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유년 시절 앞산의 오솔길을 지게를 지고 참 많이도 올랐습니다. 무언가 산에서 지고 내려온 기억은 많아도 지고 올라간 기억은 없습니다. 그건 산이 꾸준히 우리에게 무언가를 베풀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삶이 곤고하고 세상에 찌들었을 때 산에 올라보세요. 푸르름의 위로를 한껏 받을 수 있는 산은 위대함 자체여서 귀를 열면 새소리 바람 소리 물소리…. 자연의 맑은 음이 내장까지 시원하게 해 주고 하늘과 맞닿은 능선에 걸친 하늘과 구름이 세속의 찌든 때를 정갈하게 씻어주니까요. 산은 그대로 녹색 댐입니다. 우리나라로 국한하더라도 소양강 댐 10개에 버금가는 물 저장 기능이 있고 또한 그들이 광합성으로 생산한 산소는 1억 명 이상이 숨 쉴 수 있는 대단한 양이니 그 혜택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철마다 아름다운 들꽃으로 그리고 산야초와 나물, 각종 열매로 식탁의 풍성함을 주는 산이야말로 무진장입니다. 일망무제의 너름 속에서 두 팔을 벌려 탁 트인 맑은 기운을 호흡하면 새처럼 날지는 못할지라도 인간사 번뇌를 뛰어넘는 호연지기를 맛볼 수 있으니 그 또한 감사함입니다. 눈을 감아도 푸르름이 보이고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맑은소리가 들리는 어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올리버 R. 에비슨의 제중원 운영 방침> 낼 수 없는 환자라도 진찰을 거부하지 않는다. 거치지 않고, 한국어를 배워서 직접 환자를 진찰한다. 모두 청결한 입원실로 만들어 되도록 많은 환자를 수용한다. 넉넉히 준비해 모든 종류의 수술이 가능하게 한다. 오늘날 전 세계가 찬탄해 마지않는 한국의 눈부신 의료기술. 의료관광을 오는 외국인이 많을 만큼 한국의 의학 수준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런 눈부신 성과도, 그 출발은 지극히 미미한 씨앗 한 톨이었다. 넓은 마당에 덩그러니 세워진 한옥 한 채, 그것이 전부였다. 그런 척박한 땅에 의술의 씨앗을 뿌리고 가꾼 이는 바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의사 올리버 R. 에비슨이다. 그는 캐나다에서의 안정된 의과대학 교수 생활을 뒤로하고, 캐나다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의료환경이 열악했던 조선 땅으로 왔다. 기본적인 의료 혜택조차 받지 못한 채 죽어가는 수많은 조선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용기 있는 결정이었다. 이 책 《한국 최초의 의사를 만든 의사 올리버 R. 에비슨》은 슈바이처는 알아도 에비슨은 모르는 많은 사람에게, 150여 년 전 한국에 와서 수많은 생명을 구하고 한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不作蘭畵二十年(부작난화이십년) 난초를 그리지 않은 지 20년이나 偶然寫出性中天(우연사출성중천) 우연히 그리고 싶은 마음이 솟구치네 閉門覓覓尋尋處(폐문멱멱심심처) 문 닫아걸고 찾고 또 찾은 곳 此是維摩不二禪(차시유마불이선) 이것이 유마의 불이선이로구나 若有人强要爲口實(약유인강요위구실) 만약 누군가 억지로 설명하라 한다면 又當以毘耶無言謝之(우당이비야무언사지) 당연히 유마거사처럼 말없이 사양하리 추사 김정희 선생이 자신이 그린 ‘不二禪蘭(불이선란)이라는 난초 그림의 왼쪽 위 여백에 쓴 글입니다. 조선의 선비들은 문인화를 그리면 대개 그림 여백에 화의(畵意)를 써 놓지요. 추사는 한동안 난(蘭)을 그리지 않다가 20년 만에 어떤 계기가 있어 난초를 그리게 되었나 봅니다. 그림 왼쪽 아래 여백에 ‘始爲達俊放筆, 只可有一, 不可有二(시위달준방필, 지가유일, 불가유이 : 애초 달준이를 위해 아무렇게나 그렸으니, 단지 한 번만 가능하고 두 번은 불가하다)’라고 쓴 것으로 보아, 추사는 달준이를 위해 이 난초 그림을 그렸나 봅니다. 달준은 추사 말년에 추사를 시중들던 시동(侍童)입니다. 불이선란도는 과천의 추사박물관 외벽에 크게 그려져 있듯이,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우리나라에는 지금 많은 국민이 잊고 있는 운하가 하나 있다. 인천 앞바다에서 김포시의 한강까지를 연결하는 길이 18km의 경인운하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예산낭비 사업이었지만, 이제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지역 언론에서만 일부 보도가 되고 있을 뿐 대부분 언론은 보도하지 않는다. 주류 언론이 보도하지 않으니 일반 국민의 관심에서 사라지고 있다. 