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화가 났나?’ ‘노려보는 것 같기도 해.’ ‘아냐, 슬픈 표정인데?’ 종이에 꽉 차게 그려진 어떤 사람이 우리를 뚫어지게 보고 있어요. 살짝 올라간 눈매에 한 올 한 올 생생하게 묘사된 풍성한 수염, 다소 불그레한 살집 있는 얼굴이 씩씩한 장수처럼 보이기도 하고... 강렬한 눈매를 가진 그림 속의 인물이 우리를 꼼짝 못 하게 만듭니다. 놀라지 마세요. 이 사람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조선 후기의 유명한 선비화가 윤두서입니다. (p.8) 정면을 응시하는 부릅뜬 눈. 한 번 보면 쉬이 잊기 어려운 그 얼굴. 바로 자신의 모습을 그린 윤두서의 ‘자화상’이다. 미술 교과서에 실려 누구나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법한 이 그림은, 해남윤씨 종가를 대표하는 종손이자 선비 화가였던 공재 윤두서가 18세기 초 그린 것이다. 지금은 얼굴만 남아있어 미완성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이 X-선 투과 촬영 등 정밀히 조사한 결과 본디 다소 옅게 그려졌던 신체 부분이 보존복원 과정에서 지워졌던 것으로 드러났다. 비록 신체는 지워져 버렸으나, 그가 강렬한 눈빛으로 응시했던 세상은 여전히 그를 기억한다. 이 책의 부제처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는 소나무입니다. 소나무는 송화라는 수꽃과 솔방울이라는 암꽃을 가지고 있지요. 문제는 매우 비효율적인 생식 방법을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소나무는 풍매화(風媒花)의 일종입니다. 곧 바람에 의해 수분(受粉)하는 꽃 가운데 하나지요. 송화를 솔방울보다 높이 배치하여 수정하는 데는 쉬운 면도 있지만 매우 많은 송화 가운데 수정에 관여하는 것은 0.01%도 되지 않습니다. 송홧가루 대부분은 장독대에 누렇게 쌓여있거나 개울물에 떠내려가 누런 띠를 형성하거나 인간에게 채집되어 다식으로 환생합니다. 송화를 만드는 무수한 노력이 아주 일부분만 사용되는 비효율적인 구조로 되어 있음은 참으로 원시적입니다. 그에 견줘 곤충의 매개로 다른 꽃의 꽃가루를 받아서 번식하는 충매화는 (물론 매개곤충이 필요하지만) 수꽃의 꽃가루를 아주 적게 생산하고도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으니 상당히 경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식물은 풍매화에서 충매화로 진화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충매화는 곤충을 부르기 위하여 화려한 꽃잎이나 눈에 띄는 꽃받침 꽃턱잎으로 나비와 곤충을 불러 모으지요. 그래서 대부분 꽃이 화려합니다. 그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윤석열 후보는 지난 2022년 3월 9일 실시된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0.73% 차이로 이재명 후보를 이기고 당선되었다. 그동안 원전 문제에 관해서 몇 차례 이곳에서 글을 쓴 필자는 한 가지 걱정이 생겼다. 새 정부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이라는 국정 노선을 뒤집고 새로이 원전을 건설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산업화를 이룩하는 중간에 어떤 정책에 관해서 국론이 갈릴 때 흔히 적용하는 해결 기준이 있다. “선진국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조사해 보자”라고 제안하면 논란을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다. 이러한 제안의 장점은 선진국들이 겪었던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 해결 방식은, 달리 말하면 후발자의 유리함이라고 볼 수 있다. 2011년 3월에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원전의 안전성과 경제성에 대해서 심각한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1986년에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홍역을 치른 유럽 국가들은 긴장하였다. 후쿠시마는 먼 일본에 있지만 방사능 오염은 국경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바람과 해류를 타고 방사능 오염은 전 세계의 대기와 바다로 퍼질 수가 있어서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서기 303년 4월 23일 지금 이스라엘 텔아비브 근처인 리다(Lydda)라는 작은 마을의 한복판에서 조지(George)라는 이름의 한 청년이 처형된다. 