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산타령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며 김태봉 외 5인을 동시에 예능보유자로 인정했다는 점, 그러나 대부분 연로한 탓에 벽파 이창배 명인이 주된 전승활동을 펼쳐 왔다는 점, 벽파는 국악고교나 국악예고, 등 전문 교육기관에 출강하여 경서도 민요와 산타령을 지도해 주었다는 점, 그 결과 훗날 경기소리의 이해와 저변을 확대해 나가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는 점, 당시 벽파의 <청구고전 성악학원>은 경서도 민요의 중심이었으며 특히 이창배와 정득만에게 꾸준히 배운 큰 제자들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발표회가 가능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산타령 발표회가 꾸준히 성동구 소재의 문화원 아트홀에서 열리고 있는 배경도 알고 보면, 벽파 이창배 명인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곧 산타령의 맥을 오늘에 이어준 이창배 명인이 성동구 옥수동에서 태어났고, 왕십리패의 모갑이 이명길에게 산타령을 배워 오늘날까지 유일하게 전승시켜왔기 때문이다. 왕십리패에는 이명길을 필두로 엄태영이나, 탁복만, 이명산 과 같은 소리꾼들이 포진하고 있어서 뚝섬패나 과천패에 못지않은 잘 나가는 소리패(牌)로 알려져 있었다. 참고로, 해방 이전까지 이름 있던 소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교토의 3대 마츠리라고 하면 5월 15일의 아오이마츠리(葵祭), 7월 17일의 기온마츠리(祇園祭), 10월 22일의 지다이마츠리(時代祭)를 꼽는다. 오래된 순서를 꼽으라면 아오이마츠리 (567년), 기온마츠리(863년), 지다이마츠리(1895년) 순이지만 가장 화려하고 볼만하다는 평을 듣는 것은 기온마츠리(祇園祭)다. 기온마츠리의 유래는 전염병이 확산 되지 않도록 신에게 기도하는 의례에서 생겨났다. 지금부터 1,100여 년 전 교토에 전염병이 크게 번져 죽는 사람이 속출했는데 오늘날과 같은 전염병 대책이 없던 당시에는 전염병 발생을 신 곧 우두천왕(牛頭天王, 일명 스사노미코토)의 노여움으로 알았다. 그 노여움을 풀어주려고 기온사(祇園社, 현 야사카신사)에서 병마 퇴치를 위한 제사를 지냈는데 당시 66개의 행정구역을 상징하는 가마 66개를 만들어 역병(疫病)을 달래는 “어령회(御靈會)”를 지낸 데서부터 기온마츠리는 시작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스사노미코토가 신라의 우두신이란 기록이 있다. 《교토 속의 조선(京都の中の朝鮮)》을 쓴 박종명 씨는 서기 656년 가라쿠니(韓國)의 대사 이리지사주(伊利之使主)가 일본에 건너올 때 신라국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성동구 소재의 소월 아트홀에서 열린 제27회 선소리 산타령 발표공연에 관한 소개와 함께 선소리와 앉은소리, 곧 입창과 좌창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산타령을 <선소리 산타령>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서서 부르는 노래라는 뜻이라는 점, 노래를 서서 부르거나 또는 앉아서 부르는 연행 형태는 해당 음악의 특징적 표출 방법이 다르다는 점, 좌창은 대부분이 감정을 절제하는 형태이나 입창은 상대적으로 손이나 발, 또는 몸 전체를 자연스럽게 움직여서 감정을 표현하게 된다는 점, 입창의 형태로 부를 것인가, 좌창의 형태로 불러야 하는가 하는 점은 개인이나 집단의 선택이 아니라, 음악적 성격을 규정짓는 근본적인 문제라는 점을 이야기 하였다. 산타령은 국가가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한 단체 종목이다. 1969년에 지정되었으니 벌써 50년이 흘렀다. 최초에는 김태봉, 유개동, 김순태, 정득만, 이창배 등 5인이 동시에 예능보유자로 인정이 되었는데, 이처럼 한 종목에 5인의 예능보유자를 동시에 인정했다는 사실은 그만큼 이 종목의 취약성을 인정하여 향후 활발한 전승활동을 기대했던 배려로 보인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예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 곳곳에는 빨강, 보라, 분홍, 연노랑, 연보라 등 색색 깔의 수국이 활짝 펴서 계절이 한여름으로 들어섰음을 알린다. 이 꽃을 일본에서는 ‘아지사이’라고 부르며 우리나라에서는 흔하지 않지만 일본에서는 여름의 대표적인 꽃으로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특히 이 무렵이 되면 일본에서는 앞 다투어 전국 ‘아지사이(수국)꽃 명소’를 소개하느라 부산하다. 