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어제(4일)는 봄에 들어선다는 입춘이었다. 한국에서는 입춘날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과 같은 글씨를 써서 대문에 붙이기도 하는데 도시에서는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어떠한가? 일본에서는 입춘을 절분(세츠분, 節分)이라 해서 사악한 귀신을 몰아내기 위한 콩 뿌리기(마메마키) 행사를 전국의 절이나 신사(神社)에서 한다. “복은 들어오고 귀신은 물러가라(후쿠와 우치, 오니와 소토, 福は內、鬼は外)”라고 하면서 콩을 뿌리고 볶은 콩을 자기 나이 수만큼 먹으면 한 해 동안 아프지 않고 감기도 안 걸리며 모든 악귀에서 보호받는다는 믿음이 있다. 절분(세츠분, 節分)은 보통 입춘 전날을 말하는데 이때는 새로운 계절이 돌아와 추운 겨울이 끝나고 사람들이 활동하기도 좋지만, 귀신도 슬슬 활동하기 좋은 때라고 여겨서인지 이날 사악한 귀신을 물리치기 위한 콩 뿌리기(마메마키) 행사를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다. 절분행사는 예전에 궁중에서 시작했는데 《연희식, 905년》에 보면 색색으로 물들인 흙으로 빚은 토우동자(土牛童子)를 궁궐 안에 있는 사방의 문에 걸어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인형은 대한(大寒) 전날 밤에 만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심상건의 충청제 산조와 김창조 계열의 남도제(南道制) 산조의 서로 다른 특징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남도제 산조란 19세기 말, 가야금 연주자인 전라도 영암의 김창조가 처음으로 만들어 탄 산조로 우조-평조-계면의 진행이지만, 충청제는 평조-우조-계면조라는 점을 말했다. 또한, 충청제 산조는 평조와 경드름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경드름이란 서울ㆍ경기지방의 음악 어법으로 경기ㆍ충청지역을 기반으로 해 온 중고제 판소리의 특성이 심상건의 산조 음악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점, 심상건의 산조음악은 남도제 산조의 계면처럼 슬픔의 느낌이 깊지 않다는 점, 또한 순차적 하행 선율형과 빠른 장단의 한배, 등이 남도제 산조와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밖에도 심상건의 충청제 산조와 김창조계열의 남도제 산조는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많은 차이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심상건 산조의 음악적 특징』이란 김효선의 논문을 보면, 어느 음계의 중심음이 옥타브 위, 또는 아래로 자유롭게 이동함으로 해서 음역이 확대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선율의 진행은 순차적 하행이 주(主)를 이루고 있으나, 끝냄의 형태는 대부분이 4도 상행 종지라고 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이는 윤동주 시인의 ‘쉽게 쓰인 시’ 가운데 일부다. 지난 1월 26일 일본 아사히신문(朝日新聞) 텐세이진고(天声人語) 칼럼에는 윤동주 시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칼럼에서는 도쿄 이케부크로에 있는 릿쿄대학 캠퍼스에 이 시가 한글로 걸려있다고 서두를 꺼내고 있다. 그리고는 윤동주 시인이 1942년 릿쿄대학에 유학했으며 한글로 시를 쓴다는 이유로 교토에서 잡혀 들어가 치안유지법 위반이라는 죄명으로 1945년 2월 16일 27살의 나이로 옥사(獄死)했다고 쓰고 있다. 일본신문 칼럼에서 윤동주 시인을 다뤄주는 일은 그리 흔치 않은 일이다. 더욱이 이 칼럼에서는 해마다 일본에서 윤동주 시인의 추도회를 이끌고 있는 야나기하라 야스코 씨((楊原泰子, 74)를 소개하면서 한일관계가 악화되고 있지만 윤동주 시를 사랑하는 한일간의 시민들은 여전히 모임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칼럼은 “윤동주 시인은 우리들을(한일시민들) 따뜻하게 연결해주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야나기하라 씨의 말도 함께 전했다. 그러면서 칼럼은 “(일본)내에 떠도는 한국인 경멸의 표현, 거기에 비난의 응수”를 경계하면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내포지방의 기악으로 대표되는 심상건의 가야금 산조를 소개하였다. 