경인운하는 굴포천 방수로 사업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김포 일대의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하여 건설부에서는 방수로 사업을 1990년대에 진행하고 있었다. 경인운하 사업은 노태우 정부에서 시작되었다. 정부에서는 1995년에 경인운하를 민간투자대상사업으로 선정하고 1998년 3월에는 (주)경인운하가 사업시행자로 선정되어 실시협약까지 체결하였다. 김대중 정부에서 환경단체들이 경제성과 환경파괴 등을 이유로 경인운하 반대 운동을 펼쳤다. 2002년에 한국개발연구원에서 2차에 걸쳐 경인운하의 경제성을 분석한 결과 비용편익 비율(B/C 비율)이 0.82와 0.92로 나왔다. 경인운하는 경제성이 없다는 연구 결과다. 비용편익 비율은 대규모 사업의 계획 단계에서 실시하는 경제성 평가 지표이다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귀하지 않은 꽃도 없고 하찮은 풀도 없습니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에 나오는 잎은 담쟁이입니다. 담쟁이는 열매가 포도와 비슷하게 생겨 포도과에 해당하는 여러해살이 덩굴식물입니다. 덩굴식물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담쟁이는 돌담이나 바위 또는 나무줄기를 타고 오르는 습성을 갖고 있지요. 덩굴손 끝에 작은 빨판처럼 생긴 흡착근이 있어 아무 곳에나 착 달라붙을 수 있고 잘 떨어지지 않아 바위나 나무 등을 기어 올라갑니다. 절벽타기의 위대한 실력자지요. 식물 뿌리 대부분은 중력과 같은 방향인 땅속으로 자라고 줄기는 중력과 반대 방향인 하늘로 자랍니다. 하지만 담쟁이덩굴은 위나 옆은 물론 아래쪽으로 뻗는 것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치열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지요. 담쟁이는 약효가 좋아서 한약재로 쓰입니다. 주로 목질화된 줄기나 포도를 닮은 열매를 사용하지요. 다만 나무를 타고 오르는 담쟁이는 효과가 있지만 (특히 소나무) 담 또는 바위를 타고 오르는 담쟁이는 독성 때문에 약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담쟁이덩굴로 덮인 건물은 품격이 느껴지기도 하고 여름에 햇빛 차단 효과로 냉방비를 30% 정도 줄일 수 있으며 겨울엔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드디어 새 대통령이 취임했다. 지난 5년 동안의 평가에 대해서는 서로 의견들이 다르지만 새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는 여러 분야에서 제기되었다. 그것은 주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인 부문에서의 기대였다. 법치와 공정이라는 단어로 집약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화면에서 보면 몇 가지 걱정이 앞선다. 취임사에서 자유를 35번이나 강조한 데서 보듯 정부가 간섭하지 않고 공정한 분위기를 이끌고 가서 자유로운 경제활동으로 도약을 이뤄내는 것이 우리 사회가 처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대통령의 신념이자 포부이자 추진방향이라는 측면에서 뭐라고 할 이유는 없다. 다만 취임식 행사에서부터 아쉬움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면, 그 취임사에서 문화발전의 중요성을 언급하지 않고 넘어갔다는 점이다. 그동안 문화강국을 표방하던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선거 이후 인수위원회 시기, 취임준비 시기를 거쳐 드디어 취임하는 날까지 이 새 정부 입에서 문화의 '문'자도 들어본 기억이 없으니 앞으로 이 정부 아래서 문화가 어떻게 될 것인가, 감을 잡을 수가 없다는 걱정이 나오는 것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도 문화전문가가 없었다고 하고 새로 문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비오는 날 저녁에 기왓장 내외 잃어버린 외아들 생각나선지 꼬부라진 잔등을 어루만지며 쭈룩쭈룩 구슬피 울음 웁니다. 대궐 지붕 위에서 기왓장 내외 아름답던 옛날이 그리워선지 주름 잡힌 얼굴을 어루만지며 물끄러미 하늘만 쳐다봅니다. (p.8) <기왓장 내외> 윤동주 윤동주 시인의 시에 나오는 기왓장 내외. 이 내외는 나라 잃은 임금이 사는 대궐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름답던 옛날을 그리워하며, 주름 잡힌 얼굴을 어루만지며 물끄러미 하늘을 쳐다보는 것이 일상이었을까? 이런 기왓장 같은 사람이 있었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그야말로 허울뿐인 임금이 되어 덕수궁에 갇히다시피 한 사람, 바로 고종이었다. 