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항상 경영자들이 경계하는 것이 있다. 바로 위기! 기업마다 ‘위기관리 매뉴얼’이 있고, 국가에서도 위기가 닥쳤을 때 체계적으로 대응하고자 컨트롤타워를 만드는 등 위기관리에 큰 노력을 기울인다. 평소 위기관리를 빈틈없이 해야 실제 위기가 왔을 때 실기(失期)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조선에도 이런 위기관리 비법이 있었을까. 물론이다. 군주의 역량에 따라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조선은 끊임없는 기록과 관리를 통해 위기에 대비했다. 비록 시간이 흐르며 대응체계가 형편없이 무너져 종국에는 나라를 잃었지만, 조선 역사의 면면을 살펴보면 아주 체계적으로 대응한 사례가 많다. 이 책, 《조선의 위기대응노트》는 마치 기출문제를 풀 듯, 그러한 위기대응 사례를 한 건 한 건 살펴보며 오늘날에도 참고할 만한 좋은 통찰력을 얻는 책이다. 역사와 경영의 만남, 꼭 필요하면서도 어려운 이 과제를 지은이는 이해하기 쉬운 설명으로 훌륭히 해내고 있다. 책은 모두 20개 사례로 구성했다. 위기라고 해서 꼭 전쟁이나 재난 같은 급박한 상황만 다루지 않고, 사전의 정의처럼 ‘안정을 흔드는 급격한 변화, 또는 결정적으로 중대한 순간’까지 모두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제가 어제 제 ‘읽어야 할 책 목록’에 오랫동안 묵혀두고 있다가, 잠실나루역 앞 ‘서울책보고’에서 드디어 살 수 있었던 책 《잠수복과 나비》에 대해서 말씀드렸었지요? 그때 같이 산 책에 《반쪽의 고향》도 있습니다. 이 책 역시 오랫동안 목록 속에 잠자고 있다가 ‘서울책보고’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이 책은 1996년 7월 30일 나왔으니, 26년 만에 돌고 돌아 저에게까지 왔네요. 이 책의 저자 이상금은 일본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내다가 15살에 해방을 맞으면서 고국으로 오신 분입니다. 저자는 이대 유아교육과 교수로 오랜 세월 재직하다가 1993년에 일본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반쪽의 고향》이란 제목으로 내셨습니다. 제목이 왜 《반쪽의 고향》인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 책은 일본어로 일본에서 먼저 나왔습니다. 서문을 보니 저자는 일본 청소년의 21%가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다면서, 저자 가족의 생활사를 통해서 일본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구체적인 역사를 그들에게 읽히고 싶었답니다. 이야기 자체가 일본에서의 성장사(成長史)이고, 저자 또한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일본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우린 하루에도 참 많은 말을 하고 살아갑니다. 남자는 대략 1만 단어 여자는 2만 단어를 소비하고 살아간다고 하니까요. J. 에인젤은 38년 동안 미시간대학 총장을 지낸 인물입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더 자신을 조율할 줄 알았던 인물이지요. 자신이 먼저 나서 말하기보다 많은 사람의 말을 듣고 난 뒤 말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가 은퇴할 즈음 기자로부터 "오랫동안 그 어려운 총장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팔보다 안테나를 높이는 데 있었습니다." 우린 스스로 변화하려 하지 않고 남 탓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언어도 그러합니다. 관계는 시간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따뜻한 언어가 좋은 관계를 만들어주는 것이니까요. 어쩌면 침묵은 위대한 금일지도 모릅니다. 진실한 마음은 무언(無言)으로 통한다고 하니까요. 진정한 사랑은 남과 견주지 않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어렵고 힘듦을 함께 공유하는 사람이지요. 남에게 따뜻한 말을 잘 들려주는 사람은 스스로 그 말을 듣고 싶은 사람일지 모릅니다. 따뜻한 말은 마음에서 절로 돋아난 것이 아니라 내부의 따뜻한 무언가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붉은 옷 갈아입은 백제사 곱디고운 빛깔로 빨갛게 물들었네 천년고찰 연못에 드리운 붉은빛은 그 옛날 드나들던 백제왕족의 흔적인가 여운이런가! - 이고야 ‘백제사’- “(겨울 10월) 경신(庚申)에 조(詔)를 내려 교야군(交野郡)의 금년 조세를 면해 주었다. 국군사(國郡司) 및 행궁 측근의 나이 많은 사람과 여러 관청에서 (천황을) 모시고 따라간 사람들에게 보물을 하사했는데 각각 차등이 있었다. 