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판소리 중고제와 심상건의 가야금 산조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중고제 판소리는 경드름이나 설렁제의 가락이 많으며, 평탄한 선율과 장단변화에 따른 극(劇)적인 표현보다는 단조로운 구성이 특징인데, 이러한 판소리 중고제의 특징이 심상건 가야금 산조에도 나타나는 것은 숙부인 심정순의 중고제 판소리의 영향을 받은 결과로 보인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지난주에 이어 심상건의 가야금 산조와 중고제 판소리 이야기를 이어가기로 한다. 현재, 심상건 류 가야금 산조를 연주할 수 있는 40대 이상의 중견연주자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므로 충남 도청이나 문화재단, 서산문화원 등에서는 기회가 닿는 대로 <심상건류 가야금 산조 감상회>를 기획하여 지역민들에게 들려주었으면 좋겠다. 그 까닭은 서산 출신 심씨 일가의 활동이나 중고제의 이해 및 재발견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서산>이라는 지역이 배출해 낸 심상건 명인의 예술세계를 이해하게 되며, 음악적 자긍심을 느낄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중고제 판소리의 특징을 이어받은 심상건의 가야금 산조는 남도제의 산조 음악과 또 다른 음악적 특징을 지니고 있어서 전승의 가치는 충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내일은 우리 겨레 또 하나의 명절 정월대보름입니다. 정월대보름엔 초저녁 뒷동산에 올라가서 달맞이를 하는데, 떠오르는 달의 모양, 크기, 출렁거림, 높낮이 등으로 한해 농사를 점치기도 했습니다. 또 대보름날 밤 달집태우기도 하는데, 짚이나 솔가지 등을 모아 언덕이나 산 위에 쌓아 놓은 다음 소원을 쓴 종이를 매달고, 보름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려 불을 지릅니다. 피어오르는 연기와 더불어 달맞이를 하고, 쥐불놀이와 더불어 이웃마을과 횃불싸움을 하기도 하지요. 정월 대보름의 세시풍속 가운데 ‘월견상극(月犬相剋)’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이는 달과 개는 상극이란 생각에서 나온 것인데 정월 대보름날에 개에게 온종일 밥을 주지 않거나 혹은 저녁밥 한 끼만 주지 않습니다. 개에게 밥을 먹이면 달의 정기를 먹게 되는 것으로 생각했지요. 여자의 본질인 음력의 에너지원은 달이어서 개에게 밥을 주는 여자는 개에게 자기의 음력을 도둑질시키는 것으로 본 때문입니다. 월식도 옛사람들은 개가 먹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지요. 또 다른 대보름 풍속으로 “개보름쇠기”도 있습니다. 조선 후기 유득공(柳得恭)[1749~1807]이 펴낸 《경도잡지(京都雜志)》에, “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정월대보름 풍속으로 풍년을 기원하는 ‘지신밟기’가 있는데, 지신밟기는 설날부터 대보름 무렵에 마을의 풍물패가 집집이 돌며 흥겹게 놀아주고, 복을 빌어 줍니다. 곳에 따라서 마당밟기, 귀신이 나오지 못하도록 밟는 매귀(埋鬼), 동네에서 쓸 공동경비를 여러 사람이 다니면서 풍물을 치고 재주를 부리며 돈이나 곡식을 구하는 걸립(乞粒)이라고도 합니다. 또 정월대보름 풍속으로 ‘볏가릿대 세우기’, ‘복토 훔치기’, ‘용알 뜨기’ 따위도 있습니다. 먼저 볏가릿대 세우기는 보름 전날 짚을 묶어서 깃대 모양으로 만들고 그 안에 벼, 기장, 피, 조의 이삭을 넣어 싸고, 목화도 장대 끝에 매달아 이를 집 곁에 세워 풍년을 기원하는 풍속입니다. 또 복토 훔치기는 부잣집의 흙을 몰래 훔쳐다 자기 집의 부뚜막에 발라 복을 기원하는 것이고, 용알 뜨기는 대보름날 새벽에 제일 먼저 우물물을 길어와 풍년과 운수대통하기를 기원하는 풍속이지요. 그밖에 대보름날은 점치는 풍속이 많습니다. 이 가운데 사발점은 대보름날 밤에 사발에 재를 담고, 그 위에 여러 가지 곡식의 씨앗을 담아 지붕 위에 올려놓은 다음, 이튿날 아침 씨앗들이 남아 있으면 풍년이 되고, 날아갔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는 8일 토요일은 우리 겨레의 명절 정월대보름입니다. 이날 하늘에는 보름달이 휘영청 떠오르지요. 조선 후기 문신 홍석모가 연중행사와 풍속들을 정리하고 설명한 풍속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보면 '초저녁에 횃불을 들고 높은 곳에 올라 달맞이하는 것을 ‘망월(望月)’ 곧 달마중이라 하며, 먼저 달을 보는 사람에게 행운이 온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따라서 누구나 뒷동산에 올라 떠오르는 보름달을 맞이하는 것이 정월대보름에 할 일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대보름날 아침 일찍 일어나면 '부럼 깬다' 하여 밤, 호두, 땅콩, 잣, 은행 등 견과류를 깨물며 한해 열두 달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도록 빕니다. 