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반재원 소장] 해방 뒤 강진구씨는 부여 장형리에 천조궁(天祖宮)을 건립하고 솔거본 단군 천진을 모셨다고 한다. 강진구씨가 죽고 나자 그의 아들 강현구씨가 분실을 우려해 부여박물관에 기탁하여 보관해 오던 것을 2002년에 찾아내었다. 크기는 가로 33.6cm, 세로 53.3cm로 산수 인물화의 대가인 백련 지운영(池雲英) 화백이 1910년에 솔거본의 단군 영정을 모사하여 그 해 8월 21일에 봉안하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 뒤 해방이 되자 지성채(池城採) 화백이 이를 다시 모사하였다. 대종교 본부는 현재 홍제동에 본당이 있다. 1910년 경술 합방이 되던 해 3월 15일 한 밤중에 홍암 나철에게 강원도 명주군 석병산에 살고 있다는 노인이 찾아왔다. 그는 누런 비단에 싼 오래된 단군 영정을 주면서 우리 집에서 대대로 내려온 솔거의 유일본인데 내가 99세에 죽을 것인데, 이 영정을 전해줄 이가 없어서 103살까지 기다렸노라라고 하였다.*1) 대종교를 개창한 지금의 재동 국민학교 터에 나타나서 나철 선생에게 노인이 전해준 그 영정이 바로 부여 박물관에서 발견된 진본 단군 영정의 모체이다. 그 노인이 전해준 원본 영정은 그 후 지금까지 행방이 묘
[그린경제/얼레빗 = 정석현 기자] 안동독립운동기념관에서는 오는 2014년 2월 28일까지 안동독립운동가 어록전이 열린다 일제강점기 치열하게 펼쳤던 안동독립운동가들은 과연 어떤 말들을 남겼을까? 이제라도 안동독립운동가들의 가슴 절절한 외침을 들어보자. 지금도 귓가를 스치는 서간도 벌판의 바람소리를 들으며 지나온 구십평생 되돌아봐도 여한은 없다 그저 하루하루 연명한 것이 오늘에 이른 것이다 고달픈 발자국이었긴 하나 큰일 하신 어른들 생각하면 오히려 부끄러울 뿐이다. -허은 지음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 가운데서- *허은 (許銀, 1907.1.3-1997.5.19) 여사는 누구인가? 서간도의 추위는 참으로 엄청나다. 공기도 쨍하게 얼어붙어 어떤 날은 해도 안보이고 온천지에 눈서리만 자욱하다. 하늘과 땅 사이엔 오로지 매서운 바람소리만 가득할 뿐이다. 만주벌 혹한을 기억해내는 허은 여사가 남긴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에는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만주 일대에서 추위와 배고픔에도 굴하지 않고 고군분투하던 수많은 애국지사와 동포들의 이야기가 꺾이지 않는 생명력의 들풀처럼 잔잔히 펼쳐져 있다. 허은 여사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초대국무령(
[그린경제/얼레빗= 이윤옥 기자]일본 최대의 호수인 비파호(琵琶湖)를 끼고 있는 시가현(滋賀)은 교토와 오사카에 면해 있는 유서 깊은 도시이다. 이곳은 1건의 세계문화유산을 비롯하여 55건의 국보 그리고 806건의 중요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도시로 국보보유로 치면 교토부, 도쿄도, 나라현, 오사카부 다음으로 많은 곳이다. 에도시대에는 강남, 강서, 강동 지역으로 나누던 것을 명치시대 이후에는 비파호를 중심으로 호남, 호동, 호북, 호서 4곳으로 생활권역을 구분하고 있다. 예부터 시가현은 관동지방으로 올라가는 길목으로 교통의 요지인 이곳은 전국 어디서나 접근성이 좋은데다가 특히 가을철 단풍의 명소로 꼽혀 단풍철에는 숙박을 정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일 정도로 전국적으로 인기가 높은 지역이다. 이에 맞춰 호동3산 순례라든가 호남3산 순례와 같은 유서 깊은 절 순례코스를 만들어 놓고 임시버스를 운행하는 등 지역 관관협회의 홍보도 매우 적극적이다. ▲ 고구려 혜자 스님도이곳의 단풍에매료 되었을 듯! 백제사는 호동3산(湖東3山)속하는 절로 단풍철에만 임시 운행하는 순환버스를 이용하면 편리하지만 일정에 따라 바삐 움직이는 것이 싫어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찾아 나섰다. 