또한 백제왕 등 행재소(行在所)에서 (천황을) 모신 사람 한두 명에게 계급을 올려주고 작(爵)을 더하여 주었다.” 이는 《속일본기》 권37(서기 783년 10월 16일조)에 나오는 백제사(百濟寺, 햐쿠사이지)에 대한 기록이다. 여기서 말하는 백제사는 일본 시가현(滋賀縣)에 있는 천년고찰을 말한다. 백제사 누리집에는 이 절의 유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당산(堂山)은 스이코왕(推古天皇) 14년(606)에 성덕태자의 발원으로 백제인을 위해 지은 절이다. 창건 당시의 본존불은 태자가 손수 만든 관음상이라고 전해지며 본당 (대웅전)은 백제국의 용운사를 본떠서 지었다. 개안법요 때는 고구려 스님 혜자를 비롯하여 백제스님 도흠(道欽)과 관륵스님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어느새 가을이 다녀간다. 배추 밑동이 도려지고 무가 뽑히고 집집마다 담벼락에 장작더미가 쌓여간다. 개옻나무 밑엔 붉은 양탄자가 깔리고 찔레 덤불 참새소리가 한층 야물어졌다. “빛은 휘어지지 않는다.”라는 말은 정설이 아니다. 갈대 이삭이 일으키는 바람에도 서녘 햇살은 휘어지고 늘어져서 금실그물을 호면 위에 풀어 놓는다. 꽃은 땅에서만 피지 않는다. 처마마다 곶감으로 꿰어져 겨울로 가는 이정표로 피어있다. 내가 어살*에 걸린 물고기처럼 세파에 떼밀리는 동안 이렇게 가을이 다녀가고 있다. 그동안 참 바쁘게 살았다. 집을 짓는 일, 연못과 도랑을 파서 정원을 만들고 꽃밭 가꾸는 일만 해도 허리가 휘어질 지경인데, 비록 녹음방송이라곤 하지만 매일 나가는 프로그램을 턱 하니 맡았으니 몸이 몇 개라도 모자랄 판이었다. 평생 해온 일이 방송이라 앞뒤 재지 않고 덥석 달려든 게 나를 조급증으로 몰고 가고 말았다. '바쁘다'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뜻 말고도 '어렵다'라는 뜻을 지닌 함경도 사투리가 그것이다. 바쁘게 살면 다른 건 몰라도 살림살이의 어려움은 줄어들어야 할 텐데 더 하면 더 했지, 여간해서 나아지지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태극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는 우리나라의 국기, 태극기도 한때는 용기의 상징이었다. 태극기를 높이 들어 올리는 것은 그 자체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태극기는 곧 독립운동이요, 독립운동은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험난한 가시밭길이었다. 그러나 그때도 과감히 태극기를 들었던 여성들이 있다. 자칫 인생이 끝날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서, 여자로서의 삶을 포기하면서, 민족과 조국을 위해 용기를 냈던 이들이 있다. 이 책 《태극기를 든 소녀 1》은 그 여섯 명의 지극한 용기에 바치는 헌사다. 의병가를 지어 의병의 사기를 드높인 의병대장 윤희순. 이화학당 교사이자 목숨을 걸고 고종의 비밀문서를 파리로 가져간 김란사. 기모노 속에 2.8 독립선언서를 숨겨 들여온 김마리아, 3.1운동의 불씨를 고향에서 이어간 유관순. 독립을 향한 의지를 보여주려 손가락을 자른 남자현. 전투기를 몰고 조선총독부를 폭격하려 했던 권기옥. 이 책은 이 여섯 명의 의로운 여성들을 차례차례 되살려낸다. 이야기를 읽어주는 듯 친근한 어투로 그들이 겪었을 고뇌와 삶의 고통을 풀어내, 어른도 그 아픔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폭력과 탄압이 난무하던 시대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흰물결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진의장 초대전 <그림은 바다를 품고>에 다녀왔습니다. 진의장 화백이 서울법대 선배, 더 범위를 좁힌다면 서울법대 문우회(文友會)의 선배이기에 더욱 시간을 내어 전시회에 갔다 온 것입니다. 진 화백은 서울법대를 나와 제10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오랜 세무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제5대, 6대 통영시장(2003 – 2010)을 지냈습니다. 진 화백의 이력으로 보아, 진 화백이 처음부터 화가의 길을 걸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겠지요? 그래서 문우회 단톡방에 진 선배님 전시회 소식이 올라왔을 때, 솔직히 의무감에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까지도 ‘진 선배님이 은퇴하고 노후 소일거리로 그림을 그리는구나’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전시장에 들어가 그림들을 보는 순간, 충격을 받았습니다. 단순한 소일거리 그림이 아니었습니다. 그림에서는 웅혼한 기백이 뿜어져 나오고, 자유로운 영혼이 춤추고 있었습니다. “아니? 이게 뭐야?” 