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일제강점기에서 전통가곡의 명맥을 이어 온 금하(琴下) 하규일(河圭一, 1867~1937) 명인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최수보와 박효관에게 배웠고, 한일합방이 되자 관직을 버리고 <조선정악전습소>의 학감, 대정권번과 조선권번의 사범, 특히 1926년부터<이왕직아악부>에서 가곡, 가사, 시조를 가르쳤는데, 대표적인 제자들이 이병성, 이주환, 김기수 등이며 이들은 가곡, 가사, 시조의 악보를 제작해서 학생과 일반인 전수에 앞장서 왔다는 이야기, 특히 조선권번에서 여창가곡을 배운 기녀 제자, 김진향(眞香)은 1993년도에 《선가 하규일 선생 약전》을 펴내서 악계에 주목을 받았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1910년대 이후, 하규일은 권번에서 기녀들에게 가곡을 지도해 왔다. 국권을 잃은 후부터는 관기제도가 폐지되었고, 일반 시중에서는 기생들을 모아 조합을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그 가운데서도 평양의 기성권번이나, 서울의 광교조합(廣橋組合) 등은 소리 잘하고, 춤 잘 추는 유명한 기생들을 많이 배출해 낸 대표적인 곳으로 알려져 있다. 광교조합은 뒤에 한성권번(漢城券番)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이곳 출신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어제(8일) 야후제팬 뉴스 가운데 ”남자의 혈액형별로 본 ‘이 여자와 결혼하고 싶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은?’“이란 제목의 ’메루모(https://news.merumo.ne.jp)‘ 기사가 눈에 확 띈다. 일본도 요사이 태풍에, 코로나에, 아베 총리 후임의 입후보자 관련 기사들로 넘치는 가운데 ’혈액형 관련 연애 이야기‘가 양념처럼 들어 있어 흥미롭게 읽어보았다. 기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A형 남자는 여자가 경제 감각이 뛰어나다면 다른 것은 보지 않고 상대와 혼인하고 싶어 한다. / B형 남자는 여자가 다정하게 대해주는 포용력을 가졌다면 됐다고 한다. / O형 남자는 여자가 작은 일에도 즐거워하거나 정열을 느꼈을 때 혼인 상대로 삼고 싶어 한다. / AB형 남자는 여자의 유연한 대응력이나 지성에 접했을 때다. 뒤집으면 위에서 말한 혈액형의 남자를 만났을 때 그 점에 유의하여 접근하면 혼인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한국인들에게 한다면 엑? 하고 반문할지 모른다. 혈액형 따위를 가지고 사람의 성격을 파악한다는 것이 잘 먹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지금도 혈액형으로 사람의 성격과 행동 양식, 직업의 적성과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오늘날, 전통 가곡(歌曲)이 한국의 대표적 음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공헌해 온 인물은 하나둘이 아니다. 멀리 조선 전기, 세조 때의 음악을 싣고 있는 《대악후보》에도 가곡의 전신인 만대엽이 보이고, 그 뒤 《금합자보》를 지은 선조 때의 안상을 비롯하여 광해군 때에는 《양금신보》의 양덕수, 《현금동문류기》의 이득윤, 숙종 때에는 《현금신증가령》을 엮은 신성(申晟), 《청구영언》을 엮은 영조 때의 김천택, 《해동가요》의 김수장, 《가곡원류》를 엮은 고종 때의 박효관과 안민영 등등이 모두 가곡의 전승과 관련이 깊은 인물들이라 하겠다. 특히, 일제치하에서 가곡의 명맥을 오늘에 이어 준 하규일(河圭一 1867~1937) 명인과 그의 제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하규일의 아호는 금하(琴下), 그는 전문 음악인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20세 무렵부터 삼촌인 하중권(河仲權)의 제자, 최수보와 가곡원류의 편자 박효관에게 가곡을 배웠다고 전한다. 그의 6촌 형 역시 당대 가곡의 명인으로 알려져 있던 하순일이었다. 금하는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관직에서 물러나 정가(正歌)에 전념하기 시작하였는데, <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금년 더위는 넘치고 가혹했는데 미친듯한 장마가 더 때려서 고생했네 세월이 어찌 바뀌지 않는가 했더니 속이지 않고 백로가 찾아 왔구나. 이우현 시인의 소박한 시 “백로날에 한편”이라는 시입니다. 