로마군인이기도 한 조지는 기독교신앙을 갖게 되었는데 당시 로마황제인 디오클레시안(Diocletian)이 기독교인들을 소탕하라는 명령을 내림에 따라 붙잡혀서 신(神)을 버릴 것을 강요받았으나 거부함으로써 공개적으로 처형된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800년 가까이 지난 12세기부터 이 청년은 용감함의 상징으로 다시 태어나 사람들이 그를 숭배하기 시작했고 1350년에 영국의 조지3세는 영국사람도 아니고 영국에 와 본 적도 없는 이 청년이 용을 죽이고 미녀를 구한 전설을 살려 최고의 훈장인 가터대훈장을 만들어 수여하는 등 그의 인기를 이용해 기사도를 살리고 신하들의 충성을 북돋아 주었다. 그의 무덤에서 장미꽃이 피어났다는 전설도 생겨났다. 이후 사람들은 이날에 가슴에 붉은 장미를 꽂아 용감한 조지 성인을 기렸다. 특이하게도 스페인의 카탈로니아 지방에서도 조지 수호성인을 기리는데, 조지 성인이 죽은 날이 되면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책을 선물하고 이에 대해 책을 받는 남자는 장미꽃을 대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임진왜란 때 중히 쓰였으면 어땠을까 싶은 인물이 둘 있다. 바로 이 책 《조선의 영웅 김덕령》의 주인공인 김덕령과 송구봉이다. 조선 중기의 걸출한 인물이었던 둘은,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눈과 신분의 굴레에 매여 높은 뜻을 못다 펼친 채 스러져갔다. 솔직히 역사에 밝은 이에게도 김덕령과 송구봉의 이름은 생소할 법하다. 김덕령은 임진왜란 때 그 누구보다 큰 공을 세우고도 반란 수괴 이몽학을 도왔다는 죄명으로 모진 국문을 받다 순국했고, 율곡 이이의 절친한 벗이었던 송구봉은 율곡을 능가하는 천재로 이름이 높았으나 미천한 출신 때문에 출사하지 못하고 재야에 묻혀 지냈다. 지은이는 먼지를 덮어쓰고 박제되어 있던 두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는다. 이들은 둘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시선이 많았던 덕분인지 유난히 전설과 설화가 많다. 이런 이야기들을 얼기설기 엮어낸 지은이의 글을 읽다 보면, 마치 전우치가 족자에서 뛰어나온 것처럼 두 사람이 책 밖으로 걸어 나올 것만 같다. 광주 무등산 기슭에서 태어난 김덕령은 어려서부터 힘이 장사였다. 전설에 따르면 중국 지관이 무덤을 쓰려고 점찍어둔 자리에 김덕령의 부모가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우린 다른 사람의 의견에 반대할 때 이런저런 합리적 근거를 제시하려고 애씁니다. 이런 까닭으로, 저런 이유로 싫어한다고 표현하는 경우가 그것이지요. 하지만 그 이면에는 "나는 당신이 싫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의 말에 반대한다."라는 감정이 깔려있습니다. 그러니 모든 선택은 감정이 좌우하는 것이며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근거는 감정을 정당화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모든 선택에는 반드시 끌림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변화시키고 싶다면 논리에 앞서 감성을 자극해야 합니다. 좋아하면 판단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자 조지가 이런 실험을 합니다. "나는 약간의 반란은 좋은 것이며 자연계에서의 폭풍처럼 정치계에서도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 말을 두 그룹에 들려주고 첫 번째 그룹에는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 한 말이라고 소개하고 두 번째 그룹에는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가인 레닌이 한 말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놀랍습니다. 첫 번째 그룹은 거의 모든 학생이 그 말에 동의를 표했지만 두 번째 그룹은 거의 모든 학생이 그 말에 반대를 표한 것이지요. 같은 말을 들려주었는데도 그 평가가 상반되게 나온 것은 말하는 사람마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17살의 나이에 임금이 된 선조의 간곡한 부름을 받고 한양으로 올라왔지만, 그 자신 이미 70을 바라보던 퇴계 이황(1501~1570)은 임금에게 훌륭한 왕이 되어 선정을 펼 기본 조건을 다 말씀드린 뒤에 거듭 사직을 호소하다가 이듬해인 선조 2년(1569년) 음력 3월 4일 마침내 돌아가라는 허락을 받는다. 퇴계는 경복궁 사정전에서 임금에게 사직을 고하고 곧바로 도성을 나와서 한강을 건너 고향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시작하였다. 이튿날인 3월 5일에 지금의 금호동 근처 나루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널 때에 배 안에 많은 명사와 선비들이 함께했다. 