이건 내가 알고 있는 전문화가의 그림 그 이상이었습니다. “어떻게 평생을 공무원으로, 정치인으로 살아오신 분이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단 말인가?” 알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불교인권위원회가 올해 <제28회 불교인권상>에 선감학원 국가폭력사건 진상규명 활동가인 ‘이하라 히로미츠(井原 宏光)’씨를 뽑았다고 지난 11월 7일 밝혔다. 올해 87살인 이하라 히로미츠 씨를 불교인권상의 주인공으로 뽑은 불교인권위원회(공동대표 진관) 심사위원회(위원장 명안 스님)는 뽑은 까닭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하라 히로미츠 씨는 1980년, 선감도를 방문했다가 그때까지 일제강점기와 똑같은 목적과 방법으로 선감학원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문제를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라며 “이에 자신이 목격한 선감학원에서의 인권 유린을 고발하는 자전적 소설 《아! 선감도》를 1991년 펴내고 일본 전역에서 강연을 통한 증언활동을 했다”라고 밝혔다. 선감학원은 1941년 10월 조선총독부 지시에 의해 당시 경기도 부천군 대부면의 선감도(현재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에 세워 1942년 4월, 처음으로 200명의 소년이 수용되었고, 이후 대한민국 제5공화국 초기인 1982년까지 40년 동안 운영되었다. 원아대장에 따르면 수용인원이 많을 때는 4,691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선감학원은 빈민과 부랑아를 격리 수용하여 가난을 감추고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조선일보는 2022년 10월 18일에 “독일도 탈원전에서 유턴... 3개 원전 전격 가동 연장”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10월 17일(현지 시각) “현재 가동 중인 엠스란트와 이자르2, 네카베스트하임2 등 원전 3기를 모두 내년 4월 15일까지 연장 운영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이 끊기면서 올겨울 전력 부족이 예상되자 올해 말까지 폐쇄하기로 했던 3기의 원전을 연장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연말까지 폐쇄하기로 했던 원전 3기를 내년 4월 15일까지 연장 운영하겠다는 뜻인데, 제목만 보는 사람은 독일이 탈원전에서 ‘유턴해서’ 친원전 정책으로 돌아섰다는 뜻으로 오해하기 쉽게 표현했다. (절대로 기사 제목만 읽고서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잘못하면 낚일 수 있다. 특히 조선일보를 조심해야 한다.) 보수 언론에서 ‘독일도 탈원전에서 유턴’이라는 제목을 단 기사를 보도하자 우리나라의 원전 찬성파는 이 기사를 인용하기에 바쁠 것이다. 그런데 독일은 정말 탈원전을 포기한 것일까? 주간 잡지 시사IN에서 기자를 독일로 보내 현지 취재한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오늘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일입니다. 복을 빌 만한 곳이면 어디든 기대고 싶은 학부모의 발걸음이 애처롭습니다. 어떻게 보면 하느님, 부처님, 신목, 신당, 굿, 무당 등 모든 기복의 대상은 검찰에 고발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들이 기도자의 청을 받아들여 수능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면 그것은 부정행위에 해당하는 것이고 기도자에게 무언가를 받아 챙기면서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면 그것은 사기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 종교에 딴지를 걸 생각은 없고요. 웃자는 이야깁니다. 대부분 사람은 전능하고 초월적인 절대자를 상정해 놓고 복을 내려주기를 바랍니다. 복을 바라는 것을 탓할 이유는 없지요. 다만 내용이 재화의 풍요만을 바라거나 지극히 의존적인 경우가 많은 것이 문제입니다. 나눔이 없는 기복은 자칫 자기만 위하는 이기주의로 빠질 수도 있으니까요. 과거 보러 한양으로 떠난 아들을 위하거나 아들 낳게 해달라고 아침마다 정화수를 떠 놓고 비는 어머니의 모습은 옛날에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그림입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기도가 아들의 붓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다는 과학적인 근거는 없습니다. 그 간절한 마음이 아들에게 닿기를 바라는 것이겠지만 말이지요.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