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섭조개와 갈조류가 바위에 빼곡히 달라붙어 있어 그런지 물빛이 검게 보였다. 그래서 묵호(墨湖)라 이름 하였으리라. 그 검은 물의 항구를 뒤로한 채 미끈하게 빠진 여객선 한 척이 뱃고동도 우렁차게 동으로 나간다. 나는 배꼬리에 붙어 서서 스크류가 일으키는 포말이 시계(視界) 밖까지 이어지는 걸 바라보며 감회가 새로워 눈을 감았다. 벌써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구나. 요즘 같은 광속시대에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이 무색하리만치 모든 게 빠르게 변해간다. 울릉도가 가까워질수록 30년의 시간은 섬 전체를 뒤집어 놓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하지만 도동항으로 배가 들어서자 나는 안도의 한숨과 미소가 번졌다. 몇 채의 건물만 현대식으로 바뀌었을 뿐 시가지 모습은 거의 변한 게 없었다. 새로운 광경이라면 폭발적으로 늘어난 자동차가 시커먼 매연을 내뿜으며 그 좁은 도로에서 꼬리를 물고 다니는 것이었다. 과연 인간의 편익과 환경보존은 병립할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잠시 비애감에 젖기도 하였다. 때마침 강원도민일보와 삼척시가 주최하는 ‘이사부 독도 축제’ 기간이라 그런지 섬 전체가 독도열기로 가득했다.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1963년 1월 첫째 주 비틀즈라는 이름의 남성사중창단이 부른 “Please, Please me”가 가 영국차트 1위에 올랐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Innovation(혁명)이라 하였다. 이듬 해 그 네 명의 청년들이 미국에 상륙하여 미국 대중음악계를 초토화 하자 그때는 그것을 “British invasion(영국인의 침공)”이라 하였다. 그 후 비틀즈의 노래는 전 세계로 퍼져나가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비틀즈 열병을 앓게 만들었다. 우리에게도 그런 혁명적 사건이 있었다. 소위 386세대들은 서태지를 앙시엥 레짐, 구체제와 단절하고 새로운 지평을 연 혁명가의 기원으로 꼽는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생각이고 주장일 따름이다. 그 보다 훨씬 먼저 우리의 젊은 피가 들끓게 한 대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대학가요제의 탄생이었다. MBC 문화방송에서 1977년에 주최한 제1회 대학가요제는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일찍이 그렇게 순수하고 진지한 음악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이 땅의 모든 젊은이들은 전율했다. 대학가요제의 대성공은 곧바로 방송가의 경쟁사태를 불러왔다. 당시 MBC와 최고의 민영방송 위치를 놓고 각축을 벌이던 TBC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태풍소식이 자주 들려오는 계절이 되었다.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태풍은 주로 7월에서 10월 사이에 올라오는데, 북태평양의 남서쪽인 오키나와 서남쪽이나 필리핀 동쪽에서 발생한다. 이 해상에서 발생한 태풍을 영어식으로는 Typhoon이라 부른다. 한자어 태풍(颱風)과 발음이 유사하여 ‘태풍’에서 유래하였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 이름에서 따왔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지하세계의 신 타르타로스를 지아비로 하여 낳은 자식 Typhon이 그 어원이라 한다. 용처럼 불을 내뿜고 거센 바람을 일으키는 제 재주만 믿고 우두머리 신 제우스에게 도전하였다가, 불벼락을 맞고서 에트나화산에 갇힌 반인반사 (半人半蛇)의 괴물이 바로 티폰이다. 이 밖에도 인도양에서 발생한 태풍을 Cyclone, 호주 근방에서 발생하면 Willy-willy, 카리브해에서 발생하면 Hurricane이라 부른다. 태풍 가운데는 ‘곤파스’처럼 마른태풍도 있지만 대부분은 폭우를 동반한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는 언제나 처참한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폐허만을 남기기 때문이다. 그 점에선 태풍과 전쟁이 닮은꼴이지만, 태풍은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싯누렇던 강물 빛이 이제 조금씩 묽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큰 물기둥은 처음이었다. 