심상건은 1894년, 충남 서산 출생으로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작은 아버지(심정순)댁에서 자라며 국악적 소양을 키웠고, 그의 4촌 동생들도 악가무로 이름있는 심재덕, 심매향, 심화영 등이며 특히 심화영의 승무는 충남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심상건은 1920~30년대 일제강점기에 강태홍, 한성기, 정남희, 안기옥, 김병호 등과 활동하였고, 약 40여 장의 음반자료를 남겼다는 이야기, 1960년대 말, 5·16 민족상, 전국음악경연대회 가야금 부문의 지정곡은 심상건류 산조였기에 그 이후 지금까지도 그 명맥을 이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 한슬릭(Aduard Hanslick)의 ‘긴장과 이완’이나 심상건의 줄을 ‘풀고 조이는’ 음악 미학(美學)은 같은 의미라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도 심상건류 가야금 산조(散調)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심상건류 가야금산조를 분석해 본 연구자들이나, 실제로 그 산조를 연주해 오고 있는 전공자들은 그 산조의 특징이 김창조 계열의 남도제(南道制) 산조와는 다르다고 말한다. 김창조 계열의 남도제 산조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公主)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이 시는 김기림 시인의 ‘바다와 나비’다.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는 바다 건너 일본땅 센다이의 도호쿠대학(東北大學) 교정에 기념비로 우뚝 세워져 있다. 2018년 11월 30일, 도호쿠대학에서는 김기림의 시비와 함께 그의 문학세계를 재조명하는 심포지엄이 열렸다. 일본에는 김기림 시인의 시를 좋아하고 흠모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호쿠대학에 시비를 세운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다. 그제(19일), 잠시 방한 중인 김기림기념회(金起林紀念會) 공동대표인 아오야기 준이치 (靑柳純一) 씨를 인사동에서 만났다. 아오야기 준이치 씨는 도호쿠대학에 시비를 세운 지 1년째를 맞이한 2019년 11월 30일, 센다이 도호쿠대학에서 열렸던 “김기림에게 배운다. 지금이야말로 센다이에서 일한시민교류를!”이라고 적힌 홍보 전단을 한 장 건넸다. 이날 도호쿠대학에서는 남기정(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교수)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충청지방의 기악(器樂) 중 대전지방의 줄풍류 이야기를 하였다. 줄풍류란 방중악(房中樂), 곧 실내에서 연주하는 음악으로 가곡반주나 영산회상과 같은 음악을 연주한다는 점, 문화재연구소의 《대전 향제 줄풍류 조사보고서》를 참고해 보면, 1960년대 당시 줄풍류 팀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던 풍류객은 대금을 연주하는 권영세(1915년 생)로 그는 박흥태, 방호준, 김명진, 성낙준, 윤종선, 김태문 등에게 여러 악기를 배웠다는 점을 얘기했다. 그는 1965년, 대전율회와 <대전정악원>에서 실제적인 업무를 맡아보았는데 당시의 풍류객으로는 권영세 이외에도 7~8인이 있었다는 점, 충청풍류, 곧 내포풍류는 일제강점기 말부터 대전 율계가 있었으나, 거의 유명무실해 졌다가 1960년부터 대전 현지의 권영세나 임윤수 등에 의해 활동이 재개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대전지방의 민간풍류에 이어 이번 주에는 내포지방의 기악으로 가야금 산조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가기로 한다. 충청지방의 가야금 산조라고 하면 누구보다도 심상건이라는 명인부터 소개되어야 할 것이다. 그 만큼 그는 당대 가야금 산조 음악으로는 전국적인 인물이었다. 심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마지막 스물넷째로 ‘큰 추위’라는 뜻의 대한(大寒)입니다. 하지만 “대한이 소한 집에 가서 얼어 죽는다.”라는 속담이 있을 만큼 꼭 소한보다 더 춥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때는 크게 힘쓸 일도 없고 나무나 한두 짐씩 하는 것 말고는 대부분 놀고먹기에 삼시 세끼 밥 먹기 죄스러워 점심 한 끼는 반드시 죽을 먹었거나 걸렀지요. 또 죽을 먹는 다른 까닭은 양식이 있는 겨울에 아껴서 돌아오는 보릿고개를 잘 넘기려는 의지도 들어 있었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대한을 일컬어 겨울을 매듭짓는 절기로 보아, 대한의 마지막 날 곧 입춘 전날을 절분(節分)이라 하여 섣달그믐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이날 밤을 해넘이라 하여, 콩을 방이나 마루에 뿌려 악귀를 쫓고 새해를 맞지요. 