또 부럼을 깨물 때 나는 소리에 잡귀가 달아나고 이빨에 자극을 주어 건강해진다고 생각했지요. 또 아침 일찍 일어나 사람을 보면 상대방 이름을 부르는데 이때 상대방이 대답하면 '내 더위 사가라!'고 하는데, 이름을 불린 사람이 그걸 알면 “먼저 더위!”를 외칩니다. 이렇게 더위를 팔면 그해 더위를 먹지 않는다는 재미난 믿음이 있었습니다. 또 대보름날엔 세 집 이상의 성이 다른 사람 집의 밥을 먹어야 그해 운이 좋다고 하며, 평상시에는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심상건의 충청제 산조와 김창조 계열의 남도제(南道制) 산조의 서로 다른 특징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남도제 산조란 19세기 말, 가야금 연주자인 전라도 영암의 김창조가 처음으로 만들어 탄 산조로 우조-평조-계면의 진행이지만, 충청제는 평조-우조-계면조라는 점을 말했다. 또한, 충청제 산조는 평조와 경드름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경드름이란 서울ㆍ경기지방의 음악 어법으로 경기ㆍ충청지역을 기반으로 해 온 중고제 판소리의 특성이 심상건의 산조 음악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점, 심상건의 산조음악은 남도제 산조의 계면처럼 슬픔의 느낌이 깊지 않다는 점, 또한 순차적 하행 선율형과 빠른 장단의 한배, 등이 남도제 산조와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밖에도 심상건의 충청제 산조와 김창조계열의 남도제 산조는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많은 차이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심상건 산조의 음악적 특징』이란 김효선의 논문을 보면, 어느 음계의 중심음이 옥타브 위, 또는 아래로 자유롭게 이동함으로 해서 음역이 확대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선율의 진행은 순차적 하행이 주(主)를 이루고 있으나, 끝냄의 형태는 대부분이 4도 상행 종지라고 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내포지방의 기악으로 대표되는 심상건의 가야금 산조를 소개하였다. 심상건은 1894년, 충남 서산 출생으로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작은 아버지(심정순)댁에서 자라며 국악적 소양을 키웠고, 그의 4촌 동생들도 악가무로 이름있는 심재덕, 심매향, 심화영 등이며 특히 심화영의 승무는 충남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심상건은 1920~30년대 일제강점기에 강태홍, 한성기, 정남희, 안기옥, 김병호 등과 활동하였고, 약 40여 장의 음반자료를 남겼다는 이야기, 1960년대 말, 5·16 민족상, 전국음악경연대회 가야금 부문의 지정곡은 심상건류 산조였기에 그 이후 지금까지도 그 명맥을 이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 한슬릭(Aduard Hanslick)의 ‘긴장과 이완’이나 심상건의 줄을 ‘풀고 조이는’ 음악 미학(美學)은 같은 의미라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도 심상건류 가야금 산조(散調)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심상건류 가야금산조를 분석해 본 연구자들이나, 실제로 그 산조를 연주해 오고 있는 전공자들은 그 산조의 특징이 김창조 계열의 남도제(南道制) 산조와는 다르다고 말한다. 김창조 계열의 남도제 산조란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충청지방의 기악(器樂) 중 대전지방의 줄풍류 이야기를 하였다. 줄풍류란 방중악(房中樂), 곧 실내에서 연주하는 음악으로 가곡반주나 영산회상과 같은 음악을 연주한다는 점, 문화재연구소의 《대전 향제 줄풍류 조사보고서》를 참고해 보면, 1960년대 당시 줄풍류 팀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던 풍류객은 대금을 연주하는 권영세(1915년 생)로 그는 박흥태, 방호준, 김명진, 성낙준, 윤종선, 김태문 등에게 여러 악기를 배웠다는 점을 얘기했다. 