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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주 위한 사투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리다'

일본의 조선인 강제징용 부정에 대한 반박 '시' (2)
오노 도자부로 '시', 미츠다 이쿠오 교수의 '해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아버지가 번역한 일본어판 《백범일지》를 5년의 노력 끝에 펴낸 류리수 박사가 며칠 전 글을 보내왔다.  류리수 박사는 최근 일본 외상의 '조선인 강제징용을 부정'하는 뻔뻔스러움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예전에 한국문학지에 번역해서 소개했던 시 몇편과 해설이 실린 글을 필자에게 보내왔다. 글의 내용을 읽고 보니 필자 혼자 보기 아까워 5회의 연재로 싣는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을 빈다. (연재 글은  류리수 박사가 미츠다 이쿠오 교수의 글을 정리한 것임) - 기자의 말- "

 

 

                                            눈보라 속

 

                   - 오노 도자부로

 

눈보라 치는 / 전북의 깊은 산 속이었다 / 두루마기를 입고

가방을 메고 / 승차장까지 함께 오긴 했지만 / 어떤 커브에 걸리자마자

도망치는 토끼처럼 뛰어내려서 / 옆쪽 산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열흘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고 /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구나

깊은 속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도 않고 /

부모가 부둥켜안고서 목 놓아 울었다하더라

 

                    -석별(조선의 젊은 친구들에게)『대해변大海邊』속의 조선인(7)-

 

 이것도 ‘탈주자’(지난 기사에서 게재)와 마찬가지로 오노 도자부로(小野十三郎)가 조선으로 귀국하는 젊은이들을 보내는 심야의 ‘기차 안’에서 옆에 있던 젊은이로부터 들은 이야기일 것이다. 시의 배경은 시모노세키항까지 가야하는 조선인들이 조선 각지에서 기차 등을 타고 부산항으로 가는 모습이다. 오노 도자부로는, 덜컹대는 기차 안에서 뛰어내리기 좋은 커브길을 노리다가 토끼처럼 뛰어내려 숲속으로 줄행랑을 치려한 조선의 젊은이 이야기를 듣고 시로 남겼다.

 

강제 노역길 보다 차라리 눈보라치는 엄동설한 눈으로 뒤덮인 깊은 산속으로 도망치기를 택한 조선의 젊은이. 추위도 배고픔도 강제 노역보다는 견딜만하단 말인가. 뛰어내리다 팔다리가 부러지고 두개골이 파열된다 해도 시모노세키행 배를 타기 전에 탈출해야한다는 신념으로 필사적인 탈출을 시도했을 조선의 청년들! 눈보라치는 산속으로 모습을 감춘 이 젊은이들은 애초부터 탈주에 대한 ‘깊은 속셈’이 없이 엄동설한의 추위를 어찌 견뎌냈을까?

 

  오노는 국가 권력을 부정하는 아나키즘 시인으로 조선인 노동자 개개인을 존중하는 극히 드문 지식인이었기에 조선인 청년으로부터 ‘탈주자’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친분을 쌓았을 것이다. 그러한 그가 있었기에 이러한 증언이 ‘시’라는 형태로 기록으로 남게 될 수 있었다.

 

 

한편 이 시를 소개한 미츠다 이쿠오(満田郁夫) 교수는 “나는 언젠가 일본 국회도서관에 틀어박혀 『조선총독부관보』라는 일보(日報)를 읽은 적이 있다. 거기에는 공무원 임면(任免) 같은 무미건조한 내용이 주로 실려 있다. 하지만 그 기록 중에 내 눈을 끌었던 것은 무수하게 나오는 ‘행려병사(行旅病死)’라는 기사였다.” 라며, 그 무수한 사람들이 집을 두고 맨 몸으로 도대체 어디를 가느라 뉘 집 자식인지도 밝혀지지 않은 채 길에서 ‘행려병사’를 한 것인지 주목했다.

 

신분도 알 수 없는 그 사람들은 ‘고향에도 있을 수 없게 되어’ 먹을 것도 없고 잘 곳도 없이 정처 없이 헤매다가 지쳐 쓰러져 죽었다. 행려병사 기사에는 물론 이름도 모르고 신원도 불명인 채로 『조선총독부관보』에 보고되어 있다. 미츠다 교수는 “겨울에는 특히 ‘행려병사’가 두드러졌다. 이들이 갈 곳을 헤매다가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은 모두 일본 식민지지배의 결과가 아니고 무엇이랴. 일제는 조선인들에게서 토지와 집을 빼앗았을 뿐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타인에게 도움의 손을 뻗을 힘을 잃게 했던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한 미츠다 교수는, “조선총독부는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지배하기 위한 기관이었기 때문에 그곳이 무수한 행려병사자를 만들어낸 원흉인데, 아이러니칼하게도 조선총독부는 『관보』에 자기가 한 악행을 스스로 세밀하게 보고하고 있는 셈”이라고 비꼬았다.

 

 오노의 시 「눈보라 속」은, 눈에 덮인 산속을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린 젊은이들이 ‘행려병사’ 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을 잘 말해주고 있다. 사랑하는 아들이 행려병사했다는 사실을 알면 부모는 ‘부등켜 안고서 목 놓아 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미츠다 이쿠오 교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사실은『조선총독부관보』를 통해 조선에서 총독부의 행위를 밝히는 논문으로라도 써봐야겠다는 뜻에서 관보를 읽었지만 처음 목표했던 기대치까지는 아직 멀었다고 했다. 숙제로 남긴 셈이다.

 

                                                                               (2018.9.18. 미츠다 이쿠오)  <3회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