물이 서서 달린다더니 정말 그랬다. 당목이 떠내려가고 서낭당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아이들의 놀이터인 잔디밭도 바위가 허옇게 드러나 폐허처럼 변했다. 마을사람들은 물이 빠지기 시작한 강가에 모여들어 한숨만 쉬고 있었다. “야, 저 떼 봐라!” 벌거숭이 꼬마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기차처럼 꼬리에 꼬리를 잇댄 떼가 여울목의 거친 물살을 헤치며 내려오고 있었다. 머리에 광목수건을 두르고 하얀 바지저고리를 입은 떼꾼들이 부지런히 노를 젓고 있었다. 떼 한척이 흘러가고 잠시 후 또 한척이 내려가고 세 번째 떼가 여울목을 들어섰을 때였다. 방향을 잘못 잡은 떼 머리가 건너편 바위에 얹히더니 컴퍼스로 그리듯 꼬리가 반원을 그리며 좌초되고 말았다. 떼를 다시 띄우려 한참을 발버둥 쳐도 도저히 안 되겠는지 떼꾼들은 우리 마을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동네 어른들 예닐곱이 합세하여도 꿈쩍 않던 떼가 해 꼬리가 서산마루에 걸쳐질 즈음에서야 여울목을 벗어났다. 하지만 이미 날이 저물고 있었기에 50여리나 떨어진 도담 나루까지는 도저히 갈 수 없는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금당산이 숨을 크게 한 번 내뱉으니 청량함이 골 안 구석구석을 휘돌고 나간다. 머리 위에선 구름들이 소곤거리고 계곡 바위에선 물이끼 돋는 소리가 사르륵 사르륵 들려온다. 산수유 봉오리가 깨어날 때를 맞아 병아리 떼가 나뭇가지에서 삐악거리고 떼죽나무 잎은 벌써 회돌이모양으로 삐치고 나왔다. 산사의 아침은 늦게 시작되지만 낮은 빨리 시작된다. 부지런히 설거지를 마치고 요사 채 앞마당에 빨래를 널었다. 화사한 봄볕에 승복이 하얗게 보인다. 햇살이 가닥가닥 빨래에 부딪쳐 입자로 튕겨져 나가기도 하고 알갱이가 우수수 쏟아지기도 한다. 노 주지는 오수에 빠져 이미 이승을 떠나 코고는 소리가 거죽을 어르고 운판(불교의식에 쓰는 불구의 하나로 구름 모양의 얇은 청동판)을 치더니 범종 속을 맴돈다. 낚시 줄에 알밤을 꿰어 다람쥐와 꾀를 겨루는 장 처사 입에선 능글맞은 웃음이 새어 나오고, 그렇게 고즈넉한 오전이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저 멀리 산 아래서 알록달록한 꽃잎 몇 장이 올라오고 있었다. “서울 이 사장네구나” 당구풍월이라더니 장처사도 신통력이 생겼는지 어떻게 저 멀리 있는 사람들을 알아볼까? “저, 매 바위로 가는 길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어두침침했다. 전등이 켜지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보아 아직 문을 열지 않았으리라 예상 하면서도 ‘공사중’이란 간판에 이끌리어 내려가고 있었다. 예상대로 출입문은 잠겨 있었으나 내부 불빛이 문에 난 쪽창으로 새어 나왔다. 호기심을 못 이겨 체면은 일단 접어두고 문을 두드렸다. 몇 번 두드리니허름한 작업복 차림의 사내가 쪽창으로 얼굴을 내밀더니 문을 열었다. “저, 아직…” “압니다. 지나가다가 가게이름이 하도 독특해 들어와 봤습니다. 먼저한 번 둘러보고 저녁때 오려고요.” 가게 안은 과연 공사 중이었다. 여기저기 벽돌과 블록조각들이 널브러지고 벽면도 바르다 만 상태였다. 구석에는 시멘트도 몇 포대 쌓여 있었다. 그 상태로 공사를 마치고이미 개업을 하였지만 ‘공사중’이라는 진행형에서 진지함이 읽혀져 좋았다. 조명이 밝은 무대에선 사내의 아내로 보이는 한 여인이 옷감을 펼쳐놓고 가위질을하고 있었다. “작업복 만드시나 보죠?” “아니요, 무대복 겸 평상복 겸 외출복이에요.” 그녀는 자기가 입고 있는 옷도 손수 지은 것이라 했다. 나는 그녀의 바느질 솜씨가 천의무봉(天衣無縫)이라며 너스레를 떤 뒤 나의 정체를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활동하고 있는 가수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가운데에서 그나마 이름을 알리는데 성공하는 가수가 있는 반면, 이렇다 할 족적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가는 가수가 훨씬 더 많다. 거기에서도 정상의 꿀맛을 본 가수는 극소수이고, 그들 중에서도 인기와 존경을 함께 얻은 가수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다. 오늘은 그 몇 안 되는 사람 가운데 하나인 레이 찰스를 추억한다.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처럼 우리가 어려서 전해들은 위인들은 출생부터 남달랐다. 한 결 같이 비범하고 총명하며 효심이 깊고 공부도 잘했다. 타락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범죄자가 자의식에 눈을 뜨고 점차 자아를 완성해나가는 인물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질 않는다. 