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과 북한강 두 물줄기가 만나는 두물머리(양수리)에서 지난 5월 26일(토) 사라져가는 우리 고유의 풍습과 전통을 이어가고자 당산제 큰잔치를 열었다. 그리고 그 잔치에 이은관 명창에게 서도소리와 배뱅이굿을 열심히 익히고 있는 여성 소리꾼 전옥희를 초청하여 배뱅이굿 한마당을 펼쳐 큰 관심이 쏠렸다. 이러한 전통의식이나 놀이야말로 지역민들을 화합시켜 명랑하고 깨끗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기본적인 정신이요, 원동력임을 생각할 때, 매우 의미 있는 행사가 아닐 수 없었다. 전통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결속시켜 나가는 기본 질서라는 논리가 타당하다는 생각이다. 작게는 배뱅이굿을 통하여 함께 울고 웃는 재미있는 공연이 되겠지만, 크게 보면 이러한 행사를 통해 이웃이 하나가 되고, 그래서 지역민들의 화합과 나눔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행사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더더욱 컸다. 전옥희 한국 사람으로 배뱅이굿 한 가락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이은관의 배뱅이굿은 매우 유명한 서도의 창극조 소리이다. 배뱅이라는 처녀가 결혼 전에 죽게 되자, 그녀
시조창은 자연 그대로의 모양새를 나타내는 격조 있는 전통성악이다. 이러한 시조창이 시류에 밀려 점점 퇴색해 가고 있는 현실이어서 안타깝기 그지없던 차에 경기도 파주에서 5월 26일, “전국시조경창대회”가 열릴 예정이라니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시조창의 부흥과 보급이라는 시대적 열망 속에 새로운 명창을 찾는, 그러면서도 시조인들의 결속과 화합을 다지는 파주의 이번 대회는 조옥란 명창이 다섯 번째로 주도하게 된 행사이다. 처음과는 달리 점차 지역민들의 관심 속에 지역의 특색사업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분위기여서 앞으로의 진행이 희망적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시조시는 향가나 민요 등과 공존하며 성장하다가 조선의 유학자들에 의해 크게 발전한 분야이다. 이처럼 시조가 발전하게 된 배경은 무엇보다도 시조시의 형식이 간결 소박하다는 형태상의 특성이 당시의 유학자, 지식인, 선비층의 취향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 하겠다. 이러한 시조시는 조선전기만 해도 ‘대엽조’라는 시형에 얹혀져 불렸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의 가곡을 잉태시켜준 만대엽, 중대엽, 삭
지난주까지 율자보와 공척보, 악기의 소리를 흉내 낸 육보, 거문고나 비파의 악보로 율명(음이름)을 쓰지 않고 여러 개의 글자를 합해 놓은 합자보, 세조시대에 창안한 기보방법으로 5음으로 줄여 쓴다는 의미의 약보, 성악곡의 가락이나 창법을 잊지 않으려고 기호를 써 온 연음표의 이야기를 주로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기보법들은 부호 자체가 음높이를 지니고 있지 않고 박자의 표시가 없어서 악곡의 빠르고 느린 박자를 정확하게 알기 어려운 단점을 안고 있다. 이러한 기존의 불편하거나 불합리한 점을 한꺼번에 해결한 기보방법이 바로 정간보(井間譜))보라는 것이다. 정간보는 조선조 세종임금 때 창안된 기보방법이다. 정간보의 정(井)은 우물을 의미하는 글자이다. 마치 원고지처럼 상하좌우의 네모 간을 만들고 그 안에 12율명의 첫 글자만을 적어 넣는다. 이 악보는 무엇보다도 음의 길이, 즉 음가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조선조 세종시대의 음악이 지금까지 전해올 수 있었던 배경도 정간보 덕분이고 궁중음악 대부분이 정간보로 기록되어 온 점이나, 정리 채보 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국립국악원을 비롯하여 음악기관이나 연주 및 연구단체, 국악전공의 중, 고등학
지난주 속풀이 55에서는 우리음악을 기록해 온 방법으로 율자보를 소개하였다. 대개 각 음의 길이가 일정하거나 또는 빠르기가 일정한 음악에 쓰이고 있는데 현재까지도 성균관 안에 있는 공자의 사당, 문묘에서 연주되고 있는 음악이 율자보에 의해 연주되고 있다. 또한, 율명을 쓰고 읽는 것이 어려워 10개의 아주 쉽고 간단한 글자로 줄여 써 왔던 기보방법도 있고, 악기의 소리를 흉내 내 적어 놓은 구음(口音)의 육보도 소개하였다. 덩, 둥, 당으로 표현되는 현악기 육보가 있고 나, 리, 로 등의 관악기 육보가 오래전부터 쓰여 왔다. 이러한 육보에는 한글로 된 것과 한자로 된 것이 있으며 현재까지 많은 거문고의 악보가 육보로 전해온다는 점, 우리음악의 역사나 변천과정을 연구하는 데 있어 이 육보의 해독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번에는 합자보를 소개한다. 합자보란 거문고나 비파의 악보로 율명(음이름)을 쓰지 않고 여러 개의 글자를 합해 놓은 기보법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음 이름은 표시하지 않고 줄을 어느 손가락으로 집는가 하는 표시와 줄의 이름, 탄법(彈法, 타는 법) 등을 약자로 만들어 이들을 합해 놓은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거문고라
