 들려주는 시간이 있었는데, 때마침 기생 신분이었던 김진향의 녹음본을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진향과 만난 진행자는 “선생님과 대담을 하고, 여창가곡 한 곡조 녹음하러 나왔다”라고 인사를 하였더니, 진향의 반응은 다소 걱정스러운 태도로“다 늙은 목소리를 녹음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시인 윤동주의 맑고 아름다운 시와 삶을 사랑하여 일본 도쿄에서 ‘시인 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 모임(詩人尹東柱を記念する立教の会)’을 이끌고 있는 야나기하라 야스코 (楊原泰子) 대표로부터 라인(한국이 카톡 같은 것)이 날라왔다. 읽어보니 9월 13일치 마이니치신문에 실린 윤동주 관련 기사였다. 여록(餘祿)이라는 제목의 이 글은 ”봄, 여름, 겨울은 대삼각형인데 가을은 왠지 사각형이다. 계절을 대표하는 별이 줄지어 있다. 지상의 늦더위를 피해 동쪽 밤하늘에서 가을 사각형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라고 시작한다. 그러면서 가을 하늘의 길잡이가 될 수 있는 별인 하늘을 나는 천마 페가수스의 몸통에 해당하는 사각형의 페가수스 이야기를 꺼낸다. 동쪽 하늘에서 떠올라 한밤중이 되면 머리 위에 높이 걸리는 이 사각형을 중심으로 가을철의 대표적인 별자리인 안드로메다자리 등이 보이는 이야기를 꺼낸 것은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꺼내기 위한 전주곡처럼 읽힌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 이야기는 이어진다. “서정 넘치는 별 헤는 밤을 노래한 한국의 국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