그 가운데는 편지로 사단칠정론을 논하던 제자 기대승도 있었다. 정신적 스승을 보내는 기대승은 이런 시를 지어 작별을 아쉬워했다; 江漢滔滔萬古流 한강수 도도히 만고에 흐르는데 先生此去若爲留 선생의 이번 걸음 어찌하면 만류할꼬 沙邊拽纜遲徊處 백사장 가 닻줄 잡고 머뭇거리는 곳 不盡離膓萬斛愁 이별의 아픔에 만 섬의 시름 끝이 없어라 이에 선생이 기대승의 시의 운을 사용해서 답시를 짓는다. 列坐方舟盡勝流 배에 둘러앉은 사람 모두가 훌륭한 인물들 歸心終日爲牽留 돌아가려는 마음이 종일토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병신춤이라 부르지 마시오. 불행하고 가난한 사람 병들어 죽어 가는 사람 장애자들 내 동생 어린 곱사 조카딸의 혼이 나에게 달라붙어요. 오장 육부가 흔들어 대는 대로 나오는 춤을 추요.” (p.14) 광대 공옥진이 춘다. 오장 육부를 뒤흔들며 춘다. 이른바 ‘병신춤’이다. ‘병신’이라는 말에 내포된 부정적 어감을 지우기 위해 ‘곱사춤’으로도 불리는 이 춤은, 신체가 부자유스러운 이들의 한과 눈물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한판 굿에 가깝다. 한 시대를 풍미한 판소리 명창, 1인 창무극의 대가, 곱사춤 명인 공옥진은 아이돌 그룹 투애니원의 단원 공민지의 고모할머니로도 잘 알려져 있다. 공민지 또한 집안에 면면히 흐르는 ‘예인의 피’를 입증하듯, 수많은 아이돌 그룹 가운데서도 예사롭지 않은 춤 실력으로 이름을 날렸다. 지은이는 이 책 《춤은 몸으로 추는 게 아니랑께 – 광대 공옥진》을 통해 명인 공옥진이 한평생 걸었던 예인의 길, 그녀가 남기고 떠난 소중한 유산을 딸에게 들려주는 듯한 친근한 어조로 풀어낸다. ‘우리 인물 이야기’ 시리즈의 일곱 번째 이야기로 나온 이 책을 읽다 보면 ‘공옥진’이라는 한 인간이 일궈낸 아름다운 유산을 오롯이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류시화님의 작은 이야기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옛날 그리스에 애꾸눈 장군이 죽기 전에 자기 초상화를 남기고 싶어 이름난 화가들을 불렀습니다. 화가들이 그린 초상화를 보고 장군은 못마땅하게 생각했지요. 어떤 화가는 애꾸눈을 그대로 그렸고, 또 어떤 화가는 양쪽 모두 성한 눈을 그렸습니다. 장군은 애꾸눈의 초상화도 못마땅했지만 성한 눈을 그린 것도 못마땅한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 이름 없는 화가가 나섰습니다. 이 무명 화가의 초상화는 장군을 흡족하게 했습니다. 그는 장군의 성한 옆모습을 그렸던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혜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물을 칭송했습니다. "가장 훌륭한 것은 물처럼 되는 것이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상선약수는 노자 사상의 큰 축을 이루는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세상엔 물처럼 싱거운 것이 없습니다. 맹물 같은 사람이란 표현 속에는 업신여김도 들어있지요. 물은 컵에 담으면 컵 모양으로 주전자에 담으면 주전자 모양으로 되기 때문에 지조 없음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세상에 물보다 더 부드럽고 여린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단단하고 힘센 것을 물리치는데 이보다 더 훌륭한 것도 없습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최종고 전 서울법대 교수님이 낸 《한국을 사랑한 세계작가들》이란 책을 보았습니다. 한국을 사랑하여 한국에 관하여 글을 쓴 세계작가들에 대한 책이지요. 최 교수님은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모교에서 33년 동안 법사상사를 가르치셨습니다. 제가 졸업한 이후에 교수로 오셨기에 제가 배울 기회는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최 교수님이 최근까지 서울법대 문우회 회장을 하셨고, 저도 2017년에 문우회 회원으로 가입하였기에 문우회 모임에서 가끔 뵐 기회가 있었습니다. 아! 오래전에도 한 번 뵌 적이 있네요. 제가 사법연수원 다닐 때 졸업 논문을 무엇으로 쓸까 고민하다가, 성경에 나오는 법사상을 한 번 정리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리하여 도움을 얻기 위해 서울대로 최 교수님을 찾아간 적이 있지요. 그때 최 교수님이 좋은 점에 착안하였다고 격려도 해주셨는데, 준비하다가 졸업논문 제출 시한까지 제대로 된 논문을 완성한다는 것은 도저히 제 능력 밖이라 포기했었네요. 그런데 어떻게 최 교수님이 《한국을 사랑한 세계작가들》이란 책을 쓰게 되셨을까요? 머리말에서 최 교수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거