45년 동안 조선의 임금으로 재위하면서, 끝내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책임을 통감할 수밖에 없던 고종은 덕수궁에서 통한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기쁨을 주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자신이 환갑 때 얻은 딸 덕혜옹주였다. 1912년 5월, 조선이 일본에 나라를 완전히 빼앗긴 지 2년 뒤에 태어난 덕혜는 고종 임금과 붕어빵처럼 닮아 있었다. 이 책 《동시와 함께하는 조선의 마지막 공주, 덕혜》는 조선의 마지막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笑對靑山 山亦笑(소대청산 산역소)’란 말이 있습니다. "청산을 마주하고 웃으니 청산도 웃어주더라."라는 말씀이지요. 그러합니다. 거울은 절대로 먼저 웃는 법이 없습니다. 내가 세상을 향해 웃음 지을 때 세상도 나를 향해 웃어주고 내 편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얼굴에 표정을 나타낼 수 있는 동물은 흔치 않습니다. 집에 강아지를 기르고 있는데요. 이놈은 얼굴에 표정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으르렁대거나 물거나 핥거나 비비는 것으로 의사를 표현할 뿐이지요. 인간만큼 다양한 표정을 가진 생명체는 없습니다. 많은 동물 가운데 사람만 웃을 수 있습니다. 일반 동물도 노여움ㆍ슬픔ㆍ기쁨ㆍ즐거움을 나타낼 줄 알기는 하지만 기쁨이나 즐거움을 웃음으로 표현하지는 못합니다. 소가 웃는다고 하지만, 사람에게 그렇게 보일 따름이지요. 동물은 안면 근육이 제대로 웃을 수 있게 발달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데 웃음이 필요하지도 않을 수 있습니다. 웃을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사람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게 하는 징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웃음은 의심을 녹이고, 편견을 허물며 상대방에게 편안함을 줍니다. 그리고 나에게도 우울감을 줄이고 면역체계를 강화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잎이 나오기 전에 먼저 꽃잎이 경쟁을 벌이는 4월의 꽃잔치가 이제 서서히 마무리되었다. 나무들은 형형색색으로 화장했던 꽃잎들을 아래로 던져버리고 이젠 푸른 잎으로 옷을 갈아입고 짐짓 시치미 떼며 서 있다. 이제는 꽃보다도 파릇파릇 생명의 고동과 숨결을 느껴야 하는 때라고 나무들이 말하는 듯하다. 오월이 아름다운 건 연초록 바람 때문이다. 남풍을 향해 서 있기만 해도 선뜻 꽃향기를 물어 오고 상큼한 강 내음을 한껏 쓸어온다. 어찌 그뿐이랴. 눈부시게 살랑대는 나뭇잎 사랑 이야기는 해 저물어 실컷 들어도 좋다. 바람소리 듬뿍 담아 곱게 핀 들장미 붉은 향기를 한입 가득 베어 물고 싶은 날 오월의 바람은 최고의 선물이다. ... 이남일, 오월의 바람 그래 5월인 것이야. 그냥 밖에서 푸른 하늘만 봐도 가슴이 울렁거리는 희망의 계절, 코끝을 간질이는 바람에 향긋한 내음이 실려 오는 달, 운이 좋아서 4월 뒤에 줄을 서고는, 4월이 지키지 못한 많은 약속을 공짜로 이루어 받는 달, 호사스러운 꽃의 장막을 걷고 신선한 녹음이 시야를 물들이는 이 계절에 나는 문득 지나간 봄의 꽃잔치에서 묵묵히 뒷짐을 지고 뒷줄에 있던 꽃들을 생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1567년 조선 왕국의 13대 임금 명종이 후사도 없이 세상을 뜨자 17살의 나이에 갑자기 왕위에 오른 선조의 간곡한 부탁으로 늙은 몸을 이끌고 1568년 여름에 상경한 퇴계 이황은 정성을 다해 경연에 임하고 성왕(聖王)의 이치를 담은 <성학십도>를 지어 선조에게 올린 뒤 고향에 돌아가기를 간곡하게 청원한다. 그 이듬해인 1569년 음력 3월 4일 겨우 고향에 다녀오는 윤허를 받은 퇴계는 혹 임금의 마음이 바뀔 쌔라 다음날 한강을 건너 고향으로의 발길을 서둘렀다. 열흘 만인 3월 13일에 퇴계는 충북 단양에 도착했다. 단양은 퇴계가 48살 때에 군수로 약 10달 재직하였던 곳이다. 퇴계는 이곳에서 하룻밤을 머물며 20여 년 전 백성들을 위해 힘을 쏟았던 때를 생각하며 남다른 감회를 느꼈을 것이지만 따로 기록을 남긴 것은 없고, 다음날 14일에 죽령을 넘어 풍기로 간다. 죽령은 해발 696미터로 아주 높지는 않지만, 문경의 조령(새재)와 함께 소백산맥을 넘어 서울과 영남을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고갯길이었다. 퇴계는 지금 죽령옛길로 불리는 길을 따라 맑은 물이 흐르고 곳곳에 폭포가 있는 아름다운 이 길을 올라가 죽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