자란뉴스(https://www.jalan.net/news)에서는 ‘2019 전국 아지사이꽃 명소 30곳’을 소개하고 있는데 하나같이 아름다운 꽃들이 빛깔 고운 자태로 손님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몇 곳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후쿠오카 시모다공원(下田公園)은 시모다항을 마주한 언덕에 호조씨(北条氏) 별장이 있던 곳에 만들어진 공원으로 300만 송이의 아지사이꽃이 공원을 찾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아지사이꽃으로 두 번째 가라면 서운한 곳이 교토의 미모로토지(三室戸寺)이다. 미무로토지는 아지사이꽃절로 유명하며 이 꽃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6월이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이다. 그런가하면 역시 교토의 마이즈루자연문화원(舞鶴自然文化園)도 빼놓을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이 도령과 이별하고 슬픔에 쌓인 춘향이가 이별 별(別)자를 낸 사람은 자기와 백년 원수라고 원망하는 대목을 소개하였다. 서로 거울과 옥지환을 이별의 정표로 나누었지만, 정작 이별 앞에서는 주체할 수 없는 절규가 폭발하기 시작하며 주저앉는다는 이야기, 떠나가는 이 도령의 모습이 이만큼으로 시작해서-저만큼-달만큼-별만큼-나비만큼이란 표현으로 점점 멀어져가는 현상을 그림처럼 그리는 대목도 재미있다는 이야기, 이 도령을 떠나보내고 이제 고요하고 적적한 빈 방에서 외롭게 등불만 바라보게 되었으니 춘향의 서글픈 심경은 달만 비쳐도 임의 생각, 나뭇잎만 떨어져도 임의 생각, 비가 내려도 임의 생각, 밥 못먹고, 잠 못 자니, 이게 모두 임 그리운 탓이라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이별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접고, 지난 6월 12일 성동구 행당동 소재의 소월 아트홀에서 있었던 제27회 선소리 산타령 발표공연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이와 함께 연창의 형태를 의미하는 입창과 좌창의 의미를 짚어보기로 한다. 이 난에 소개한 바도 있거니와, <산타령>은 선소리, 곧 여럿이 서서 부르는 노래이다. 가사의 내용은 주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3.1절은 지났지만 저희는 3.1만세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돌을 맞은 한국의 분위기를 맛보고 싶었습니다. 6월 24일까지 현재 일본 고려박물관에서 3.1절 특집 전시를 하고 있는 중이라 그동안에 서울에 올 틈을 내지 못했지요.” 이는 일본 도쿄 고려박물관의 전 이사장인 하라다 쿄코(原田京子) 씨의 말이다. 어제(18일) 오후, 하라다 이사장과 고려박물관 이사로 있는 도다 미츠코(戶田光子) 씨를 안중근의사 기념관에서 만났다. “하라다 쿄코 씨는 여러 번 이곳에 왔다고 들었지만 저는 처음입니다. 안중근 의사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었지만 막상 기념관에 와서 자세한 설명을 들어보니 새삼 그의 애국정신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도다 미츠코 이사는 기념관을 돌아보고 그렇게 말했다. 모두 3층으로 꾸며진 기념관을 꼼꼼하게 다 둘러보는 데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한정된 시간이지만 알차게 기념관을 설명해준 사람은 이혜균 사무국장이었다. 이 사무국장은 유창한 일본말로 안중근 의사의 출생과 성장, 그리고 하얼빈 의거와 사형에 이르는 전 과정을 친절히 안내해 주었다. 3층 전시관에는 안중근 의사가 붓글씨로 직접 쓴 심금을 울리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춘향가 중에서 춘향과 이도령이 이별을 고하는 <와상 대목>을 소개하였고, 이 도령이 춘향에게 들려주는 ‘소통국 모자의 이별’, ‘오나라와 월나라 여인들의 부부이별’, ‘초패왕과 우 부인의 이별’, ‘왕 소군의 한궁 이별’ 등 이별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연인들에게 있어 이별이란 상처를 남기게 되는 슬픔이고 아픔이란 점, 춘향가는 남녀가 만나게 되면서 사랑하게 되고, 어쩔 수 없이 헤어지게 되고, 그로 인해 그리워하다가 다시 만난다는 극적인 구조를 지닌 대표적인 사랑 이야기라는 점을 이야기 하였다. 이번 주에는 헤어짐의 정표로 거울과 옥지환을 주고받는다는 이야기와 이 도령과 헤어져 슬픔에 쌓인 춘향이가 이별 별(別)자를 낸 사람은 자기와 백년 원수라고 원망조로 표현하는 대목을 소개한다. 