정말 세월이 어찌 바뀌지 않는가 했더니 정말 속이지 않고 백로가 찾아 왔습니다. 오늘은 24절기 열다섯째로 흰 이슬이 내린다고 하는 백로(白露)입니다. 옛사람들은 이때만 되면 편지 앞머리에 “포도순절(葡萄旬節)에 기체후 일향만강(氣體候一向萬康) 하옵시고”라는 인사를 꼭 넣었습니다. 그것은 백로부터 추분까지의 절기는 포도가 제철일 때여서 그런 것이지요. 포도는 예부터 다산(多産)의 상징으로 생각해서 맨 처음 따는 포도는 사당에 고사를 지낸 다음 그집 맏며느리가 통째로 먹었습니다. 그러나 처녀가 포도를 먹으면 망측하다고 호통을 들었지요. 또 이때쯤 되면 포도지정(葡萄之精)을 잊지 말라고 합니다. 그것은 어머니가 아이에게 포도를 먹일 때 한알 한알 입에 넣고 씨와 껍질을 발라낸 뒤 아이의 입에 넣어주던 정을 일컫습니다. 특히 백로 때는 밤 기온이 내려가고, 풀잎에 이슬이 맺혀 가을 기운이 완연해집니다. 원래 이때는 맑은 날이 계속되고, 기온도 적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8년 전 처음으로 《흑산》을 읽었을 때의 떨림은 번역(일본어)을 하는 내내 계속되었다. 절해고도에 유배된 유학자, 섬에서 자란 맑은 눈동자의 청년, 옹기장이 남자, 도망치는 노예, 거친파도를 헤쳐나가는 선장 등등 이들은 당시 책을 읽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나의 뇌리에 떠나지 않는 인물들이다. 밀려드는 파도처럼 김훈 작가 나름의 문체에 빨려들어 깊은 심연의 세계를 헤매다가 빠져나왔다고 생각했을 때 마침내 길고 긴 번역의 터널을 빠져나왔다.” 이는 도다 이쿠코(戸田郁子, 60)씨가 김훈 작가의 《흑산(黒山)》 번역을 마치고 ‘역자 후기’에 쓴 소감이다. 번역 작업이란 필자도 해봐서 알지만 여간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두 나라 언어를 완벽하게 안다고 해도 책 한 권 속에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단어라든가 역사적 사실, 풍습과 같은 언어 외의 요소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도다 이쿠코 씨의 번역은 언제나 명쾌하다. 도다 이쿠코 씨가 “한국에서 흔히 쓰는 일본어투 한자를 쓰지 않고 (종래) 한자어를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김훈 작가에게 물었다. 김훈 작가가 답했다. “흔히 사용하지 않는 죽은 말을 살려 활용하면 문장에 힘이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까지 <도살풀이춤>의 예능보유자였던 김숙자 명무와 수제자, 최윤희(본명, 최영순)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최윤희는 10대에 김숙자 문하에 들어가 5년여 전통춤의 기본 동작과 춤사위, 발 디딤새, 호흡, 등을 착실하게 배웠다는 이야기, <도살풀이춤>이란 <도당굿 살풀이춤>을 줄인 말로 흉살이나 재난을 없애 마음을 편안케 하고, 생명을 보존하여 행복을 맞이한다는 종교적 소원에서 비롯된 춤이라는 이야기, 최윤희는 전주대사습 <장원>, 진주 <개천예술제> 대통령상 수상, <전남도립국악단> 안무자, 대전 연구소 활동, 「홍성군립무용단」 창단을 비롯하여, <동국대 사회교육원>, <불교방송국> 등에서 『도살풀이춤』 강좌를 개설해 왔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개인발표회(2004, 2)에 이매방 명인이 특별출연하여 혼(魂)과 맥(脈)이 담긴 최고의 춤을 이어받았다고 극찬하였다는 이야기, <입춤>은 즉흥성의 멋과 흥을 위주로 하는 춤이라는 이야기, 기억에 남는 공연으로는 미국 샌디에고에서 열린 세계평화기원 대법회에서 <도살풀이춤&g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숙용심씨(淑容沈氏)”, 우연한 기회에 숙용심씨를 알게 되었다. 여기서 숙용(淑容)은 조선시대 임금이 후궁에게 내린 작호(爵號)로 종2품이 숙의(淑儀)이고 종3품이 숙용(淑容)이다. 숙용심씨(1465 ~ 1515)는 조선 제9대 임금인 성종의 8번째 후궁이다. 여기서 후궁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숙용심씨가 죽고 그의 무덤 앞에 세워두었던 묘비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숙용심씨 묘비는 높이 150센티, 폭 43센티의 무거운 돌비석으로 이 비석이 일본땅에 있었다는 이야길 들었을 때 가마쿠라 뒷골목 작은 미술관이나 까페 앞에 서 있던 조선의 문인석과 망주석이 떠올랐다. 