그 절분의 다음날은 정월절(正月節)인 입춘으로, 이날은 절월력(節月曆)의 새해 첫날이 됩니다. 이즈음에 해 먹는 음식은 호박죽인데 겨울철 호박죽을 먹으면 몸이 따뜻해지는 효과가 있어 손발이 찬 사람이 먹으면 매우 좋습니다. 또한, 호박 속 풍부한 비타민A가 감기에 대한 저항력도 높여 준다고 하지요. 또 추위를 이기는 데에는 생강차만 한 마실거리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지난 1월 13일(월), 일본은 올해 스무 살을 맞는 젊은이들을 위한 성인의 날(成人の日)이었다. 올해 스무 살이 되는 젊은이는 122만 명으로 이들은 지자체별로 여는 성인식 행사에 참여하여 성인의식을 치른다. 그렇다고 모든 스무 살이 지자체의 성인식에 참석하는 것은 아니다. 해마다 뉴스에서는 성인식장에서 난동을 부리는 젊은이들에 대한 보도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그래서 성인의 날을 없애자는 무용론이 대두되기도 하지만 대세는 여전히 성인의 날을 경축하는 분위기다. 일본의 ‘성인의 날’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새롭게 성인이 되는 미성년자들이 부모님과 주위의 어른들에게 의지하고 보호받던 시절을 마감하고 이제부터 자신이 어른이 되어 자립심을 갖도록 예복을 갖춰 입고 성인식을 치르는 날”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성인의 날은 1999년까지는 1월 15일이던 것이 2000년부터는 1월 둘째 주 월요일로 정해 행사를 치르고 있다. 이날 스무 살이 되는 젊은이들은 여성은 하레기(晴れ着)라고 해서 전통 기모노를 입고 털이 복슬복슬한 흰 숄을 목에 두른다. 그리고 남성들은 대개 신사복 차림이지만 더러 하카마(袴, 전통 옷) 차림으로 성인의 날 기념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기악(器樂)에 관한 이야기로 대전지방의 줄풍류 이야기를 하였다. 가야국이 망하자, 악사 우륵은 가야금을 안고 신라로 투항하여 제자들에게 가야금, 노래, 춤을 각각 가르친 것처럼 악은 악가무를 포함한다는 이야기, 충남 홍성이 낳은 한성준도 춤과 북뿐이 아니라 피리나 소리를 잘해서 곧 악ㆍ가ㆍ무의 능력이 출중했다는 이야기, 충청지역의 향제줄풍류는 대전, 공주, 예산 등지에서 활발한 편이었으나 1960년대 전후에는 위기를 맞았다는 이야기, 문화재연구소에서 조사한 《향제줄풍류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대전의 민간풍류를 소개하고 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줄풍류란 방중악(房中樂), 곧 실내에서 연주하는 음악이란 뜻이다. 당시 대전 줄풍류 팀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던 풍류객은 대금을 연주하는 권영세(1915년 생) 씨로 그는 박흥태에게 가야금 병창, 방호준에게는 가야금 풍류, 김명진에게는 단소 풍류를 배웠다. 또한, 예산의 성낙준에게 대금 풍류, 공주의 윤종선에게 양금풍류, 김태문에게 가야금 풍류 등을 배우고, 한국전쟁 직후에 대전 율회에 들어가 대금을 불었다고 한다. 1965년에 <대전 정악원>에 들어가 회원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아베 다케시(阿部建) 씨는 1933년 함경도 청진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조선땅에서 살았던 그는 조부모를 비롯하여 일가(一家) 40명이 조선에서 나고 죽었다. 그런 인연 때문이었는지 아베 다케시 씨는 고향 청진을 무대로 한 일제강점기를 다룬 소설을 쓰고자 2016년 7월, 노구(84살)를 이끌고 서울에 왔다. 소설의 무대인 북한 청진에는 가보지 못하지만 북한땅이 건너다보이는 임진각에 가보고 싶다고 하여 통역 겸 안내를 한 것이 인연이 되어 이후에도 누리편지 등 소식을 전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 아베 다케시 씨는 각고의 노력 끝에 소설 《중천의 반달(中天の半月)》을 완성하여 2년 전(2018년) 11월 17일 일본 오사카에서 출판기념회를 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난해(2019년) 5월 31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그의 죽음을 계기로 지인들이 아베 다케시 씨를 추모하는 문집을 만들고자 한다며 나에게도 ‘아베 다케시 씨와의 인연’에 대한 글 한 편을 보내 달라는 전갈이 왔다. 아랫글은 그의 추모집에 넣기 위해 쓴 글이다. 추모집에는 일본어로 들어갔지만, 한글로 쓴 부분의 일부를 아래에 싣는다. 그리운 아베 다케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