그는 1965년, 대전율회와 <대전정악원>에서 실제적인 업무를 맡아보았는데 당시의 풍류객으로는 권영세 이외에도 7~8인이 있었다는 점, 충청풍류, 곧 내포풍류는 일제강점기 말부터 대전 율계가 있었으나, 거의 유명무실해 졌다가 1960년부터 대전 현지의 권영세나 임윤수 등에 의해 활동이 재개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대전지방의 민간풍류에 이어 이번 주에는 내포지방의 기악으로 가야금 산조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가기로 한다. 충청지방의 가야금 산조라고 하면 누구보다도 심상건이라는 명인부터 소개되어야 할 것이다. 그 만큼 그는 당대 가야금 산조 음악으로는 전국적인 인물이었다. 심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마지막 스물넷째로 ‘큰 추위’라는 뜻의 대한(大寒)입니다. 하지만 “대한이 소한 집에 가서 얼어 죽는다.”라는 속담이 있을 만큼 꼭 소한보다 더 춥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때는 크게 힘쓸 일도 없고 나무나 한두 짐씩 하는 것 말고는 대부분 놀고먹기에 삼시 세끼 밥 먹기 죄스러워 점심 한 끼는 반드시 죽을 먹었거나 걸렀지요. 또 죽을 먹는 다른 까닭은 양식이 있는 겨울에 아껴서 돌아오는 보릿고개를 잘 넘기려는 의지도 들어 있었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대한을 일컬어 겨울을 매듭짓는 절기로 보아, 대한의 마지막 날 곧 입춘 전날을 절분(節分)이라 하여 섣달그믐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이날 밤을 해넘이라 하여, 콩을 방이나 마루에 뿌려 악귀를 쫓고 새해를 맞지요. 그 절분의 다음날은 정월절(正月節)인 입춘으로, 이날은 절월력(節月曆)의 새해 첫날이 됩니다. 이즈음에 해 먹는 음식은 호박죽인데 겨울철 호박죽을 먹으면 몸이 따뜻해지는 효과가 있어 손발이 찬 사람이 먹으면 매우 좋습니다. 또한, 호박 속 풍부한 비타민A가 감기에 대한 저항력도 높여 준다고 하지요. 또 추위를 이기는 데에는 생강차만 한 마실거리도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기악(器樂)에 관한 이야기로 대전지방의 줄풍류 이야기를 하였다. 가야국이 망하자, 악사 우륵은 가야금을 안고 신라로 투항하여 제자들에게 가야금, 노래, 춤을 각각 가르친 것처럼 악은 악가무를 포함한다는 이야기, 충남 홍성이 낳은 한성준도 춤과 북뿐이 아니라 피리나 소리를 잘해서 곧 악ㆍ가ㆍ무의 능력이 출중했다는 이야기, 충청지역의 향제줄풍류는 대전, 공주, 예산 등지에서 활발한 편이었으나 1960년대 전후에는 위기를 맞았다는 이야기, 문화재연구소에서 조사한 《향제줄풍류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대전의 민간풍류를 소개하고 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줄풍류란 방중악(房中樂), 곧 실내에서 연주하는 음악이란 뜻이다. 당시 대전 줄풍류 팀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던 풍류객은 대금을 연주하는 권영세(1915년 생) 씨로 그는 박흥태에게 가야금 병창, 방호준에게는 가야금 풍류, 김명진에게는 단소 풍류를 배웠다. 또한, 예산의 성낙준에게 대금 풍류, 공주의 윤종선에게 양금풍류, 김태문에게 가야금 풍류 등을 배우고, 한국전쟁 직후에 대전 율회에 들어가 대금을 불었다고 한다. 1965년에 <대전 정악원>에 들어가 회원들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중고제>는 악제(樂制)의 개념, 경기 충청권이라는 지역의 개념, 고제(古制)에 비해-그 이후 시대의 중고제(中古制)라는 시대적 개념을 지니고 있다는 점, 이 용어를 판소리 이외에 충청지역의 악(樂)ㆍ가(歌)ㆍ무(舞) 모든 영역에 공통적으로 붙여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점, <내포제 시조>는 <충청제 시조>라고도 부르나 이를 <중고제 시조>라 부르지는 않는다는 점, 특히 충청지방의 시조창은 가성(假聲)창법을 피하고, 순차 하행(下行) 종지법을 쓰며, 가사를 붙이는 박의 자리도 부분적으로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주에는 충청지방의 악(樂), 즉 기악(器樂)에 관한 이야기가 되겠다. 원래 악(樂)의 개념속에는 악(樂)ㆍ가(歌)ㆍ무(舞)가 모두 포함된 것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우륵(于勒)과 가야금에 관한 이야기 한 토막이 실려 있어 이를 소개한다. “6세기 중반, 신라에 의해 가야국이 망하자, 가야금의 대가인 우륵 선생은 가야금 한 틀을 안고 신라로 투항하게 된다. 신라의 진흥왕은 선생을 국원(國原-지금의 충주)에 모셨는데, 어느 날 우륵이 타는 가야금 음악에 감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