역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그의 이름을 가리고 겨레의 교육을 말하지 마라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덮고 애국을 논하지 마라 거칠고 마른 들판에 천포간이학교 세워 양정원 세워 잠자는 조선의 넋을 일깨우신 임 신사참배 창씨개명 황국신민 거부하며 온 몸으로 일제에 맞서 지켜낸 조국 두 개로 쪼개짐에 비통해 하던 임 어이타 예재 고갯길서 그 푸른 뜻 꺾였는가 흘러가는 흰 구름아 너는 알겠지 학산이 지켜낸 겨레사랑 마음을! 뭇 산새들아 너희는 알겠지 학산의 못다 이룬 꿈을! -겨레의 참 교육자 학산 선생을 기리며, 이윤옥 시 학산 윤윤기(1900-1950) 선생을 알게 된 것은 그의 따님 윤종순 여사님을 알게 되고 부터다. 몇 해 전 한 행사에서 학산 선생을 빼닮은 윤 여사님을 뵙고 명함을 드리고 헤어졌는데 곧바로 손수 쓴 편지와 책 한권을 보내 오셨다. 《민족의 참 교육자 학산 윤윤기, 한길사》가 그 책이다. 기자는 단숨에 이 책을 읽어 내려갔다. ▲ 민족의 참 교육자 학산 윤윤기 한길사 책 표지/학산 선생의 보초병을 생각하며 한시 책장을 덮으며 충격적인 것은 학산 선생이 6.25 한국전쟁 시에 경찰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사실이었다. 학산
[그린경제 = 정석현 기자] 안동독립운동기념관에서는 오는 2014년 2월 28일까지 안동독립운동가 어록전이 열린다 일제강점기 치열하게 펼쳤던 안동독립운동가들은 과연 어떤 말들을 남겼을까? 이제라도 안동독립운동가들의 가슴 절절한 외침을 들어보자. 칠년 만에 조선사회를 대하게 되어 별세계의 사람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에 조선은 여러 가지 방면으로 많이 변천 되었다 합니다만 그 변천이라는 것이 어떠한 변천인지 뭐라고 여쭐 말이 없습니다. -7년 만에 출옥하면서, 조선일보 1931년 11월 19일- ▲ 안동독립운동기념관 어록 전시장 *김재봉(1890-1944) 선생은 누구인가? 경상북도 안동 출신으로 1908년 대구계성학교를 졸업한 뒤 경성공업강습소 염직과 3년을 마쳤다. 1920년『해주일보(海州日報)』 경성지사에서 기자로 활동하였다. 1922년 1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인민대표대회에 여운형(呂運亨)김규식(金奎植) 등과 함께 참가하였다.1925년 4월 경성부 황금정에 있는 중국집 아서원(雅敍園)에서 조선공산당이 결성되었는데 이 때 그는 비서부위원 겸 책임비서가 되었다.그가 지도하던 제1차 조선공산당은 조동호(趙東祜)가 기초한 당의 강령과 규약
[그린경제 = 이한꽃 기자] 1941년 조선 경성에서 출간된 일본어판 《대륙신사대관》에 보면 당시 경상북도에는 비교적 규모가 큰 대구신사, 김천신사, 포항신사, 울(릉)도신사, 안동신사, 경주신사가 있었다. 한편 작은 규모로는 청도군 화양면에 있는 신명신사(神明神祠)를 비롯하여 영양군, 영주군, 영덕군, 의성군, 문경군 등 광범위한 지역에 무려 46개의 신사가 있었다. ▲ 옛 안동신사 터에는 원불교 교당이 들어서 있다 ▲ 안동신사가 얼마나 높은 곳에 세워졌는지 알려주는 가파른 계단(현, 원불교 교당) 그 가운데 안동신사(安東神社)는 지금의 안동시 옥정동에 있는 원불교 자리에 1939년 12월 1일(소화 14년)에 일제가 세웠다. 일본땅에 있는 신사는 높은 산꼭대기에 짓기 보다는 평지에 지은 곳이 많은데 견주어 조선땅에 세운 신사는 부산의 용두산공원, 전주 다가동산, 나주 남산공원 팔각정 자리처럼 대부분 지대가 높은 곳에 세워졌다. 현재 원불교 안동교당은 지상으로부터 매우 경사가 심하고 높은 산꼭대기에 세워졌는데 1964년 11월에 세운 것이다. 한국정신문화의 수도이자 항일독립운동가의 산실인 안동지역에서 안동신사 터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만은 않았다
[그린경제 = 정석현 기자] 안동독립운동기념관에서는 오는 2014년 2월 28일까지 안동독립운동가 어록전이 열린다 일제강점기 치열하게 펼쳤던 안동독립운동가들은 과연 어떤 말들을 남겼을까? 이제라도 안동독립운동가들의 가슴 절절한 외침을 들어보자. 평생 남편에 대해 불평 한마디 없었고 말없이 참고 침묵으로 살아온 시어머님(박순부)의 일생은 훌륭하다고 생각된다. 시아버님(김동삼)께서 직업혁명가로 평생을 국권회복을 위하여 공을 세웠다면 그 속에는 시어머님 몫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해동 지음 만주생활 77년 가운데서- ▲ 안동독립운동기념관 어록전시장 * 이해동 (李海東, 1905.12.23 - 2003.8.20) 여사는 누구인가? 조동걸 국민대교수의 만주 독립군 이면사 증언 살아있는 역사를 통해 살펴보자. 85세의 할머니 이해동 여사가 만주생활 77년을 끝내고 지난 18일 영주 귀국했다는 소식이 지상을 메웠다. 그리고 19일부터 조선일보에 여사의 난중록이 연재되기 시작하였다. 10리 밖도 나가보지 못한 일곱 살의 어린 소녀가 엄마 치맛자락을 잡고 삭풍 휘몰아치는 만주로 떠나던 1911년은 서울 양반들이 그 미끈한 일본인의 흉내를 내기에 바빴고 시골에서는 망