무형문화재 1호인 종묘제례악을 비롯하여 국악 합주곡으로 유명한 영산회상, 또는 수제천과 같은 기악 합주곡을 감상하게 되는 경우, 대부분 감상자는 그 곡의 처음이나 끝이 모두 같은 가락처럼 들려서 시작부분과 끝 부분을 구분하기 어렵다고 실토한다. 당연히 그럴 것이라 짐작이 된다. 그런데 만일 악보를 읽을 줄 아는 감상자가 악보를 통해 선율의 흐름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그 곡을 감상한다면 재미있다고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선율의 진행을 악보로 확인할 수 있기에 어떻게 시작하고 중간에 어떻게 변하며 또한 끝나는 선율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하는 점을 악보 상에서 확인하며 음악을 듣게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악보를 읽어 나가는 능력, 즉 독보능력은 국악과 친숙해지는 좋은 방법이 아닐 수 없다. 대부분의 민속음악은 악보 없이 구전심수의 방법으로 전해오는 것들이 대부분이고, 또한 재미있기 때문에 특별히 악보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지만, 정악계열의 음악들은 악보로 전해져 오는 것들이 많은 편이어서 악보에 의존도가 높다 하겠다. 과거로부터 전해오는 악보의 기보방법은 여러 형태로 매우 다양하다. 이러한 자료들은 음악학 연구를 위해서나 또는 시대에 따른 음악의
지난주 속풀이 53에서는 국악과 서양음악은 서로 다른 특징이 있다는 이야기와 서로 다른 점들이 곧 서로 확인할 수 있는 특징이고, 그 특징들이 바로 독특한 미적(美的) 가치를 느끼게 하는 개성이어서 이를 긍정적으로 인식할 태도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국악이란 용어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국악이란 말이 현재 우리나라에서 쓰이고 있는 모든 한국의 음악이란 포괄적인 개념을 충족시켜 주지 못하고 일부 제한적인 의미로 쓰인 이유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약 100여 년 전부터 이 땅에 들어온 서양음악의 영향을 받고 음계나 리듬, 하모니 등 서양음악어법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음악들을 음악이란 이름의 자리에 앉히는 반면.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우리의 음악은 국악, 혹은 전통음악으로 별도 취급해 왔기 때문에 국악이란 용어가 글자의 뜻인 대한민국의 음악이라는 의미와는 달리 일부 제한적인 의미로 남게 되었던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초등학교나 중등학교의 음악교과목이다. 우리들의 어린 시절, 학교에서의 음악수업을 떠올려보면 재미(?)있는 기억들이 떠오를 것이다. ‘전통문화를 지니고 있는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건강한 한국인의 육성’, ‘음악을 통한 한국인의 심성’을
53. 국악과 서양음악, 서로 다른 것이 각자의 특징이다 국악이란 용어를 글자의 뜻 그대로 새기면 “대한민국 음악”이다. 이를 줄여 부르는 이름이 곧 “한국음악”이다. 우리말을 국어, 또는 한국사라고 부르고 대한민국의 역사를 국사, 또는 한국사로 부르는 것처럼 국악이란 용어나 한국음악이란 말은 우리나라의 음악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국악이란 용어가 현재 우리나라에서 쓰이고 있는 모든 한국의 음악이란 포괄적인 개념을 충족시켜 주지 못하고 일부 제한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국의 음악 속에는 100여 년 전부터 이 땅에 유입된 서양 음악의 영향을 받고 서양음악의 음계나 리듬, 하모니 등 서양어법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음악들이 음악이란 이름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악이란 용어는 한국 음악 가운데서도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전래해 오고 있는 전통적인 음악, 또는 이 전통음악을 바탕으로 해서 새로 창작된 음악 등을 지칭하는 일부 제한된 의미가 진한 것이다. 음악계의 최대행사로 알려진 대한민국음악제가 있고 대한민국국악제가 별도로 열리고 있는 점으로도 충분히 이해가 되리라 믿는다.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전해오는 음악이나 이를 바탕으로 창