누군가 조선인 무덤 앞을 지키던 석물(石物)을 일본땅에 가지고 가서 함부로 장식품으로 쓰고 있는 것을 수없이 목격할 때마다 언짢은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렇다면 숙용심씨 묘비가 일본에 건너간 것은 언제였을까? 왜 숙용심씨 묘비는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을까? 조사해보는 과정에서 일본 도쿄도 미나토쿠 아카사카 7정목 3번 39호(東京都港区赤坂七丁目3番39号)에 있는 타카하시고레쿄옹 기념공원(高橋是清翁記念公園, 이하 다카하시 공원)에 있는 숙용심씨 묘비터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도살풀이춤>의 예능보유자 김숙자 명인은 타계하기 전, 수제자인 최윤희에게 이수증을 주고 그 전승체계를 세우려 했다는 이야기, 이수증(履修證)이란 무형문화재 제도에서 전수생 과정을 마쳤다고 하는 하나의 증명서인데, 수여 제도는 문화재청에서 주관하다가 보유자에게 일임하기도 하고, 현재는 다시 문화재청이 시행하고 있다는 이야기, 최윤희는 선생을 잃고, 평소 동경해 오던 인도로 가서 주위와는 소식을 끊고 잠적하였으나 춤꾼이 춤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법, 특히 <도살풀이춤>을 좋아했는데, 이 춤은 긴 수건을 허공에 뿌리며 아름다운 곡선을 그려가는 춤사위가 일품이라는 이야기 등을 지난주에 하였다. 그래서일까, 최윤희는 가는 곳마다 <도살풀이춤>을 추었다. 미국공연을 마친 후에는“ 순백색으로 처절하게 펼쳐지는 살풀이, 그 예술성으로 청중들을 무아의 경지에 빠지게 하다”라는 논평이 신문이나 잡지를 도배하듯 했다. 그렇다. 그가 펼치는 도살풀이 춤사위는 비교적 선이 크고 굵다. 그래서 흔들림이 없는 천근(千斤), 만근의 무게가 느껴지는 춤이며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그 감동이 땅으로부터 하늘에 닿아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 일본 도쿄 고려박물관 운영위원인 마츠자키 에미코(松崎恵美子) 씨로부터 며칠 전 전화가 걸려왔다. 마츠자키 씨는 고려박물관 근황과 함께 현재 전시 중인 ”한센병과 조선인(ハンセン病と朝鮮人) - 차별을 살아내며(差別を生きぬいて) - (이하 한센병과 조선인으로 약칭)”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난해 여름 도쿄에 갔을 때 ‘한센병(나병) 전시 기획 중’ 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올 초 생각지도 못한 코로나 감염병으로 전시 준비에도 애를 먹은 모양이다. 마츠자키 씨는 ‘한센병과 조선인’ 전시 기간은 6월 24일부터 12월 27일까지이며 예약제로 관람할 수 있다고하면서 전시장 모습과 자료 등을 사진과 누리편지로 챙겨 보내왔다. 코로나19가 없었다면 벌써 두어 번 이상은 한국에 다녀갈 정도로 한국을 사랑하는 마츠자키 씨는 “일본도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비상 상태”라고 했다. 마츠자키 씨가 보내온 ‘한센병과 조선인’ 자료를 꼼꼼히 읽어 보았다. 왜 고려박물관은 이런 전시회를 기획했는가? 그 답은 다음과 같다.(필자가 일본어를 번역하여 정리한 내용임) “일본은 19세기 후반 이래 식산흥업(殖産興業),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이뤄 국제사회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八月南州白露繁 흰 이슬 맺히는 팔월 남쪽 고을 數株殷葉照荒園 몇 그루 감나무에 뜨락이 환히 빛나누나 如看韓子玻瓈盌 한자의 시에 나오는 파리완*을 대하는 듯 似帶滎陽翰墨痕 형양*의 먹 자국이 아직 남아 있는 듯 店舍柴荊翻起色 객점 사립문도 문득 생기 넘치나니 楚鄕橙橘好同論 초나라 귤나무에 비겨도 좋으리라 吾行會過頭流下 두류산 아래로 거쳐서 갈 나의 발길 無限霜林擁石門 단풍 진 감나무 숲 산문(山門)에 끝없이 이어지리 * 파리완(玻瓈盌) : 중국의 유리잔 * 형양 : 형주와 양주, 형주란 징저우 [Jingzhou, 荊州(형주)] 곧 중국 후베이성 남부에 있는 도시고 양주(揚州)는 쟝쑤성[江蘇省] 중부에 있는 도시다. 이는 조선중기 한문사대가(漢文四大家) 가운데 한 사람인 계곡(谿谷) 장유(張維, 1587~1638)의 시문집 《계곡집(谿谷集)》에 나오는 “감나무 숲(柿林)”이라는 시다. 첫 줄에 흰이슬 맺히는 이란 말은 처서(處暑)와 추분(秋分) 사이의 가을날을 표현한 말로 이때 음기(陰氣)가 점점 성해지면서 이슬도 흰 색깔로 변한다고 한다.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열네 번째 오는 처서(處暑)다. 처서는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