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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98. 쌍절금(雙節琴)이야기

 

 



 

 

지난 주 속풀이에서는 신라의 거문고 음악은 옥보고(玉寶高)로부터 비롯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선생이 없어 홀로 지리산 운상원에 들어가서 50년 동안 거문고를 독학하여 스스로 곡을 짓고 속명득(續命得)에게 전해 주었다는 이야기와 옥보고 작품들은 곡명이 전해 오는데, 그 악곡명이 매우 세련되어 있다는 점을 이야기 했다.

또 속명득은 귀금(貴金)에게 전해 주었는데, 귀금 역시 지리산에 들어가 나오지 않자 임금은 윤흥(允興)이라는 고급관리를 남원 공사로 보내서 거문고 음악의 보존, 계승에 전념할 것을 명하였다는 이야기, 윤흥은 자신의 무례를 알아채고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예를 갖추어 선생의 음악을 간청한 연후에 <표풍(飄風)>등 3곡을 전해 받았다는 이야기 등 이었다.
 
거문고는 6줄로 구성된 악기여서 각 줄마다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음색의 어울림이 일품이다. 특히 억양을 살린 음색은 더더욱 멋이 있다. 제1현은 문현이라 부르고 마지막 제6현은 무현이라 부른다. 문, 무현 안에 가장 많이 쓰이는 제2현인 유현과 가장 굵은 줄의 제3현 대현이 있다. 특히 제3현의 굵고 낮은 대현의 울림은 거문고의 특징을 잘 말해주고 있는 줄이다. 유현은 대현보다 완전4도 높게 조율되며 맑고 고운 소리를 발하는데, 낮은 대현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거문고에서 가락을 만들어 내는 줄은 제2현과 3현 뿐이다. 나머지 제1현(문현), 제4현( 괘상청), 제5현(괘하청), 제6현(무현)등은 연주할 때 손가락으로 음을 만들지 않고 처음 조율된 그대로, 다시 말해 개방현으로 연주하는 것이다. 거문고에는 각기 다른 굵기의 줄을 치면서 질풍노도와 같은 강렬함을 나타내는가 하면, 조용하게 속삭이는 온유함이 공존한다.

특히 거문고는 선비들의 애호를 받으며 선비들의 사랑방 악기로 자리를 잡아왔기 때문에 선비의 곧은 지조나 절개를 거문고에 비유하는 고사들이 많이 존재한다. 그 중 사육신과 거문고의 관련된 이야기이다. 세조의 왕위 찬탈을 끝끝내 반대하다가 육시를 당한 사육신과 거문고에 관련된 이야기가 있어 이를 소개한다.

사육신의 대표적인 인물, 성삼문의 집은 백악(白岳)산의 기슭에 있었고, 박팽년의 집은 목멱산(木覓山), 지금의 남산 자락에 있었는데, 모두 손수 심은 소나무가 울창하여 서로 바라다 볼 정도로 성장하게 되었다.

처음에 두 대감의 집안이 전복되고 육시(戮屍)되어 아이들과 가택이 모두 관에 몰수되었을 때, 주인 없는 집에 남아 이 처참한 광경을 저 두 그루의 소나무는 처음부터 오르지 보아 온 것이다. 두 대감은 비록 죽임을 당했을지언정 당시 주위 사람들이 그것을 가련하게 여겨서 그 손때가 묻은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보호해 주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도 곧 베어 버리기 쉬웠을 것인데, 어떻게 번성하여 잘 자라날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그리고 시간은 300여 년이 흘렀다. 단종은 복위되었으며 사육신들은 그 결백함이 밝혀져, 제사를 누리게 되었고 시호(諡號)까지 내려져 포상을 해 주었다. 정조 때에는 장릉배식단(莊陵配食壇)을 설치하여, 장릉을 위해 순절한 모든 사람을 아울러 배향하기도 하였다.

성삼문, 박팽년의 두 대감집의 소나무만이 외롭게 서서 그 처음과 끝, 굴욕과 신원의 시절을 보고 있었으나, 소나무 또한 수명을 다 하게 된 것이다. 1800년은 정조가 승하한 해로 남쪽의 소나무는 비바람에 꺾였고, 북쪽의 소나무 또한 시들어 죽었다.

먼저 임금께서 이 두 소나무 목재를 얻어 합하여 거문고를 만드시고, 이름을 <쌍절금(雙節琴)>이라 하였다. 이를 시험 삼아 연주해보니 뛰어난 소리를 냈다. 유심히 들어보니 맑고도 굳센 음색은 곧은 두 대감의 성품이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었고, 또한 임금과 신하가 서로 잘 만난 때의 성대함도 미루어 생각할 수 있었다.(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