지난주까지 속풀이에서는 우리음악에 대한 자긍심을 지니지 못하게 된 배경이나 원인을 살펴보았다.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과거 우리역사가 기능이나 기술을 천시해 온 악습이 아직도 잔존한다는 점 둘째, 일제의 강점하에 너무도 긴 문화의 암흑기를 보내야 했다는 점 셋째, 혼란의 격변기를 거치는 동안 우리문화 예술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점 넷째, 수용의 태세도 갖추지 못한 사이에 밀어닥친 서양 문물의 홍수를 맞게 된 점 다섯째, 전통음악과 관련한 교육정책의 부재 혹은 국악교육의 부재 탓에 전통음악의 독특한 예술성을 발견하지 못하고 음악문화의 수인(囚人)을 만들어 온 점 등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원인은 지난 시대의 정황을 만들게 된 배경이었고 현재에 와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전통음악을 대하는 일반 국민의 시각이나 인식이 전대(前代)에 비해 크게 변화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분명하게 확인되고 있는 점은 우리의 경제력이 오름에 따라 국제적 문화교류가 빈번해 지고 있어 우리의 전통음악이 자주 국내무대나 외국무대에 올려지게 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국의 위상이 각 분야에 걸쳐 현저한 상승곡선을
전통음악에 대한 세계인들의 격찬과는 달리, 국내에서는 이전에 견주어 달라진 인식이 거의 없다는 점이 바로 문제점이다. 겉으로는 목청을 높여 ‘전통예술의 진흥’을 부르짖고 있지만 아직도 전통음악은 구시대의 낡은 유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가야금이나 거문고와 같은 악기를 나무토막으로 내버려두는 문화적 상황도 여전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왜 우리는 스스로 우리음악에 대한 자긍심을 지니지 못하게 되었는가 하는 점을 생각해 보는 중이다. 그래서 앞에서는 첫째 원인으로 과거 우리 역사가 기능이나 기술을 천시해 온 악습이 아직도 잔존한다는 점을 지적하였고 둘째 원인으로는 일제의 강점하에 너무도 긴 문화의 암흑기를 보내야 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우리음악에 대한 자긍심을 갖지 못하게 된 배경이나 원인 세 번째로는 격변기를 거치는 동안 우리문화 예술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1945년 8월, 일제의 강점으로부터 해방을 맞았으나, 미(美) 군정하의 어수선한 정국이 당분간 이어졌고, 1948년 남한 단독의 정부를 수립하였으나 곧이어 남북한 동족 사이 6·25전쟁을 겪게 되었다. 전쟁이란 승자도 패자도 피해를 감수해야만 되는 어리석은
지난주까지 한국의 전통음악에 대한 감정을 세계의 유명음악인들에게 들어 보았다. 그들의 목소리는 표현만 다를 뿐, 한결같이 “매우 훌륭한 음악미와 차원 높은 예술성을 지닌 세계적인 음악”임을 인정하는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이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한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우리 전통음악에 대하여 한국인로서의 자긍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났을까? 아니면 변화없이 그대로일까 하는 점이 궁금하다. 목청을 높여 ‘전통예술의 진흥’을 부르짖는 사람들은 많이 늘어난 듯하지만, 아직도 전통음악은 구시대의 낡은 유산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은 듯하고 그렇기에 특수 계층에 속해 있는 사람들만이 그 명맥을 이어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상황이다. 필요에 따라, 또는 상황에 따라 입으로는 ‘민족문화의 창달’을 외치면서도 행동은 가야금이나 거문고와 같은 고금을 나무토막으로 내버려두는 문화적 상황에 우리가 처해 있다는 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김씨가 백자를 방치해 두었다가 남의 충고로 그 가치를 확인했던 것과도 같은 상황이다. 전통음악에 대해서는 세계의 유명 감정가들이 음악미와 예술성을 인정했음에도 아직도 이에 대한 인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