그러한 현상은 우리나라가 더욱 심하여 전과자라면 무조건 백안시했다. 필자 역시 그러한 편향적 사고에서 자유롭지 못했었다. 하지만 문턱이 닳도록 교도소를 드나들던 사람이, 음악을 통해 마음을 순화하고 마침내는 훌륭한 인격체를 이루어낸 사례들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 대표적 인물들이 바로 레이 찰스, 자니 캐시, 멀 해거드로 필자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요즈음 며칠은 배호와 그가 남긴 노래 가운데 가장 슬픈 노래 영월의 애가 때문에 애수를 가눌 길 없어 마침내는 영월행 기차표를 끊고야 말았다. 영월은 희미하나마 필자의 어린 시절 발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엄마 손에 이끌리어 돌아보았던 장릉은 그때 그 자리에 여전하고, 청령포 역시 세월의 흐름을 무심히 지켜보고 있으나 변한 건 사람과 사람의 인심이다. 조금의 애상도 느껴지지 않는 관람객들의 표정이나 모든 걸 돈으로 환산하는 상혼에 가뜩이나 착잡한 마음에 씁쓸함이 더해졌다. 북적대는 인파의 소음을 피해 노산대에 올라 서울 쪽을 바라보며 한참을 그 자리에 박혀있었다. 단종은 이곳에서 정치의 비정함에 얼마나 떨었으며 또한 정순왕후를 그리며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 배호 영월의 애가 수록 음반 표지 바람을 타고 말 위에 앉은 건가 말을 타고서 바람을 재촉하나 단종 단종 어린 단종 단종이 귀양가던 날 아아 울었다 산천도 울었다 영월 땅도 울었다 물결을 타고 나룻배 앉은 건가 나룻배 타고 물결을 재촉하나 단종 단종 어린 단종 단종이 떠나가던 날 아아 울었다 남산도 울었다 한강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오랍드리 풀섶에서 들려오는 여치소리를 자명종 삼아 첫 새벽 여명을 온몸으로 안으며 밭으로 나간다. 밤이 아직 다하지 않은 까닭에 소쩍새와 휘파람새 같은 밤새의 울음소리와 종달새라든가 뱁새 같은 낮 새의 지저귐을 섞어 들으며 감자를 캔다. 호미가 지날 때 마다 하얗게 웃으며 드러나는 감자의 얼굴! 도연명이 관직의 유혹을 버리고 손에 괭이를 잡은 참뜻은 바로 이런 맛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나 이제 돌아가려네 논밭이 묵어 나는데 어찌 아니 갈손가 여태껏 몸이 마음을 부렸다 하여 어찌 탄식만 할손가 (후략) 젊어서 떠난 고향 늙어서 돌아오니 고향 사투리는 그대로되 머리만 희어졌구나 아이들과 마주치니 서로를 몰라보고 어디서 오는 객이냐고 웃으며 묻는다 (전문) 나는 감자를 캐는 내내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와 하지장의 회향우서(回鄕偶書)를 흥얼거렸다. 과연 인간에게 있어서 고향이란 어떤 존재일까? 나는 그동안 정주민족에게만 향수병이 있는 걸로 알았는데 얼마 전 유목민들도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죽하면 여우도 죽을 때는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머리를 두고 죽는다. 하지 않던가. 그러고 보면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우리네 인생은 내일에 속으며 살아가는 것이라 한다. 내일이 되면 좀 나아지겠지 하지만 내일이 오늘이 되어도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래도 우리는 내일에 기대를 걸고 또 다시 속으며 살아간다. 우리가 미래를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우리에게 아직 그럴 능력은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복술에 기대어 미래를 알고 싶어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점술은 토정비결과 사주로 둘 다 사람이 태어난 때를 기본정보로 하여 점을 친다. 사주는 인간을 하나의 집으로 보고 태어난 년 월 일 시를 네 개의 기둥이라 여겨 사주(四柱)라 한다. 그 사주를 간지로 바꾸면 여덟 글자이기 때문에 팔자라 한다. 토정비결은 사주에서 시(時)를 뺀 세 기둥을 바탕으로 하여 주역의 64괘중 48괘를 풀어 점을 친다. 그런데 사주건 토정비결이건 시간이 언제 시작되었느냐를 알 수 없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시간의 시작과, 우주가 태어난 날은 고사하더라도 지구가 생겨난 날 정도는 알아야 사람의 생년월일을 입력시켜 운세를 점칠 것이 아닌가? 비단 사주와 토정비결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점술은 다 마찬가지이다. 미래를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