[그린경제 = 정석현 기자] 안동독립운동기념관에서는 오는 2014년 2월 28일까지 안동독립운동가 어록전이 열린다 일제강점기 치열하게 펼쳤던 안동독립운동가들은 과연 어떤 말들을 남겼을까? 이제라도 안동독립운동가들의 가슴 절절한 외침을 들어보자. 내가 일찍이 감히 의병장으로 삼일정신으로 움직이는 유일무이한 우리 민족주의를 고수하고 우리민족 사이에는 다시싸움 없이 평화스러운 조국을 세우고 세계열강과 더불어 공존 공영함을 바라고 비나이다. -이동하 유서 가운데서- *이동하(1875.4.18~1959.3.18 )선생은 누구인가? 경북 안동(安東) 사람으로 일찍이 서울 계산학교(桂山學校) 교원, 대구 협성학교(協成學校) 교감 등을 역임하였으며, 보문의숙(寶文義塾)을 창립하여 수백명의 청년들에게 애국심을 고취시켰다. 1910년 일제에 의하여 한국이 강점당하자 대동청년단(大同靑年團)에 가입하여 활동하였으며, 1911년에는 박은식(朴殷植)윤세용(尹世茸)이동녕(李東寧)이시영(李始榮)윤세복(尹世復)김동삼(金東三)외 40명과 함께 만주로 망명하였다. 망명한 뒤에는 윤세복과 함께 환인현(桓仁縣)에 동창학교(東昌學校)를 설립하고 교장에 취임하여 청소년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그린경제=이나미 기자] 경북은 한국 독립운동의 발상지이며 독립유공자로 포상된 사람이 한국에서 가장 많은 곳이다. 또 한일강제병합 직후 자정순국자가 가장 많은 곳으로 남만주 지역 독립운동의 핵심이 경북지역이다. 그럼에도 여성독립운동가로 포상 받은 230여 명 가운데 경북지역 여성은 11명에 불과하다. 물론 여기에는 김락, 남자현 애국지사처럼 알려진 분들도 있지만 알려지지 않은 분들이 대부분이다. 왜 그렇게 여성독립운동가가 알려지지 않은 것일까? ▲ 경북여성, 독립운동을 말하다 심포지엄 모습 이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하는 경북여성, 독립운동을 말하다 2013 경북 여성인물 재조명심포지엄이 10월 8일 오전 10시 30분 안동대학교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먼저 개회식은 최태환 안동시 부시장이 권영세 안동시장의 환영사를 대신 읽었고, 김윤순 경북여성정책개발원장의 개회사, 이순옥 경상북도 여성정책관의 격려사, 경상북도의회 한혜련 부의장의 축사가 있었다. 또 개회식 마지막 순서로 여성독립운동가 시집 《서간도에 들꽃 피다》 를 펴낸 이윤옥 시인이 무명지 잘라 혈서 쓴 항일의 화신 남자현을 낭송하여 장내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 무명지 잘라 혈서 쓴 항일의 화신
[그린경제 = 이윤옥 기자] 항공학교에 다니던 그는 매우 영특했는데 훈련비행 9시간 만에 단독비행이 허가될 만큼 우수한 학생이었다. 1925년 2월 28일 드디어 권기옥은 운남항공학교를 제1기생으로 졸업하여 여성으로서는 한국 최초의 비행사가 되었다. 그 뒤 유시천 교장의 부탁으로 후배들의 정신교육을 담당하며 견습비행을 한다. 그러나 막상 권기옥을 비롯한 비행사들이 활동할 무대가 없었다. 1925년 5월 상해로 돌아온 권기옥은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가서 조선총독부를 폭파할 테니 비행기를 사달라고 말했지만 임시정부의 재정 사정이 좋지 않음을 알고 그해 1925년 가을 광동의 국민혁명정부에서 가담했다. 그 뒤 1926년 봄 의열단의 배후 실력자인 손두환의 소개로 북경에 있는 개혁성향 군벌 풍옥상군(馮玉祥軍)의 항공대에 들어갔다. 1926년 4월 권기옥은 동로군 항공대의 부비항원으로 임명된다. 그 무렵 남원항공학교 교장 겸 동로군 항공대 대장인 서왈보의 소개로 독립운동가인 이상정(시인 이상화의 형)을 만나게 되고 훗날 그와 결혼하여 함께 독립운동의 길을 걷게 된다. 1927년 장개석총통이 북벌(北伐)할 때, 동로 항공사령부(東路航空司令部)에 최용덕(崔用德)과 함께 가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