우리가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이 도령은 떠나기 앞서 석경(거울)을 내어주며 “장부의 맑은 마음, 거울 빛과 같으니 이걸 깊이 두었다가 날 본 듯이 내 보라”며 당부하였고, 춘향 역시 끼고 있던 옥지환을 빼 주며 “여자의 명심불망 지환 빛과 같으니 이걸 깊이 두었다가 날 본 듯이 내 보라”며 이별의 정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 큐슈 남부 가고시마(鹿兒島)의 명물로 ‘고려떡(高麗餠)’이란 게 있다. 고려떡을 이곳에서는 고레모찌(鹿兒島餠)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고레’ 란 고려를 뜻하고 ‘모찌’는 떡을 뜻한다. 일본에서 ‘고려(高麗)’는 ‘고구려’를 뜻하거나 삼국 이후의 나라였던 ‘고려’를 뜻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 전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이곳에 고려떡이 있는 것일까? 가고시마의 고려떡은 이 지역 명물로 오래된 집은 300년 이상 된 가게도 있다. 특히 그 가운데서도 이름이 알려진 곳이 아카시야(明石屋) 고려떡집이다 “사츠마의 나에시로가와라는 곳에는 정유재란 때 시마즈가와 더불어 도공들이 300년간 전통을 지키면서 도기를 굽고 있던 곳이다. 고려떡은 팥가루와 쌀가루를 섞어서 만든 것으로 신에게 바치는 공물(供物)용 떡으로 다뤄져 왔으나 지금은 가고시마 명물로 자리잡고 있다.” 아뿔싸! 정유재란 때 끌려갔던 조선인들로부터 유래한 떡이 아니던가? ”아카시야(明石屋) 고려떡집은 창업한지 160년을 넘는 가게로 초기의 맛과 디자인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누리집에 적혀 있다. 또 누리집에 따르면 ”고려떡은 기존 떡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경기민요 <이별가>에 이어 판소리 춘향가에 나오는 이 도령과 춘향의 이별 대목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헤어지기 전날 밤, 춘향은 울부짖으며 “금강산 상상봉이 평지가 되거든 다시 올 것인가? 바다가 육지가 되거든 올 것인가?, 말 머리에 뿔나거든 올 것인가? 까마귀 머리 희어지면 오겠는가?” 등 불가능한 조건들을 열거하며 다짐을 받으려 한다는 이야기, 이에 이 도령은 오나라 정부(征婦)이야기를 끌어 들이며 그녀들이 싸움터에 나간 남편을 그리워하듯, 자기를 기다려 달라는 주문을 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 뒤로 이어지는 대목이 오리정이 아닌, 춘향의 집안에서 이별을 고하는 느린 진양 장단의 <와상 대목>이다. 이 부분의 사설을 읽어보도록 한다. “와상(臥床) 우에 자리를 펴고 술상 차려 내여 놓으며 이왕의 가실테면 술이나 한잔 잡수시오. 술 한 잔을 부어 들고, 권군갱진일배주 허니, 명조상이로막막을 여관한등 잠 못 들 제, 권할 사람 뉘 있으며 위로 헐 이가 누 있으리, 이 술 한잔을 잡수시고 <중략> 편안히 행차를 허오” 위 글에서 권군갱진일배주(勸君更盡一杯酒)는 상대에게 다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얼마 전 가와사키 시에서 일어난 은둔형외톨이로 추정되는 50대 남자가 초등학생 등에게 칼을 휘둘러 20명의 사상자를 낸 사건이 있었습니다. 제 아들도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를까봐 제가 아들을 죽였습니다.” 이는 지난 1일, 농림성 차관 출신인 구마자와 히데아키(熊沢英昭, 76살) 씨가 아들을 죽인 뒤 경찰에서 한 말이다. 올해 44살인 아들 에이치로(英一郎)는 중학생 무렵부터 은둔형외톨이 경향을 보이면서 부모에게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줄곧 부모와 함께 살던 아들은 10년 전부터 부모와 떨어져 살다가 지난달 말 부모와 함께 살기를 원해 집에 돌아온 상황이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온 아들은 걸핏하면 부모에게 폭행을 가해 아버지 히데아키 씨는 온몸에 멍이 들었다고 했다. 사건 당일 아침에는 근처 초등학교에서 운동회가 있었는데 아들이 “시끄럽다. 모두 죽여버리겠다.”는 말을 하자 아들이 큰일을 낼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그만 아들을 죽이고 만 것이다. 사건의 경위를 들어보면 동정심이 인다. 은둔형외톨이를 둔 부모의 심정이 오죽했으면 아들을 죽였을까 싶다. 은둔형외톨이를 일본말로는 히키코모리(引きこもり)라고 한다. 학교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